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팬서》·《오펜하이머》·《씨너스》의 음악을 만든 작곡가
아버지가 닌텐도 대신 녹음기를 사준 소년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들의 목소리가 되기까지
#1루드비히 고란손은 태어나기도 전에 음악 싸움에 휘말렸다. 아버지 토마스 고란손은 블루스에 미쳐 있었다.
#2열다섯 살 무렵 존 리 후커의 음반을 처음 듣고 인생이 바뀌었다. 기타를 쳤고, 나중에는 기타 교사가 됐다.
#3아들이 태어나자 이름도 이미 정해놓은 상태였다. 앨버트. 블루스 기타리스트 앨버트 킹(Albert King)의 앨버트였다.
#4그러나 어머니가 반대했다. 어머니는 폴란드 출신이었고 피아노를 연주했다. 아들 이름으로 고른 음악가는 다른 사람이었다.
#5루트비히 판 베토벤. 결국 아들의 이름은 Ludwig가 됐다. 아버지는 이름 결정에서는 졌다.
#6대신 음악 취향에서는 포기하지 않았다. 스웨덴 린셰핑의 집에는 계속 블루스가 흘렀다.
#7기타가 있었다. 지하실에는 작은 음악 공간도 있었다. 토마스는 어린 아들에게 기타를 가르쳤다.
#8여섯 살쯤부터였다. 그런데 정작 아들은 아버지의 블루스보다 축구와 다른 것들에 더 관심이 있었다.
#9그러던 어느 날 아홉 살 무렵, 지하실에서 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평소 블루스를 연주하던 아버지가
#10메탈리카를 틀어놓고 헤드뱅잉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기타 학생들이 메탈리카 곡을 가르쳐달라고 가져온 것이었다.
#11토마스는 처음에는 그 음악을 싫어했다. 그래도 학생들에게 가르치려면 배워야 했다.
#12그래서 지하실에서 연습하고 있었다. 루드비히는 그 소리를 듣고 내려왔다. 그리고 인생이 조금 틀어졌다.
#13이게 뭐지. 그날 이후 메탈리카에 빠졌다. 아버지는 블루스였다. 아들은 생각했다.
#14그러면 메탈은 내 것이다. 수십 년 뒤에야 그는 깨닫는다. 자신이 아버지에게서 도망쳐 선택한 메탈 역시 블루스의 후손이라는 것을.
#15이 작은 농담 같은 가족사가 2025년 한 영화에서 다시 돌아온다. 아버지가 평생 사랑한 블루스.
#16아들이 평생 만들어온 영화음악. 두 음악이 만난 작품. “Sinners”였다.
#17그리고 그 영화로 루드비히 고란손은 2026년 세 번째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는다.
#18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은 꽤 이상했다. 닌텐도를 받고 싶어 하던 소년이 있었고,
#19당구장에서 만난 무명 감독이 있었고, 시트콤에서 노래를 부르던 무명 배우가 있었고,
#20새벽 네 시 세네갈 공연이 있었고, 인터넷으로 주문한 리코더가 있었고, 퇴근하려다 10분만 더 녹음한 아내가 있었다.
#21고란손의 커리어에는 거창한 작품이 많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은 이상할 정도로 사소했다.
#22어린 루드비히는 다른 아이들처럼 게임기를 원했다. 어느 생일에는 정말 기대했다.
#23이번에는 자동차 안 어딘가에 몰래 닌텐도가 숨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24선물을 열었다. 닌텐도가 아니었다. 4트랙 테이프 레코더였다. 아버지가 골랐다.
#25상당히 강압적인 음악 영재 육성처럼 들리지만 결과만 보면 효과는 무시무시했다.
#26고란손의 회상에 따르면 그 레코더를 지하실에 설치한 뒤 그는 거의 거기에서 나오지 않았다.
#27다음 생일에는 드럼 머신. 그 다음에는 녹음 장비. 또 기타. 게임기에 향할 소비 욕망이 해마다 음악 장비로 강제 전환됐다.
#28아버지는 기타를 가르쳤다. 누나는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어머니는 피아노를 쳤다.
#29집 안에는 클래식부터 스웨덴 민속음악, 록, 블루스가 돌아다녔다. 어머니 역시 묘하게 집요했다.
