당근을 공동창업하고 글로벌 로컬 플랫폼으로 키운 김용현·김재현
한국에서 만렙을 찍고 캐나다에서 다시 레벨 1이 된 두 창업자
#12022년 1월, 은 가족과 함께 이민 가방 여섯 개를 들고 캐나다 토론토로 떠났다. 출장이 아니었다. 관광도 아니었다. 이민이었다.
#2당시 당근은 이미 한국에서 가입자가 3,000만 명에 육박하는 국민 앱이었다. 2021년 투자에서는 약 3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창업자가 가장 고생스러운 구간을 지나 이제 좀 편해져도 이상하지 않을 시점이었다.
#3그런데 김용현은 반대로 움직였다. "북미 시장에서 자리 잡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로 한국 경영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직접 캐나다로 들어갔다. 그가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은 7년 전 판교에서 했던 일과 놀랄 만큼 비슷했다.
#4사람들에게 처음 보는 앱을 깔게 하고, 동네 사람끼리 물건을 사고팔게 하고, 아무도 없는 장터에 사람을 한 명씩 모으는 것.
#5한국 서버에서는 만렙을 찍었는데 캐나다 서버에 접속하자 다시 레벨 1이 된 셈이었다.
#6왜 수조 원짜리 회사를 만든 창업자가 다시 이런 일을 하고 있었을까. 그 답을 찾으려면 2015년보다 조금 더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7당근의 공동창업자는 김용현과 이다. 이름만 보면 형제가 회사를 차린 것 같지만 형제는 아니다. 대신 두 사람의 경력은 묘하게 잘 맞았다.
#8김용현은 삼성물산과 등을 거쳐 2011년 에 합류했다. 서비스와 사업을 만드는 쪽에 강했다. 카카오에서는 플러스친구와 게임 플랫폼 등의 일을 맡았고, 지역의 맛집·카페·장소를 친구 관계를 활용해 추천하는 TF도 이끌었다.
#9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카카오플레이스는 성공하지 못했다.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TF도 해체됐다. 그러니까 김용현은 당근으로 처음 '로컬'을 발견한 사람이 아니었다.
#10한 번 동네를 붙잡았다가 실패한 사람이었다. 김재현의 경력은 또 다르다. 네이버에서 개발자로 일했고, 회사를 나와 소셜커머스 업체 를 창업했다. 2012년 카카오가 씽크리얼스를 인수하면서 카카오에 합류했다.
#11이미 한 번 창업해서 회사를 매각해본 개발자였다. 그렇게 카카오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
#12그리고 두 사람이 눈여겨본 것은 거창한 신기술도, 해외에서 막 뜨고 있던 사업 모델도 아니었다.
#13회사 게시판이었다. 카카오 직원들은 사내에서 중고 물건을 활발하게 사고팔았다. 같은 회사 사람이라는 이유로 상대가 완전히 익명의 인터넷 사용자가 아니었다. 직장에서 계속 마주칠 수 있으니 물건 상태나 가격을 속이기도 부담스럽고, 거래할 때도 서로 친절했다.
#14여기에서 아주 단순한 질문이 나왔다. 같은 회사 사람이라서 이런 신뢰가 생긴다면, 가까이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15옛 동료 전무익도 지역 장터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초기 과정에 관여했다. 다만 전무익이 제주 카카오 본사로 발령 나면서 사업은 김용현과 김재현이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16인터넷이 수십 년 동안 지구 반대편 사람과 연결되는 방법을 발전시키고 있을 때, 이들은 반대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17"세계 말고 진짜 마을부터 연결해보면 어떨까?"
#182015년 두 사람은 카카오를 나왔다. 그리고 그해 7월 판교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19이름은 . 판교에서 장터를 하니까 판교장터였다. 처음부터 "세상을 바꾸는 하이퍼로컬 라이프 플랫폼" 같은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스타트업 이름이라기보다 동네 바자회 이름처럼 정직했다.
#20초기의 판교장터는 지금의 당근과도 달랐다. 판교 테크노밸리의 회사를 인증한 직장인들이 사용하는 장터였다.
#21문제는 모든 플랫폼이 처음 만나는 그 문제였다.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으니 물건도 없다. 물건이 없으니 들어올 이유도 없다. 들어올 이유가 없으니 사람이 더 없다.
#22팀은 사용자를 모으려고 거래한 판매자와 구매자에게 커피 쿠폰을 나눠줬다.
#23심지어 드론까지 날려 홍보했다. 동네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시작했는데 잠시 마케팅만큼은 하늘로 올라간 것이다.
