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상징을 할렘과 힙합의 옷으로 바꾼 디자이너
명품 로고로 쫓겨난 대퍼 댄에게, 왜 25년 뒤 구찌가 먼저 찾아왔을까?
#12017년, 구찌 런웨이에 한 재킷이 올라왔어. 짙은 모피 몸판에 풍선처럼 크게 부푼 소매. 그 소매 전체에는 GG 로고가 반복돼 있었지.
#2그걸 본 전직 올림픽 육상선수 다이앤 딕슨은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꺼냈어. 1989년의 자신이었어. 사진 속 딕슨도 거의 같은 구조의 재킷을 입고 있었지.
#3다른 건 로고였어.
#41989년 재킷의 소매를 덮고 있던 건 GG가 아니라 루이비통의 LV였거든.
#5그런데 그 옷은 루이비통 제품이 아니었어. 할렘에서 대퍼 댄이 딕슨을 위해 만든 옷이었지.
#6딕슨이 두 사진을 나란히 공개하며 대퍼 댄에게 제대로 공을 돌리라고 요구했어. 그러자 질문이 아주 묘하게 뒤집혔어.
#7이번에는 구찌가 대퍼 댄을 따라 한 것 아니냐는 거였어.
#8이게 이상했던 데는 이유가 있어. 대퍼 댄은 한때 바로 그런 명품 회사들의 로고를 허락 없이 썼다는 이유로 단속을 받았고, 결국 유명했던 가게까지 잃은 사람이었거든.
#9그런데 25년 뒤에는 명품 회사 쪽이 그의 디자인을 빌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어.
#10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11그 답을 보려면 구찌가 아니라, 대퍼 댄이 어린 시절 신었던 신발 한 켤레부터 봐야 해.
#12대퍼 댄의 본명은 Daniel Day야. 1944년 할렘에서 태어났고, 부모와 일곱 남매까지 아홉 식구가 방 세 개짜리 집에서 살았어. 신발 밑창이 닳으면 안쪽에 종이나 리놀륨 조각을 넣어 신을 만큼 형편이 어려웠지.
#13여덟 살쯤 됐을 때 Daniel이 발이 아프다고 하자 큰형이 Goodwill 중고매장으로 데려갔어. 거기서 Daniel은 정말 마음에 드는 신발 한 켤레를 골랐어.
#14문제는 돈이 없었다는 거야.
#15형은 Daniel에게 낡은 신발을 벗어 매장 선반에 놓으라고 했어. 그리고 마음에 든 신발을 신긴 뒤 그대로 밖으로 나왔지.
#16훗날 대퍼 댄은 그 신발을 살아 있는 것처럼 아꼈다고 회상했어. 발에 신은 것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자기까지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는 거야.
#17자신이 누군가가 된 것 같았어.
#18할렘 거리는 그 감각을 더 크게 보여줬어. Daniel은 열세 살 무렵부터 도박을 하면서 거리에서 돈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을 가까이서 봤지. 캐딜락을 몰고,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잘 맞는 수트를 입은 사람들이었어.
#19그들이 입은 옷은 그냥 멋을 내는 데서 끝나지 않았어. 말을 걸기 전부터 이 사람이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줬거든.
#20그렇다고 Daniel의 삶이 곧바로 패션으로 이어진 건 아니야. 도박도 했고, 신용카드 사기에 손을 댔고, 약물 문제를 겪었고, 감옥에도 갔어. 말콤 X의 말을 듣고 거리의 삶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 시기도 있었어. 도서관에 다니고 글을 쓰려 했고, 아프리카를 여행하기도 했지.
#21그러다 다시 도박으로 돌아왔어.
#221981년 무렵에는 도박으로 번 돈으로 약 4만 달러짜리 Mercedes를 살 정도였어.
#23그런데 어느 순간, 그 생활을 더는 하고 싶지 않아졌어.
#24대신 뭘 할 수 있을까?
#25할렘 사람들이 자기를 알고 있다는 건 분명했어.
#26그래서 옷을 팔기로 했지.
#27처음에는 자동차에서 옷을 팔았어. 그러다 125번가에 Dapper Dan's Boutique를 열었지.
#28처음부터 새로운 패션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야. 다른 옷가게처럼 좋은 옷과 모피를 들여와 팔 생각이었어.
#29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물건을 들여오는 일부터 쉽지 않았어.
#30대퍼 댄은 훗날 자신이 흑인이었고 가게가 할렘에 있다는 이유로 기존 도매 유통망에서 물건을 구하기 어려웠다고 회고했어.
#31그래서 직접 배우기 시작했어. 모피의 종류와 품질을 구분하는 법, 자르는 법, 옷으로 만드는 법을 익혔지.