#30영어를 배워라. 피아노를 배워라. 색소폰도 해봐라. 심지어 발레도 시켰다. 고란손은 발레를 약 5년 배웠다. 그래서 나중에 그의 음악을 보면 조금 이해가 간다.
#31기타리스트인데 오케스트라를 쓴다. 힙합을 만든다. 서아프리카 음악을 공부한다.
#32신시사이저를 뜯는다. 리코더를 분다. 바이올린 소리를 변형한다. 고대 그리스 악기를 찾아다닌다.
#33어릴 때부터 집 안에서 장르끼리 이미 서로 멱살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동안 꿈은 단순했다.
#34록 기타리스트가 되는 것. Metallica. Joe Satriani. Steve Vai.
#35기타 영웅들이 우상이었다. 그러다 음악학교에서 자신이 쓴 곡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경험을 한다.
#36집에서 몇 달 동안 악보에 적었던 것이 약 80명의 연주자를 통해 실제 소리가 되어 나왔다.
#37그 순간 다른 욕망이 생겼다. 이걸 다시 하고 싶다. 영화음악이라면 매번 다른 장르를 할 수도 있었다.
#38고란손에게 딱 맞는 직업이었다. 그리고 2007년 미국으로 떠났다. 여기서부터 인생이 급격히 이상해진다.
#39고란손은 USC(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의 Screen Scoring(영화음악 작곡) 과정에 들어갔다.
#40처음에는 컬버시티에 살았다. 사람들이 말했다. LA에서는 자동차가 있어야 한다.
#41스웨덴에서 온 고란손은 생각했다. 미국인들이 걷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 모양이다.
#42얼마 안 가 진실을 깨달았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었다. 버스가 안 왔다. 결국 학교 근처로 이사했다.
#43그런데 들어간 곳이 폐쇄된 프래터니티 하우스(fraternity house·미국 대학 남학생 사교클럽 숙소)였다.
#44프래터니티가 뭔지도 잘 몰랐다. 막상 들어가 보니 미국 영화에서 보던 대학 파티 문화가 그대로 있었다.
#45고란손은 훗날 “American Pie” 안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고 회상했다.
#46그리고 어느 날 밤 그 집에서 파티가 열렸다. 고란손은 당구를 치고 있었다.
#47누군가 긴 드레드록을 등에 늘어뜨린 건장한 학생을 소개했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이었다.
#48영화 연출을 공부하고 있었다. 이름은 라이언 쿠글러. 둘은 당구를 치면서 음악 이야기를 했다.
#49쿠글러가 갑자기 Lykke Li와 Little Dragon 같은 스웨덴 음악가들을 이야기했다.
#50고란손이 놀랐다. 이 미국인이 이 사람들을 왜 알고 있지. 대화가 길어졌다.
#51음악에서 영화로 넘어갔다. 그리고 친구가 됐다. 몇 달 뒤 쿠글러가 학생영화를 들고 왔다.
#52제목은 “Locks”. 약 5~6분짜리 단편. 대사도 거의 없었다. 고란손은 당시 USC에서 닥치는 대로 학생영화를 했다.
#5320~30편 정도를 작업했다. 그런데 쿠글러의 영화를 본 순간 느낌이 달랐다.
#54얘는 뭔가 다르다. 두 사람은 학생 숙소의 방에 앉아 음악을 만들었다. 그때는 누구도 유명하지 않았다.
#55쿠글러에게는 “Black Panther”가 없었다. 고란손에게는 오스카가 없었다.
#56그냥 파티가 벌어지는 학생 숙소 한쪽 방에서 무명 감독의 6분짜리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57그리고 이 둘은 17년이 넘도록 헤어지지 않는다.
#58여기서 운이 한 번 더 작동한다. 고란손은 졸업을 몇 주 앞두고 USC의 교수 브라이언 킹에게 자기 이력서와 작업물을 보냈다.
#59마침 영화음악 작곡가 시어도어 샤피로(Theodore Shapiro)가 조수를 찾고 있었다.
#60“The Devil Wears Prada”, “Tropic Thunder” 등을 작업한 작곡가였다.
#61교수가 고란손을 추천했다. 면접을 봤다. 합격했다. 처음부터 작곡가가 된 것은 아니다.
#62몇 년 동안 조수였다. 그러다 샤피로에게 TV 시트콤 하나가 들어왔다. 그런데 너무 바빴다.
#63그래서 자신의 젊은 조수를 추천했다. 프로그램 제목은 “Community”.
