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앤"의 혹평을 안고 11년 뒤 아침드라마로 돌아온 배우
200명 중 뽑힌 신인은 왜 11년 동안 자신의 연기를 다시 배워야 했을까
#12025년, 나카지마 아유무는 NHK 아침드라마 "앙팡" 촬영장에 들어갔어.
#2첫날부터 쉽지 않았어. 이마다 미오가 연기하는 아사다 노부에게 결혼을 청해야 했거든.
#3두 배우가 충분히 오래 만나 친해진 다음 찍는 장면도 아니었어. 극 중에서도 지로와 노부는 몇 번 만나지 않은 사이였고, 15분짜리 아침드라마는 빠르게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야 했지. 짧은 시간 안에 시청자가 '아, 이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생겼구나'라고 느껴야 했어.
#4촬영을 하던 나카지마는 어느 순간 이마다가 연기하는 노부의 마음이 조금 열리는 것처럼 느꼈어. 그러자 자신의 마음도 움직였다고 해.
#5그날 그는 꽤 들뜬 채 집으로 돌아갔어.
#6배우가 상대 배우와 마음이 통했다고 느꼈을 뿐인데, 왜 그 일이 그렇게 기뻤을까.
#7나카지마에게는 이곳이 처음이 아니었거든.
#811년 전에도 그는 NHK 아침드라마에 출연했어.
#9그런데 그때는 정반대였어.
#10나카지마가 배우로 데뷔한 건 2013년이야.
#11대학생 때부터 모델 일을 하고 있었지만, 원래 목표는 연기였어. 그러다 미와 아키히로가 주연과 연출을 맡은 대형 무대 "검은 도마뱀" 오디션을 보게 됐지.
#12지원자는 약 200명.
#13나카지마는 그 가운데 아마미야 준이치 역으로 뽑혔어.
#14미와는 그에게 자신의 젊은 시절과 닮았다는 말까지 했어. 배우가 되려고 하던 24살 청년에게는 믿기 힘들 만큼 화려한 출발이었지.
#15그런데 연습이 시작되자 이야기가 달라졌어.
#16나카지마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어. 서 있는 법, 움직이는 법, 대사를 다루는 법부터 하나씩 지적받았지.
#17미와는 검술이나 일본무용, 팬터마임처럼 배우가 몸에 익혀놓은 기술이 무엇인지 물었어. 나카지마가 대학에서 라쿠고를 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목소리를 더 다양하게 쓸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파고들었어.
#18화려하게 선택된 신인이었지만, 정작 연습실에서는 자신에게 배우로서 꺼내 쓸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계속 마주해야 했던 거야.
#19나카지마는 훗날 당시를 떠올리며 사람들이 자신에게 실망하는 걸 느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 때문에 짓눌렸다고 했어.
#20그래도 데뷔는 됐어.
#21그리고 바로 다음 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보는 곳에서 그 문제가 드러났지.
#222014년 나카지마는 NHK 아침드라마 "꽃보다 앤"에 출연했어.
#23역할도 작지 않았어. 나카마 유키에가 연기한 렌코와 사랑에 빠지는 대학생 미야모토 류이치였지. 상대 배우들 가운데에는 요시다 코타로처럼 무대에서 오랫동안 연기를 해온 베테랑도 있었어.
#24나카지마는 역할을 많이 생각했어.
#25문제는 생각한 것을 화면에 옮기는 일이었어.
#26머릿속에는 있는데 몸으로 나오지 않았어. 자신이 상상한 감정과 실제 카메라에 찍힌 연기 사이에 큰 틈이 있었던 거야.
#27방송이 나가자 인터넷에는 그의 연기를 두고 "보요미(棒読み)", 그러니까 대사를 감정 없이 읽는 것 같다는 반응이 실제로 나왔어.
#28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야. 하지만 나카지마 본인도 나중에 당시 자신의 연기가 전혀 잘되지 않았고 평판도 좋지 않았다고 인정했어.
#29그 경험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어.
