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 시작한 글로벌 홈퍼니싱 기업
IKEA는 플랫팩을 발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IKEA가 세상을 바꿨을까?
#1다섯 살 무렵, Ingvar Kamprad는 성냥을 팔았다. 그 뒤에는 씨앗을 팔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팔고, 물고기를 팔고, 연필과 펜도 팔았다.
#2씨앗 장사가 잘되자 번 돈으로 자전거와 타자기를 샀다. 자전거로 더 멀리 배달하고, 타자기로 고객을 관리했다.
#3그때 Ingvar가 훗날 세계적인 가구 회사를 만들 거라고 예상할 이유는 없었다.
#4애초에 그가 만든 회사는 가구 회사조차 아니었다. 1943년. 열일곱 살이 된 Ingvar는 회사를 등록했다.
#5아직 미성년자라 보호자의 허가가 필요했고, 아버지 Feodor가 졸업선물로 등록비를 내줬다.
#6회사 이름은 자기 이름과 자란 곳에서 한 글자씩 가져왔다. Ingvar Kamprad. Elmtaryd. Agunnaryd.
#7IKEA. 처음 팔았던 것은 펜, 지갑, 액자, 시계, 장신구, 스타킹 같은 잡화였다.
#8가구가 들어온 것은 1948년이었다. 그런데 가구가 빠르게 팔리기 시작했다.
#91952년, IKEA는 다른 물건들을 정리하고 가구와 집 안에서 쓰는 물건에 집중했다.
#10문제는 그때부터였다.
#11당시 우편 주문 가구 시장에서는 가격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회사가 가격을 내리면 다른 회사가 더 내렸다.
#12IKEA도 따라 내렸다. 경쟁사는 다시 내렸다. 가격을 맞추려다 품질까지 떨어지는 업체들이 생겼고, 고객들은 우편 주문 가구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13IKEA에도 불만과 반품이 생겼다. 싸게 팔아야 했다. 그런데 너무 싸면 고객은 물었다.
#14“이거 싸구려 아닌가?” Ingvar와 초기 직원 Sven-Göte Hansson은 다른 방법을 찾았다.
#15가격을 더 내리는 대신, 고객에게 직접 보여주기로 했다. 1953년 Älmhult에 상설 쇼룸을 열었다.
#16카탈로그 사진만 보지 말고 직접 와서 앉아보라고 했다. 서랍을 열어보고, 천을 만져보고,
#17가격과 품질을 눈앞에서 비교하게 했다.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판매도 늘었다.
#18문제가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구업계가 IKEA를 보기 시작했다.
#19기존 가구업체들이 두려워한 것은 싼 의자 하나가 아니었다. IKEA는 카탈로그로 고객을 모으고, 중간 유통을 줄이고, 쇼룸에서 직접 보여주면서 가격을 낮추고 있었다.
#20기존 가구 판매방식 자체를 우회하고 있었다. 충돌은 거칠어졌다. 가구 박람회에서는 IKEA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생겼다.
#21공급업체에는 더 직접적인 압력이 들어왔다. IKEA에 가구를 공급하면 기존 가구점들이 그 업체의 제품을 사지 않겠다는 식이었다.
#22작은 IKEA와 기존 가구업계 사이에서 제조업체가 선택해야 했다. 많은 업체에 답은 뻔했다.
#23IKEA와 거래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IKEA는 물건이 안 팔려서 곤란한 게 아니었다.
#24팔리는데, 만들어줄 사람이 부족해지고 있었다. 일부 공급업체는 몰래 IKEA와 거래했다.
#25단종된 모델을 보내기도 했다. 다른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IKEA가 아닌 중립적인 주소로 물건을 보내기도 했다.
#26그러다 한 가구공장에서 묘한 해결책이 나왔다. 기존 고객에게만 공급하기로 약속한 모델이라 그대로 IKEA에 팔 수는 없었다.
#27그렇다면— 조금 다르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이 스케치했다.
#28그렇게 HANSA 책장 같은 IKEA용 제품이 만들어졌다. 업계가 IKEA에게 기존 가구를 팔기 어렵게 만들자, IKEA는 점점 가구 자체를 설계하는 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29그리고 바로 이 Gillis에게 훗날 IKEA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순간 가운데 하나가 찾아온다.
#30Gillis가 작은 테이블 하나를 자동차에 싣고 있었다. LÖVET이라는 테이블이었다.
#31그런데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다리를 떼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 다시 붙이면 됐다.
#32이 장면은 훗날 IKEA의 flat-pack, 즉 가구를 부품 상태로 납작하게 포장하는 방식의 탄생 이야기로 유명해졌다.