#64고란손에게 첫 제대로 된 자기 작품이었다. 문제는 조수 일을 그만둔 게 아니었다.
#65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샤피로 밑에서 일했다. 오후 5시부터 새벽 3시까지 “Community”를 만들었다.
#66사실상 하루 18시간 근무였다. 그러다 “New Girl”과 “Happy Endings”까지 들어왔다.
#67한때 TV 세 편을 동시에 작곡하면서 여전히 조수로 풀타임 근무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여기서 쓰러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68그런데 그 와중에 한 배우를 만났다. 이 사람이 일을 하나 더 준다.
#69“Community”에 도널드 글로버라는 젊은 배우가 있었다. 고란손이 처음 제대로 함께 작업한 계기는 극 중 노래였다.
#70글로버가 부를 “Somewhere Out There”의 편곡을 맡았고, 글로버가 녹음을 위해 고란손의 스튜디오에 왔다.
#71둘이 재미있게 작업했다. 몇 주 뒤 글로버가 이메일을 보냈다. 요지는 이랬다.
#72나 사실 랩도 하는데, 이 음악 좀 들어봐줄 수 있어. 당시 Childish Gambino는 지금의 Childish Gambino가 아니었다.
#73고란손 역시 유명 프로듀서가 아니었다. 글로버가 보낸 곡을 듣고 고란손은 편곡 아이디어를 보냈다.
#74글로버가 자기 아파트로 불렀다. 하루 같이 작업했다. 그 하루가 계속 이어졌다.
#75결과는 믹스테이프 “Culdesac”. 그리고 “Camp”. “Because the Internet”.
#76“Awaken, My Love!”. 두 사람은 배우와 TV 작곡가로 만났는데 어느새 함께 음반을 만들고 세계 투어까지 다녔다.
#77고란손은 오히려 이 작업을 좋아했다. 혼자 영화음악을 만드는 것은 외롭다.
#78글로버와 작업하는 것은 친구와 노는 것 같았다. 그러다 2016년 완전히 이상한 음반을 만든다.
#79Childish Gambino가 랩에서 갑자기 1970년대 펑크와 사이키델릭 소울 쪽으로 틀었다.
#80스튜디오에서 몇 시간씩 즉흥연주를 했다. 고란손은 직접 악기를 연주했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노래 하나가
#81“Redbone”이었다. 고란손은 이 곡이 거대한 히트곡이 될 줄 전혀 몰랐다.
#82그런데 인터넷 밈으로 터졌다. 차트에 올랐다. 그래미 후보가 됐다. 그리고 2018년에는 더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832018년. 라이언 쿠글러가 영화를 하나 내놓았다. “Black Panther”.
#84도널드 글로버도 노래를 하나 내놓았다. “This Is America”. 고란손은 양쪽에 있었다.
#85“This Is America”를 글로버와 함께 만들었다. 그리고 “Black Panther” 음악도 맡았다.
#86한쪽에서는 총성이 나고 사람들이 춤춘다. 다른 한쪽에서는 아프리카계 슈퍼히어로가 세계적인 문화현상이 된다.
#872019년 그래미에서 “This Is America”는 Song of the Year(올해의 노래)와 Record of the Year(올해의 레코드)를 받았다. 고란손은 공동 작곡가·프로듀서였다.
#88같은 시기에 “Black Panther”로 그래미도 받았다. 그리고 몇 주 뒤 아카데미 시상식.
#89고란손이 음악상을 받으러 무대에 올랐다. 그곳에서 쿠글러에게 말했다. 12년 전 우리는 USC 기숙사 방에서 네 첫 영화의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고.
#90이제 여기 와 있다고. 그 순간만 떼놓고 보면 동화 같다. 하지만 “Black Panther”를 만드는 과정은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91고란손이 “Black Panther” 각본을 읽고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꽤 심각했다.
#92나는 스웨덴 사람이다. 영화는 가상의 아프리카 국가를 다룬다. 자기 스튜디오에서 '아프리카풍' 음악을 상상해서 만들어버리면 끔찍한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93그래서 직접 갔다. 세네갈. 그곳에서 세계적인 음악가 바바 말(Baaba Maal)과 만났다.
