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흥행을 함께 바꾼 미국 여자농구 선수
공을 가장 잘 쥔 케이틀린 클라크는 왜 놓는 법을 배워야 했을까
#12024년 여름, 미국 여자농구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2케이틀린 클라크는 NCAA Division I 남녀를 통틀어 통산 최다득점자가 되어 있었어. 3,951점. 아이오와 경기는 TV 시청 기록을 갈아치웠고, WNBA 드래프트에서는 인디애나 피버가 그를 전체 1순위로 뽑았지.
#3그런데 파리 올림픽에 가는 미국 대표팀 명단에는 클라크가 없었어.
#4미국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여자농구 선수가 정작 미국 농구대표팀에는 들어가지 못한 거야.
#5논쟁은 즉시 커졌어. 그렇게 많은 관중을 끌어오는 선수를 왜 뽑지 않았느냐는 사람이 있었고, 세계 최강 미국 대표팀은 인기투표로 구성하는 팀이 아니라는 반론도 나왔어.
#6클라크는 공개적으로 화를 내지 않았어. 뽑힌 선수들을 응원하겠다고 했고, 자신에게는 앞으로의 동기가 될 거라고 말했지.
#7이 반응은 조금 뜻밖이었어.
#8클라크는 원래 기다리는 데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거든.
#9클라크가 다섯 살쯤 농구를 시작했을 때는 또래 여자아이들이 참가할 만한 팀이 마땅하지 않았어. 그래서 남자아이들과 뛰었어.
#10집에서도 경쟁은 일상이었지. 형제와 사촌들이 있었고, 가족은 무엇을 하든 쉽게 양보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어. 울면 특별대우를 받기보다 다시 들어가서 버티는 쪽을 배웠어.
#11농구만 한 것도 아니야. 축구, 소프트볼, 배구, 테니스, 골프까지 여러 종목을 했어.
#12하지만 어떤 운동을 하든 반복되는 특징이 있었어.
#13클라크는 자기가 결과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어.
#14그 믿음은 훗날 하프코트 로고 근처에서 3점슛을 던지는 배짱이 됐어. 동시에 다른 사람이 자기만큼 간절하지 않아 보이면 답답해하는 성격도 만들었지.
#15고등학생이 된 클라크 앞에는 미국 최고의 여자농구 프로그램들이 나타났어.
#16그중에서도 가족이 좋아한 학교가 있었어.
#17노터데임이었어.
#18클라크의 집에는 노터데임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았어. 가족도 그 학교를 좋아했고, 클라크 자신도 어릴 때부터 친숙하게 느끼던 곳이었어.
#19결국 열일곱 살 클라크는 노터데임의 명장 머펫 맥그로에게 전화를 걸어 그곳에 가겠다는 뜻을 전했어.
#20그다음에는 아이오와의 리사 블루더 감독에게 전화해 가지 않겠다고 말했지.
#21끝난 것처럼 보였어.
#22그런데 이상하게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았어.
#23클라크는 자기가 정말 원하는 선택인지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 아이오와도 갑자기 나타난 학교가 아니었거든.
#24아이오와 코치 잰 젠슨은 클라크가 전국적인 스타가 되기 훨씬 전부터 그를 보고 있었어. 아침 6시 30분에 열리는 고등학교 오픈짐을 보기 위해 아이오와시티에서 새벽 4시가 조금 지나 출발할 정도였지.
#25블루더도 알고 있었어.
#26클라크가 원하는 건 단순히 유명한 학교의 유니폼을 입는 일이 아니라는 걸.
#27클라크는 아이오와를 Final Four까지 데려가고 싶다고 말했어. 당시 아이오와는 여자농구의 전통적인 최강자라고 부르기 어려웠고, 마지막 Final Four도 199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어.
#28결국 클라크는 마음을 뒤집었어.
#29먼저 맥그로에게 다시 전화해야 했어.
#30열일곱 살 클라크는 자기 방에서 긴장한 채 전화를 걸었어. 한 번 약속한 결정을 취소해야 했으니까. 맥그로는 이해해줬어.