#30나중에 그는 "꽃보다 앤"을 자신의 큰 트라우마였다고 말하게 돼.
#31더 아픈 건,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꽤 잘 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거야.
#32"검은 도마뱀"으로 데뷔했고, 곧바로 아침드라마에 나왔어.
#332015년에는 영화 "굿 스트라이프스"에서 처음 주연도 맡았지. 패션 잡지에도 등장했어.
#34나카지마는 속으로 생각했어.
#35이대로 갈 수도 있겠다고.
#36그런데 그렇지 않았어.
#37시간이 지나면서 일이 줄었어.
#38훗날 그는 이유를 꽤 간단하게 말했어.
#39자기가 연기를 못했기 때문이라고.
#40아침드라마의 악평 하나 때문에 모든 일이 사라졌다고 말하지도 않았어. 오히려 자신도 그때 능력이 부족했다는 걸 알고 있었지.
#41그래서 더 곤란했어.
#42누군가 자신을 오해한 거라면 화라도 낼 수 있었을 텐데, 자신이 못한다는 사실을 본인도 알고 있었으니까.
#43배우에게 일이 없다는 건 단순히 쉬는 시간이 생긴다는 뜻이 아니었어.
#44나카지마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앞서가고 있다는 시간이었어.
#45동세대 배우들은 현장에 불려가고, 촬영하면서 경험을 쌓고 있을 거야.
#46자신은 집에 있고.
#47누군가는 오늘도 연기를 배우고 있는데 자신에게는 그 오늘이 없는 거야.
#48한때 그는 오전 10시부터 술을 마실 정도로 생활이 흐트러졌어. 낮부터 밤까지 마시기도 했지.
#49그렇다고 10년 내내 술만 마신 건 아니야.
#50오히려 이 시기의 나카지마는 이상할 만큼 모순적이었어.
#51무너져 있으면서도 영화를 봤어.
#52연극도 봤어.
#53보면 볼수록 그 세계가 더 좋아졌어.
#5430살 무렵에는 배우를 계속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어. 수입도 충분하지 않았고,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 밴드를 했던 경험도 있어서 레코드 가게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삶까지 생각했어.
#55그런데 결국 배우를 놓지는 못했어.
#56연기가 좋았으니까.
#57그러면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어.
#58계속할 거라면, 지금처럼 가만히 기다릴 수는 없었어.
#59나카지마는 생각했어.
#60입을 벌리고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일이 오지 않는다고.
#61그래서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직접 가기 시작했어.
#62작은 극장에 갔고, 연기 워크숍에 참가했어.
#63궁금한 영화감독이 있으면 그 사람이 나오는 토크 행사에 찾아가기도 했고, 영화가 끝난 뒤 감독이 관객 앞에 서는 무대인사를 찾아가 직접 말을 걸기도 했어.
#64거창한 재기 선언이 있었던 건 아니야.
#65어떤 날에는 술을 마시며 자신을 놓았고, 다른 날에는 연습실로 갔어.
#66그렇게 아주 긴 시간 동안 조금씩 움직인 거야.
#67그리고 그곳에서 나카지마는 자신이 연기에 대해 모르던 것들을 하나씩 만나기 시작했어.
#68처음 미와 아키히로에게는 형태와 기술을 배웠어.
#69어떻게 서고,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말을 다뤄야 하는지.
#70미와가 마지막에 강조한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어.
#71"마지막에는 마음으로 연기해라."
#72하지만 마음으로 연기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곧바로 마음으로 연기할 수 있는 건 아니었어.
#73나카지마에게는 그 사이를 채울 시간이 필요했지.
#74영국 연출가 데이비드 르보와 작업할 때는 먼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는 말을 들었어. 지시받은 정답을 재현하려고만 하던 나카지마에게는 낯선 주문이었지.
#75배우 곤도 요시마사와 연기하면서는 또 다른 걸 느꼈어. 같은 대사인데도 곤도가 말하면 정말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느낌이 왔어.
#76대사는 그냥 잘 읽는 것이 아니었어.
