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를 만든 비바리퍼블리카 창업자 이승건
여덟 번 틀린 뒤에야 알게 된 것
#1이승건은 은행이 불편해서 창업했다. 그리고 몇 년 뒤, 자기가 은행을 만들었다.
#2더 이상한 것은 그가 원래 금융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치과의사였다. 토스 창업자 이승건은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했다. 외환위기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진 경험 때문에 안정적이고 돈을 잘 벌 수 있는 직업을 고민했고, 그 결과 선택한 길이 치과의사였다고 훗날 회고했다.
#3안정은 얻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많게는 하루 100명가량의 환자를 치료하면서 그는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연말 송년회에서는 1년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4그래서 남들이 들어가려고 애쓰는 길에서 스스로 걸어 나왔다. 보통 치과의사가 새로운 인생을 고민하면 개원을 하거나 다른 병원을 생각할 법하다. 이승건은 앱을 만들었다.
#5그리고 망했다. 한 번이 아니었다.
#6이승건이 처음 만든 서비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울라블라"였다. 친구를 실제로 만났다는 사실을 휴대전화끼리 인증하고 그 만남을 기록하는 소셜 서비스였다. 팀은 휴대전화 간 근거리 통신 기술까지 직접 개발했고, 특허를 냈다. 디자인에도 공을 들였다.
#78명이 1년 넘게 매달렸다. 투입된 돈은 2억원이 넘었다. 기술도 있었다. 특허도 있었다. 디자인도 있었다.
#8없는 건 하나였다. 사용자였다. 식당으로 치면 인테리어를 끝내고, 주방을 완성하고, 상표 등록까지 했는데 손님들이 메뉴판을 보고 그냥 집에 간 셈이었다.
#9시장에서는 잔인할 정도로 단순한 답이 돌아왔다. 사람들이 별로 원하지 않았다.
#10팀은 무너졌다. 8명까지 늘었던 팀에서 이승건과 개발자 이태양을 제외한 사람들이 떠났다는 회고가 전해진다.
#11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이승건에게 돌아갈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치과의사였다. 실제로 초기 창업 기간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주일 중 일부는 치과의사로 일하기도 했다.
#12여기서 그만두고 다시 의사로 돌아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남아 있던 이태양은 오히려 창업에 제대로 집중하자고 요구했다. 이승건도 결국 치과 일을 완전히 그만뒀다.
#13그리고 2013년 라는 법인을 세웠다. 이름부터 거창했다. 라틴어에서 따온 "공화국 만세"라는 의미의 이름이었다. 회사의 현실은 아직 공화국 만세를 외칠 상황과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14다음에는 "다보트"라는 모바일 투표 서비스를 만들었다. 누구나 의견을 올리고 사람들이 투표할 수 있는 서비스였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더 효율적으로 결론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큰 그림도 있었다.
#15여러 버전을 만들었고 카카오톡과 연동한 서비스까지 내놓았다. 그런데 이것도 사람들이 충분히 원하지 않았다.
#16첫 번째 실패. 제품이 부족했나? 두 번째 실패. 마케팅 문제인가?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 이승건의 표현대로라면 훗날 가 된 간편송금은 아홉 번째 사업 시도였다. 앞서 시도한 제품 가운데는 세상에 제대로 공개되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17여덟 번쯤 되면 시장이 거의 개인 과외를 해준 셈이다. "네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들지 말고, 사람들이 원하는 걸 만들라고."
#18물론 시장이 실제로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대신 훨씬 무서운 방법으로 알려줬다.
#19아무도 쓰지 않았다.
#20여러 번 실패한 끝에 이승건이 바꾼 것은 아이디어만이 아니었다. 제품을 만드는 방법 자체를 바꿨다.
#21이전에는 좋은 제품을 열심히 만들고 나서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원하는지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22그러다 발견한 것이 송금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돈을 보내는 과정은 지금과 상당히 달랐다. 를 비롯한 인증 절차와 각종 보안 프로그램을 거쳐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23돈 몇 만원을 보내려고 했을 뿐인데 갑자기 작은 금융기관의 전산 담당자가 된 듯한 경험을 해야 했다.
#24이승건은 생각했다. 이걸 그냥 쉽게 만들면 어떨까? 그런데 이번에는 곧장 앱을 만들지 않았다.
#25간편송금 서비스에 대한 설명을 담은 페이지를 먼저 만들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광고를 집행해 사람들이 정말 관심을 보이는지 시험했다.