#31그다음 블루더에게 전화했어.
#32블루더는 남편과 식당 지하의 벽난로 근처에 앉아 있었어. 클라크가 아이오와에 가겠다고 하자 샴페인을 주문했어. 그리고 한 병을 더 주문한 뒤 젠슨의 집으로 갔지.
#33하지만 클라크에게 가장 어려운 대화는 아직 남아 있었어.
#34엄마에게는 말하지 않았거든.
#35가족회의가 열렸어. 부모는 결국 딸이 자기들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자기 미래를 생각하고 있다는 걸 받아들였어.
#36클라크가 처음으로 자기 인생의 큰 결정을 스스로 밀고 간 순간 중 하나였어.
#37그런데 아이오와에 들어간 뒤에는 전혀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어.
#38자기 자신을 믿는 것보다 어려운 문제였지.
#39다른 사람을 믿는 것.
#40클라크는 대학에 와서 오래 벤치에 앉아 기회를 기다린 선수가 아니었어.
#41신입생부터 경기당 26점 넘게 넣었고 7개가 넘는 어시스트를 기록했어. 이미 전국 최고의 선수들과 비교됐지.
#42문제는 재능이 아니었어.
#43클라크는 팀원들이 자기만큼 준비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그들을 믿지 않았어.
#44때로는 동료가 슛을 던질 수 있는 자리에 열려 있어도 공을 주지 않았어. 자기는 매일 그렇게 많은 슛을 던지는데, 왜 그만큼 연습하지 않는 사람에게 중요한 공을 줘야 하느냐는 생각이 있었던 거야.
#45아이러니했어.
#46대학농구 최고의 패서 중 하나가 패스를 너무 잘해서가 아니라, 누구에게 패스할지를 자신이 결정하려는 문제를 안고 있었으니까.
#47갈등은 팀 안에서도 드러났어.
#48신입생 시즌 한 팀 미팅에서는 클라크가 동료들을 믿지 않는다는 데서 생긴 상처가 직접 이야기됐어.
#49그때 케이트 마틴이 나섰어.
#50마틴은 클라크가 쉽지 않은 동료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어. 연습에서는 둘 다 승부욕이 너무 강해서 부딪히기도 했지.
#51그래도 마틴은 중요한 순간이라면 클라크와 같은 편에 서고 싶다는 뜻을 분명하게 전했어.
#52클라크의 문제를 보지 못해서 믿은 게 아니었어.
#53문제를 보고도 그 사람 전체를 믿은 거였어.
#54한 번은 경기가 끝난 뒤 클라크가 라커룸에서 강한 질책을 받았어.
#55밖에서는 버텼어.
#56그런데 엄마 차에 타고 나자 울기 시작했지.
#57클라크는 자기와 다른 사람들의 목표가 서로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취지로 털어놨어.
#58이 말은 클라크가 왜 어려운 동료였는지를 꽤 정확하게 보여줘.
#59자신이 너무 많이 원한다고 느꼈던 거야.
#60더 연습하고 싶고, 더 이기고 싶고, 더 멀리 가고 싶은데,
#61주변 사람이 똑같은 강도로 원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던 거지.
#62리사 블루더는 그 불을 없애려고 하지 않았어.
#63클라크에게 로고에서 슛을 던지지 말라고 가르치지도 않았어. 다른 선수에게 나쁜 슛이 클라크에게는 좋은 슛일 수 있다는 걸 인정했어.
#64블루더의 고민은 다른 데 있었어.
#65이 불을 어떻게 끄지 않고 팀 안에 둘 것인가.
#66클라크가 대학 3학년이던 시절, 블루더와 클라크는 필 잭슨이 마이클 조던을 다루었던 이야기를 함께 들여다봤어.
#67조던 역시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그래서 동료들의 실수와 부족한 준비를 견디기 어려워했던 선수였어.
#68어느 날 클라크가 한 동료가 충분히 체육관에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했어.
#69블루더가 물었어.
#70그럼 네가 같이 연습하자고 불러본 적은 있느냐고.