#94바바 말의 투어를 따라다녔다. 작은 마을들을 방문했다. 한 공연장은 새벽 3시에 도착했는데
#95공연이 새벽 4시에 시작했다. 고란손은 왕을 위한 음악, 의식을 위한 음악, 이야기를 보존하는 그리오(griot·서아프리카의 세습 음악가이자 구전 역사가)들의 음악을 들었다.
#96그곳에서 만난 핵심 인물 중 하나가 토킹 드럼 연주자 마삼바 디옵(Massamba Diop)이었다.
#97토킹 드럼은 북의 장력을 바꿔 마치 말하는 것처럼 음높이를 바꿀 수 있다.
#98고란손은 물었다. T'Challa라는 이름을 북으로 말할 수 있습니까. 가능했다.
#99그 리듬이 채드윅 보즈먼의 T'Challa와 연결됐다. 주인공이 등장할 때 북 자체가 그의 이름을 말하는 셈이었다.
#100반대로 마이클 B. 조던의 Killmonger에게는 다른 소리가 필요했다.
#101고란손은 서아프리카 풀라족의 플루트 연주자들과 작업했다. 캐릭터가 어떤 인간인지 설명했다.
#102연주자는 플루트에 숨을 몰아넣고 외치며 연주했다. 그 불안하고 거친 소리가 Killmonger의 음악이 됐다.
#103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란손이 악기를 '아프리카 장식'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04악기 연주자를 캐릭터 해석에 참가시켰다. 그래서 고란손의 음악에는 사람의 흔적이 남는다.
#105쿠글러. 채드윅 보즈먼. 마이클 B. 조던. 바바 말. 마삼바 디옵. 현지 음악가들. 한 사람이 혼자 만든 음악이 아니다.
#106사실 이런 방식은 이미 “Creed”에서 나타났다. 쿠글러가 록키 세계관의 영화를 맡았다.
#107마이클 B. 조던은 아폴로 크리드의 아들 아도니스를 연기했다. 실베스터 스탤론도 돌아왔다.
#108고란손에게는 난감한 문제가 있었다. 록키 음악은 이미 너무 유명하다. 빌 콘티의 테마를 그대로 따라가면 추억팔이다.
#109무시하면 록키가 아니다. 그래서 고란손은 필라델피아와 복싱장으로 들어갔다.
#110프로 복서와 함께 체육관 소리를 녹음했다. 샌드백. 스피드백. 줄넘기. 숨소리. 체인. 복싱장에서 나는 소리들을 잘라 음악의 리듬으로 사용했다. 영화에 음악을 넣은 것이 아니라
#111복싱 자체를 음악으로 바꾼 것이다.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테사 톰슨이 연기하는 Bianca는 뮤지션이다.
#112영화가 관객에게 이 여자가 실제 음악가라고 믿게 해야 했다. 그래서 고란손과 톰슨은 촬영 전에 스튜디오에 들어가 약 2주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 곡을 만들었다.
#113이 작업이 재미있는 이유가 있다. 고란손은 영화음악 작곡가였지만, 도널드 글로버 덕분에 이미 실제 음반 프로듀서가 되어 있었다.
#114두 경력이 서로 먹여 살리기 시작했다. Childish Gambino와 음반을 만든 경험이 “Creed” 속 뮤지션을 진짜처럼 만드는 데 쓰인다.
#115“Creed”에서 현장음을 음악으로 바꾼 경험은 훗날 “Oppenheimer”와 “The Odyssey”에서 음악과 효과음의 경계를 흐리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116필모그래피가 각각 떨어진 섬이 아니었다. 전작에서 주운 이상한 도구를 다음 영화에서 계속 썼다.
#117이제 고란손에게 “The Mandalorian”이 들어왔다. 제작자는 존 패브로.
#118문제는 스타워즈였다. 존 윌리엄스가 이미 우주 영화음악의 교과서를 써놓은 세계다.
#119고란손은 똑같은 방식으로 오케스트라를 쓰면 이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120그래서 인터넷 쇼핑을 했다. 리코더 다섯 개를 주문했다. 택배가 왔다. 그중 베이스 리코더가 눈에 들어왔다.
#121선택한 이유는 아주 고상했다. 한 번도 연주해본 적이 없었고 멋있어 보였다.
#122혼자 방에 들어갔다. 몇 시간 동안 불었다. delay(딜레이·소리를 반복시키는 효과)를 걸었다.
#123reverb(리버브·공간의 울림을 만드는 효과)를 걸었다. 리코더가 갑자기 외계 행성에서 불고 있는 악기처럼 변했다.