#33완성된 가구를 보내지 않는다. 다리를 떼고, 부품을 겹치고, 작은 상자에 넣고,
#34고객이 집에서 조립한다. 엄청난 아이디어처럼 보인다. 단 하나의 문제가 있다.
#35IKEA가 이 아이디어를 발명한 게 아니었다.
#36Gillis가 LÖVET의 다리를 떼기 전인 1953년. IKEA는 이미 DELFI, RIGA, KÖKSA라는 고객 조립식 테이블을 카탈로그에 싣고 있었다.
#37Ingvar는 공급업체 Ovendals에서 고객이 쉽게 조립할 수 있도록 만든 테이블 구조를 본 적도 있었다.
#38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야기는 아예 IKEA 밖으로 나간다. 1944년. IKEA가 가구를 팔기 시작하기도 전이었다.
#39스웨덴 백화점 는 라는 flat-pack 가구 시리즈를 이미 판매하고 있었다.
#40심지어 19세기에는 Michael Thonet이 의자를 부품 상태로 효율적으로 운송하고 있었다.
#41그러니까 IKEA가 최초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Gillis가 최초로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42그렇다면 이상해진다. 이미 있던 아이디어라면 왜 우리는 flat-pack을 IKEA와 함께 기억할까?
#43답은 상자보다 그 안에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상자 안의 빈 공간을 없애는 데 있었다.
#44완성된 테이블을 트럭에 실어보면 알 수 있다. 상판 아래는 텅 비어 있다.
#45의자 다리 사이도 비어 있다. 책장 안도 비어 있다. 하지만 트럭에서는 그 공기까지 공간을 차지한다.
#46돈이 든다. 게다가 완성된 가구는 운송 중 부딪혀 망가지기 쉽다. IKEA에게 이건 치명적이었다.
#47가구 자체를 아무리 싸게 만들어도 고객 집까지 보내는 비용이 비싸면 낮은 가격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48그래서 질문이 달라졌다. 가구를 어떻게 싸게 만들까? 에서 가구가 공장에서 고객 집까지 가는 전체 과정을 어떻게 싸게 만들까?
#49로. 그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디자인도 달라진다. 예쁜 테이블을 먼저 만든 다음 마지막에 상자를 찾는 게 아니다.
#50처음부터 묻는다. 이 다리는 분리할 수 있는가? 얼마나 납작하게 만들 수 있는가?
#51같은 트럭에 몇 개를 더 실을 수 있는가? 고객이 다시 조립할 수 있는가?
#52flat-pack은 그렇게 단순한 포장법이 아니라 제품을 설계하는 조건이 되어갔다.
#53그런데 IKEA에는 아직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스웨덴에서 그 가구를 충분히 만들어줄 곳이 없었다.
#541961년. Ingvar는 아버지 Feodor, 구매 책임자 Ragnar Sterte, 디자이너 Bengt Ruda와 폴란드로 향했다.
#55스웨덴 업체들의 생산능력만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업계의 boycott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56새로운 공장이 필요했다. 그런데 폴란드에 도착하자 엉뚱한 문제에 막혔다. 공장을 보러 왔는데 공장에 들어갈 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57그때 Marian Grabinski라는 폴란드 엔지니어이자 공무원이 그들을 도왔다.
#58절차가 풀렸다. 다음 날 일행은 기차를 타고 Radomsko로 향했다. 그곳에서 Ingvar는 훗날 잊을 수 없다고 회고한 장면을 경험한다.
#59어두운 다락방. 손에는 촛불. 그들은 오래된 bentwood chair, 즉 나무를 휘어 만드는 의자의 생산에 사용할 도구를 찾아다녔다.
#60그 과정에서 발견한 의자는 훗날 IKEA의 ÖGLA로 이어졌다. 스웨덴에서 문이 닫히자 찾아온 폴란드에서, IKEA는 새로운 공급망을 만들기 시작했다.
#61그리고 와 Ingvar의 관계는 공장 문을 열어준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62두 사람은 친구가 됐다. 얼마 뒤 Milan에서 다시 만났을 때 Ingvar는 자신이 Margareta Stennert와 결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63Marian은 결혼선물을 만들기로 했다. Warsaw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책장을 디자인했다.
#64폴란드 공장에서 샘플을 만들었다. 그리고 Ingvar에게 선물했다. Ingvar는 그 책장을 보더니 뜻밖의 생각을 했다.
#65이걸 IKEA에서 팔고 싶었다. 결혼선물은 MTP라는 수납가구 시리즈로 발전했고, 오랫동안 IKEA에서 판매됐다.