#32그런데 손님들을 보다 보니 또 하나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어.
#33Gucci. Louis Vuitton. Fendi.
#34이름 자체가 강했어.
#35작은 명품 가방 하나만 들고 있어도 주변의 시선이 달라졌거든. 대퍼 댄이 보기에 사람들은 소재나 기능만 사는 게 아니었어.
#36로고가 보여주는 지위까지 사고 있었어.
#37그런데 이상한 빈칸이 하나 있었어.
#38유럽 명품 회사들은 할렘 사람들이 실제로 입고 싶어 하는 옷에는 그 로고를 쓰지 않았어. 트랙수트도, 거대한 봄버재킷도, 거리에서 입는 넉넉한 실루엣도 아니었지.
#39그래서 대퍼 댄이 그 빈칸을 채우기 시작했어.
#40처음에는 진짜 명품 가방과 제품을 사서 뜯었어. 로고가 찍힌 부분을 잘라 옷에 넣은 거야. 그런데 이 방식은 너무 비쌌고, 재킷 한 벌을 만들 만큼 넓은 소재를 확보하기도 어려웠지.
#41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42또 직접 만들면 됐어.
#43대퍼 댄은 직물 인쇄를 독학했어. 문을 닫은 공장에서 경매로 나온 산업용 장비를 사들이고, 설명서를 읽으면서 기계를 익혔지. 특히 가죽 위에 무늬를 오래 붙게 만드는 일이 어려웠어.
#44실험을 반복한 끝에 넓은 가죽 전체에 반복되는 명품 모노그램을 찍어낼 수 있게 됐어.
#45그러자 작은 가방 위에 있던 로고의 크기가 완전히 달라졌어.
#46재킷. 바지. 모자. 심지어 자동차 내부까지.
#47대퍼 댄은 이런 옷을 단순한 `knockoff`, 그러니까 기존 제품을 그대로 흉내 낸 가짜라고 부르기 싫어했어. 대신 `knock-up`이라는 말을 썼지.
#48상표는 분명 남의 것이었어.
#49하지만 그 상표로 만든 옷은 원래 그 명품 회사에 없는 형태였거든.
#50법적으로는 그 차이가 그를 지켜주지 못했어.
#51그 전에 할렘이 먼저 반응했지.
#52처음에는 거리에서 이름난 사람들이 입었어. 그들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따라 입기 시작했지.
#53그리고 힙합이 커지고 있었어.
#54LL Cool J, Eric B. & Rakim, Salt-N-Pepa, Big Daddy Kane 같은 사람들이 가게를 찾았어. 복서 마이크 타이슨도 고객이 됐고.
#55가게는 결국 24시간 돌아갔어. 대퍼 댄은 매장 뒤에서 잠을 잤지.
#56그가 알아낸 건 단순히 “사람들이 명품을 좋아한다”는 정도가 아니었어.
#57할렘의 고객들은 유럽 명품 회사가 정해준 방식 그대로 입고 싶은 게 아니었어. 자기들이 이미 입던 트랙수트와 봄버재킷, 거리의 실루엣에 그 비싼 상징을 올리고 싶어 했지.
#58대퍼 댄은 그 두 세계를 붙였어.
#59그러다 1988년, 가게 앞에서 사건이 하나 터졌어.
#60마이크 타이슨과 같은 복서 Mitch Green이 새벽에 마주쳤고, 말다툼이 실제 주먹싸움으로 번진 거야. 당시 타이슨은 세계적인 스타였으니 뉴스가 크게 났어.
#61그때 타이슨이 입고 있던 것도 대퍼 댄의 옷이었어.
#62그 싸움 하나 때문에 명품 회사들이 대퍼 댄을 발견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 하지만 그의 옷이 더 이상 할렘 안에만 있지 않았다는 건 분명했지.
#63곧 명품 회사 쪽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왔어.
#64이번에는 옷을 사러 온 게 아니었어.
#65루이비통 측의 단속이 들어왔고, 로고가 들어간 옷들이 압수됐어.
#66대퍼 댄은 다시 만들었지.
#67또 찾아오자 이번에는 물건을 숨겼어. 그의 회고에는 친구가 데려온 핏불 때문에 조사하러 온 사람들이 지하실에 내려가지 않았다는 이야기까지 있어.
#68MCM 관련 단속 뒤에는 더 황당한 기억도 남겼어. 압수해 간 사람들이 근처에서 자기 옷을 서로 나누는 모습을 봤다는 거야.
#69다음번 단속 때는 동네 사람들을 불렀어.
#70가져가라고 했지.
#71압수당하느니 할렘 사람들이 입는 편이 낫다는 거였어.
