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이별을 세계적인 노래로 만들고, 거대한 성공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와 공연의 조건을 다시 정해온 영국 가수
세계가 Adele의 목소리를 원할수록, Adele은 무엇을 지켜야 했을까
#12022년 1월, Las Vegas. Adele은 다음 날이면 시작해야 할 자신의 residency 공연 리허설을 하고 있었어.
#2상황은 이미 좋지 않았지. Omicron 때문에 제작팀이 흔들렸고, 물건은 제때 도착하지 않았고, 공연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어. 그런데 Adele을 더 괴롭힌 건 단순히 준비가 늦었다는 문제가 아니었어.
#3자기 공연 같지가 않았던 거야.
#4거대한 Caesars Palace Colosseum 무대 위에서 Adele은 첫 곡을 부르다가 앞으로 걸어갔어. 무대 끝에 앉아 다리를 아래로 내렸고, 마이크를 입에서 치웠지.
#5그리고 거의 비어 있는 4천 석이 넘는 극장에서 그냥 목소리로 노래했어.
#6마이크도 없이.
#7그런데 위쪽 객석까지 들렸어.
#8Adele은 그 순간 자신이 찾고 있던 게 무엇인지 알았다고 했어. 무대를 작게 만들고 싶은 게 아니었어. 화려한 장치를 전부 없애고 싶은 것도 아니었지.
#9아무리 방이 커져도, 노래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의 느낌만큼은 사라지면 안 됐던 거야.
#10문제는 공연이 다음 날이었다는 거였어.
#11팬들은 이미 비행기를 타고 왔고 호텔을 예약했고, 누군가는 생일이나 기념일을 이 공연에 맞춰놓고 있었어.
#12그런데 Adele은 결국 공연을 열지 않았어.
#13커리어가 충분히 커진 사람이라면 웬만한 문제는 돈과 인력으로 해결하고 일단 무대에 오를 것 같잖아.
#14Adele은 반대로 했어.
#15왜였을까.
#16그 답을 보려면, 세계가 Adele의 목소리를 원하기 훨씬 전으로 돌아가야 해.
#17Adele Laurie Blue Adkins는 London의 Tottenham에서 태어났어.
#18어머니 Penny는 열여덟 살 정도에 Adele을 낳았고, 아버지 Mark Evans가 가족 곁을 떠난 뒤 대부분 혼자 딸을 키웠지.
#19돈이 많은 집은 아니었어. 하지만 Adele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음악만큼은 풍요로웠다고 말했어.
#20집에서는 Tom Waits도 흘러나왔고, The Cure도 있었고, 어린 Adele은 Spice Girls와 Destiny's Child에도 빠졌어. Penny는 딸이 음악에 관심을 보이는 걸 막지 않았고, Adele이 일반적인 학교 대신 BRIT School로 가는 선택도 지지했어.
#21거기서 중요한 일이 하나 생겼어.
#22Adele은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는 학생이 아니라 자기 노래를 써야 했어.
#23학교 수업 때문에 곡을 만들고, coursework용으로 몇 곡을 녹음했지. `Hometown Glory`, `Daydreamer`, `My Same` 같은 초기 노래들이 그 무렵 나왔어.
#24Adele은 그 녹음을 친구에게 줬어.
#25친구는 그 세 곡을 MySpace에 올렸어.
#26지금 보면 신인 가수가 인터넷에 demo를 올리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처럼 들리지만, 당시 Adele은 이걸 치밀한 홍보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어.
#27오히려 친구가 어느 날 말했어.
#28음반사 사람들이 연락해오는데 어떻게 답해야 하냐고.
#29그중 한 명이 XL Recordings에서 일하던 Nick Huggett였어.
#30문제는 Adele이 XL을 몰랐다는 거야.
#31그래서 처음에는 이게 진짜 음반사 연락인지도 믿지 않았어. 인터넷에서 이상한 사람이 자기를 불러내려는 것 아닐까 의심했지.
#32연락은 한 번에 끝나지 않았어. Huggett는 계속 Adele에게 접근했고, 실제 음악 업계 사람이라는 걸 확인시키는 과정도 필요했어.