#24그렇게 한 명씩 모은 주간 방문자가 1,000명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자 판교 주민들도 자신들에게 서비스를 열어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했다.
#25회사를 인증하는 직장인 장터에서, 지역을 인증하는 동네 장터로 아이디어가 한 단계 변했다.
#26그리고 2015년 10월 새로운 이름이 등장했다. 당근마켓. 뜻은 '당신 근처의 마켓'이었다.
#27이 이름이 너무 성공하는 바람에 훗날 회사는 정말 주황색 당근으로 뒤덮였고, 해외에 나가서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글로벌 서비스 이름은 이 됐다.
#28하지만 이름보다 중요한 단어는 '당근'이 아니라 '근처'였다.
#29당시 한국에는 이미 거대한 가 있었다. 그러니 당근이 발견한 것은 중고거래라는 새로운 시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던 시장에서 연결 방식을 뒤집었다.
#30전국 중고거래의 장점은 명확하다. 서울에 살아도 부산 사람이 올린 희귀한 물건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이 많을수록 매물이 많아지고 선택지가 늘어난다.
#31하지만 그만큼 상대방은 멀리 있는 익명의 ID가 된다. 돈을 먼저 보냈는데 물건이 안 오는 중고거래 사기도 오래된 문제였다.
#32당근은 정반대로 갔다. 멀리 있는 사람과 거래하지 못하게 했다. 초기에는 대략 수 km 생활권을 중심으로 거래 상대를 제한했다. 인터넷 플랫폼이라면 보통 더 많은 사용자를 서로 연결하려고 하는데, 당근은 연결해놓고 다시 잘라냈다.
#33"저 사람은 너무 멉니다. 옆 동네 사람부터 만나세요." 이 제약이 제품의 핵심이었다.
#34택배 대신 직접 만난다. 전국의 익명 사용자 대신 같은 생활권의 이웃을 만난다.
#35인터넷이 세계를 하나의 마을로 만들겠다고 달려가고 있을 때 당근은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달렸다.
#36세계가 아니라 진짜 마을을 인터넷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판교에서 됐다.
#37분당에서도 됐다. 수지에서도 됐다. 이쯤 되자 창업팀은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할 만했다.
#38그래서 새로운 5~6개 지역으로 한꺼번에 확장했다. 전부 안 됐다.
#39이 실패는 광고비를 날린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판교, 분당, 수지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비교적 젊은 가족과 육아 가구가 많이 사는 신도시였다.
#40그렇다면 무서운 가능성이 하나 생긴다. 당근이라는 서비스가 좋은 게 아니라, 신도시에서만 우연히 잘되는 서비스였던 것은 아닐까.
#41유아용품을 사고파는 젊은 부모가 많은 지역에서만 돌아가는 장터라면 전국 서비스가 될 수 없다.
#42김용현은 훗날 이 시기의 좌절을 이야기하면서, 여기서 포기했다면 사업을 접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43판교에서의 성공이 오히려 함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팀은 몇 달 뒤 다시 실험했다.
#44이번에는 부천이었다. 그리고 제주도였다. 됐다. 판교와 성격이 다른 지역에서도 사람들이 가까운 이웃과 물건을 사고팔았다.
#45이 순간 당근에게 중요한 답 하나가 나왔다. 판교에서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46그렇다고 이제 전국 출시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당근에는 대한민국이라는 시장 하나가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47일반적인 인터넷 서비스는 전국 사용자 수가 늘면 네트워크가 함께 커진다.
#48당근은 조금 다르다. 서울에서 사용자가 1,000만 명이어도 제주도의 어떤 동네에 사용자가 세 명뿐이라면 그 동네의 당근은 사실상 죽어 있다. 내가 물건을 사려는데 400km 떨어진 곳의 사용자가 아무리 많아봐야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49그래서 당근은 거대한 쇼핑몰 하나를 운영한다기보다 전국에 작은 장터 수천 개를 동시에 열어야 하는 서비스에 가깝다.
#50게임으로 치면 동네마다 맵이 따로 열린다. 판교 클리어. 분당 클리어. 수지 클리어. 부천 클리어. 제주 클리어.
#51그런데 옆 동네로 넘어가면 다시 레벨 1이다. 그래서 당근은 지역을 하나씩 확장했다. 새로운 기능 역시 일부 지역에서 검증한 뒤 넓히는 방식을 반복했고, 전국으로 확대하는 데 1~2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52느려 보이지만 이 방식에는 중요한 원칙이 있었다. 거래 범위를 넓혀버리면 훨씬 쉽게 매물을 늘릴 수 있다. 전국의 물건을 보여주면 빈 장터 문제도 금세 해결된다.