#71클라크는 없다고 했어.
#72질문은 단순했지만 방향은 완전히 달랐어.
#73리더가 할 일은 가장 열심히 한 뒤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었어.
#74자기가 원하는 곳까지 다른 사람을 데려오는 것도 일이었어.
#75클라크가 갑자기 온화한 사람이 된 건 아니야.
#76여전히 심판에게 화를 냈고, 연습에서 실수하면 표정이 나왔고, 누구보다 지는 걸 싫어했어.
#77달라진 건 자기 감정이 자기 혼자에게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기 시작했다는 거야.
#78자기가 흔들리면 동료도 흔들렸어.
#79자기가 믿어주면 동료의 자신감도 달라졌지.
#80그 변화가 곧바로 우승을 가져온 건 아니었어.
#812022년 아이오와는 NCAA Tournament에서 2번 시드를 받았어. 홈경기였고 기대도 컸지.
#82상대는 10번 시드 크레이턴.
#83아이오와가 유리해 보였어.
#84그런데 64대62로 졌어.
#85클라크는 15점을 넣었고 11개의 어시스트를 했지만 시즌은 2라운드에서 끝났어.
#86이 패배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 그런 단순한 증거는 없거든.
#87다만 아이오와가 그다음 선택한 길은 분명했어.
#88새 팀을 만드는 대신 같은 사람들이 다시 뛰었어.
#89클라크. 모니카 치나노. 케이트 마틴. 개비 마셜. 매케나 워녹.
#90오랫동안 함께 뛴 선수들이 서로의 움직임을 더 잘 알게 됐어.
#91그리고 1년 뒤, 그 시간이 가장 어려운 상대 앞에서 폭발했어.
#922023년 NCAA Final Four.
#93상대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디펜딩 챔피언이었고 시즌 내내 한 번도 지지 않았어.
#9442연승 중이었지.
#95선수들의 크기와 운동능력에서도 아이오와보다 우위였어.
#96클라크가 41점을 넣었어.
#97숫자만 보면 “천재 한 명이 무패 팀을 쓰러뜨렸다”는 이야기가 되기 쉬워.
#98실제 경기는 조금 달랐어.
#99아이오와는 골밑을 막고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외곽슛을 감수하는 수비를 준비했어. 공격에서는 스크린을 이용해 클라크에게 공간을 만들거나, 수비가 클라크에게 몰리면 스크리너가 빠져나갈 길을 열었어.
#100클라크의 말도 안 되는 슛 거리가 상대 수비를 코트 바깥쪽으로 끌어냈고, 그 뒤의 공간을 팀이 함께 사용했어.
#1014쿼터 아이오와가 넣은 18점 가운데 16점을 클라크가 직접 넣었고 나머지 한 골도 클라크의 패스에서 나왔어.
#102아이오와가 이겼어.
#10377대73.
#104클라크가 고등학생 때 말했던 Final Four의 꿈은 이제 결승까지 이어졌어.
#105하지만 전국 우승은 하지 못했어.
#106LSU가 결승에서 아이오와를 102대85로 꺾었지.
#107그날부터 또 다른 일이 시작됐어.
#108경기장 밖의 숫자까지 바뀌기 시작했어.
#1092023년 LSU와 아이오와의 결승에는 평균 약 990만 명이 몰렸어. 당시 여자 대학농구 경기 최고 기록이었어.
#110몇 달 뒤 아이오와는 미식축구장 키닉 스타디움에서 여자농구 시범경기를 열었어.
#11155,646명이 들어왔어.
#112그리고 2024년 NCAA Tournament에서는 기록이 계속 깨졌어.
#113LSU와의 재대결은 1,200만 명대, UConn과의 Final Four는 1,400만 명대, 사우스캐롤라이나와의 결승은 평균 1,890만 명이 봤어.
#114결승 마지막 15분에는 시청자가 2,400만 명을 넘었어.
#115그렇다고 클라크가 여자농구를 혼자 만들어냈다고 말하면 틀려.
