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erto Rico에서 시작해 Spanish 음악의 세계적 규모를 확장한 가수이자 래퍼
세계가 Bad Bunny의 언어를 듣게 되기까지
#12016년 Puerto Rico. Benito Martínez는 대학에서 audiovisual communications를 공부하면서 Econo 슈퍼마켓에서 일하고 있었어.
#2그런데 어느 날부터 근무 중에 이상한 전화들이 걸려오기 시작했어.
#3자신이 SoundCloud에 올린 노래 "Diles"가 갑자기 퍼지고 있었던 거야. 약 2주 만에 재생 수가 100만 회 가까이 올라가니까 음악업계 사람들이 그를 찾기 시작했어.
#4문제는 Benito가 아직 슈퍼마켓 직원이었다는 거야.
#5전화를 제대로 받으려면 화장실로 숨어 들어가야 했어. 누군가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해달라고 하면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도 몰랐고, 졸업 파티에서 공연해달라는 연락이 오면 공연료를 얼마라고 불러야 할지도 몰랐지.
#6전화를 끊으면 다시 문을 열고 나와 일을 했어.
#7그로부터 10년 뒤, 이 슈퍼마켓 직원이 만든 Spanish 앨범은 Grammy의 Album of the Year를 받아.
#8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 그는 Super Bowl halftime show의 한가운데 서게 돼.
#9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0Benito Antonio Martínez Ocasio는 Puerto Rico 북부 Vega Baja의 Almirante Sur에서 자랐어.
#11아버지 Tito는 트럭 운전사였고 어머니 Lysaurie는 교사였어. 그는 세 아들 중 맏이였고. 집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음악은 계속 흘러나왔지.
#12아버지는 salsa와 tropical music을 들었고, 어머니는 merengue와 balada를 좋아했어. 할아버지를 통해서는 bolero와 bohemia를 접했고, 친구들과 있을 때는 reggaetón을 들었지.
#13어릴 때는 교회 어린이 성가대에서도 노래했어.
#14그리고 아침에는 Tego Calderón이 있었지.
#15Benito가 좋아하던 "Pa' Que Retozen"이 라디오에서 학교에 가기 직전쯤 흘러나오곤 했어. 늦잠을 자면 어머니가 말했지.
#16"Tego 듣고 싶으면 일어나."
#17그러면 Benito는 벌떡 일어나 준비하고 차에 탔어. 그래도 늦어서 노래의 끝부분밖에 듣지 못할 때가 있었고.
#18훗날 Bad Bunny가 세계적인 reggaetón 스타가 된 뒤 "La Difícil" 뮤직비디오에는 묘하게 비슷한 장면이 등장해.
#19이번에는 차에 탄 아이가 엄마에게 Bad Bunny 노래를 크게 틀어달라고 하지.
#20한때 라디오에서 다른 사람의 노래를 놓칠까 봐 뛰어나오던 아이가, 이제 다른 아이들이 기다리는 목소리가 된 거야.
#21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은 처음부터 예정돼 있지 않았어.
#22대학생 Benito는 방에서 음악을 만들었어.
#23토요일이면 오후 늦게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beat를 만들고 녹음했어. 음악을 좋아했지만 그게 정말 직업이 될지는 알 수 없었지.
#24SoundCloud에 올리는 것조차 처음에는 망설였어.
#25친구 Ormani Pérez가 계속 등을 밀었어. 주변의 젊은 뮤지션들이 SoundCloud에 자기 음악을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Benito도 결국 완성한 곡들을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했지.
#26또 다른 친구 Janthony는 더 직접적으로 움직였어.
#27Benito의 음악을 USB에 담아 DJ들을 찾아다니며 새벽 파티에서 틀어달라고 했어.
#28그러니까 "Diles"는 방에서 만들어진 뒤 어느 날 알고리즘이 우연히 발견한 기적만은 아니었던 거야.
#29친구들이 있었고, USB가 있었고, DJ가 있었고, 이미 Puerto Rico에서 움직이고 있던 Latin urban music의 네트워크가 있었지.
#30그 안으로 "Diles"가 들어간 거야.
#31DJ Luian과 Mambo Kingz의 Hear This Music 쪽으로 연결되면서 Bad Bunny라는 이름은 빠르게 커졌어. Noah Assad와 Rimas 역시 그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존재가 됐고.
#32곧 그는 Arcángel, Farruko, Ozuna 같은 아티스트들과 연결됐고 "Soy Peor"가 터졌지.
#33슈퍼마켓 화장실로 들어가 전화를 받던 생활은 끝나가고 있었어.
