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NA 백신의 핵심 기반을 만든 헝가리계 미국 생화학자
교수 자리에서도 밀려난 커리코는 왜 mRNA만은 포기하지 않았을까?
#11995년, 커털린 커리코는 선택해야 했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교수로 올라가는 길을 계속 갈 수 없게 됐다. 연구비 신청은 번번이 떨어졌다. 학교는 그녀를 더 낮은 연구직으로 내리려 했다.
#2하필 그때 가슴에서는 이상한 혹까지 발견됐다. 남편 베일러 프런치어는 비자 문제로 헝가리에 갔다가 약 5개월 동안 미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부부는 집도 막 산 상태였다.
#3연구도 잘 풀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연구 주제를 바꾸거나 다른 길을 찾을 만했다.
#4커리코는 강등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mRNA를 계속 연구했다. 훗날 수십억 명이 맞게 될 백신을 내다봐서가 아니었다.
#5당시에는 코로나19라는 병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커리코가 보고 있던 것은 훨씬 작았다.
#6바로 앞의 실험 결과였다.
#7커리코가 미국에 온 것은 1985년이었다. 헝가리에서 남편, 두 살배기 딸 수전과 함께 필라델피아로 왔다. 당시 헝가리에서는 많은 돈을 해외로 가져갈 수 없었다.
#8부부는 자동차를 팔아 마련한 돈을 딸의 곰인형 안에 숨겼다. 그렇게 미국에 도착한 커리코가 계속 붙든 것이 RNA였다.
#9mRNA는 세포에 전달하는 일종의 임시 설계도다. DNA 자체를 바꾸지 않아도 세포에게 특정 단백질을 만들라고 지시할 수 있고, 일을 마치면 사라진다.
#10말만 들으면 이상적인 약처럼 보였다. 현실에서는 잘 망가졌고 세포 안으로 넣기도 어려웠다.
#11그래도 커리코는 실험에서 조금씩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심장 전문의 엘리엇 바너선과 연구하던 시절, 커리코는 mRNA를 이용해 세포가 실제로 기능하는 단백질을 만들게 하는 실험을 했다.
#12결과를 출력하던 것은 오래된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였다. 종이에 점을 찍으며 삐삐거리던 기계에서 결과가 나왔다.
#13mRNA가 일을 하고 있었다. 아직 약은 아니었다. 대단한 성공도 아니었다.
#14하지만 커리코에게는 다음 실험을 해볼 이유가 됐다. 문제는 실험의 작은 진전이 커리어의 진전으로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151995년 강등 뒤에도 커리코를 지원하던 바너선이 있었기에 연구는 이어졌다.
#16그런데 바너선마저 Penn을 떠났다. 커리코는 다시 연구할 곳을 찾아야 했다.
#17그때 데이비드 랭어가 나타났다. 랭어는 예전에 커리코에게 배우던 젊은 의학도였다.
#18한번은 커리코에게 자신이 그녀가 아는 것을 전부 배우겠다고 말했다. 커리코는 이렇게 받아쳤다.
#19네가 지금 내가 아는 걸 다 배울 때쯤이면, 나는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을 거라고.
#20몇 년 뒤에는 상황이 뒤집혔다. 신경외과 쪽에서 일하던 랭어가 과장을 설득했다.
#21분자생물학자가 필요하다고. 그 덕분에 커리코는 신경외과에서 연구를 계속할 공간을 얻었다.
#22그녀가 혼자 모든 문을 부수며 전진했던 것은 아니다. 문이 닫힐 때마다 다음 문을 열어준 사람이 있었다.
#23그리고 그렇게 Penn에 계속 남아 있었기 때문에, 1997년 어느 날 커리코는 복사기 앞에 서게 됐다.
#24당시 과학자들은 논문을 읽으려면 저널을 직접 복사하는 일이 많았다. 커리코도 그랬다.
#25어느 날 복사기 앞에서 다른 연구자와 마주쳤다. 드루 와이스먼이었다. 둘은 누가 먼저 복사기를 쓸지를 두고 가벼운 실랑이를 벌였다.
#26기다리는 동안 이야기를 시작했다. 와이스먼은 면역학자였다.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앤서니 파우치와 함께 HIV를 연구한 뒤 Penn으로 왔고, 새로운 백신을 만들고 싶어 했다.
#27DNA도 연구했다. 단백질도 있었다. 바이러스도 있었다. 그런데 RNA는 없었다.
#28커리코에게는 그게 있었다. 둘은 함께 실험하기 시작했다. 성격은 꽤 달랐다.
#29커리코는 빠르고 말이 많았다. 와이스먼은 훨씬 조용했다. 하지만 데이터를 볼 때는 비슷했다.
#30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둘 다 그 결과를 버리는 대신 물었다. 왜 이러지?
#31곧 그 질문을 몇 년 동안 붙잡게 만드는 결과가 나왔다.