#72하지만 이 방식으로 계속 버틸 수는 없었어. 한 회사가 아니라 여러 상표권자가 움직였고, 단속이 올 때마다 상품과 돈이 사라졌거든.
#73만들면 가져가고, 다시 만들면 또 가져갔어.
#74대퍼 댄의 표현대로라면 raid가 계속되면서 사업 자체가 가난해지고 있었어.
#75그리고 펜디와의 법적 충돌이 결정적인 타격을 줬어.
#76펜디를 대리하는 법률팀이 대퍼 댄의 사업장에 들어왔어.
#77그중 한 명이 당시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소니아 소토마요르였어. 훗날 미국 연방대법관이 되는 사람이야.
#78가게에는 Big Daddy Kane을 위해 만든 코트가 있었어. 대퍼 댄의 회고에 따르면 소토마요르는 그 코트를 보고 그의 재능을 인정하는 취지의 말을 했어. 이 정도 능력이면 할렘이 아니라 다운타운의 주류 패션계에서 일해야 한다는 식이었지.
#79그런데 그날 진행된 건 스카우트가 아니었어.
#80법적 단속이었어.
#81이번에는 완성된 옷뿐 아니라 생산 장비까지 가져갔지.
#82대퍼 댄에게는 막 들여온 비싼 자수 기계가 있었어. 시험 삼아 처음 새긴 이름은 Robert Day였어.
#83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이름이었지.
#84대퍼 댄의 기억에 따르면 그게 그 기계로 한 첫 작업이었어.
#85그리고 마지막이 됐어.
#86기계가 압수됐거든.
#871992년, Dapper Dan's Boutique는 다시 문을 열지 못했어.
#88한때 수십 명이 일하고 밤낮없이 돌아가던 가게가 사라졌지.
#89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해.
#90대퍼 댄이 만든 옷이 기존 명품 회사 제품과 다른 독창적인 형태였다고 해도, 그가 사용한 등록상표는 자기 것이 아니었어. 창작성이 있었다는 사실과 상표권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동시에 성립하는 거야.
#91그리고 또 하나.
#92대퍼 댄을 직접 폐업시킨 회사가 구찌였던 것도 아니야. 대퍼 댄 자신도 구찌는 자신을 raid하지 않았다고 회고했어. 공개 사업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충돌은 펜디 쪽이었지.
#93그런데 가게가 사라졌다고 대퍼 댄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어.
#94다시 지하 공간으로 내려갔어.
#95옷을 만들고 차에 실었어. 시카고 같은 흑인 인구가 많은 도시들을 돌며 팔았고, 길거리에서 티셔츠를 팔기도 했지.
#96한때 큰 건물에서 수십 명과 일하던 사람이 다시 작은 작업실과 자동차로 돌아간 거야.
#97대퍼 댄은 훗날 한 번 성공했다는 자존심 때문에 작은 일을 못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고 회고했어.
#98그리고 완전히 잊힌 것도 아니었어. 1999년부터는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의 옷을 만들기 시작했지.
#99그런데 대퍼 댄이 지하에서 계속 만들던 시간 동안, 바깥세상에서는 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어.
#100힙합이 세계적인 문화가 됐어.
#101스트리트웨어도 더 이상 럭셔리의 반대편에만 머물지 않았고.
#102나중에는 루이비통과 슈프림이 공식적으로 손을 잡는 일까지 생겼어. 버질 아블로가 루이비통 남성복을 이끄는 시대도 왔지.
#103대퍼 댄이 이 모든 변화를 혼자 만들었다는 뜻은 아니야.
#104다만 한때 그를 패션의 바깥에 두었던 경계가 움직이고 있었던 거야.
#105그의 과거도 2017년에 갑자기 처음 발견된 게 아니었어. 힙합과 스트리트 패션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는 사람들이 늘면서 대퍼 댄의 이름과 옷도 이미 재평가되고 있었지.
#106그러던 때 구찌가 그 재킷을 런웨이에 올렸어.
#107다이앤 딕슨의 1989년 사진이 공개되자 예전 질문이 그대로 돌아왔어.
#108방향만 반대였지.
#109예전에는 사람들이 물었어.
#110대퍼 댄은 왜 명품 회사의 상징을 가져다 쓰는 걸까?
#1112017년에는 이렇게 물었어.
#112구찌는 왜 대퍼 댄의 디자인을 가져다 쓴 걸까?
#113구찌는 문제의 재킷을 대퍼 댄에게 바친 오마주라고 설명했어.
#114그런데 그러면 또 질문이 남았어.