#33결국 Adele은 혼자 가지 않고 친구를 데리고 미팅에 나갔어.
#34그리고 그 연결 끝에 Jonathan Dickins를 만났지.
#35이것도 우리가 상상하는 거대한 스타 탄생 장면과는 조금 달랐어. Dickins는 이미 세계적인 스타들을 거느린 거물 매니저가 아니었어. 자기 집에서 일하던 젊은 매니저였고, Adele과 처음 만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지.
#36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변 사람들의 판단은 Adele보다 빨랐어.
#37친구는 노래를 인터넷에 올렸고, Huggett는 세 곡을 듣고 찾아왔고, Dickins는 Adele을 만나고 오래 고민하지 않았어.
#38Adele 자신만 아직 그 일이 얼마나 커질지 모르고 있었지.
#39그렇다고 Adele이 음악까지 수동적인 사람이었던 건 아니야.
#40자기 음악이 어떤 감정이어야 하는지에는 오히려 일찍부터 꽤 강한 감각이 있었어.
#41그 차이가 나중에 아주 중요해져.
#42첫 앨범 `19`는 Adele을 이미 성공한 신인으로 만들어줬어. Grammy에서 Best New Artist까지 받았지.
#43그런데 `21`은 전혀 다른 규모의 일이 됐어.
#44시작은 성공이 아니라 관계의 실패였어.
#45Adele에게 중요했던 연애가 끝났고, 그는 그 시기의 자신을 miserable하고 lonely하고 sad하고 angry하고 bitter했다고 표현했어.
#46그래서 `21`은 한 가지 감정으로 만들어진 앨범이 아니야.
#47어떤 곡에서는 화를 냈고, 어떤 곡에서는 상대를 그리워했고, 어떤 곡에서는 이미 떠난 사람을 놓아주려고 했고, 어떤 순간에는 놓아주는 척하면서도 아직 놓지 못했어.
#48그 여러 Adele을 끌어낸 사람들도 달랐어.
#49Paul Epworth와 만든 `Rolling in the Deep`에서는 분노가 앞에 나왔어. Adele의 목소리는 단순히 슬픈 발라드를 부르는 데 머물지 않고 훨씬 거칠고 공격적으로 들렸지.
#50Dan Wilson과 만든 `Someone Like You`는 반대쪽이었어.
#51Adele은 이미 가사와 멜로디의 일부를 가져왔고, 둘은 오히려 곡을 더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만들었어.
#52결국 남은 건 피아노와 Adele의 목소리였어.
#53그 노래의 화자는 아름답게 과거를 정리한 사람이 아니야.
#54상대는 이미 다른 삶으로 가버렸는데 자신은 여전히 그 사람을 붙잡고 있어. 잘 살라고 말하면서도, 언젠가 자신도 당신 같은 사람을 찾겠다고 말해.
#55조금 초라하고, 조금 집착적이고, 그래서 이상하게 현실적이야.
#562011년 BRIT Awards에서 Adele은 그 노래를 O2 Arena에서 불렀어.
#57거대한 무대였지만 장치는 거의 없었어.
#58Adele과 피아노.
#59그 당시 Adele은 큰 무대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어. 수천 명, 수만 명의 관객을 생각하면 겁부터 났고, 자기처럼 느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arena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확신하지 못했지.
#60그런데 `Someone Like You`가 시작되자 큰 공간이 조용해졌어.
#61Adele은 훗날 작은 공연장에서 관객이 숨 쉬는 소리까지 듣는 걸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날은 거대한 arena가 이상할 만큼 작은 방처럼 느껴졌어.
#62공연 뒤 곡은 영국 1위로 치솟았어.
#63Adele은 미국에 있다가 새벽에 매니저 Jonathan Dickins의 전화를 받았어.
#64Lady Gaga를 제치고 처음으로 영국 싱글 차트 1위가 됐다는 소식이었지.
#65Adele은 울었어.
#66그리고 Penny에게 전화를 걸었어.
#67딸을 혼자 키우며 음악을 들려줬던 엄마에게.
