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ual Life와 Boiler Room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영국 DJ·프로듀서
남들의 목소리를 만들던 남자는 왜 자기 목소리를 찾는 데 10년이 걸렸나
#12022년 여름, 런던 Boiler Room. DJ 한 명이 관객 한가운데 서 있다.
#2사람들이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팔만 뻗으면 장비에 닿을 정도다. 실제로 공연 도중 한 관객이 장비를 건드려 음악이 끊기는 사고까지 난다.
#3DJ는 잠깐 당황한다. 다시 수습한다. 그리고 Maschine(드럼머신·샘플러)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4드럼을 손으로 찍고, 보컬을 잘라내고, 아직 발매하지도 않은 곡을 마구 튼다.
#5관객이 폭발한다. 인터넷도 폭발한다. 그 남자의 이름은 Fred again..이었다.
#6그리고 이 공연을 통해 그를 처음 발견한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7신인이 아니었다. Ed Sheeran의 음악을 만들었다. Stormzy의 음악을 만들었다.
#8George Ezra의 1위곡에도 참여했다. 2019년에는 영국 1위 싱글의 약 3분의 1에 작곡이나 프로듀싱으로 관여했다. 이듬해에는 BRIT Awards의 Producer of the Year(올해의 프로듀서)를 받았다.
#9남들을 스타로 만드는 일로 이미 정상까지 올라간 사람이 갑자기 무대 앞으로 튀어나온 셈이다.
#10그런데 더 이상한 건 따로 있었다. Fred는 남들에게 필요한 음악은 기가 막히게 만들면서도, 오랫동안 자기가 무슨 음악을 해야 하는지는 찾지 못했다.
#11Fred again..의 이야기는 그래서 성공담이라기보다 조금 이상한 길찾기 이야기다.
#12Fred Gibson은 1993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무렵부터 이모의 테이프 레코더에 자기가 만든 피아노 곡을 녹음했다. 학교에서는 수업을 빼먹고 음악실에 가기도 했다.
#13그런데 Fred는 단순히 악기 연주를 좋아했던 아이가 아니었다. 녹음하고 조립하는 걸 좋아했다.
#14Boss 16트랙 레코더로 혼자 이것저것 녹음하다가 음악 선생님에게 Logic(음악 제작 프로그램)을 소개받았다.
#15처음에는 Logic을 그냥 거대한 녹음기로 썼다. 한참 뒤 친구가 물었다.
#16MIDI(컴퓨터에서 음표와 연주 정보를 다루는 방식)는 왜 안 쓰냐.
#17Fred는 그때까지 Logic 안에서 가상 악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18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버렸다. 이후 Fred는 Logic에 미친 듯이 매달렸다.
#19십대가 되자 아예 90분짜리 전자 교향곡을 만들었다. 래퍼와 가수를 불렀다.
#2050명 규모의 학교 오케스트라도 집어넣었다. 보통 십대가 음악에 빠지면 밴드를 만든다.
#21Fred는 갑자기 교향곡 제작위원회를 열었다. 그 작품이 결국 한 사람에게 전달됐다.
#22Brian Eno였다.
#23Brian Eno는 David Bowie, Talking Heads, U2, Coldplay 등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프로듀서이자 ambient music(앰비언트 음악)의 핵심 인물이다.
#24Fred는 16살 무렵 Eno와 가까워졌고 그의 작업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25그런데 Fred가 Eno에게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화성학도, Logic 사용법도 아니었다.
#26어느 날 Fred가 코드를 하나 연주했다. Eno가 놀랐다.
#27방금 그거 뭐야.
#28Fred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냥 C major chord(C장조 화음)였다.
#29도-미-솔. 음악 공부를 한 Fred에게는 이름까지 붙여 생각할 필요도 없는 기본적인 소리였다.
#30그런데 Eno는 다시 들으라는 식으로 반응했다. Fred는 나중에서야 그 장면을 이해했다.
#31자신은 소리를 듣자마자
#32C메이저.
#33라고 분류하고 있었다. Eno는 알고 있는 소리조차 처음 듣는 것처럼 듣고 있었다.
#34Fred는 훗날 음악 이론은 결국 도구일 뿐이며, 중요한 것은 소리가 실제로 어떻게 들리는지를 순수하게 듣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35이 별것 아닌 장면이 나중에 굉장히 중요해진다. Fred again..의 음악을 만든 것은 결국 그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362014년 Fred는 Brian Eno와 Underworld의 Karl Hyde가 함께 만든 “Someday World”와 “High Life” 제작에 참여했다.
#37이후 본격적으로 다른 가수들의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Fred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15살부터 23살 무렵까지 형과 함께 만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람과 세션을 하려고 돌아다녔다.
#38그는 자신의 능력을 타고난 천재성보다는 10,000시간의 반복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39그리고 그 반복이 무섭게 터지기 시작했다. Clean Bandit. George Ezra.
