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da를 세운 일본의 엔지니어이자 기업가
Toyota에 납품할 부품도 못 만들던 Honda는 어떻게 세계를 뒤집었을까?
#1혼다 소이치로는 자동차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졌다.
#21930년대 그가 Toyota에 납품하려고 만든 피스톤 링 50개 가운데 품질기준을 통과한 것은 고작 3개였다.
#3피스톤 링은 엔진 속에서 피스톤과 실린더 사이를 밀봉하는 얇은 금속 고리다.
#4작아 보이지만 치수와 재질이 조금만 틀어져도 엔진이 제대로 버티지 못한다.
#5Honda는 그 작은 고리 앞에서 막혔다. 이상한 건 그전까지였다. 그는 이미 자동차 수리로 성공한 사람이었다.
#615살에 도쿄의 자동차 수리점 Art Shokai에 들어가 일을 배웠고, 스물두 살에는 Hamamatsu 지점을 맡았다.
#7고장 난 차를 고치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남이 만든 기계를 고치는 것과, 똑같은 부품을 수천 개 정확하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8Honda는 사업을 접지 않았다. 대신 자기가 모른다는 쪽을 인정했다. 기술학교에 다니며 금속과 재료를 배웠고, 대학과 제철회사까지 찾아다니며 제조법을 파고들었다.
#9졸업장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피스톤 링을 제대로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 필요했다.
#10결국 그의 회사 Tokai Seiki는 Toyota 등에 부품을 공급하는 제조업체로 성장했다.
#11직원은 약 2,000명까지 늘었다. 첫 번째 벽은 넘은 것처럼 보였다. 그때 전쟁이 회사를 덮쳤다.
#12공습으로 공장이 파괴됐다. 1945년에는 지진까지 일어나 다른 공장도 무너졌다.
#13그리고 일본이 패전했다. 건물만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Tokai Seiki가 부품을 공급하던 전시 산업과 수요도 함께 무너졌다.
#14Honda는 남은 회사를 붙들고 다시 세우지 않았다. Tokai Seiki의 남은 자산을 Toyota에 팔았다.
#15그 뒤 가족에게 자신은 한동안 “인간 휴가”를 갖겠다고 말했다. 약 1년 동안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았다.
#16이 시기를 훗날의 Honda Motor를 준비한 치밀한 전략 기간처럼 볼 근거는 없다.
#17다음 사업이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한때 2,000명이 일하던 회사를 만든 사람에게 남은 것은 공백이었다.
#18그러다 1946년 9월, 친구의 집에서 작은 물건 하나를 본다. 전쟁 때 일본군 무전기에 전기를 공급하던 발전용 엔진이었다.
#19전쟁은 끝났고 원래 용도도 사라진 엔진이었다. Honda는 그것을 보자 다른 물건을 떠올렸다.
#20자전거였다.
#21당시 일본에는 자전거가 많았다. 자동차는 대부분의 사람이 쉽게 살 수 없었다.
#22그렇다면 이미 가지고 있는 자전거에 작은 엔진을 붙이면 어떨까. Honda는 군용 잉여 엔진을 가져와 자전거에 달았다.
#23그리고 아내 Sachi에게 한번 타보라고 했다. Sachi는 사람들이 많은 길을 달리게 될 것을 생각해 좋은 몬페를 입고 나갔다.
#24엔진 달린 자전거를 여성이 타고 다니는 것 자체가 눈에 띄던 시절이었다.
#25잠시 뒤 그녀가 돌아왔다. 좋은 몬페는 기름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연료가 새고 있었다.
#26Sachi는 이런 물건을 손님에게 팔았다가는 좋아할 리 없다고 말했다. Honda는 다시 고쳤다.
#27처음부터 멋진 오토바이가 나온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 실제로 타보자 바로 불편한 것이 드러나는 물건이었다.
#28게다가 군용 엔진은 무한하지 않았다. 재고가 떨어지자 Honda는 이번에는 엔진 자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291947년 A-Type 엔진. 1948년 Honda Motor 설립. 1949년에는 엔진뿐 아니라 차체까지 직접 만든 Dream D-Type이 나왔다.
#30이제 정말 오토바이 회사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것이 없었다.
#31팔 곳이 없었다.
#32당시 일본의 오토바이 판매점은 약 300곳. 그중 Honda 제품을 취급하는 곳은 약 20곳에 불과했다.
#33제품을 더 잘 만드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다. 회사의 자금사정도 흔들렸다.
#34직원 급여를 나눠 지급해야 할 정도였다. 그 시기에 Honda가 만난 사람이 Takeo Fujisawa였다.
#35Fujisawa는 엔진 설계자가 아니었다. 그 대신 Honda에게 부족했던 돈, 판매, 시장을 볼 줄 알았다.
#36둘은 서로에게 자신에게 없는 것이 있다고 봤다. 그리고 Fujisawa는 오토바이 업계의 당연한 전제를 하나 건드렸다.