#68그 무렵 `21`은 1위였고, 예전 앨범 `19`도 다시 올라왔고, `Rolling in the Deep`과 `Someone Like You`가 동시에 차트를 채웠어.
#69하지만 `21`이 세계적인 현상이 된 이유를 그 BRIT 무대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어.
#70`Rolling in the Deep`도 전 세계에서 터졌고, `Someone Like You`도 여러 나라에서 1위가 됐고, `Set Fire to the Rain`도 거대한 히트가 됐어.
#71그리고 앨범은 몇 주 반짝 팔리고 끝나지 않았어.
#72해를 넘겨 계속 팔렸지.
#73결국 전 세계에서 수천만 장이 팔렸어.
#74Adele은 나중에 그걸 이상하게 바라봤어.
#75자기는 그 관계를 극복하려고 아주 개인적이고, 어쩌면 selfish하게 썼을 뿐인데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그 노래를 듣고 울고 힘을 얻었다는 거야.
#76Adele 한 사람의 실패가 어느 순간 Adele의 것이 아니게 된 거지.
#77문제는 `21`이 폭발하던 바로 그 시기에 생겼어.
#78Adele은 Paris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노래를 하고 있었어.
#79그러다 목소리가 갑자기 꺼졌어.
#80Adele 표현으로는 커튼이 내려오거나 스위치가 꺼지는 것 같았어.
#81목 안에서는 뭔가 pop한 느낌까지 들었지.
#82검사 결과 성대에 benign polyp이 있었고 출혈이 일어난 상태였어.
#83이걸 단순히 "Adele이 투어를 너무 많이 해서 폴립이 생겼다"고 말하면 정확하지 않아.
#84더 중요한 건 문제가 생긴 뒤야.
#85Adele은 나중에 사실 그때 약 여섯 달 정도 제대로 쉬었어야 했다고 말했어.
#86그런데 `21`은 이제 막 역사적인 속도로 커지고 있었어.
#87인터뷰가 있고, 방송이 있고, 공연이 있고, 투어가 있었지.
#88Adele 표현대로라면 완전히 "eye of the storm" 안에 있었어.
#89한 번 쉬었다가 다시 노래했고, 목소리에 문제가 다시 생겼고, 공연을 취소했고, 또 돌아왔다가 다시 출혈했어.
#90결국 선택지가 없어졌어.
#91그해 가을, Adele은 모든 공연을 멈춰야 했어.
#92노래를 직업이라고만 생각했다면 조금 단순했을 거야.
#93하지만 Adele에게 노래는 일이면서 취미였고, 사랑이었고, 자유였어.
#94그걸 계속하려고 노래했는데, 계속 노래하면 아예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거야.
#952011년 11월, Adele은 Boston의 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에서 수술을 받았어.
#96의사는 Steven Zeitels였어.
#97목표는 목소리를 더 멋지게 만드는 게 아니었어.
#98성대의 benign polyp 주변에서 반복해서 발생하던 출혈을 멈추고, Adele이 다시 안정적으로 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것이었지.
#99수술은 끝났어.
#100그리고 이제 Adele이 해야 할 일은 노래하는 게 아니었어.
#101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였어.
#102약 다섯 주 동안.
#103이건 Adele 같은 사람에게 특히 이상한 형벌처럼 느껴졌을 거야.
#104그는 공연에서도 노래 사이에 계속 말을 하는 사람이었고, 평소에도 말이 많은 편이었어.
#105그런데 이제 사람에게 뭔가 말하고 싶으면 종이에 쓰거나 휴대전화 앱을 써야 했어.
#106Adele다운 문제도 생겼어.
#107text-to-speech 앱 대부분이 욕설을 제대로 읽어주지 않았던 거야.
#108그래서 결국 욕까지 말해주는 앱을 찾아냈어.
#109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목소리를 가진 가수가 자기 목소리를 사용할 수 없어서 휴대전화가 대신 욕을 해주던 몇 주였지.
#110그리고 조금씩 다시 소리를 내기 시작했어.
#111수술 뒤 Anderson Cooper 앞에 앉았을 때, Adele은 `Someone Like You`를 반주 없이 잠깐 불렀어.