#116그보다 먼저 사브리나 이오네스쿠가 오리건에서 만원 관중을 만들었고, 페이지 베커스는 클라크와 같은 신입생 시절 먼저 전국 Player of the Year가 됐어. 사우스캐롤라이나와 UConn에는 이미 거대한 팬층이 있었고, 엔젤 리스와 LSU 역시 2023년 폭발적인 관심의 한 축이었어.
#117WNBA도 클라크가 들어오기 전부터 성장하고 있었지.
#118다만 클라크가 등장하면서 속도가 달라졌어.
#119더 흥미로운 건 아이오와 경기가 아닌 여자농구 경기의 시청률까지 같이 올랐다는 거야.
#120사람들이 클라크만 보고 사라진 게 아니었어.
#121클라크를 보러 들어왔다가 다른 선수와 다른 팀도 보기 시작했어.
#122그래서 “Caitlin Clark effect”를 단순히 클라크 경기의 관중 숫자로만 설명하면 조금 부족해.
#123한 선수에게 몰린 관심이 그 선수가 없는 경기까지 번졌다는 것.
#124그게 더 큰 변화였어.
#1252024년 Final Four에서 아이오와는 UConn을 만났어.
#126UConn의 니카 뮐은 클라크를 경기 내내 거칠게 따라붙었어.
#127전반에 클라크가 던진 3점슛 6개는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어.
#128평소라면 클라크가 해결해야 할 경기처럼 보였지.
#129그런데 이날 아이오와에서 가장 많은 점수를 넣은 선수는 클라크가 아니었어.
#130해나 스튤키였어.
#13123점.
#132UConn 수비가 클라크에게 몰리자 클라크는 스튤키를 찾았어.
#133몇 년 전이었다면 열려 있는 동료를 보고도 그 사람을 충분히 믿지 못해 공을 쥐고 있었을 선수가,
#134자신이 막힌 Final Four에서는 다른 선수가 경기를 이기게 만들고 있었어.
#135아이오와가 이겼어.
#136클라크는 이 무렵 자신을 팀의 emotional leader, 그러니까 팀의 감정적 중심이라고 불렀어.
#137자기의 감정을 동료들이 그대로 탄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지.
#138물론 마지막 결승에서는 다시 졌어.
#139사우스캐롤라이나가 87대75로 이겼고, 클라크는 NCAA 우승 없이 대학을 떠났어.
#140하지만 대학에 처음 들어온 클라크와 떠나는 클라크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하나 있었어.
#141내가 이겨야 한다는 사람에서, 우리가 이길 방법을 찾는 사람으로 조금씩 변하고 있었어.
#1422024년 인디애나 피버는 클라크를 WNBA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뽑았어.
#143그리고 거의 즉시 현실을 보여줬어.
#144피버는 첫 9경기에서 1승 8패를 했어.
#145클라크는 첫 세 경기에서만 턴오버를 21개 기록했어.
#146WNBA 수비수들은 대학 선수보다 크고 빨랐고, 클라크가 스크린을 이용하면 아예 두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어. 시즌 초 첫 20경기 동안 클라크가 픽앤롤에서 두 명의 수비에게 동시에 압박받은 횟수는 89번이었어. 당시 그다음으로 많은 선수의 거의 두 배였지.
#147클라크만 새 팀에 적응하는 것도 아니었어.
#148인디애나 선수들도 클라크에게 적응해야 했어.
#149그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패스를 넣어주자 동료가 받을 준비를 못 한 장면도 있었어. 켈시 미첼이 언제 뒤로 파고들고, 앨리야 보스턴이 어느 순간 골밑에 들어갈지를 클라크가 익히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지.
#150어느 경기에서는 클라크가 판정에 화가 나 계속 심판 쪽으로 가려 했어.
#151그때 보스턴이 클라크의 팔을 잡아 데려갔어.
#152진정하되 공격적인 플레이는 멈추지 말라는 뜻의 이야기를 했어.
#153그냥 너답게 하라고.
#154대학의 케이트 마틴과 묘하게 닮은 장면이었어.