#37오토바이를 팔 곳이 부족하다면, 왜 오토바이 가게에서만 팔아야 하지?
#381952년 Honda는 작은 보조엔진 Cub F-Type을 내놓았다. Fujisawa는 전국의 자전거점 약 5만 곳에 편지를 보냈다.
#393만 곳 넘게 반응했다. 기존 오토바이 판매망 바깥에 거대한 새 유통망이 열렸다.
#40하지만 이것만으로 Honda가 특별했던 것은 아니다. 전후 일본에서 자전거에 작은 엔진을 붙이는 사업에 뛰어든 업체는 200곳이 넘었다.
#411955년에는 Tohatsu가 Honda보다 일본 시장점유율도 높았다. 아이디어만 놓고 보면 Honda는 수백 회사 중 하나였다.
#42차이를 만든 것은 그다음이었다.
#431950년대 초 Honda 공장은 아직 많은 부품을 직접 만들지 못했다.
#44한 관계자의 회고로는 자체 제작 비율이 20%에도 못 미쳤다. 공장이라기보다 외부에서 받은 부품을 조립하는 곳에 가까운 면도 있었다.
#45Soichiro Honda는 그 상태로 일본 시장에서 많이 파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봤다.
#461952년 그는 최신 외국산 공작기계를 사들이는 데 약 4억5천만 엔을 투자하기로 했다.
#47당시 회사 자본금은 600만 엔이었다. 그리고 해외에 나가 유럽의 오토바이 기술을 직접 보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48자기가 세계를 말하고 있었지만 실제 세계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다. Honda 자신도 훗날 그때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49그가 목표를 낮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곳으로 회사를 데려갔다.
#50Isle of Man TT. 당시 세계 최고의 오토바이 기술이 맞붙는 경주였다.
#51Honda는 1959년 처음 출전했다. 1961년에는 125cc와 250cc 클래스에서 정상에 올랐다.
#52일본의 수많은 작은 오토바이 업체 가운데 하나였던 회사가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내기 시작했다.
#53그런데 Honda를 정말 거대한 회사로 만든 물건은 레이스용 머신이 아니었다.
#54장을 보러 갈 때도 탈 수 있는 작은 오토바이였다.
#551956년 Soichiro Honda와 Fujisawa는 유럽을 돌며 새로운 이동수단을 살펴봤다.
#56그들이 만들려 한 것은 기존 유럽 moped의 복제품이 아니었다. 작지만 제대로 된 4행정 엔진.
#57복잡하게 클러치를 조작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 평범한 사람이 일상에서 쉽게 탈 수 있는 차.
#58그 결과물이 Super Cub이었다. 1957년 말, 제품 모형을 본 Fujisawa가 판매 숫자를 꺼냈다.
#593만 대. 주변 사람들은 연간 판매량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Fujisawa가 말한 것은 한 달에 3만 대였다.
#60당시 일본 전체 오토바이 시장이 한 달 약 4만 대였다. Honda 한 회사의 신제품 하나를 거의 시장 전체 규모로 팔겠다는 이야기였다.
#61그 숫자가 중요했던 이유는 허세 때문만이 아니었다. 작고 싸면서도 좋은 제품을 만들려면 대량생산이 필요했다.
#62Honda는 결국 Suzuka에 거대한 생산공장을 세웠다. Super Cub은 폭발적으로 팔렸다.
#63Honda는 1959년 세계 최대 오토바이 제조사로 올라섰다. 몇 년 전만 해도 일본 1위조차 아니었던 회사였다.
#64그 뒤 미국으로 건너간 Honda는 또 시행착오를 겪었다. 처음 밀었던 큰 오토바이들은 미국의 고속·장거리 환경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65반면 작은 Super Cub에는 예상 밖의 관심이 생겼다. Honda는 현지 반응에 맞춰 전략을 바꿨다.
#66그리고 “You meet the nicest people on a Honda”라는 광고와 함께 기존의 거친 오토바이 이미지 밖에 있던 평범한 사람들까지 고객으로 끌어들였다.
#67이제 오토바이에서는 이미 세계적인 회사였다. 그래서 Honda는 가장 위험한 일을 하나 더 했다.
#68다시 후발주자가 됐다.
#691960년대 일본 자동차 시장에는 Toyota와 Nissan이 있었다. Honda는 자동차를 본격적으로 만들어본 적도 없는 신참이었다.
#70게다가 일본 정부에서는 자동차 산업을 몇 개 큰 그룹으로 재편해 신규 진입을 어렵게 만드는 정책이 논의되고 있었다.
#71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기회 자체가 좁아질 수 있었다. Honda는 서둘렀다.
#721963년 자동차 시장에 진입했다. 오토바이에서는 세계 정상. 자동차에서는 다시 막내.
#73처음에는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Soichiro Honda에게 오래된 성공 경험이 새로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74그는 공랭식 엔진을 강하게 믿었다. 엔진을 물로 식히는 수랭식과 달리 공기를 직접 이용하는 방식이다.