#112이 장면을 흔히 "목소리를 다시 믿기까지 두려움을 극복한 순간"으로 만들고 싶어지지만 Adele 자신의 설명은 조금 달랐어.
#113오히려 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어.
#114예전처럼 어떤 음이 나올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됐고, 목소리가 더 매끄럽게 느껴졌지.
#115clean slate 같은 기분이었어.
#116대신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게 됐어.
#117이 목소리는 무한하지 않다는 것.
#118200회짜리 월드투어를 계속하면 같은 문제가 또 생길 수도 있다는 걸 Adele 자신도 알고 있었어.
#119몇 달 뒤 Adele은 Grammy 무대에 올랐어.
#120`Rolling in the Deep`을 불렀고,
#121그날 여섯 개의 Grammy를 받았어.
#122조금 전까지 말을 하지도 못하던 사람이 다시 세상에서 가장 큰 음악 무대 한가운데 서 있었지.
#123Adele의 커리어가 거기서 작아진 것도 아니야.
#1242015년 `25`가 나왔어.
#125`21` 다음 앨범이라는 압박이 엄청났는데도 또 기록적인 성공을 거뒀지.
#126그리고 이번에는 Adele이 정말 큰 투어를 해봤어.
#127유럽과 북미, Australia, New Zealand를 돌았고 마지막은 London Wembley Stadium에서 끝낼 예정이었어.
#128예전에는 arena조차 무섭다던 사람이 이제 stadium을 채우고 있었던 거야.
#129하지만 2017년 Wembley 네 공연 가운데 두 번을 마친 뒤 목 상태에 다시 문제가 생겼어.
#130마지막 두 공연은 취소해야 했어.
#131Adele은 어떻게든 공연을 하고 싶어서 lip-sync까지 생각했다고 했어.
#132그런데 곧 포기했어.
#133그건 자기가 아니라고.
#134관객에게 그렇게 할 수 없다고.
#1352011년의 수술이 목소리 문제를 영원히 지워준 건 아니었어.
#136목소리는 돌아왔지만 한계도 함께 남아 있었어.
#137그 사이 Adele의 사생활도 크게 변했어.
#138Simon Konecki와 함께 아들 Angelo를 낳았고, 두 사람은 결혼했다가 헤어졌어.
#139그런데 이 관계를 `21` 때처럼 "나를 아프게 한 사람과의 이별"로 이야기하면 Adele 자신이 설명한 것과 달라져.
#140Adele은 Simon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했어.
#141두 사람 사이에 거대한 배신이 있어서 떠난 것도 아니었지.
#142자신이 행복하지 않았고, 어느 순간 삶을 제대로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살아가는 척하고 있다고 느꼈다고 했어.
#143그리고 무엇보다 Angelo가 있었어.
#144어느 날 어린 Angelo가 Adele에게 이상한 말을 했어.
#145엄마는 자기를 볼 수 있지만, 자기는 엄마를 볼 수 없다고.
#146물리적으로는 눈앞에 있는데 감정적으로는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처럼 들렸어.
#147Adele에게는 강한 충격이었어.
#148다음 날 스튜디오에 가서 아들을 위한 노래를 쓰기 시작했지.
#149그렇게 나온 `30`은 `21`과 전혀 다른 방식의 이별 앨범이 됐어.
#150Adele은 예전 노래들을 돌아보며 대체로 "네가 이렇게 했어, 네가 저렇게 했어"라는 식이었다고 말했어.
#151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생각이 들었어.
#152잠깐.
#153계속 등장하는 사람이 나잖아.
#154혹시 나인가?
#155그 질문이 `30`의 중심에 들어왔어.
#156그래서 이 앨범은 단순히 divorce album이 아니야.
#157일부는 Angelo가 나중에 어른이 됐을 때 엄마가 왜 가족의 형태를 바꾸는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남겨놓은 설명이기도 했어.
#158`My Little Love`에는 실제 Adele과 Angelo의 대화 녹음까지 들어갔지.
#159이전에는 자기 이별을 적었는데 낯선 수천만 명이 그걸 자기 이야기로 받아갔다면,
#160이번에는 처음부터 딱 한 사람에게 언젠가 이해받고 싶은 이야기도 들어 있었던 거야.