#124그 소리가 Mandalorian의 핵심 테마가 됐다. 고란손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상당히 일관된 이상 행동이 발견된다.
#125영화가 커질수록 더 모르는 악기를 고른다.
#126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이 등장한다. 놀란의 오랜 음악 파트너는 한스 짐머였다.
#127“The Dark Knight”. “Inception”. “Interstellar”.
#128그런 감독의 새로운 파트너가 고란손이 됐다. 첫 작품은 “Tenet”. 시간이 앞으로도 가고 뒤로도 가는 영화였다.
#129고란손은 리듬과 음향 역시 시간의 방향을 가지고 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작품 각본을 받는다.
#130“Oppenheimer”. 고란손은 각본을 읽고 압도됐다. 놀란은 이 영화를 원자폭탄에 대한 설명으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다.
#131관객을 오펜하이머의 머릿속에 집어넣으려 했다. 고란손도 같은 일을 해야 했다.
#132놀란이 준 구체적인 음악적 방향은 거의 하나였다. 바이올린. 고란손은 바이올린을 제대로 연주하지 못했다.
#133하지만 가족 중에는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었다. 아내 세레나 맥키니(Serena McKinney).
#134전문 바이올리니스트다. 이 순간부터 “Oppenheimer”는 사실상 부부 프로젝트의 성격도 갖게 된다.
#135둘은 바이올린 하나를 놓고 온갖 짓을 했다. 아름다운 비브라토를 연주한다.
#136몇 초 만에 속도를 바꾼다. 음정을 미세하게 흔든다. microtonal glissando(미세음정 글리산도·일반적인 음계 사이의 음까지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연주)를 만든다.
#137놀란이 원하는 것은 모순이었다. 아름다워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공포스러워야 한다.
#138오펜하이머라는 인간 자체였다.
#139어느 날 고란손과 세레나는 하루 종일 녹음했다. 긴 음. 짧은 음. 비브라토.
#140글리산도. 아름다운 소리를 끔찍하게 만드는 방법. 하루가 끝났다. 집에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141이제 가려고 했다. 고란손이 피아노에 앉아 무언가를 급하게 쳤다. 베이스라인을 하나 만들었다.
#142세레나에게 말했다. 이거 위에 한번만 해보자. 세레나가 바이올린을 들었다. 한 번 연주했다.
#143한 테이크였다. 고란손이 들었다. 아름다웠다. 슬펐다. 불안했다. 연약했다. 둘이 하루 종일 찾던 인간이 갑자기 그 안에 있었다. 약 10분 만에 녹음을 끝냈다.
#144고란손이 파일을 놀란에게 보냈다. 그날 밤 전화가 왔다. 이게 오펜하이머의 테마다.
#145그 한 테이크가 영화 전체에 반복된다. 그리고 2024년 고란손은 “Oppenheimer”로 두 번째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는다.
#146그래미에서도 이 음악으로 수상했다. 세계적인 영화의 핵심 테마가 거대한 회의실이나 100인조 오케스트라에서 처음 태어난 것이 아니다.
#147아이들 보러 집에 가기 직전 부부가 10분만 더 해본 결과였다.
#148그리고 라이언 쿠글러가 또 각본을 가져왔다. “Sinners”. 1930년대 미국 남부.
#149쌍둥이 형제. 블루스. 종교. 인종. 그리고 뱀파이어. 영화 장르만 설명하면 누군가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너무 많이 내고 아무도 말리지 않은 것 같다.
#150그런데 고란손에게는 유난히 개인적인 작품이었다. 쿠글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51쿠글러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을 통해 블루스를 들었다. 특히 삼촌 제임스와의 기억이 중요했다.
#152고란손에게는 아버지 토마스가 있었다. 아버지가 1960년대에 존 리 후커를 발견하고 블루스에 빠졌다.
#153아들의 이름을 앨버트 킹에서 따오려고 했다. 어릴 때 기타를 직접 가르쳤다.
#154고란손은 여덟아홉 살에 메탈리카를 발견하며 아빠 블루스 말고 나는 내 음악을 할 거야
#155라고 생각했다. 40년 가까이 지나고 보니 자신이 만든 록과 메탈과 힙합의 뿌리에도 블루스가 있었다.
#156그래서 고란손은 “Sinners”를 자신의 가장 개인적인 음악 중 하나라고 불렀다.