#53하지만 그러는 순간 당근이 당근일 이유가 사라진다. 개발자 출신 김재현은 훗날 지역 기반이라는 초기 원칙을 지킨 것이 중요했다고 회고했다.
#54성장하기 위해 연결을 늘려야 하는 플랫폼이, 성장하기 위해 연결을 제한했다.
#55이 역설이 당근을 중고나라와 다른 서비스로 만들었다.
#56당근의 가능성을 일찍 본 투자사 가운데 하나가 였다.
#572016년부터 투자를 시작했고 이후 여러 차례 후속 투자를 이어갔다. 투자자들이 본 것은 단순한 중고거래 앱만은 아니었다.
#58동네 사람을 충분히 모을 수 있다면 그다음부터 전혀 다른 사업이 가능해진다.
#59동네 가게가 들어올 수 있다. 구인구직이 들어올 수 있다. 부동산이 들어올 수 있다. 지역 광고가 들어올 수 있다. 동네 정보와 모임도 들어올 수 있다.
#60중고거래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올 이유를 만들어주는 첫 번째 문이었다. 2018년 전국 서비스로 확대되면서 성장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당근은 거대한 지역생활 플랫폼으로 커졌고, 2021년 투자에서는 약 3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유니콘 반열에 올랐다.
#61판교 테크노밸리 직원들이 중고 모니터와 의자를 사고팔던 장터가 약 6년 만에 수조 원짜리 회사가 된 것이다.
#62두 공동창업자의 역할도 달랐다. 서비스와 사업에 강했던 김용현이 운영과 사업을 밀었다면 개발자 출신 김재현은 기술을 중심으로 회사를 만들었다. 두 사람이 모든 것을 똑같이 반씩 하는 공동대표라기보다 서로 다른 영역을 채우는 조합에 가까웠다.
#63회사가 커지면서 상징적인 사건도 있었다. 2022년 두 창업자는 자신들이 보유한 당근마켓 주식 가운데 약 150억 원 상당을 임직원들에게 증여했다. 회사를 함께 만들고 있는 구성원 가운데 정작 주주가 아닌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체감한 뒤 개인 지분 일부를 나눈 것이었다.
#64판교에서 드론을 날리며 사용자를 한 명씩 모으던 작은 팀은 어느새 수백 명이 함께 만드는 회사가 되어 있었다.
#65보통 창업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창업. 위기. 성장. 유니콘. 그런데 당근 창업자 이야기는 여기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66당근은 2019년 영국을 시작으로 해외 시장에도 도전했다. 일본 등으로도 진출했다.
#67하지만 한국에서처럼 되지 않았다. 서비스를 출시하고 한국에서 운영하면서 현지 사용자가 왜 들어오지 않는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68김용현이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현지 사용자를 알고 싶다면 현지로 가야 한다.
#69그래서 2022년 가족과 이민 가방 여섯 개를 들고 토론토로 갔다. 회사를 보내는 것과 자신이 가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70한국에서는 이미 수천만 명이 쓰는 앱의 창업자였다. 캐나다에서는 당근을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설명해야 했다.
#712015년 판교에서 했던 질문이 다시 나타났다. "이 동네 사람들이 정말 이걸 쓸까?"
#72김용현이 북미 사업에 집중하는 동안 국내 경영 체제도 달라졌다. 이후 김재현 역시 글로벌·미래 전략을 맡고 일본 사업에도 직접 뛰어들었다.
#73판교의 작은 장터에서 함께 시작했던 두 창업자가 시간이 흐른 뒤 서로 다른 나라의 동네를 공략하고 있었다.
#74한 명은 북미. 한 명은 일본. 그런데 하는 일의 본질은 처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75새로운 동네에 들어간다. 사람을 모은다. 가까운 사람끼리 거래하게 만든다.
#76그리고 캐나다에서는 숫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2024년 5월 Karrot의 캐나다 누적 가입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 2025년 초에는 200만 명을 돌파했다.
#77물론 가입자 200만 명이 한국에서의 성공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뜻은 아니다. 해외 사업의 장기적인 성공 여부는 아직 더 지켜봐야 한다.
#78하지만 적어도 하나는 분명했다. 레벨 1에서 숫자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79당근이 커질수록 따라붙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중고거래에서 수수료를 받지 않는데 도대체 어떻게 돈을 버느냐는 것이었다.