#32두 사람은 실험실에서 만든 mRNA를 사람의 수지상세포에 넣었다. 수지상세포는 침입자의 특징을 읽어 다른 면역세포들에게 알려주는 세포다.
#33mRNA는 작동했다. 원하던 단백질이 많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다른 것도 엄청나게 만들어졌다.
#34염증을 일으키는 신호였다. 와이스먼에게는 처음엔 흥미로운 결과일 수 있었다.
#35그는 백신을 만들고 싶었다. 면역계를 강하게 깨우는 것은 백신에서 때로 유용하다.
#36커리코에게는 달랐다. 그녀는 mRNA를 몸에 반복해서 넣을 수 있는 치료제로 만들고 싶었다.
#37넣을 때마다 몸이 위험물 경보를 울린다면 쓸 수 없었다. 그동안에는 연구비 심사위원과 대학이 mRNA의 앞길을 막았다.
#38이번에는 달랐다. 사람의 몸 자체가 mRNA를 싫어하고 있었다. 정말로 mRNA가 약이 될 수 없는 걸까?
#39커리코와 와이스먼은 그 결론 대신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40두 사람은 RNA가 왜 면역세포를 자극하는지 몇 년 동안 파고들었다. 그러다 이상한 차이를 발견했다.
#41tRNA라는 다른 종류의 RNA는 같은 식으로 면역세포를 흥분시키지 않았다.
#42왜? 한 가지 차이가 있었다. 세포 안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tRNA에는 원래 형태에서 조금 변형된 구성요소들이 많이 들어 있었다.
#43반면 실험실에서 만든 mRNA에는 그런 변형이 없었다. 그렇다면 mRNA에도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변형을 넣으면 어떻게 될까?
#44커리코와 와이스먼은 mRNA를 이루는 구성요소를 바꿔가며 실험했다. 그중 pseudouridine 같은 변형 뉴클레오사이드를 넣자 결과가 크게 달라졌다.
#45면역계의 과도한 경보가 줄었다. mRNA가 단백질을 만들기도 전에 몸이 위험물로 취급해버리는 중요한 문제가 하나 풀린 것이다.
#46물론 이것만으로 코로나19 백신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RNA를 더 깨끗하게 만드는 방법도 필요했다.
#47세포까지 안전하게 운반할 방법도 필요했다. 실제 코로나19 mRNA 백신에는 이후 발전한 N1-methylpseudouridine이 사용됐고, RNA를 지방 입자로 감싸 전달하는 지질나노입자 기술과 여러 연구자들의 백신 설계가 더해졌다.
#48하지만 2005년, 커리코와 와이스먼은 그 길을 막던 중요한 장애물 하나를 치웠다.
#49이 정도면 세상이 주목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
#50두 사람은 논문을 유명 학술지에 보냈다. 빠르게 거절당했다. 커리코의 기억에 남은 평가에는 이런 단어가 있었다.
#51incremental. 획기적인 도약이라기보다 기존 연구에서 조금 나아간 정도라는 뜻이었다.
#52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었던 커리코는 그 단어를 찾아봤다. 논문은 결국 2005년 "Immunity"에 실렸다.
#53와이스먼은 이제 전화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이 기술을 함께 개발하자고 할 수도 있었다.
#54회사가 관심을 보일 수도 있었다. 다음 날이 지났다. 전화는 오지 않았다. 다음 달도 마찬가지였다.
#55다음 해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커리코는 훗날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56노벨상을 받게 될 발견을 해놓고도 연구비를 따내는 일은 여전히 어려웠다.
#572007년에 제출한 연구비 신청 하나는 심사에서 본격적인 토론 대상으로도 올라가지 못했다.
#58발견은 나왔다. 커리어는 여전히 그 발견을 따라오지 않았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누군가 그 논문을 읽고 있었다.
#59데릭 로시는 줄기세포 연구자였다. 그에게는 다른 문제가 있었다. 평범한 성체 세포를 줄기세포처럼 되돌리려면 세포 안에서 특정 단백질들을 한동안 만들게 해야 했다.
#60DNA를 이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DNA가 세포의 유전체에 영구적인 흔적을 남길 가능성이 마음에 걸렸다.
#61mRNA라면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고 사라질 수 있었다. 문제는 mRNA의 면역반응이었다.
#62그러다 로시가 커리코와 와이스먼의 2005년 논문을 발견했다. 변형 mRNA를 이용한 그의 연구는 주목받았다.
#63그리고 이 기술이 줄기세포보다 훨씬 많은 곳에 쓰일 수 있다는 생각은 2010년 한 회사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64Moderna였다. modified RNA. mRNA가 조금씩 산업의 언어로 바뀌기 시작했다.
#65커리코의 자리도 드디어 좋아졌을까? 반대였다.
#662013년, mRNA 산업에 큰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커리코는 이제 이 기술이 자신이 표현한 대로 “prime time”에 들어갈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다.