#161Adele에게는 더 오래된 관계의 상처도 있었어.
#162아버지 Mark Evans.
#163그는 Adele이 어릴 때 가족 곁을 떠났고, Adele은 그의 alcoholism과 부재가 어린 시절에 남긴 영향을 여러 번 이야기했어.
#164열두 살 무렵 Adele은 Father's Day에 아버지를 놀라게 해주려고 찾아갔어.
#165그런데 아버지는 오지 않았어.
#166그날 이후 Adele은 아버지를 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회상했지.
#167성인이 된 뒤 관계는 더 나빠졌어.
#168Adele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뒤 Mark가 딸 이야기를 언론에 팔았고, Adele은 그 일에 크게 분노했어.
#169오랫동안 둘 사이에는 사실상 거리가 있었어.
#170그런데 Mark가 암에 걸렸어.
#171죽음이 가까워지면서 둘은 다시 연락하기 시작했지.
#172이상한 사실이 하나 있었어.
#173Mark는 세계가 다 듣는 자기 딸의 음악을 거의 듣지 못하고 있었어.
#174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175Adele은 결국 아버지에게 새 노래들을 들려줬어.
#176그중에는 `To Be Loved`도 있었어.
#177둘은 같이 울었어.
#178그 뒤 Mark는 `19`, `21`, `25`까지 이전 앨범들도 들었고, Adele은 아버지가 좋아한 곡들이 자기 취향과 놀랍도록 비슷했다고 말했어.
#179과거가 없어진 건 아니야.
#180Adele의 어린 시절이 다시 쓰인 것도 아니고, 둘 사이의 모든 잘못이 갑자기 의미를 잃은 것도 아니었어.
#181하지만 Mark가 죽기 전 두 사람은 서로를 용서하고 어느 정도 평화를 찾았다고 Adele은 말했어.
#182수천만 명의 낯선 사람들이 Adele의 노래로 자기 관계를 이해하려 했는데,
#183마지막에는 그 노래가 Adele 자신의 가장 오래된 관계를 마주하는 데 쓰인 셈이었어.
#184이제 다시 2022년 1월로 돌아오자.
#185`30`은 성공했고, Adele은 다음 단계로 Las Vegas residency를 준비하고 있었어.
#186처음 취소 발표를 했을 때 Adele이 말한 이유는 분명했어.
#187COVID로 팀이 흔들렸고, 배송이 늦었고, 제작을 끝낼 수 없었다는 것.
#188그건 나중에 없던 일이 된 게 아니야.
#189하지만 몇 달 뒤 Adele은 더 많은 이야기를 했어.
#190팀이 망가진 것뿐 아니라,
#191자기는 이미 그 공연 자체가 틀렸다고 느끼고 있었다고.
#192show에 soul이 없었고, 무대 구조가 자신과 band를 떨어뜨렸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느낌이 없었다고.
#193그래서 dress rehearsal에서 무대 끝으로 나가 마이크 없이 노래했던 순간이 중요했던 거야.
#194그때 Adele은 공연이 너무 크다고 느낀 게 아니었어.
#195크기가 Adele을 삼키고 있다고 느낀 거야.
#196그리고 공연 시작 하루 전 취소를 결정했어.
#197대가는 바로 왔어.
#198팬들은 화가 났고, 업계에서도 비판이 나왔고, Adele은 몇 달 동안 부끄러웠다고 했어.
#199그는 그 일을 자기 커리어의 최악의 순간이라고 불렀어.
#200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동시에 다른 생각도 하게 됐어.
#201적어도 자신이 필요하다고 믿는 것을 위해 끝까지 버틴 선택이었다고.
#202그 결정 때문에 자신감이 생겼다고까지 했지.
#2032022년 11월 18일.
#204Adele은 결국 Caesars Palace 무대로 돌아왔어.
#205첫 곡은 `Hello`.
#206그리고 `Easy on Me`.
#207관객은 기립박수를 보냈어.
#208Adele은 울었어.
#209그러더니 자기가 박수를 받을 사람이 아니라, 돌아와준 관객들에게 오히려 standing ovation을 해야 한다고 했어.