#26전해지는 회고에 따르면 검증에 쓴 광고비는 1만원 정도였다. 이틀 동안 혼자 돌려본 작은 실험이었다.
#27울라블라에는 8명이 1년 넘게 매달리고 2억원 이상을 쓴 뒤 시장의 답을 들었다.
#28이번에는 제품도 없는 상태에서 1만원을 써보고 답부터 들었다. 사람들이 눌렀다.
#29드디어 시장이 말했다. "그래. 이건 좀 필요한데?" 여덟 번의 실패가 처음으로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30토스는 여덟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진 서비스라기보다, 어쩌면 여덟 번 실패했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서비스에 가까웠다.
#31간편송금 서비스의 초기 버전이 나오자 이전과 다른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정말 사용하기 시작했다.
#322014년 오픈 베타 시기에는 가입자가 수천 명 규모로 늘었고 실제 송금도 반복해서 일어났다.
#33여덟 번 실패한 끝에 드디어 찾은 것이다. 이번에는 됐다. 그런데 금융당국에서 문제가 제기됐다.
#34당시 토스가 송금을 구현하기 위해 활용하던 자동이체 관련 구조를 이런 형태의 송금 서비스에 이용할 수 있는지를 두고 규제 문제가 발생했다.
#35결국 2014년 4월께 서비스를 중단해야 했다. 앞의 여덟 번은 사람들이 안 써서 실패했다.
#36아홉 번째에는 사람들이 쓰기 시작했는데 서비스를 할 수 없었다. 실패의 수준이 업그레이드됐다.
#37스타트업 게임의 보스도 바뀌었다. 1~8 스테이지의 보스는 고객이었다. 9 스테이지에서는 금융 규제가 나타났다.
#38여기에서 이승건의 행동은 이전과 달랐다. 울라블라를 포기했다. 다보트도 포기했다.
#39사람들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스에는 이전 제품에는 없던 증거가 있었다.
#40사람들이 쓰고 있었다. 이번에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훌륭하다는 창업자의 확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용자의 행동이라는 증거가 있었다.
#41그래서 제품을 바꾸는 대신 제도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금융당국을 찾아갔다. 관련 규정을 파고들었다. 은행들을 만났다.
#42규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여러 달이 걸렸고, 이후 실제 은행들과 계약해 서비스를 출시하는 데도 시간이 더 필요했다.
#43사용자가 돈 보내는 시간을 몇 분에서 몇십 초로 줄이기 위해 만드는 사람들은 1년 가까운 시간을 제도와 금융기관을 설득하는 데 써야 했다.
#44사용자의 1분을 아끼려고 창업자가 1년을 쓴 셈이다. 그리고 길이 열렸다.
#452015년 2월, 토스가 정식 출시됐다. 처음 여덟 번은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46아홉 번째에는 자신이 맞다는 사실을 끝까지 설득해야 했다.
#47정식 출시 뒤 숫자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2015년 6월 한 달 송금액은 약 38억원까지 올라갔다. 그해에는 KTB네트워크, 알토스벤처스, IBK기업은행 등으로부터 50억원의 투자도 유치했다.
#48출시 약 11개월 만에 누적 송금액 1,000억원을 넘겼고, 2016년 4월에는 3,000억원을 돌파했다.
#492017년 말에는 누적 송금액이 10조원을 넘어섰다. 처음에는 "공인인증서 없이 편하게 돈 보내는 앱"이었다.
#50그런데 사람들이 송금하러 들어오기 시작하자 할 수 있는 일이 보이기 시작했다.
#51계좌를 확인한다. 신용을 확인한다. 대출을 비교한다. 보험을 살펴본다. 투자한다.
#52현관문 하나 만들어놨더니 그 안에 금융 백화점이 들어서기 시작한 셈이었다.
#53토스의 질문도 바뀌었다. "어떻게 송금을 쉽게 할까?" 에서, "금융 자체를 어떻게 쉽게 만들까?"
#54로 커졌다.
#55그 결과 중 하나가 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였다.
#56처음 이승건이 발견한 문제는 은행에서 돈 보내기가 너무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57그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결국 은행 자체를 만들었다. 불편한 식당에 항의하다가 결국 식당을 차린 것과 비슷하다.
#58증권사까지 생겼다. 송금 하나 편하게 하겠다고 시작했는데 일이 조금 커졌다.
#59토스는 더 이상 송금 앱이라고 부르기 어려워졌다. 수천만 명이 사용하는 금융 플랫폼으로 성장했고, 송금에서 출발한 회사 주변에는 결제, 증권, 은행을 비롯한 여러 금융 사업이 자리 잡았다.
