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타에서 MLS 구단주와 세계적인 스포츠 아이콘으로 역할을 넓힌 잉글랜드 축구선수
축구 변방으로 떠난 베컴은 어떻게 메시를 맞이하는 구단주가 됐을까
#12007년 1월, 데이비드 베컴이 LA 갤럭시로 간다고 발표했어.
#2당시 베컴은 31살이었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고 있었어. 유럽 최고의 무대를 떠나 아직 세계 축구의 중심이라고 부르기 어려웠던 미국 MLS로 간다는 선택이었지. 그래서 사람들 눈에는 꽤 뻔하게 보였어. 세계적인 스타가 이제 커리어의 마지막에 들어가는구나.
#3그런데 그 계약에는 이상한 권리가 하나 들어 있었어.
#4선수 생활을 마친 뒤 MLS의 확장구단을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권리였어. 베컴과 그의 오랜 비즈니스 파트너 사이먼 풀러가 협상한 조건이었지. 훗날 알려진 행사 가격은 약 2,500만 달러였어.
#5그때 더 크게 떠들썩했던 숫자는 따로 있었어. 베컴의 광고와 상업적 수입까지 합쳐 최대 2억5천만 달러 규모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지.
#6그런데 시간이 아주 오래 흐른 뒤에는 오히려 작은 쪽 숫자가 더 흥미로워져.
#72023년, 리오넬 메시가 미국으로 왔어.
#8그가 선택한 팀은 LA 갤럭시가 아니었어.
#9베컴이 공동 소유한 인터 마이애미였어.
#1016년 전에는 베컴 자신이 유럽을 떠나 MLS로 들어온 세계적인 스타였는데, 이제는 또 다른 세계적인 스타가 들어오는 팀의 구단주 쪽에 서 있게 된 거야.
#11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2그 답을 찾으려면 미국이 아니라, 베컴이 아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는 것밖에는 별로 생각하지 않던 어린 시절까지 돌아가야 해.
#13베컴은 런던 동쪽에서 자랐지만 집안의 축구팀은 처음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어.
#14아버지 테드는 열성적인 맨유 팬이었고 어린 아들을 올드 트래퍼드에도 데려갔어. 베컴이 나중에 어린 시절 꿈을 이야기할 때도 답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고, 그중에서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싶었어.
#15그렇다고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이 아이를 미래의 세계적인 스타로 본 건 아니야.
#16베컴은 체격이 작고 성장도 늦은 편이었어. England Schoolboys에 뽑히지 못했던 경험도 오래 기억했지.
#17대신 아주 일찍부터 이상할 정도로 반복하는 습관이 있었어.
#18아버지와 공을 차고, 또 차고, 다시 차는 거야. 맨유에 들어간 뒤에도 그 습관은 계속됐어. 훈련장에서는 골대 위쪽에 낡은 타이어를 매달아 놓고 먼 거리에서 공을 그 구멍으로 보내는 연습을 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어.
#19들어가면 끝이 아니었어.
#20이번에는 타이어 가장자리를 건드리지 않고 통과시키려고 했어.
#21조금 더 멀리 가서 또 찼고.
#22또 찼어.
#23나중에 사람들이 '베컴의 오른발'이라고 부르게 될 기술은 그렇게 꽤 지루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었어.
#24맨유 유소년팀에서 베컴은 게리 네빌, 라이언 긱스, 니키 버트 같은 선수들과 자랐어. 뒤이어 폴 스콜스와 필 네빌까지 1군에 자리 잡으면서 이 세대는 훗날 "Class of '92"라고 불리게 돼.
#25여기서 알렉스 퍼거슨만 기억하면 한 사람이 빠져.
#26어린 선수들을 매일 직접 다듬은 유소년 코치 에릭 해리슨이야. 해리슨은 이들을 특별한 스타처럼 대하기보다 팀을 위해 뛰고 훈련하는 선수로 키웠고, 퍼거슨은 그 젊은 선수들이 1군에서 실제로 뛸 길을 열어줬어.
#27베컴은 그 기회를 잡았어.