#40Stormzy. Rita Ora. Ed Sheeran. 2019년에는 영국 1위 싱글의 약 3분의 1에 Fred의 이름이 들어갔다.
#412020년에는 BRIT 올해의 프로듀서까지 됐다. 여기서 보통 음악가 이야기는 끝난다.
#42고생했다. 성공했다. 상 받았다. 끝이다. Fred 이야기는 여기서 이상해진다. 성공할수록 문제가 커졌다.
#43Fred는 원래 자기 음악을 만들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20대 내내 남의 음악을 만들다 보니 어느 순간 이상한 감각이 생겼다.
#44내가 만들어야 할 무언가가 있는데 지금 그걸 만들고 있지 않다.
#45실제로 Fred는 팝 프로듀서로 성공하기 전 여러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시도했지만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46실력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다. Fred 표현으로는 자신이 만들어야 할 것이 있었지만 당시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던 렌즈로는 만들 수 없었다.
#47이게 Fred의 가장 재미있는 실패다. 남에게 필요한 Fred는 알았다. Ed Sheeran에게 필요한 Fred도 알았다.
#48Stormzy에게 필요한 Fred도 알았다. 그런데 Fred에게 필요한 Fred가 뭔지는 몰랐다.
#49그때 Brian Eno가 다시 등장했다. Eno가 어느 날 주방을 정리하며 iTunes를 셔플 재생하고 있었다.
#50좋은 곡이 나왔다. 확인했다. Fred가 예전에 보내준 음악이었다. 또 좋은 곡이 나왔다.
#51또 Fred였다. 결국 Eno가 Fred에게 음성메시지를 보냈다. 이 음악들을 자기 노트북에 처박아두지 말고 다시 제대로 만들라는 내용이었다.
#52Fred는 다시 자기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진짜 해답은 Brian Eno의 스튜디오가 아니라 전혀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53애틀랜타의 어느 술자리였다.
#54Fred가 애틀랜타에 갔을 때였다. 그곳에서 우연히 Carlos라는 건설 노동자를 만났다.
#55Carlos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Fred는 평소 술자리에서 그러듯 휴대폰으로 그를 찍었다.
#56그리고 다음 날 아침. 숙취에 찌든 Fred가 전날 영상을 넘겨보고 있었다.
#57Carlos 영상이 나온다. 그가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58We gon' make it through, man.
#59우리는 이겨낼 거라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웃고 다음 영상으로 넘겼을 것이다.
#60Fred는 멈췄다. 그 말을 음악처럼 들었다. Logic에 집어넣었다. 목소리를 잘랐다.
#61반복했다. 음악을 붙였다. 그리고 Fred 본인의 표현으로는 실제 삶의 한 순간이 가진 현실성과 아름다움을 음악이 붙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62그 감각에 곧바로 중독됐다고 했다. 결과물이 “Carlos (make it thru)”였다.
#63그리고 Fred는 자기가 몇 년 동안 찾던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방식이 기묘했다.
#64자기 목소리를 찾았는데 자기 목소리가 아니었다.
#65Fred는 자신의 휴대폰을 뒤지기 시작했다. 친구와의 대화. 음성메시지. FaceTime.
#66Instagram 영상. YouTube. 길에서 만난 사람. 우리가 휴대폰 용량이 부족하면 제일 먼저 지울 만한 것들이 음악의 재료가 됐다.
#67그래서 Actual Life의 곡 제목에는 사람 이름이 계속 등장한다. Carlos.
#68Kyle. Sabrina. Marea. Angie. Fred의 음악에는 피처링 가수보다 등장인물이 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생겼다.
#69남들의 목소리를 많이 넣을수록 오히려 Fred라는 사람이 선명해졌다. 어떤 목소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가.
#70어떤 한 문장을 반복해서 듣는가. 어떤 사람에게서 슬픔을 발견하고, 어떤 순간에서 희망을 발견하는가.
#71그 선택 자체가 Fred였던 것이다. 그가 찾던 자기만의 사운드는 특정 신시사이저도, 드럼도 아니었다.
#72세상을 듣는 방식이었다.
#73Fred는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이 방식에 깊이 빠져 있었다.
#74그런데 2020년 세계가 봉쇄된다.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공연도 없다. 클럽도 닫힌다.
#75친구들은 휴대폰 화면 속에 있다. Fred가 하던 음악은 갑자기 시대 전체와 기묘하게 겹쳤다.
#76휴대폰 속 사람들의 조각으로 인간관계를 경험하는 음악. 그때 나온 대표적인 곡이 “Marea (We've Lost Dancing)”였다.
#77The Blessed Madonna와의 대화에서 나온 목소리를 사용해, 사람들이 춤과 클럽과 서로 함께 있는 경험을 잃어버린 시기를 음악으로 만들었다.