#34하지만 성공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어.
#35Bad Bunny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유명해졌어.
#362018년에는 Cardi B, J Balvin과 함께한 "I Like It"이 미국 Billboard Hot 100 1위에 올랐고.
#37그리고 Drake와 "MIA"를 만들었지.
#38여기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어.
#39미국시장으로 가고 싶어 하는 Latin artist가 영어를 배우는, 그 익숙한 장면과는 반대였어.
#40Drake가 Spanish로 노래한 거야.
#41Bad Bunny는 영어를 할 줄 몰라서 Spanish만 고집했던 것도 아니었어. 영어로 노래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필요하거나 하고 싶다면 할 수 있지만 왜 자신에게만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식으로 받아쳤지.
#42누구도 Drake에게 언제 Spanish 앨범을 만들 거냐고 묻지는 않는다는 거였어.
#43그런데 세계적인 히트곡들이 쌓이는 동안 정작 Bad Bunny에게는 이상하게도 자기 정규앨범이 없었어.
#44그는 오래전부터 앨범을 내고 싶었다고 했어. 하지만 당시 자신이 속해 있던 구조에서는 그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훗날 설명했지.
#45왜 Hear This Music이 앨범을 지원하지 않았는지, 그건 한쪽 설명만으로 이유를 만들어낼 수는 없어.
#46분명한 건 Bad Bunny가 그 체제를 떠났다는 거야.
#47그리고 2018년 크리스마스이브, 마침내 첫 앨범 "X 100PRE"를 내놓았어.
#48그에게 이 앨범은 단순히 히트곡들을 모은 데뷔작이 아니었어.
#49이제 자신이 원하는 걸 만들어도 된다는 선언에 가까웠지.
#50이때 중요한 사람이 Tainy였어.
#51Tainy는 Bad Bunny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Puerto Rican reggaetón의 역사를 몸으로 지나온 프로듀서였어. 10대 때부터 Luny Tunes 주변에서 작업했고 2000년대 reggaetón의 중요한 작품들에 참여했지.
#52Bad Bunny와 처음 제대로 마주 앉았을 때, 둘은 곧바로 beat부터 만들지 않았어.
#53며칠 동안 서로 뭘 좋아하는지, 어떤 음악을 들으며 자랐는지 이야기했지.
#54그 관계에서 "Estamos Bien" 같은 곡이 나왔고 "X 100PRE"의 세계가 만들어진 거야.
#55Bad Bunny는 trap이나 reggaetón 한 가지에 갇히지 않았어. rock도, synth-pop도, 다른 Latin music도 자기 앨범 안으로 끌어왔지.
#56자유를 얻은 뒤 그가 선택한 건 미국 pop에 자신을 맞추는 일이 아니었어.
#57오히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의 범위를 계속 넓히는 일이었지.
#58그리고 그 범위 안으로 Puerto Rico가 점점 더 깊이 들어오기 시작했어.
#59Puerto Rico에는 이미 Hurricane Maria가 남긴 상처가 있었어.
#60정전과 경제적 어려움, 정부에 대한 불신이 계속되던 가운데 2019년 Ricardo Rosselló 주지사와 측근들의 Telegram 대화가 공개됐어.
#61부패 의혹뿐 아니라 여성과 성소수자 등을 비하하는 대화가 담겨 있었지. Maria 희생자들을 둘러싼 모욕적인 내용까지 알려지면서 이미 쌓여 있던 분노가 폭발했어.
#62그때 Bad Bunny는 유럽에 있었어.
#63그는 활동을 멈추고 Puerto Rico로 돌아왔지.
#64Residente, iLe와 함께 급하게 "Afilando Los Cuchillos"를 만들었고 거리로 나갔어. 트럭 위에 올라 시위대와 함께했고 Ricky Martin을 비롯한 다른 Puerto Rican 유명인들도 움직였지.
#65결국 Rosselló는 사임했어.
#66하지만 이걸 Bad Bunny가 주지사를 끌어내린 이야기로 만들면 안 돼.
#67거리를 가득 채운 건 훨씬 거대한 시민운동이었어. Bad Bunny는 그 안에서 유난히 잘 보이는 얼굴 중 하나였고.
#68그에게 중요한 변화는 다른 데 있었지.
#69음악으로 얻은 거대한 플랫폼을 음악산업 밖의 문제에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거야.
#70그 이후 Bad Bunny의 규모는 더 커졌어.
#712020년, 2021년, 2022년 그는 3년 연속 Spotify에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아티스트가 됐지.