#28그의 플레이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화려한 윙어와는 조금 달랐어. 수비수 여러 명을 드리블로 지나가는 선수가 아니었고, 폭발적인 스피드로 상대를 따돌리는 타입도 아니었어.
#29대신 공을 보내는 위치가 무서웠어.
#30오른쪽에서 올리는 크로스, 긴 패스, 세트피스, 프리킥. 그리고 사람들이 화려한 킥 때문에 놓치기 쉬웠던 활동량과 수비 가담까지 있었어. 뒤에서 올라오는 게리 네빌과의 호흡도 맨유 오른쪽 공격의 중요한 무기였지.
#311998-99 시즌이 끝났을 때 베컴은 UEFA Club Footballer of the Year에 뽑혔고, 1999년 Ballon d'Or 투표에서는 히바우두에 이어 2위에 올랐어.
#32그러니까 나중에 패션과 광고로 너무 유명해져서 종종 잊히지만 순서는 분명해.
#33David Beckham이라는 세계적인 브랜드보다 먼저, 세계 정상급 축구선수 David Beckham이 있었어.
#34그런데 그 평가가 정점으로 올라가기 바로 전해, 사람들은 그의 축구보다 완전히 다른 한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어.
#351998년 프랑스 월드컵.
#36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16강전에서 베컴은 디에고 시메오네와 부딪혔어. 시메오네가 그를 넘어뜨리고 도발했고, 바닥에 있던 베컴이 다리를 뻗어 상대를 걷어찼어.
#37심판은 레드카드를 꺼냈어.
#38잉글랜드는 열 명으로 남았고 결국 승부차기에서 탈락했어.
#39그 순간부터 복잡한 경기 하나가 아주 간단한 이야기로 바뀌었어.
#40베컴 때문에 잉글랜드가 졌다.
#41영국으로 돌아오자 비난은 경기 평가 수준을 넘어갔어. 그의 인형이 목매달렸고, 거리와 경기장에서 욕설이 이어졌고, 살해 협박까지 받았어. 당시 빅토리아는 첫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어.
#42베컴은 겨우 23살이었어.
#43며칠 전 콜롬비아전에서 멋진 프리킥으로 월드컵 첫 골을 넣었던 일 같은 건 거의 기억되지 않았어.
#44한 번의 반응이 그 사람 전체를 덮어버린 거야.
#45그런데 베컴에게 돌아갈 곳이 하나 있었어.
#46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어.
#47퍼거슨과 맨유는 월드컵에서 돌아온 베컴을 내치지 않았어.
#48그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이미지 회복 프로젝트보다 다시 훈련하고 경기에 나가는 일이었어.
#49문제는 원정 경기장에 가도 욕설이 따라왔다는 거야.
#50그래도 시즌은 계속됐어.
#51그리고 맨유는 이상할 만큼 거대한 시즌을 만들기 시작했어.
#52Premier League 우승.
#53FA Cup 우승.
#54마지막 하나는 Champions League였어.
#551999년 바이에른 뮌헨과의 결승에서는 로이 킨과 폴 스콜스가 징계로 빠져 있었기 때문에 베컴이 평소와 달리 중앙 미드필드에서 뛰어야 했어. 맨유는 경기 막판까지 0-1로 지고 있었지.
#56추가시간에 베컴이 코너킥을 올렸어.
#57혼전 끝에 테디 셰링엄이 동점골을 넣었어.
#58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코너킥.
#59이번에도 베컴이 찼고, 셰링엄의 머리를 거친 공을 올레 군나르 솔샤르가 넣었어.
#602-1.
#61맨유의 Treble이 완성됐어.
#62이 우승 하나로 1998년의 증오가 갑자기 사라진 건 아니야.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해졌어.
#63월드컵의 그 한 장면이 베컴의 축구 인생을 끝내지는 못했어.
#64그리고 3년 뒤, 잉글랜드 유니폼을 입은 베컴에게 거의 정반대의 순간이 찾아와.
#652001년 10월, 잉글랜드는 그리스와 월드컵 예선을 치르고 있었어.