#157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아내 세레나의 역할도 더 커졌다. 쿠글러와 고란손은 세레나에게 영화 속 노래들의 제작을 맡겼다.
#158세레나는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였지만 이 음악을 단순히 흉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159미국 남부 흑인음악의 역사를 다루는 만큼 실제 전통을 가진 사람들에게 배워야 했다.
#160그래서 부부는 멤피스의 부 미첼(Boo Mitchell) 등 전문가들과 협업했다.
#161그리고 음악가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Buddy Guy. Bobby Rush.
#162Cedric Burnside. Christone 'Kingfish' Ingram.
#163Brittany Howard. Raphael Saadiq. 서로 다른 세대가 한 영화 안에 들어왔다.
#164“Sinners”에서 중요한 인물은 마일스 케이튼(Miles Caton)이었다.
#165영화 속 젊은 뮤지션 Sammie를 연기했다. 그런데 이 캐릭터는 기타를 치는 척만 해서는 안 됐다.
#166음악이 영화의 사건 자체를 일으킬 만큼 중요했다. 고란손은 케이튼이 블루스 연주자로 보일 수 있도록 준비 과정에 참여했다.
#167케이튼은 Charley Patton 같은 옛 블루스 연주자들을 공부했다.
#168그리고 전설적인 Buddy Guy와 같은 실제 음악가들이 영화 안으로 들어왔다.
#169고란손도 특이한 악기를 구했다. 1932년산 Dobro Cyclops 리조네이터 기타.
#170극중 Sammie가 들고 다니는 것과 같은 종류였다. 고란손은 그 기타로 영화의 스코어까지 썼다.
#171그러니까 영화의 주인공이 들고 있는 악기와 영화 바깥에서 그의 감정을 표현하는 악기가
#172같은 세계에서 나왔다. 고란손이 예전부터 하던 방식의 완성형이었다. “Fruitvale Station”에서는 실제 전철 소리를 음악으로 만들었다.
#173“Creed”에서는 복싱장을 악기로 만들었다. “Black Panther”에서는 현지 음악가가 캐릭터의 목소리가 됐다.
#174“Sinners”에서는 영화 속 기타가 영화 밖의 스코어까지 차지했다. 음악과 영화 사이의 벽이 점점 사라졌다.
#1752026년 아카데미 시상식. “Sinners”. Best Original Score(음악상).
#176루드비히 고란손. 세 번째 오스카였다. 스웨덴에서는 아버지 토마스가 지켜보고 있었다.
#177아들은 수상소감에서 아버지를 이야기했다. 자기에게 기타를 안겨준 사람. 블루스를 들려준 사람.
#178자기가 음악가가 되는 출발점을 만들어준 사람. 토마스는 나중에 그 순간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179이 장면은 고란손의 인생에서 꽤 완벽한 원을 만든다. 40년 전. 스웨덴 린셰핑의 지하실.
#180아버지가 기타를 건넨다. 아들은 아버지의 블루스를 피해 메탈리카에 빠진다.
#181그리고 수십 년 동안 힙합도 만들고, 슈퍼히어로 음악도 만들고, 스타워즈도 만들고,
#182원자폭탄 영화도 만든다. 멀리멀리 돌아간다. 그러다 세 번째 오스카를 안겨준 음악은
#183결국 아버지가 가장 사랑했던 블루스였다.
#184그 뒤에도 이상한 주문은 끝나지 않았다. 2026년 크리스토퍼 놀란의 “The Odyssey”.
#185“Tenet”. “Oppenheimer”. 두 작품을 거친 세 번째 협업이다.
#186고대 그리스를 그리는 초대형 영화. 보통이라면 100인조 오케스트라가 아주 웅장하게 울릴 법하다.
#187놀란의 방향은 반대였다. 당시 오케스트라는 없었다. 고란손은 다시 연구 모드로 들어갔다.
#188aulos(아울로스·고대 그리스의 겹리드 관악기). lyre(리라·고대 현악기).
#189청동 타악기. AP에 따르면 무려 35개의 브론즈 공(bronze gong·청동 징)까지 활용했다.
#190그리고 놀란은 음악과 sound effect(효과음)의 경계 자체를 흐리고 싶어 했다.