#77누군가에게 가야 했어.
#78그래도 나카지마가 자신의 연기에 처음 조금 자신감을 느끼게 된 데에는 또 다른 감독이 중요했어.
#79도미나가 마사노리였어.
#802019년 드라마 "혼자 캠프에서 먹고 자다"를 찍을 때였어.
#81그전까지 나카지마에게 연기는 감독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맞히는 일에 가까웠어.
#82그런데 도미나가는 다른 주문을 했어.
#83나카지마다운 연기를 만들어달라고.
#84자유롭게 해도 된다는 거였어.
#85나카지마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이전보다 훨씬 과감하게 내놓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것이 현장에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지.
#86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어.
#87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88그 작품에서의 나카지마를 본 다른 감독이 그를 다음 영화에 부르기도 했어.
#89오랫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던 움직임들이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한 거야.
#90그리고 워크숍에서 알게 된 감독 가운데 한 명이 하마구치 류스케였어.
#91하마구치는 나카지마를 처음 보는 감독이 아니었어.
#92이미 워크숍에서 그를 본 적이 있었어.
#93그 인연은 2021년 영화 "우연과 상상"으로 이어졌어.
#94하마구치는 배우를 고를 때 단순히 '연기를 잘하는가'만 보는 감독이 아니었어. 역할에 맞는지, 직접 이야기했을 때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인지도 중요하게 봤지.
#95"우연과 상상"은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받았어.
#96그리고 이 작품을 지나면서 나카지마에게 실제 변화가 생겼어.
#97일본 영화감독들 사이에서 이름이 훨씬 넓게 알려지고, 들어오는 제안도 늘기 시작했지.
#98중요한 건 이 작품이 어느 날 나카지마를 갑자기 좋은 배우로 만들어준 게 아니라는 거야.
#99그 전에 이미 수년 동안 연습실과 작은 극장과 촬영장을 돌아다니며 쌓은 것이 있었어.
#100"우연과 상상"은 그 시간이 처음 크게 보인 순간에 가까웠어.
#101나카지마는 훗날 다카사키영화제에서 워크숍 이야기를 하다가 감정이 북받치기도 했어.
#102그에게 워크숍은 단순한 수업이 아니었거든.
#103감독을 만난 곳이었고, 배우를 계속할 이유를 찾은 곳이었고, 다음 일이 시작될 수도 있는 곳이었어.
#104그래도 대중이 갑자기 나카지마를 모두 알아보기 시작한 건 아니었어.
#105영화계에서 먼저 변화가 일어났고, TV에서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지.
#1062024년 "부적절한 것도 정도가 있어!"에서 나카지마는 중학교 교사 야스모리 선생을 연기했어.
#107처음부터 압도적인 주인공 역할은 아니었어. 그런데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그의 어딘가 어색하고 묘하게 웃긴 존재감이 살아났고, 시청자 반응도 커졌어.
#108나카지마가 훗날 '35살에 브레이크한 늦깎이 배우'라고 소개되기 시작한 데에는 이 작품이 큰 역할을 했어.
#109영화감독들이 먼저 알아보기 시작한 배우를 이제 TV 시청자들도 발견한 거야.
#110그리고 그다음 해, 나카지마에게 이상할 만큼 정확한 제안이 왔어.
#111다시 NHK 아침드라마였어.
#112"앙팡"에서 나카지마가 맡은 사람은 와카마쓰 지로였어.
#113주인공 노부와 결혼하게 되는 남자였지.
#11411년 만의 아침드라마 복귀.
#115기쁘기만 하지는 않았어.
#116"꽃보다 앤"은 여전히 트라우마였으니까.
#117거기에는 11년 전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도 있었어.
#118요시다 코타로.
#119"꽃보다 앤" 때 나카지마는 이미 오랫동안 무대 경험을 쌓은 요시다를 상대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절실하게 느꼈어. "앙팡"에서 다시 만나자 반가우면서도 조금 무서웠다고 해.