#66무승부만 하면 2002 월드컵에 자동 진출할 수 있었는데 경기는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어. 정규시간이 끝날 무렵 스코어는 1-2.
#67잉글랜드가 지고 있었어.
#68그때 베컴은 이제 1998년의 문제 많은 젊은 선수가 아니었어.
#69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이었어.
#70추가시간, 페널티박스 바깥에서 프리킥이 주어졌어.
#71베컴이 공 앞에 섰어.
#72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많이 해봤을지 셀 수도 없는 동작이었어.
#73공을 놓고.
#74거리를 보고.
#75오른발로 찼어.
#76공은 수비벽을 넘어 골문으로 휘어 들어갔어.
#772-2.
#78잉글랜드가 월드컵으로 갔어.
#79이 한 골이 영국 전체의 기억을 마법처럼 지웠다고 말하면 너무 간단해. 베컴의 평판은 이미 맨유에서의 활약과 대표팀 주장 생활을 거치며 조금씩 변하고 있었어.
#80하지만 대비만큼은 피하기 어려웠어.
#811998년에는 순간적인 발길질 하나로 팀을 열 명으로 만든 선수였는데, 2001년에는 팀의 마지막 킥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 있었으니까.
#82이쯤 되면 어린 베컴의 꿈은 거의 완성된 것처럼 보여.
#83맨유의 스타.
#84Treble 우승.
#85잉글랜드 주장.
#86세계 최고의 선수 후보.
#87그런데 정작 그가 평생 뛰고 싶어 했던 클럽과의 관계는 여기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해.
#88베컴의 삶에는 축구장 밖에서 점점 더 커지는 세계가 있었어.
#89빅토리아 애덤스와 만나고 1999년 결혼하면서 두 사람은 영국에서 그냥 유명한 부부가 아니게 됐어. 언론은 아예 둘을 한 단어처럼 "Posh and Becks"라고 불렀어.
#90베컴의 헤어스타일이 뉴스가 됐고 옷이 뉴스가 됐고 광고가 뉴스가 됐어.
#91퍼거슨은 이 변화를 경계했어.
#92젊은 시절 베컴이 얼마나 훈련에 집착하는 선수인지 직접 봤던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한 선수의 셀러브리티가 팀보다 커지는 상황을 좋아하지 않았어.
#93반대로 베컴은 축구와 유명세 가운데 하나를 버릴 생각이 없어 보였어. 훈련도 했고, 광고도 했고, 패션도 즐겼어.
#942003년에는 빅토리아와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던 사이먼 풀러가 베컴의 상업 활동에 깊게 들어오기 시작했어. 이제 Beckham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축구선수의 성이 아니라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광고와 사업으로 확장할 수 있는 이름이 되어가고 있었지.
#95그리고 그해 2월, 퍼거슨과 베컴의 갈등을 상징하는 사건이 터졌어.
#96아스널전 패배 뒤 맨유 탈의실에서 화가 난 퍼거슨이 축구화를 걷어찼고, 그 축구화가 베컴의 눈 위를 맞혔어.
#97유명한 'flying boot' 사건이야.
#98물론 축구화 하나 때문에 둘의 관계가 무너진 건 아니야. 축구적 판단과 팀의 통제, 베컴을 둘러싼 엄청난 유명세, 이미 쌓여 있던 개인적인 긴장이 함께 있었어.
#99중요한 건 베컴이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맨유를 스스로 지겨워해서 떠난 게 아니라는 거야.
#1002003년 여름, 맨유는 그를 보내기로 했어.
#101베컴은 레알 마드리드로 갔어.
#102자신이 가장 원했던 자리를 얻었던 사람이, 결국 그 자리에서 밀려난 거야.
#103레알 마드리드는 당시 세계적인 스타들을 한 팀에 모으고 있었어.
#104지네딘 지단.
#105호나우두.
#106루이스 피구.
#107호베르투 카를루스.
#108그리고 베컴.
#109여기서는 맨유 말기와 조금 다른 일이 벌어졌어.
#110베컴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이 꼭 골칫거리만은 아니었어. 레알의 Galácticos 프로젝트에서는 축구 실력과 세계적인 스타 파워가 동시에 가치가 있었거든.