#66IKEA의 가구는 Ingvar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만 나오지 않았다. 직원과 디자이너,
#67공장과 엔지니어, 심지어 해외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제품을 바꿀 수 있게 되자 flat-pack도 더 넓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68하지만 여전히 마지막 조각이 남아 있었다. 납작한 상자를 만든 다음, 누가 그걸 움직일 것인가?
#691958년 Älmhult에 IKEA의 첫 본격적인 매장이 문을 열었다. 사람들은 실제 방처럼 꾸며진 공간을 돌아다니며 가구를 봤다.
#70그 뒤 IKEA가 더 커지면서 또 다른 병목이 생겼다. 1965년 Stockholm 외곽 Kungens Kurva에 거대한 매장을 열자 엄청난 고객이 몰렸다.
#71직원이 주문을 받고 일일이 제품을 가져다주는 방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72IKEA는 다시 일을 나눴다. 이번에는 고객과. 고객은 전시장에서 제품을 본다.
#73창고로 내려간다. 납작한 상자를 직접 찾는다. 카트에 싣는다. 자동차에 넣는다.
#74집까지 가져간다. 그리고 직접 조립한다. 회사가 하던 일 일부를 고객이 맡는다.
#75그 대신 IKEA는 비용을 더 줄일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 처음의 flat-pack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된다.
#76카탈로그가 고객을 데려온다. 쇼룸이 품질을 보여준다. 자체 디자인이 제품 구조를 바꿀 수 있게 한다.
#77해외 공급망이 필요한 물량을 만든다. flat-pack이 운송과 창고 공간을 줄인다.
#78self-service가 매장에서 상품을 꺼내는 일을 고객과 나눈다. self-assembly가 마지막 조립까지 고객과 나눈다.
#79IKEA의 진짜 차이는 flat-pack이라는 아이디어 하나가 아니었다.
#80이미 존재하던 여러 아이디어를 서로 맞물리게 만든 것이었다.
#811970년대에도 이 방식은 반복됐다. 당시 IKEA에는 비슷한 책장이 여러 종류 있었다.
#82생산업체도 달랐고 서로 호환되지 않았다. 루마니아의 공장들을 돌아보던 엔지니어 Arne Hall은 생각했다.
#83이걸 하나로 합치면 어떨까? 공장에도 쉽고, 고객에게도 쉽고, 물류도 단순해진다.
#84Gillis가 스케치했다. 1979년, 책장이 등장했다.
#85이 책장이 오래 살아남은 이유를 디자인 하나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IKEA가 수십 년 동안 반복해온 질문이 그 안에도 들어 있었다.
#86없애도 되는 복잡함은 무엇인가?
#872026년 9월 1일. IKEA는 유럽에서 약 12억 유로를 투입해 대규모 가격 인하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8870여 년 전 Älmhult에서 가격을 깎던 작은 우편 주문 회사와는 규모부터 달라졌다.
#89그런데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오래된 단어 하나가 다시 등장했다.
#90제품 재설계. 자동화도 늘리고, 에너지 비용도 줄인다. 다시 가격표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가격을 만들어내는 과정부터 건드리고 있었다.
#91다섯 살 Ingvar가 성냥을 팔 때부터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92LÖVET의 다리를 떼던 순간 flat-pack이 처음 발명된 것도 아니다.
#93그런데 IKEA는 계속 같은 종류의 문제 앞에 섰다. 가격을 낮추려는데 품질이 막았다.
#94판매가 늘자 업계가 막았다. 공급이 막히자 국경을 넘었다. 배송비가 막자 가구를 분해했다.
#95매장이 막히자 고객에게 창고를 열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다시 제품을 뜯어보고 있다.
#96오늘 IKEA 창고에는 납작한 상자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그 상자 안에는 가구 부품이 들어 있다.
#97그리고 예전 같으면 돈을 내고 운반해야 했을, 수많은 빈 공간은 들어 있지 않다.
#98IKEA보다 먼저 스웨덴에서 flat-pack 가구를 팔았던 는 왜 IKEA가 되지 못했을까?
#991944년, 유명 백화점 Nordiska Kompaniet는 이미 고객이 조립하는 가구를 내놓았다. 아이디어만 놓고 보면 IKEA보다 앞섰다.
#100그런데 Triva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같은 나라에서 비슷한 아이디어를 먼저 내놓은 회사와, 몇 년 뒤 그것을 세계적인 시스템으로 만든 회사.
#101둘 사이에서는 대체 무엇이 달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