#722022년 "Un Verano Sin Ti"는 세계적인 현상이 됐어.
#73그런데 그 앨범에는 "El Apagón"이라는 노래가 들어 있었어.
#74제목부터 "정전"이었지.
#75Puerto Rico에서 반복되는 전력 문제와 섬을 둘러싼 감정을 담은 곡이었어.
#76더 놀라운 건 영상이었어.
#77보통의 뮤직비디오가 계속되는가 싶더니, 화면이 갑자기 다른 작품으로 넘어가.
#78Puerto Rican journalist Bianca Graulau가 취재한 "Aquí Vive Gente"라는 짧은 다큐멘터리야.
#79그곳에는 반복되는 정전과 LUMA를 둘러싼 문제, 외부 투자자를 위한 세제 혜택, 치솟는 집값과 임대료, 살던 곳에서 밀려나는 주민들의 이야기가 나오지.
#8026년을 살던 건물에서 갑자기 나가라는 통보를 받은 사람도 등장해.
#81세계에서 가장 많이 듣는 가수는 그 문제를 자기가 카메라 앞에서 길게 설명하지 않았어.
#82대신 자기 노래를 보러 들어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Puerto Rican 기자와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려줬지.
#83제목은 단순했어.
#84"여기에는 사람들이 산다."
#85이쯤에서 Bad Bunny를 깔끔한 사회운동가로 만들면 실제 이야기가 망가져.
#862023년 그의 모습은 훨씬 복잡했어.
#87Dominican Republic에서 한 여성이 휴대전화를 들고 그의 얼굴 가까이 붙어 촬영했어.
#88Bad Bunny는 그 전화기를 잡아 던져버렸지.
#89영상이 퍼졌고 거센 비판을 받았어.
#90그는 자신에게 다가와 인사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존중하지만, 얼굴 앞에 전화기를 들이미는 건 존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어.
#91자신은 전시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거였지.
#92유명해지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자기 음악을 사람들이 발견해주길 바랐어.
#93이제는 사람들이 자신을 너무 많이 보는 게 문제가 됐지.
#94그에게는 거리의 모든 사람이 paparazzo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생겼어.
#95Kendall Jenner와의 관계를 둘러싸고는 일부 Latino와 Puerto Rican 팬들과도 충돌했어. 자신이 누구와 만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까지 대중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 그건 받아들이지 않았지.
#96그는 Los Angeles에서도 시간을 보냈고 Hollywood 영화와 fashion, WWE 같은 세계로 들어갔어.
#97그리고 자신이 Latino 전체를 대표해야 하는 모범적인 인물이라는 역할, 그것도 원하지 않았지.
#982023년 "Nadie Sabe Lo Que Va a Pasar Mañana"에서는 Puerto Rico의 사회문제보다 유명세, 돈, 비판, 사생활과 trap으로의 귀환이 훨씬 크게 들렸어.
#99성공할수록 매번 더 정치적인 사람이 된 건 아니었어.
#100그는 성공하면서 변했지.
#101화가 났고, 피곤해졌고, 때로는 방어적이 됐어.
#102그래서 다음 앨범의 제목은 뜻밖이었어.
#103"DeBÍ TiRAR MáS FOToS."
#104사진을 더 찍었어야 했는데.
#105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의 휴대전화 카메라에 질려 있던 사람이었어.
#106하지만 Bad Bunny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지.
#107자신은 기억력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언젠가는 지금 기억하고 있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잊어버릴 수도 있었어.
#108사진은 귀찮은 카메라만을 뜻하지 않았어.
#109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붙잡는 방법이기도 했지.
#110그 무렵 Puerto Rico의 Ocean Park를 운전하던 날이 있었어.
#111Bad Bunny는 슬펐고 차 안에서 울고 있었지.
#112그런데 밖을 보니 관광객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
#113춤을 배우고, volleyball을 하고, 아름다운 석양을 배경으로 selfie를 찍고 있었지.
#114그 장면을 보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
#115관광객은 Puerto Rico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경험하고 떠날 수 있어.
#116하지만 그곳에서 매일 살아가는 사람들이 뭘 걱정하고, 뭐 때문에 불안하고, 뭘 잃어가고 있는지는 모를 수 있지.
#117그러다 그 생각이 사랑과 겹쳤어.
#118누군가 자신의 삶에 들어와 아름다운 부분을 즐기고 떠났지만, 자신의 두려움과 슬픔까지는 알지 못했던 관계.
#119그 장면에서 "TURiSTA"가 태어났어.
#120개인의 이별과 Puerto Rico의 관광 문제가 같은 단어 안으로 들어온 거지.