#111특히 아시아에서 베컴을 향한 관심은 엄청났어.
#112이제 축구선수 Beckham과 브랜드 Beckham은 서로를 방해하기만 하는 두 존재가 아니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어.
#113그렇다고 레알 생활이 완벽했던 건 아니야.
#114첫 세 시즌 동안 리그 우승을 하지 못했고 감독도 계속 바뀌었어.
#115그리고 2007년 베컴이 LA 갤럭시행을 발표하자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그를 앞으로 팀에서 쓰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어.
#116또 밀려난 거야.
#117베컴은 그냥 훈련했어.
#118결국 카펠로는 생각을 바꿨어. 베컴은 다시 출전했고, 레알은 마지막까지 이어진 우승 경쟁 끝에 2006-07 La Liga 챔피언이 됐어.
#119베컴은 스페인 리그 우승을 하고 미국으로 떠났어.
#120적어도 경기장에서 완전히 끝난 선수가 MLS로 간 건 아니었던 거야.
#121베컴의 LA 도착은 거대한 이벤트였어.
#122MLS는 그 같은 고액 스타를 영입할 수 있도록 Designated Player Rule을 도입했고, 이 제도는 아예 "Beckham Rule"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됐어.
#123관심은 즉시 왔어.
#124경기장에 유명인들이 나타났고 유니폼이 팔렸고, 베컴이 원정 경기를 가는 도시마다 평소보다 훨씬 큰 관심이 따라왔어.
#125그런데 축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어.
#126부상 때문에 첫 시즌에는 제대로 뛰지도 못했어.
#127LA 갤럭시는 2007년 플레이오프에 못 갔고 2008년에도 실패했어.
#128그러다 베컴이 AC 밀란으로 임대를 가면서 또 다른 문제가 터졌어.
#129유럽에서 뛰며 잉글랜드 대표팀 경력을 이어가고 싶었던 베컴과, LA 갤럭시에 대한 헌신을 중요하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충돌한 거야.
#130팀 동료 랜던 도너번은 베컴의 헌신과 리더십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어.
#131세계적인 슈퍼스타라는 이름이 이번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어.
#132같은 라커룸에 있는 동료에게는 "그래서 당신이 우리 팀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133베컴이 LA로 돌아온 뒤 두 사람은 직접 만났어. 브루스 아레나 감독도 함께했고, 공개적으로 커졌던 갈등을 대화로 정리했어.
#134그리고 갤럭시의 축구도 달라지기 시작했어.
#1352009년 MLS Cup 결승에 올랐고, 2011년에는 우승했어.
#1362012년에도 다시 MLS Cup을 들어 올렸어.
#137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브랜드가 먼저 화제를 만들었지만, 떠날 때는 경기장에서 얻은 트로피도 있었어.
#138그런데 베컴의 LA 계약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것은 우승 트로피조차 아니었어.
#139계약서 안에 있던 그 권리였어.
#140베컴이 미국으로 갈 때 세상을 놀라게 한 숫자는 '2억5천만 달러'였어.
#141하지만 그건 갤럭시가 지급하는 단순 연봉이 아니었어. 기존 광고와 앞으로 생길 수 있는 상업적 수익까지 포함한 거대한 추정 패키지에 가까웠지.
#142시간이 지나면서 더 재미있어진 숫자는 약 2,500만 달러였어.
#143베컴과 사이먼 풀러가 2007년 협상에서 확보한 MLS 확장구단 관련 권리의 행사 가격이야.
#144그렇다고 베컴이 2,500만 달러를 내고 지금의 인터 마이애미 전체를 샀다는 뜻은 아니야.
#145그 돈은 새로운 MLS 구단을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진입권에 가까웠어. 실제 클럽을 만들려면 투자자도 필요했고, 경기장도 필요했고, 토지도 필요했고, 운영비도 필요했어.
#146그리고 그 과정은 베컴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어.
#1472013년 선수 생활을 마친 베컴은 이듬해 마이애미에 MLS 팀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어.
#148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선수 중 한 명이었으니 금방 될 것 같잖아.