#67그런데 Penn에서 더 큰 연구실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회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68마침 딸 수전 프런치어가 유럽에서 조정 경기를 하고 있었다. 두 살 때 곰인형 안에 부모의 돈을 넣고 미국으로 왔던 그 딸은 미국 국가대표 조정 선수가 되어 올림픽 금메달을 두 번 딴 뒤였다.
#69커리코는 수전의 경기를 보러 유럽에 갔다. 가족과 이동하던 길에 독일 마인츠에 들렀다.
#70그곳에 아직 작은 회사였던 BioNTech가 있었다. 커리코에게 조건은 중요했다.
#71자신은 변형 mRNA를 계속 연구하고 싶었다. 먼저 만난 다른 회사는 그 방향을 원하지 않았다.
#72BioNTech의 위르 샤힌은 당시 그 변형이 커리코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연구해도 좋다고 했다.
#73커리코는 BioNTech로 갔다. 처음 하려던 일은 감염병 백신이 아니었다.
#74암 치료였다. 그리고 가족을 미국에 둔 채 한 해의 대부분을 독일에서 보내며 연구했다.
#75그렇게 7년이 흘렀다.
#762020년 1월, 중국에서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었다. BioNTech의 샤힌은 초기 환자 자료를 보고 이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번질 가능성을 빠르게 걱정하기 시작했다.
#77회사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때 세상은 갑자기 mRNA 백신을 발명한 것이 아니었다.
#78이미 수십 년 동안 서로 다른 사람들이 조각을 만들고 있었다. 커리코와 와이스먼은 mRNA가 선천면역계에 과도하게 감지되는 중요한 문제를 풀었다.
#79다른 연구자들은 mRNA를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들었다. 또 다른 연구자들은 쉽게 망가지는 RNA를 지방으로 만든 아주 작은 입자에 넣어 세포까지 배달하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80코로나바이러스 연구자들은 어떤 형태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면역계에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인지도 연구해왔다.
#81그리고 BioNTech와 Moderna 같은 회사들은 mRNA를 실제 의약품으로 대량 생산하고 시험할 기반을 쌓고 있었다.
#822020년에는 그 조각들이 동시에 필요해졌다. 그해 11월, Pfizer와 BioNTech는 임상시험에서 약 95%의 예방효과를 보인 결과를 발표했다.
#83Moderna의 백신도 높은 예방효과를 보였다. 수십 년 동안 질문은 이것이었다.
#84mRNA를 정말 약으로 쓸 수 있을까? 이제 질문이 바뀌었다. 얼마나 빨리 만들 수 있을까?
#852020년 12월 18일. Penn에서 커리코와 와이스먼이 나란히 백신을 맞았다.
#86Pfizer-BioNTech의 mRNA 백신이었다. 23년 전, 두 사람은 같은 대학의 복사기 앞에서 만났다.
#87그 뒤 사람의 면역세포에 mRNA를 넣었다가 강한 염증반응을 보고 있었다.
#88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몇 년을 파고들었다. 그 문제를 줄이는 방법을 발견하고도 한동안 아무도 전화하지 않았다.
#89이제 그 연구에서 이어진 기술을 수많은 사람이 맞고 있었다. 커리코와 와이스먼도 소매를 걷었다.
#90그리고 자신들의 몸에 넣었다.
#912023년 10월 2일. 커리코가 와이스먼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새벽의 연구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92두 사람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노벨위원회가 지목한 것은 코로나19 백신 전체를 두 사람이 발명했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93효과적인 mRNA 백신 개발을 가능하게 한 뉴클레오사이드 염기 변형에 관한 발견.
#94바로 2005년의 연구였다. 복사기를 먼저 쓰려다가 이야기를 시작했던 두 사람이 26년 뒤 같은 노벨상을 받았다.
#95하지만 mRNA의 이야기는 거기서도 끝나지 않았다. 코로나19 이후에는 다른 감염병 백신으로도 영역을 넓혔다.
#96그리고 처음부터 연구자들이 꿈꿨던 암 치료에서도 계속 시험되고 있다. 2026년에는 개인별 종양 돌연변이에 맞춰 만드는 한 mRNA 흑색종 치료 프로그램이 3상 임상시험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발표했다.
#97거의 같은 시기, 다른 대장암 mRNA 프로그램은 시험이 중단됐다. 어떤 곳에서는 됐다.
#98어떤 곳에서는 여전히 안 됐다. 1990년대와 완전히 다르지 않았다. 커리코가 수십 년 동안 붙든 것은 “mRNA는 반드시 성공한다”는 예언이 아니었다.
#99강등됐을 때는 다음 연구할 곳을 찾았다. 염증이 생겼을 때는 왜 생기는지 물었다.
#100논문이 거절되자 다른 곳에 냈다. 아무도 전화하지 않아도 다음 실험을 했다.
#101그녀가 2020년을 미리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눈앞의 데이터가 다음 질문을 던질 때마다,
#102그 질문에서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