#1212025년 "DeBÍ TiRAR MáS FOToS"에서 Bad Bunny는 Puerto Rico 안으로 훨씬 더 깊이 들어갔어.
#122salsa와 plena, jíbaro music 같은 소리가 reggaetón과 전자음악 사이를 오갔지.
#123오랫동안 함께했던 La Paciencia와 Tainy 같은 사람들이 다시 중심에 있었어.
#124Tainy는 Puerto Rico에서 작업하며 어머니의 집에 가고, 어린 시절 학교에 다니던 길을 운전하고, 자신이 자라며 들었던 음악을 떠올렸어.
#125Bad Bunny 자신도 가족의 역사로 내려갔지.
#126"LA MuDANZA"에서는 부모가 어떻게 만났는지까지 노래했어.
#127"LO QUE LE PASÓ A HAWAii"에서는 더 불안한 미래를 바라봤지.
#128Puerto Rico가 관광과 외부 자본을 위해 바뀌면서 주민들이 자기 고향에서 밀려나고, 언젠가 Hawaii가 겪었던 것과 비슷한 길을 가게 되는 건 아닐까.
#129Bad Bunny는 이 앨범을 시작할 때 세계시장에 어떻게 먹힐지를 먼저 생각했다고 설명하지 않았어.
#130Puerto Rico에서, Puerto Rican들을 위한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지.
#131세계적인 스타가 된 뒤 세계에 맞춰 더 보편적인 작품을 만드는 대신, 더 지역적인 곳으로 들어간 거야.
#132앨범을 낸 뒤 Bad Bunny는 곧바로 미국의 거대한 stadium들을 도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았어.
#133San Juan의 Coliseo de Puerto Rico에 자리를 잡았지.
#134"No Me Quiero Ir de Aquí."
#135여기를 떠나고 싶지 않다는 이름의 residency였어.
#136최종적으로 31회 공연이 열렸어.
#137특히 첫 9회는 Puerto Rico 주민들이 먼저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됐지.
#138무대에는 Puerto Rican 집을 닮은 "La Casita"가 있었어.
#139그 뒤 외부 관객에게 공연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Puerto Rico로 날아오기 시작했어. 호텔 수요와 지역 소비도 뛰었지. 전체 경제효과를 하나의 정확한 숫자로 단정하긴 어렵지만, 공연 기간 San Juan의 Visa 결제액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20% 증가하는 등 실제 소비 변화는 확인됐어.
#140처음에는 Benito의 음악이 Puerto Rico 밖으로 나가기 위해 친구의 USB와 SoundCloud가 필요했어.
#141이제는 세계의 사람들이 그 음악을 보기 위해 Puerto Rico로 들어오고 있었지.
#142그리고 이어지는 world tour에는 미국 본토 일정이 없었어.
#143Bad Bunny는 미국을 싫어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설명했어. 이미 그곳에서 수없이 공연했지.
#144그가 걱정했다고 밝힌 것 중 하나는 ICE였어.
#145자신의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공연장 주변에서 이민 단속에 노출될 가능성, 그게 마음에 걸렸다는 거야.
#146음악의 언어뿐 아니라 공연을 어디에서 할 것인가까지, 그의 정체성과 정치적 현실에서 완전히 분리하기 어려워진 셈이었지.
#147그렇다고 여기서 Bad Bunny 한 사람이 Spanish 음악의 세계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
#148그가 어린 시절 기다리던 Tego Calderón이 있었지.
#149Daddy Yankee와 "Gasolina"가 있었고.
#150Calle 13과 Residente가 있었어.
#151Bad Bunny가 막 등장하던 시기에는 Luis Fonsi와 Daddy Yankee의 "Despacito", J Balvin의 "Mi Gente"가 세계를 휩쓸었지.
#152무엇보다 음악산업 자체가 바뀌고 있었어.
#153SoundCloud, YouTube, Spotify를 비롯한 streaming은 예전의 radio와 음반 유통이 만들던 국경을 약화시켰어. Bad Bunny는 그 변화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변화가 폭발하던 순간에 등장한 사람이었지.
#154하지만 단순히 파도를 잘 탄 사람이라고 하기에도 그의 규모는 너무 컸어.
#155Spanish-language album으로 미국 전체 album chart 정상에 오르고, 세계 streaming 1위를 반복하고, 영어 앨범으로 crossover하지 않은 채 미국 대중문화의 가장 큰 공간들로 계속 들어갔지.
#156그가 만든 건 길 자체라기보다, 그 길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에 대한 새로운 크기에 가까웠어.