#155더 큰 무대로 갈 때마다 클라크 주변에는 그의 불을 끄는 사람이 아니라, 그 불이 팀을 태우지 않게 붙잡아주는 사람이 나타났어.
#156시즌 후반이 되자 피버는 달라졌어.
#157클라크와 미첼의 호흡이 맞기 시작했고 보스턴과의 연결도 좋아졌어.
#158피버는 20승20패로 시즌을 마치며 2016년 이후 처음 플레이오프에 갔어.
#159클라크는 평균 19.2점, 8.4어시스트, 5.7리바운드를 기록했어. WNBA 단일 시즌 어시스트 기록을 세웠고, 최초의 신인 트리플더블도 기록했어.
#160Rookie of the Year.
#161All-WNBA First Team.
#162프로의 벽을 만나지 않은 게 아니었어.
#163몇 달 동안 그 벽을 사용하는 법을 배운 거였어.
#164그리고 다시 2024 파리 올림픽 이야기로 돌아와.
#165미국 대표팀은 세계에서 들어가기 가장 어려운 농구팀 중 하나야.
#166에이자 윌슨, 브리애나 스튜어트, 다이애나 터라시, 네이피사 콜리어, 첼시 그레이 같은 선수들이 경쟁하고 있었어.
#167대표팀 선발위원회가 보는 것도 TV 시청률이나 유니폼 판매량이 아니었어. 국제대회 경험, 대표팀 시스템에 대한 익숙함, 포지션 구성과 역할이 중요했지.
#168클라크는 2024년 4월 USA Basketball 캠프에 초청받았지만 아이오와가 Final Four에 올라가면서 참가하지 못했어. 성인 국제대회 경험도 없었어.
#169그러니까 “너무 유명해서 질투를 받았다”도 아니고, “농구를 못해서 탈락했다”도 아니야.
#170그 시점의 미국 대표팀은 유명한 선수 12명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장 확신하는 올림픽 로스터 12명을 고른 거였어.
#171클라크는 기다려야 했어.
#172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리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왔어.
#173클라크는 아이오와에서 네 시즌 동안 한 경기도 빠지지 않았어.
#174WNBA 신입생 시즌에도 모든 경기를 뛰었어.
#175몸이 허락하지 않아 코트에 못 들어가는 경험은 거의 없었지.
#1762025년에는 그 전제가 무너졌어.
#177다리와 사타구니 부상이 반복됐고, 7월에는 오른쪽 사타구니까지 다쳤어. 재활 과정에서는 뼈 타박상도 생겼어.
#178시즌 전체에서 뛴 경기는 13경기뿐이었어.
#179복귀를 위해 체육관에서 계속 훈련했지만, 이번에는 “더 열심히 하면 된다”는 방식이 통하지 않았어.
#180의료진의 허가가 필요했어.
#181몸이 준비되어야 했어.
#1829월 결국 시즌에 돌아오지 못한다는 결정이 나왔어.
#183클라크는 실망했다는 말로도 부족하다고 했어.
#184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어.
#185인디애나가 무너지지 않았어.
#186클라크가 없는 편이 더 좋은 팀이었다는 뜻은 아니야. 실제 경기력은 클라크가 뛸 때 더 좋았어.
#187하지만 팀은 스타 한 명이 빠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팀도 아니게 되어 있었어.
#188피버는 플레이오프에 갔고, 10년 만에 플레이오프 시리즈까지 이겼어.
#189클라크는 코트 밖에서 그걸 지켜봤어.
#190그리고 자신이 없어도 동료들이 역경 속에서 버티는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했어.
#191몇 년 전 신입생 클라크는 엄마 차에서 울며 자신과 팀의 목표가 같은지 모르겠다고 했어.
#192이제는 자기가 아예 경기에 들어갈 수 없는 동안,
#193팀이 자기 없이도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어.
#1942026년 3월 11일.
#195푸에르토리코 산후안.
#196클라크가 다시 공식 경기에 들어왔어.
#197마지막으로 WNBA 경기를 뛴 뒤 239일 만이었어.
#198그런데 이 경기는 단순한 부상 복귀전이 아니었어.