#210열 달 전 자신 때문에 계획이 무너졌던 사람들이 실제로 다시 와 있었으니까.
#211그리고 이번 공연은 더 이상 작지 않았어.
#212오케스트라가 있었고, 대형 영상이 있었고, 폭포도 있었고, 피아노가 불타는 장면도 있었어.
#213그러니까 Adele이 1월에 원했던 건 미니멀한 공연이 아니었어.
#214재설계에 참여한 Stufish는 공연을 어떤 순간에는 Adele과 피아노만 남은 작은 방처럼 보이게 하고, 다른 순간에는 거대하게 열리도록 만들었어.
#215production이 Adele을 대신하지 않고 Adele을 둘러싸는 방식이었지.
#216처음 취소했던 공연에서는 큰 공간과 자신 사이가 끊어져 있다고 느꼈다면,
#217이번에는 그 큰 공간을 자기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었어.
#218`Weekends with Adele`은 계속 연장됐어.
#219결국 2024년 11월까지 100회 공연이 됐지.
#220재미있는 건 이 residency가 단순히 성공한 공연이 아니라 Adele에게 꽤 잘 맞는 생활 방식이 됐다는 거야.
#221Adele은 거대한 world tour를 계속 다니는 대신 한 장소에서 주말마다 공연할 수 있었어.
#222그리고 그 덕분에 Angelo의 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지.
#223전 세계를 도시마다 옮겨 다니면서 아이의 삶까지 끌고 가는 대신,
#224아들은 자기 일상을 살고, Adele은 공연할 때 Vegas로 가는 방식이었어.
#225처음에는 단 한 번도 열지 못했던 공연이,
#226결국 Adele이 가장 오랫동안 지속한 공연 형태 중 하나가 됐어.
#227Adele은 나중에 이 residency가 그 시기의 자기 삶에 정말 필요했다고 말했어.
#228커리어가 커지면 보통 질문은 하나처럼 보여.
#229다음에는 얼마나 더 크게 할까.
#230Adele의 경우에는 어느 순간 질문이 조금 달라졌어.
#231이걸 계속하면서도 나는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
#2322024년 Adele은 Munich으로 갔어.
#233그리고 이번에는 아예 Adele 공연을 위해 임시 stadium을 만들었어.
#234한 번에 7만 명이 넘게 들어갈 수 있는 규모였고, 공연은 열 번이나 열렸어.
#235총 관객은 73만 명을 넘겼지.
#236이 장면 때문에 Adele의 이야기를 "결국 작은 무대로 돌아온 가수"라고 정리하면 안 돼.
#237오히려 반대야.
#238Adele은 큰 무대를 할 수 있었어.
#239자기 방식으로 만들어진 큰 무대라면.
#240초기 Adele은 arena만 생각해도 겁이 났어.
#241그런데 Munich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말을 했어.
#242자기는 가장 comfortable한 performer는 아닐지 모르지만,
#243공연은 정말 잘한다고.
#244무대가 무섭지 않은 사람이 된 건 아니야.
#245그런데 이제 잘하는지조차 의심하는 사람도 아니었어.
#2462024년 8월 31일, Munich 마지막 공연.
#247Adele은 울면서 팬들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했어.
#248Las Vegas에 남아 있는 공연들을 다 끝내고 나면 아주 긴 휴식을 갖겠다고.
#249지난 7년 동안 새로운 삶을 만드는 데 시간을 썼고,
#250이제 그 삶을 실제로 살아보고 싶다고 했어.
#251이건 공연이 망해서 나온 선언이 아니었어.
#252Munich에는 수십만 명이 왔고, Vegas도 성공적으로 돌아가고 있었어.
#253그런데 Adele은 계속 확장하지 않았어.
#25411월 23일, Vegas에서 100번째이자 마지막 공연을 했어.
#255그날 Adele은 2022년에 처음 준비했던 공연을 그냥 강행했다면 자신이 지금 이 마지막 밤까지 와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어.
#256Angelo에게 감사했고, Rich Paul에게 감사했고, 다시 돌아와준 관객들에게 감사했어.