#60이쯤이면 성공담은 끝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또 문제가 있었다. 돈이었다.
#61스타트업 초창기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사람들이 왜 우리 서비스를 안 쓰지?"
#62토스를 찾은 뒤에는 질문이 바뀌었다. "사람들이 쓰는데 왜 서비스를 못 하지?"
#63규제를 넘고 폭발적으로 성장한 뒤에는 또 다른 질문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쓰는데 회사는 언제 돈을 벌지?"
#64비바리퍼블리카 그룹은 성장 과정에서 상당한 적자를 감수했다. 연결 기준 영업손실은 2021년 약 1,800억원, 2022년 약 2,500억원, 2023년 약 2,100억원에 달했다.
#65사용자가 없던 문제는 해결했다. 사용자가 너무 많아진 뒤에는 그 거대한 금융 생태계를 수익성 있는 사업으로 만드는 문제가 생겼다.
#66이승건에게 성공은 결승선을 통과하는 일이 아니었다. 문제를 하나 해결하면 다음 문제가 나타나는 일이었다.
#672024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비바리퍼블리카 그룹은 연결 기준 흑자로 돌아섰다.
#68그리고 2025년 연결 매출은 약 2조7천억원, 영업이익은 약 3,360억원으로 커졌다.
#69특히 토스증권의 성장이 강력했다. 송금 앱에서 시작해 "왜 증권사까지 하지?"라는 질문을 받을 만했던 확장이 이제 그룹 수익의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가 됐다.
#70다만 여기서는 숫자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모회사 비바리퍼블리카 자체의 별도 실적과 토스증권·토스뱅크 등을 포함한 그룹 연결 실적은 다르다. 2025년 비바리퍼블리카 별도 기준으로는 여전히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71즉 "토스 앱 하나가 갑자기 엄청난 이익을 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송금에서 시작해 증권, 은행, 결제 등으로 확장했던 거대한 생태계가 오랜 투자 기간을 지나 그룹 전체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는 쪽에 가깝다.
#72처음에는 사용자가 없었다. 그다음에는 사용자는 있는데 서비스할 수 없었다.
#73서비스할 수 있게 되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성장하고 나니 돈을 못 벌었다.
#74그리고 그것까지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또 질문이 생겼다. 이 회사를 어디까지 키울 것인가?
#752026년의 비바리퍼블리카는 상장도 준비하고 있다.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해온 가운데 국내 증시를 포함한 여러 가능성도 검토해왔다. 아직 어느 시장에 언제 상장한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76토스의 야심도 금융 안에서 끝나지 않고 있다. 토스 앱 안에서 외부 사업자들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앱인토스" 같은 플랫폼 사업까지 확장하고 있다.
#77송금 앱이 금융 앱이 됐다. 금융 앱이 은행과 증권사를 품었다. 그리고 이제 다른 서비스가 들어오는 플랫폼까지 만들고 있다.
#78처음 목표에 비해 일이 정말 많이 커졌다.
#79병원에 있을 때 이승건은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고 싶었다.
#80그래서 안정적인 길을 나왔다. 그런데 병원을 나오고 한동안은 오히려 아무도 그의 제품을 원하지 않았다.
#81환자를 치료하던 시절에는 적어도 환자가 있었다. 창업하고 나니 사용자가 없었다.
#82첫 번째 제품이 실패했다. 두 번째도 실패했다. 몇몇 제품은 세상에 제대로 나오지도 못했다.
#83그에게는 치과의사로 돌아갈 수도 있는 길이 있었다. 그런데 계속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84처음에는 자신이 좋은 제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만들었다. 실패하면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먼저 찾기 시작했다.
#85토스를 발견했다. 토스가 막히자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고 제도를 설득했다. 서비스가 성장하자 금융 전체로 문제를 확장했다.
#86수천억원의 적자가 이어지자 수익이라는 다음 문제를 풀었다. 그러니까 이승건을 단순히 "여덟 번 실패했지만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설명하면 절반만 맞는다.
#87더 흥미로운 것은 그가 실패할 때마다 똑같은 방식으로 다시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88실패할 때마다 질문을 바꿨다. 토스는 여덟 번 실패하고도 만들어진 아홉 번째 답이었다.
#89하지만 조금 다르게 보면, 여덟 번 실패했기 때문에 아홉 번째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된 답이었다.
#90그리고 그 아홉 번째 시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은행 송금이 불편해서 시작한 치과의사는 결국 은행을 만들었다.
#91그런데 그 은행도 처음부터 순순히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