#191고란손도 같은 방향으로 갔다. 첫 영화에서 실제 전철 소리를 음악으로 만들었던 청년이
#19218년 뒤에는 고대 그리스 악기와 금속음을 사용해 2,800년 된 이야기를 현대 영화의 소리로 만들고 있었다.
#193규모는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행동은 똑같다. 모르는 세계가 나오면 일단 들어간다.
#194고란손의 작품만 나열하면 거의 장르 룰렛이다. “Community”. Childish Gambino.
#195“Fruitvale Station”. “Creed”. “Black Panther”.
#196“The Mandalorian”. “Tenet”. “Oppenheimer”.
#197“Sinners”. “The Odyssey”. 한 사람이 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서로 다르다.
#198그런데 사람으로 정리하면 갑자기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라이언 쿠글러. 학생 파티에서 당구 치다가 만났다.
#199지금까지 쿠글러의 영화를 계속 함께 만들었다. 도널드 글로버. 시트콤에서 노래 하나 녹음하다 만났다.
#200그 뒤 Childish Gambino의 음악을 함께 만들었다. 마이클 B. 조던.
#201쿠글러의 “Fruitvale Station”에서 시작해 “Creed”, “Black Panther”, “Sinners”로 이어졌다.
#202크리스토퍼 놀란. “Tenet”에서 시작해 “Oppenheimer”, “The Odyssey”까지 이어졌다.
#203세레나 맥키니. 아내이자 바이올리니스트. “Oppenheimer”에서는 작품의 가장 중요한 악기 소리를 함께 만들었다.
#204“Sinners”에서는 음악 제작의 핵심 협업자로 더 깊숙이 들어왔다. 그리고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던 아버지 토마스.
#205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있었다.
#206고란손의 인생을 보면 재미있는 역설이 있다. 이 사람은 악기를 엄청나게 잘 다룬다.
#207기타. 베이스. 피아노. 신시사이저. 드럼. 오케스트라. 전자음향. 그런데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는
#208자기가 잘하는 악기로 해결하지 않는다. “Black Panther”에서는 세네갈 음악가에게 배웠다.
#209“The Mandalorian”에서는 한 번도 제대로 연주해보지 않은 리코더를 집었다.
#210“Oppenheimer”에서는 아내에게 바이올린을 들게 했다. “Sinners”에서는 수십 년 동안 블루스를 살아온 음악가들을 불렀다.
#211“The Odyssey”에서는 2,000년 넘은 악기를 뒤졌다. 그리고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212미국에 도착했을 때 그는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학교에서 20~30개의 학생영화를 했다.
#213그중 하나의 감독이 라이언 쿠글러였다. 작곡가 조수로 일하다 작은 TV 시트콤을 맡았다.
#214그곳 배우 중 하나가 도널드 글로버였다. 그때는 어느 쪽도 좋은 '인맥'이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215아직 성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서로 재미있어서 같이 만들었다. 그 관계를 끊지 않았다.
#216고란손과 쿠글러는 이제 각자 아이가 둘씩 있다. 학생 때 기숙사에서 작업하던 두 사람이 이제는 가족들을 데리고 영화를 만든다고 고란손은 말했다.
#217생각하면 묘하다. 17년 전에는 학생 숙소에서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두 청년은 방에 들어가 6분짜리 영화를 만들었다.
#218이제는 수억 달러짜리 영화를 만든다. 오스카를 받는다. 아이들이 촬영장 근처에서 뛰어다닌다.
#219그 사이 바뀐 것은 거의 모든 것이다. 돈. 규모. 배우. 스튜디오. 악기. 나라. 하지만 한 가지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220누군가 이야기를 가져온다. 고란손이 듣는다. 이걸 무슨 소리로 만들 수 있을까.
#221그리고 자신이 이미 아는 정답 대신 모르는 곳으로 들어간다. 아마 그래서 루드비히 고란손의 가장 중요한 악기는 기타도, 바이올린도, 리코더도 아닐 것이다.
#222사람이다. 아버지가 있었다. 라이언 쿠글러가 있었다. 도널드 글로버가 있었다.
#223세레나가 있었다. 바바 말과 마삼바 디옵과 Buddy Guy가 있었다. 고란손은 그 사람들에게서 소리를 발견했다.
#224그래서 그의 커리어를 가장 짧게 요약하면 천재 작곡가의 성공담이 아니다.
#225아버지가 닌텐도 대신 녹음기를 사준 소년이, 평생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주워 모으다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들의 목소리가 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