#120이번에는 배우로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
#121또 한 사람은 연출가 야나가와 쓰요시였어.
#122그는 11년 전 "꽃보다 앤" 때도 나카지마를 봤고, 이번 "앙팡"에도 참여했어.
#123그러니까 나카지마는 단순히 같은 방송국에 돌아간 게 아니었어.
#124예전의 자신을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들 앞에 다시 선 거야.
#125그런데 이번에는 시작부터 행동이 달랐어.
#126나카지마는 지로라는 인물을 보면서 걱정했어.
#127좋은 말을 하고, 노부를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는 사람.
#128그런데 너무 좋은 사람만 되면 오히려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었어.
#129그는 그 문제를 야나가와 감독에게 먼저 이야기했어.
#130감독도 그 고민에 공감했지.
#13111년 전의 나카지마는 연출가가 요구하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몰라 당황하던 신인이었어.
#132이번에는 자신이 맡은 인물이 화면에서 어떻게 보일지 문제를 찾아내고, 감독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어.
#133그리고 촬영 첫날이 왔어.
#134프러포즈 장면이었지.
#135나카지마가 11년 전에 가장 괴로워했던 건 머리로 생각한 것을 연기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었어.
#136그런데 "앙팡" 첫날에는 다른 일이 일어났어.
#137자기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만 생각한 게 아니었어.
#138앞에 있는 이마다 미오를 보고 있었어.
#139이마다가 연기하는 노부의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았고, 그것을 느끼자 나카지마 자신의 마음도 움직였어.
#140그는 그 순간 두 사람의 마음이 연결됐다고 느꼈어.
#141그래서 촬영을 마치고 집에 갈 때 신이 났던 거야.
#142오랫동안 공부한 끝에 대사를 더 자연스럽게 말하게 됐다는 정도의 변화가 아니었어.
#143예전에는 머릿속에만 있던 것이 이제 상대 배우와 주고받는 순간 안에서 실제로 생기고 있었던 거야.
#144"앙팡"이 방송되자 지로에 대한 반응은 좋았어.
#145그의 이름이 SNS에서 화제가 될 정도였지.
#14611년 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어.
#147그렇다면 이제 오래된 상처도 끝난 걸까.
#148나카지마의 답은 아니었어.
#149나카지마는 지금도 인터넷 반응을 보는 게 무섭다고 했어.
#150"꽃보다 앤" 때의 경험은 아마 계속 남아 있을 것 같다고도 했지.
#151그러니까 이건 11년 만에 실패한 장소로 돌아가 완벽하게 복수한 이야기가 아니야.
#152과거가 사라지지도 않았어.
#153오히려 나카지마는 그 과거 때문에 이번 아침드라마를 더 열심히 준비했다고 했어.
#154그리고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됐지.
#155만약 그때 자신이 쉽게 인정받았다면 어땠을까.
#156아마 이렇게까지 연기를 공부하지 않았을 것 같다고.
#157그동안 나카지마는 자신이 무엇을 못하는지 계속 봐야 했어.
#158미와 아키히로 앞에서도 그랬고, 아침드라마에서도 그랬고, 일이 줄었을 때도 그랬어.
#159도망친 날도 있었어.
#160아침부터 술을 마신 날도 있었지.
#161그런데 다시 작은 극장으로 갔고, 워크숍으로 갔고, 자신이 궁금한 감독을 만나러 갔어.
#162그러면서 자기가 상상하는 것을 실제 연기로 옮기는 법을 조금씩 배웠어.
#163그래서 11년 뒤 같은 아침드라마에 돌아왔을 때 가장 기뻤던 순간은 사람들이 자신을 칭찬한 날이 아니었어.
#164촬영 첫날.
#165상대 배우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 같았고, 그걸 받은 자신의 마음도 함께 움직였던 순간이었어.
#166나카지마는 이제 연기가 재미있다고 말해.
#167그에게 가장 아팠던 실패는 없어지지 않았어.
#168다만 그 실패 뒤에 11년 동안 배운 것이 생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