#115오마주라면 왜 처음부터 대퍼 댄의 이름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116그의 과거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묘했어. 할렘의 흑인 디자이너가 유럽 명품의 로고를 사용했을 때는 변호사와 조사관이 찾아왔어. 그런데 세계적인 명품 회사가 할렘 디자이너를 강하게 떠올리게 하는 옷을 내놓자 그건 오마주라고 불렸거든.
#117대퍼 댄이 구찌와 싸울 수도 있었어.
#118그런데 일이 다른 쪽으로 흘렀어.
#119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대퍼 댄에게 연락했어.
#120두 사람은 만났고, 구찌는 단순히 “영감을 받았다”고 인정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어.
#121함께 일하자고 제안했지.
#1222018년 할렘에 새로운 Dapper Dan atelier가 문을 열었어.
#123예전 125번가 가게와 같은 장소는 아니었지만, 생산 방식은 과거와 완전히 달랐어.
#1241980년대 대퍼 댄은 Gucci 로고가 들어간 소재를 정식으로 구할 수 없었어. 그래서 가방을 뜯었고, 그것도 부족해지자 직접 모노그램을 인쇄하는 방법까지 익혔지.
#125이번에는 구찌가 공식 소재를 제공했어.
#126대퍼 댄이 할렘에서 디자인하면 이탈리아의 구찌 생산망이 프린트와 자수, 필요한 소재와 부품을 지원했어.
#127예전에는 허락 없이 사용했던 로고를 이제는 공식 파트너로서 다룰 수 있게 된 거야.
#128협업 제품은 실제 구찌 매장에서 판매됐고, 대퍼 댄은 구찌 광고에도 등장했어.
#129인터넷에서 며칠 시끄럽다가 끝난 관계도 아니었어.
#1302019년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는 대퍼 댄에게 Geoffrey Beene Lifetime Achievement Award를 줬어.
#131옛날에 만든 옷도 다시 찾아지기 시작했지.
#132아들 젤라니 데이는 고객들에게 흩어져 있던 아버지의 작품과 기록을 추적하는 데 참여했어. 예전에는 한 벌 만들면 손님이 입고 나갔고, 일부는 압수됐고, 어떤 옷은 어디 있는지도 몰랐거든.
#133이제는 사람들이 그 옷을 찾아서 기록하고 보존하려 했어.
#134구찌와 손을 잡았다고 대퍼 댄이 회사의 모든 행동을 감싸준 건 아니었어.
#1352019년 구찌가 내놓은 검은색 스웨터가 흑인 분장을 연상시킨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어. 대퍼 댄도 공개적으로 실망을 표시했고, 구찌 경영진이 할렘으로 와 지역사회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해야 한다고 요구했지.
#136CEO Marco Bizzarri가 실제로 할렘으로 왔어.
#137몇십 년 전에는 명품 회사의 변호사와 조사관들이 할렘으로 들어와 대퍼 댄의 물건을 가져갔어.
#138이번에는 명품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할렘으로 들어와 이야기를 들었지.
#139다른 회사와의 협업에서는 더 눈에 보이는 변화도 생겼어.
#140Gap의 익숙한 세 글자가 바뀌었거든.
#141GAP이 아니라,
#142DAP.
#143예전에는 대퍼 댄이 다른 회사의 이름을 자기 옷에 올렸어.
#144이번에는 거대한 회사가 자기 로고를 대퍼 댄의 이름으로 바꿨어.
#145그래도 아직 하나가 남아 있었어.
#146대퍼 댄 자신의 로고.
#1472025년, 여든 살의 대퍼 댄이 Met Gala에 나타났어.
#148그해 Metropolitan Museum of Art에서는 흑인들이 옷과 스타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해온 역사를 다룬 "Superfine: Tailoring Black Style" 전시가 열렸어.
#149전시장에는 대퍼 댄이 1987년에 만든 옷도 들어가 있었지.
#150한때 압수 대상이던 종류의 옷이 이제는 박물관 안에서 패션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었어.
#151그리고 그날 대퍼 댄 자신이 입은 옷에도 로고가 있었어.
#152서로 마주 보는 두 개의 D.
#153합치면 하트처럼 보이는, 자기 이름의 문장이었어.
#154젊은 시절 그는 LV를 가져왔어. GG를 가져왔어. Fendi의 F를 가져왔지.
#155그 상징들을 할렘 사람들이 입고 싶어 하는 옷으로 바꿨어.
#156그 때문에 가게도 잃었어.
#157수십 년 뒤에는 명품 회사가 정식 소재를 들고 할렘으로 찾아왔고.
#158그리고 여든 살이 된 대퍼 댄의 가슴에 남아 있던 건 더 이상 남의 이름이 아니었어.
#159D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