#78Fred 개인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심각하게 아프고, 봉쇄 중 병원을 오가야 했던 힘든 경험이 있었다.
#79그래서 Actual Life는 단순히 밝은 댄스음악이 아니었다. 상실을 이야기하는 목소리 뒤에서 킥드럼이 울렸다.
#80슬픔이 끝나서 춤추는 음악이 아니라, 슬픈 상태 그대로 춤추는 음악이었다.
#812021년 첫 “Actual Life”가 나왔다. Fred가 그렇게 오래 찾던 자기 음악이었다.
#82이제 2022년 Boiler Room의 장면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처음 보면 그냥 DJ가 버튼을 두드리고 있는 것 같다.
#83하지만 그 버튼 안에는 사람들이 있다. Carlos가 있다. 친구들이 있다.
#84FaceTime이 있다. Fred가 지난 몇 년 동안 수집한 순간들이 있다.
#85개인적인 일기장을 수백 명의 관객 한가운데 가져다놓고 함께 재생하고 있는 셈이었다.
#86그 공연이 Fred를 세계적인 전자음악 스타로 밀어올렸다. 그리고 불과 몇 달 뒤 이야기는 더 이상한 곳으로 간다.
#87Fred는 Skrillex, Four Tet과 함께 공연하기 시작했다. 2023년 2월에는 Madison Square Garden에서 셋이 약 5시간 동안 함께 공연했다.
#88두 달 뒤에는 Coachella에서 더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Frank Ocean이 부상으로 두 번째 주 공연을 취소했다.
#89Fred again.., Skrillex, Four Tet이 마지막 날 메인 스테이지에 긴급 투입됐다.
#90몇 년 전 Fred는 봉쇄된 세상에서 “We've Lost Dancing”을 만들었다.
#91이제 그의 눈앞에서는 수만 명이 춤추고 있었다. 이 장면에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92Fred가 춤을 되찾은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돌아온 것이다.
#93Fred의 성공에는 반드시 같이 봐야 할 사실이 있다. 그는 영국의 명문 사립 기숙학교 Marlborough College에서 교육받았고, 가족·지인 네트워크를 통해 16살에 Brian Eno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94귀족 가계와 연결된 집안 배경 역시 알려져 있다. 그리고 Brian Eno가 Fred의 대부였다는 인터넷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Eno는 멘토였다.
#95그러니 Fred를
#96아무런 배경도 없는 소년이 오직 재능으로 성공했다.
#97라고 쓰는 것은 틀린다. 상당히 좋은 출발선이었다. 반대로
#98집안이 좋아서 성공했다.
#99만으로 끝내기도 어렵다. 좋은 집안이 Logic을 대신 켜주지는 않는다. Brian Eno와 안다고 2019년 영국 1위곡의 3분의 1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00Fred 자신은 15살부터 23살까지 가능한 모든 사람과 세션하려고 뛰어다녔고 자신의 성장을 재능보다는 반복된 훈련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101Fred에게는 유리한 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 문으로 들어간 뒤 엄청나게 오래 일했다.
#102둘 중 하나를 지우면 이야기가 오히려 재미없어진다.
#103Fred again..은 샘플링을 발명한 사람이 아니다. 휴대폰 녹음을 처음 음악에 사용한 사람도 아니다.
#104감성적인 댄스음악도, 관객 가까이에서 하는 DJ 공연도 그가 처음 만든 것이 아니다.
#105Fred가 발견한 것은 훨씬 개인적이었다. 자기가 어떤 음악가인지 알아내는 방법이었다.
#106어릴 때 Fred는 자기 피아노를 녹음했다. 십대에는 오케스트라를 녹음했다.
#10720대에는 세계적인 팝스타들을 녹음했다. 그리고 결국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108친구가 무심코 한 말. FaceTime에서 나온 한 문장. 술자리에서 만난 건설 노동자.
#109다른 사람이라면 지나쳤을 몇 초를 다시 듣는다. 이 지점에서 16살 때 Brian Eno와 있었던 C메이저 이야기가 돌아온다.
#110Fred는 C메이저를 듣고 말했다.
#111그냥 C메이저인데요.
#112Eno는 사실상 이렇게 대답했던 셈이다.
#113그래도 다시 들어봐.
#114몇 년 뒤 Fred는 정말 그렇게 살기 시작했다. 남들은 영상을 넘겼다. Fred는 다시 들었다.
#115남들은 음성메시지를 닫았다. Fred는 다시 들었다. Carlos가 한 말을 다시 들었다.
#116그리고 자기 인생도 다시 들었다. 그래서 Fred again..이라는 이름은 결과적으로 그의 음악과 이상할 정도로 잘 맞는다.
#117남들의 목소리를 누구보다 잘 듣던 남자는 자기 목소리를 찾는 데 거의 10년이 걸렸다.
#118그리고 결국 그가 자기 목소리를 발견한 곳은 다시 남들의 목소리 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