#257그리고 다음에 언제 다시 공연하고 싶을지는 모르겠다고 했어.
#258영원히 그만둔다고 하지는 않았어.
#259언젠가는 돌아올 거라고 했지.
#260Adele의 커리어가 시작될 때를 생각하면 조금 이상한 장면이야.
#261처음에는 친구가 자기 노래를 MySpace에 올렸고, 낯선 음반사 사람이 먼저 연락했고, 주변 사람들이 Adele보다 먼저 이 목소리가 어디까지 갈지 알아봤어.
#262그러고 나서 세계가 계속 Adele에게 더 많은 노래와 더 큰 공연을 요구했어.
#263어느 순간에는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자기 성대가 멈출 때까지 제대로 쉬지 못했지.
#264그런데 2024년의 Adele은 달랐어.
#265세상이 더 듣고 싶어 한다고 해서 계속 노래해야 하는 건 아니었어.
#266작은 방이든 7만 명짜리 stadium이든,
#267어떤 곳에서 노래할지, 어떤 공연이어야 자기 공연이라고 믿을 수 있을지, 그리고 언제 그 무대에서 내려올지를 이제는 Adele 자신이 정하고 있었어.
#268Adele은 긴 휴식을 이야기하면서 음악 말고 다른 creative things도 해보고 싶다고 했어.
#269그리고 그 말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어졌어.
#2702025년, Tom Ford가 Anne Rice의 소설 `Cry to Heaven`을 영화로 만든다는 소식이 나왔고 Adele이 출연진에 포함됐어.
#271Adele의 첫 본격적인 영화 연기야.
#2722026년 초에는 실제로 Italy에서 촬영도 진행됐어.
#273재미있는 건 Adele이 예전에는 자기가 배우가 아니라고 꽤 단호하게 말했던 사람이라는 거야.
#274자기는 가수이고,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었지.
#275그런데 음악과 touring에서 오래 쉬기 시작한 뒤 처음 뛰어든 큰 창작 작업은 새 앨범이 아니라 영화였어.
#2762026년 9월 현재 새 정규 앨범이나 새 투어는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어.
#277그러니까 Adele이 다음에 무엇을 할지는 아직 알 수 없어.
#278다만 한 가지는 전보다 분명해 보여.
#279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발견했던 목소리였지만,
#280이제 그 목소리를 언제 다시 꺼낼지는 Adele이 결정한다.
#281가 Adele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사무실은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고층 빌딩이 아니라 사실상 자기 집이었어. 그런데 그 작은 출발점에서 Adele과의 파트너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 커리어 중 하나를 관리하는 관계로 커졌어. 스타를 키우는 매니저에게 정말 중요한 건 무엇을 더 시키는 능력일까, 아니면 무엇을 서두르지 않는 능력일까?
#282Adele의 목소리를 수술한 에게 Adele은 유일한 유명 환자가 아니었어. 그는 전문적으로 목소리를 쓰는 사람들의 성대를 치료해왔고, 가수에게는 몇 밀리미터의 조직이 예술과 직업 전체를 좌우할 수 있다는 세계를 연구해왔어. 그렇다면 현대 의학은 한 사람의 목소리를 어디까지 고치면서도 여전히 '그 사람의 목소리'로 남게 할 수 있을까?
#283Vegas 공연을 다시 설계한 는 무대를 단순히 더 화려하게 만든 게 아니었어. 같은 공간이 어떤 순간에는 Adele과 피아노만 있는 작은 방처럼 느껴지고, 몇 분 뒤에는 거대한 spectacle로 열리도록 만들었지. 수천 명이 들어가는 장소를 어떻게 심리적으로 작게 만들 수 있을까?
#284그리고 음악을 쉰 Adele의 첫 본격적인 영화 작업을 맡은 자신도 한 분야에 머문 사람이 아니야. 그는 fashion designer로 정상에 오른 뒤 영화감독이 됐고, 이제 의 소설을 자기 방식으로 영화화하고 있어. 음악 밖으로 처음 발을 내디딘 Adele이 하필 이미 한 번 거대한 직업 전환을 해본 창작자와 만난 건 어떤 결과를 만들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