#199클라크가 처음으로 미국 성인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치르는 경기였어.
#200상대는 세네갈.
#201클라크는 벤치에서 출발했어.
#202코트에 들어간 뒤 처음부터 자기 슛만 찾지 않았어. 픽앤롤에서 동료에게 공을 넣어주며 공격을 만들었어.
#20319분을 뛰었어.
#20417점.
#205그리고 12어시스트.
#206미국이 110대46으로 이겼어.
#207그 대회 내내 비슷했어.
#208클라크는 다섯 경기 평균 11.6점을 넣었고, 대회 전체에서 가장 많은 평균 6.4어시스트를 기록했어.
#209미국은 5전 전승.
#210클라크는 첫 성인 국제대회에서 Tournament MVP가 됐어.
#2112024년에는 성인 국제 경험이 없다는 것이 대표팀 경쟁에서 약점이었어.
#2122년 뒤에는 첫 성인 국제대회 MVP가 된 거야.
#213클라크 자신도 대표팀에서는 아이오와나 인디애나에서와 달리 언제나 가장 많이 슛을 던지고 가장 많이 득점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
#214팀이 필요한 일을 하면 된다고 했지.
#215그 말을 들으면 대학 신입생 때의 클라크가 떠올라.
#216열려 있는 동료를 보고도,
#217왜 내가 저 선수에게 패스해야 하지?
#218라고 생각하던 선수.
#219그런 선수가 239일을 기다린 뒤 처음 입은 미국 성인대표팀 유니폼에서는 다른 사람의 슛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자기 존재감을 보여줬어.
#220그리고 2026년 9월 4일.
#221이 Story를 쓰는 오늘, 베를린에서 FIBA 여자농구 월드컵이 시작돼.
#222클라크에게는 첫 성인 월드컵이야.
#2232년 전 파리 올림픽 때는 미국 대표팀 명단 밖에서 경기를 바라봐야 했어.
#224이번에는 안에 있어.
#225페이지 베커스도 있고, 엔젤 리스도 있어.
#226한때 NCAA Tournament에서 클라크의 상대편에 서 있던 선수들이 이제 같은 미국 유니폼을 입고 있어.
#227클라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228월드컵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아직 알 수 없어.
#229그래서 “마침내 세계를 정복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빨라.
#230다만 하나는 분명해.
#231어린 시절부터 클라크를 특별하게 만든 건 언제나 공을 손에 쥐었을 때 무엇인가를 직접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었어.
#232그 믿음 덕분에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거리에서 슛을 던졌고, 아이오와가 Final Four에 갈 수 있다고 믿었고, NCAA 기록과 여자농구의 관중 기록을 함께 흔들었어.
#233그런데 더 큰 무대로 갈수록 클라크가 배워야 했던 것은 정반대였어.
#234공을 언제 놓아야 하는가.
#235언제 동료를 믿어야 하는가.
#236언제 다른 사람이 득점하도록 만들어야 하는가.
#237언제 자기가 코트에 없어도 팀을 믿어야 하는가.
#2382024년에는 미국 대표팀이 클라크에게 기다리라고 했어.
#2392년이 지난 지금은 달라.
#240이번에는 명단 밖에서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선수가 아니야.
#241코트 안에서,
#242다음 패스를 어디로 보낼지 선택하는 선수가 됐어.
#243클라크가 대학에 들어온 2020년, 같은 학년에서 먼저 전국 최고의 신입생으로 불린 선수는 였어. 베커스는 신입생 최초로 AP 올해의 선수까지 됐고, 클라크보다 먼저 세대의 얼굴처럼 보였지.
#244그런데 반복된 부상으로 두 사람의 시간이 엇갈렸고, 2024년 Final Four에서는 어느새 클라크가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어.
#245그리고 2026년, 한때 서로 다른 길의 상징처럼 보였던 두 선수는 처음으로 같은 미국 성인대표팀에서 월드컵을 시작했어.
#246처음 세대의 중심에 있었던 페이지 베커스의 길은 왜 클라크와 그렇게 다르게 흘러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