#1572026년 2월 1일.
#158Grammy Awards에서 "DeBÍ TiRAR MáS FOToS"가 Album of the Year로 호명됐어.
#159Spanish-language album으로는 처음이었지.
#160더 이상한 점은 어떤 앨범이 그 기록을 만들었느냐는 거였어.
#161영어권 청중에게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Puerto Rico를 희석한 작품이 아니었어.
#162plena와 salsa, 가족과 이주, 관광과 젠트리피케이션, Puerto Rico의 기억을 깊숙이 집어넣은 앨범이었지.
#163어린 시절 Tego Calderón을 기다리던 소년이 만든 Puerto Rican 앨범이, 미국 Grammy의 가장 큰 상을 받은 거야.
#164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였어.
#1652026년 2월 8일 Super Bowl LX.
#166Bad Bunny의 halftime show는 거대한 미래도시에서 시작하지 않았어.
#167사탕수수밭이었지.
#168주변에는 Puerto Rican 일상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domino와 거리의 상인들이 보였어.
#169San Juan residency의 "La Casita"도 경기장 한가운데 다시 나타났지.
#170그리고 Bad Bunny의 등에 적힌 이름은 BAD BUNNY가 아니었어.
#171OCASIO.
#172어머니 Lysaurie의 성이었지.
#173한때 엄마가 "Tego 듣고 싶으면 일어나"라고 깨워주던 아이가, 세계에서 가장 큰 무대 중 하나에 올라 어머니의 이름을 등에 달고 있었어.
#174공연은 거의 전부 Spanish로 진행됐지.
#175"El Apagón"도 불렀어.
#176Ricky Martin은 "LO QUE LE PASÓ A HAWAii"를 불렀고.
#177Lady Gaga가 등장했을 때도 Bad Bunny가 영어 pop의 세계로 이동한 게 아니었어. Gaga의 "Die With a Smile"이 salsa로 변한 거지.
#178공연의 마지막에 Bad Bunny는 "America"를 United States 하나로 부르지 않았어.
#179Latin America와 Caribbean, United States와 Canada의 여러 나라를 차례로 호명했지.
#180그리고 Puerto Rico를 불렀어.
#181경기장에는 "Together, We Are America"라는 메시지가 나타났지.
#18210년 전에는 상황이 정반대였어.
#183Puerto Rico의 방에서 만든 노래를 SoundCloud에 올렸어.
#184친구가 USB를 들고 DJ를 찾아다녔고.
#185업계에서 전화가 오자 Econo 화장실로 숨어 들어갔지.
#186아무도 모르는 Benito가 세계에 들리려면 계속 밖으로 자신의 음악을 밀어내야 했어.
#187그 뒤 Drake가 Spanish로 노래했고.
#188세계의 팬들이 San Juan으로 날아왔지.
#189Lady Gaga의 노래가 salsa가 됐고.
#190그리고 Super Bowl 경기장 한가운데 Puerto Rican 집과 사탕수수밭이 나타났어.
#191Bad Bunny는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 위해 Puerto Rico를 떠난 적이 없는 사람이 아니야.
#192실제로 떠났고, Los Angeles에서도 살았고, 세계 celebrity 문화의 한가운데로 들어갔어. 유명세 때문에 변했고 팬들과 충돌하기도 했지.
#193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계속 돌아왔어.
#194언어로 돌아왔고,
#195음악으로 돌아왔고,
#196가족 이야기로 돌아왔고,
#197정치적 위기가 생기면 실제 섬으로 돌아왔어.
#198그리고 결국 세계적인 성공의 가장 높은 순간 중 하나에서조차, 그 모든 걸 감출 필요가 없어졌지.
#199Econo에서 전화를 받던 Benito는 화장실 문을 닫아야 했어.
#20010년 뒤 Bad Bunny는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경기장 한가운데 서 있었지.
#201이번에는 Spanish도, Ocasio라는 이름도, Puerto Rico도 숨길 필요가 없었어.
#202그는 여전히 여기 있었지.
#203어린 Benito는 의 노래를 라디오에서 듣기 위해 어머니가 깨워줘야 했다. 그런데 Bad Bunny가 세계적인 스타가 된 뒤에도 그는 Super Bowl 무대에서 자신보다 앞선 Puerto Rican reggaetón의 세대를 다시 불러냈다. 그렇다면 Bad Bunny보다 한 세대 먼저 Afro-Puerto Rican 정체성과 사회적 목소리를 reggaetón 안에 넣었던 Tego Calderón은 어떻게 다음 세대가 걸어갈 길을 만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