#75오토바이에서는 익숙했고 성공한 기술이었다. Honda는 자동차에서도 그것을 밀었다.
#76Honda 1300에는 복잡하고 야심 찬 공랭식 엔진이 들어갔다. 그러나 젊은 엔지니어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77자동차 엔진이 커지고 배출가스 기준까지 까다로워지면 수랭식이 필요하다고 봤다.
#78Tadashi Kume를 비롯한 연구진은 창업자의 주장에 반대했다. 일부는 몰래 수랭식 엔진 연구까지 진행했다.
#79수십 년 전에는 젊은 Honda가 자기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배우러 다녔다.
#80이번에는 반대였다. 젊은 엔지니어들이 성공한 Honda에게 당신이 틀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81Honda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연구소에 자주 찾아가 엔지니어들과 직접 부딪쳤다.
#82그때 Fujisawa가 다시 등장했다. 회사가 작았을 때는 Honda가 만들 줄 모르는 판매망을 맡았던 사람.
#83이제는 Honda 자신을 멈춰야 했다. Fujisawa는 오랜 파트너에게 선택을 요구했다.
#84회사의 사장으로 남고 싶은가. 아니면 엔지니어로 남고 싶은가. 둘을 동시에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85Soichiro Honda는 결국 사장 쪽을 택했다. 수랭식 개발에 길이 열렸다.
#86그리고 바로 그 무렵 Honda의 젊은 연구진 앞에는 자동차 산업 전체가 어려워하던 문제가 떨어졌다.
#87미국의 새 배출가스 규제였다.
#881970년 미국의 Clean Air Act는 자동차가 내뿜는 오염물질을 크게 줄이도록 요구했다.
#89기존 자동차 회사들에도 만만치 않은 기준이었다. Honda는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아직 작은 후발주자였다.
#90하지만 Honda R&D 연구진은 연료가 엔진 안에서 타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실험을 했다.
#91그 결과가 CVCC였다. 핵심은 연료를 더 안정적이고 깨끗하게 태워 배출가스를 줄이는 것이었다.
#92이 기술은 Soichiro Honda 혼자의 발명이 아니었다. 그와 싸우기도 했던 젊은 엔지니어들을 포함한 Honda 연구팀의 성과였다.
#931972년 미국 환경보호청 시험에서 CVCC는 1975년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했다.
#94자동차를 만든 지 10년도 되지 않은 회사가 세계 자동차 산업이 씨름하던 문제에서 먼저 답을 보여준 것이다.
#95그 소식을 들은 General Motors 회장 Richard Gerstenberg는 CVCC가 Honda 같은 작은 차에는 가능할지 몰라도 미국의 큰 자동차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로 평가했다.
#96Soichiro Honda가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GM 자동차 한 대를 샀다.
#97차는 1973년형 Chevrolet Impala였다. 커다란 미국 세단이었다.
#98Honda 연구진은 Civic의 작은 엔진을 억지로 집어넣지 않았다. Impala의 원래 대형 V8 엔진을 뜯어 CVCC 방식으로 작동하도록 실린더헤드를 새로 만들었다.
#99그리고 차를 미국으로 보냈다. EPA 시험을 받았다. 결과는 통과. 1975년 배출가스 기준을 만족했다.
#100연비도 원래 차보다 좋아졌다. 한때 Toyota에 제출한 작은 금속 링 50개 중 3개밖에 통과시키지 못했던 사람이 있었다.
#101이제 그가 만든 회사의 엔지니어들은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 중 하나가 만든 차를 가져다가, 그 회사가 회의적으로 보던 기술로 미국 규제를 통과시키고 있었다.
#102곧 Toyota를 비롯한 다른 자동차 회사들도 Honda와 CVCC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103하지만 Soichiro Honda의 다음 행동은 승리를 붙잡는 것이 아니었다.
#104회사를 떠나는 것이었다.
#1051973년. CVCC가 세계 자동차 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던 시기였다. Soichiro Honda와 Takeo Fujisawa는 함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106Honda는 창업자라는 이유로 회장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다. Fujisawa도 남지 않았다.
#107두 사람이 만든 회사는 다음 세대로 넘어갔다. 그리고 아홉 해 뒤. 1982년 11월 1일 미국 Ohio의 Marysville 공장.
#108생산라인 끝에서 Honda Accord 한 대가 빠져나왔다. 일본 자동차 회사가 미국에서 현지 생산한 첫 승용차였다.
#109그 차를 만든 공장에는 미국인 직원들이 일하고 있었다. Soichiro Honda는 더 이상 사장이 아니었다.
#110Fujisawa도 없었다. 1930년대에는 남의 자동차에 들어갈 피스톤 링 하나를 제대로 만드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했던 사람이 있었다.
#111이제 그의 이름을 단 회사는, 그가 없어도, 미국 자동차 산업의 한가운데서 자동차를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