#80답은 다시 '동네'에 있었다. 사람들이 충분히 모이자 동네 사람을 만나고 싶은 사업자들이 생겼다. 미용실, 음식점, 학원 같은 지역 사업자부터 브랜드와 기업까지 특정 생활권의 사람들에게 광고할 이유가 생겼다.
#81당근이 먼저 만든 것은 거래 수수료가 아니라 사람들의 밀도였다. 그리고 그 밀도가 지역 광고와 비즈니스의 기반이 됐다.
#822023년 당근마켓은 별도 기준 창사 이후 처음으로 연간 흑자를 냈다. 매출 1,276억 원, 영업이익 173억 원이었다.
#832024년에는 별도 기준 매출 1,891억 원, 영업이익 376억 원으로 늘었고, 글로벌 사업 등을 포함한 연결 기준으로도 흑자를 기록했다.
#842025년에는 한 단계 더 커졌다. 연결 기준 매출 2,707억 원, 영업이익 146억 원. 국내 핵심 법인인 당근마켓 별도 기준으로는 매출 2,690억 원, 영업이익 671억 원을 기록했다.
#852025년 한 해 중고거래 연결은 약 1억 9,000만 건에 달했고 당근알바 지원은 5,000만 회를 넘어섰다. 동네 사업자들이 사용하는 비즈프로필도 약 265만 개까지 늘었다.
#86광고주 수 역시 전년보다 37%, 집행 광고 수는 29% 증가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중고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모였다.
#87그 사람들이 충분히 모이자 동네 자체가 사업이 되기 시작했다.
#882023년 당근마켓은 이름에서 '마켓'을 떼었다. 당근. 처음 들으면 사소한 리브랜딩처럼 보인다. 하지만 2015년부터의 흐름을 보면 꽤 중요한 사건이다.
#89판교장터는 말 그대로 장터였다. 당근마켓 역시 이름에 시장이 들어 있었다.
#90그런데 서비스 안에는 어느 순간 중고 물건만 있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네생활이 생겼다. 모임이 생겼다. 동네 가게의 비즈프로필이 생겼다. 알바와 부동산, 중고차 같은 생활 서비스가 붙었다.
#91'마켓'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회사를 너무 작게 설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2025년 창립 10주년을 맞은 당근은 새로운 비전을 내놨다.
#92"로컬의 모든 것을 연결하여, 동네의 숨은 가치를 깨운다." 돌아보면 처음부터 방향은 비슷했다.
#93중고거래는 목적지가 아니었다. 동네에 충분한 사람을 모으기 위한 첫 번째 이유였다.
#942015년 판교. 김용현과 김재현에게는 거대한 플랫폼도, 수천만 사용자의 브랜드도 없었다.
#95판교장터라는 작은 서비스가 있었을 뿐이다. "이 동네 사람들이 쓸까?" 판교에서는 됐다.
#96분당과 수지에서도 됐다. 다른 5~6개 지역으로 나갔다가 처참하게 실패했다.
#97그래서 다시 부천에서 해봤다. 제주에서 해봤다. 됐다. 동네를 하나씩 열었다.
#98마침내 한국 전역에서 됐다. 그리고 2022년 김용현은 이민 가방 여섯 개를 들고 캐나다로 갔다.
#99회사 규모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기업가치도, 직원 수도, 사용자의 수도 완전히 달라졌다.
#100그런데 새로운 동네에 도착한 순간 질문은 다시 똑같아졌다. "이 동네 사람들이 쓸까?"
#101캐나다에서는 이제 첫 번째 답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재현도 일본이라는 또 다른 동네에서 답을 찾고 있다.
#102어쩌면 당근 창업자들이 10년 넘게 풀고 있는 문제는 중고거래가 아닐지도 모른다.
#103한 동네에서 통했던 것이 다른 동네에서도 통하는가. 그리고 그 답을 얻으면 또 다음 동네로 갈 수 있는가.
#104당근이 새로 만든 것은 동네가 아니었다. 동네는 원래 있었다. 서로 모른 채 지나치던 사람들이 있었을 뿐이다.
#105판교에서 시작한 두 사람은 그 사람들을 하나씩 연결하며 전국으로 갔고, 이제 국경 밖에서 같은 실험을 반복하고 있다.
#106판교에서는 됐다. 한국에서도 됐다. 캐나다에서는 첫 번째 답이 나오기 시작했다.
#107다음 동네의 답은 아직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