#149안 됐어.
#150마이애미 프로젝트는 계속 경기장 문제에 부딪혔어.
#151워터프런트 부지가 막혔고.
#152다른 장소를 찾았고.
#153그곳에서도 문제가 생겼고.
#154토지와 지역 정치, 소송과 투자 문제가 이어졌어.
#1552007년에 미국으로 온 베컴이 2014년에 팀 창설 계획을 발표했지만, 그 팀은 2015년에도, 2016년에도 MLS 경기를 하지 못했어.
#156유명세가 문을 열 수는 있어도 도시 한복판에 경기장을 만들어주지는 않았던 거야.
#157이 과정에서 베컴 혼자 모든 것을 해결했다는 이야기도 사실과 멀어져.
#158호르헤 마스와 호세 마스 같은 새로운 파트너들이 합류했고, 투자 그룹의 힘과 지역 사업 경험이 더해졌어.
#1592018년에야 MLS가 마이애미 확장팀을 공식 승인했어.
#1602020년, 인터 마이애미가 마침내 첫 시즌을 시작했어.
#1612007년 LA 갤럭시에 선수로 들어온 뒤 13년이 지난 시점이었어.
#162이제 베컴은 다른 사람이 만든 팀에서 뛰는 선수가 아니었어.
#163자신이 공동 소유한 팀에서 감독과 선수를 선택하는 쪽에 서 있었어.
#164그런데 역할이 커졌다고 판단까지 전부 맞아지는 건 아니었어.
#165베컴은 인터 마이애미 감독으로 필 네빌을 데려왔어.
#166둘은 맨유 유소년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어.
#167Class of '92에서 함께 자란 동료가 수십 년 뒤에는 베컴이 공동 소유한 미국 클럽의 감독이 된 거야.
#168시간만 놓고 보면 굉장히 근사한 장면이야.
#169하지만 결과는 그렇게 근사하지 않았어.
#170인터 마이애미는 기대한 만큼 강해지지 못했고, 2023년 네빌은 감독 자리에서 경질됐어.
#171이 장면은 베컴의 긴 커리어를 볼 때 꽤 중요해.
#172나중의 성공을 알고 과거를 보면 모든 선택이 마치 미래를 정확히 읽은 계산처럼 보이기 쉬워.
#173실제로는 아니었어.
#1741998년에는 정말 실수했고.
#175LA에서는 헌신을 의심받았고.
#176마이애미에서는 경기장 계획이 몇 년씩 막혔고.
#177구단주가 된 뒤에도 감독 선택이 실패했어.
#178베컴이 미래를 전부 알고 움직였던 게 아니야.
#179그런데 2023년, 인터 마이애미 프로젝트의 크기를 완전히 바꿔놓는 선수가 나타났어.
#180리오넬 메시가 파리 생제르맹을 떠나기로 했을 때 선택지에는 유럽 복귀와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미국이 있었어.
#181결국 메시가 선택한 곳은 인터 마이애미였어.
#182이걸 '베컴이 메시를 데려왔다'는 한 문장으로 줄이면 멋있기는 해.
#183하지만 실제 이야기는 더 복잡해.
#184베컴은 세계적인 선수 생활을 직접 경험한 구단주였고, 축구계에서 가진 이름과 네트워크가 있었어.
#185동시에 호르헤 마스는 수년 동안 메시 영입 가능성을 추진했고 실제 사업과 협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어.
#186MLS의 독특한 계약 구조도 풀어야 했고, 미국 축구의 방송과 상업 파트너들까지 메시가 만들어낼 거대한 시장 변화와 연결돼 있었어.
#187그러니까 이건 한 사람의 전화 한 통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야.
#188그럼에도 베컴의 위치는 묘했어.
#1892007년, 사람들이 "왜 저 선수가 미국으로 가지?"라고 물었던 바로 그 선수가 16년 뒤에는 메시가 미국으로 들어올 때 그를 맞는 클럽의 공동 구단주가 되어 있었으니까.
#190그리고 이번에는 축구적 효과도 아주 빨랐어.
#191메시는 데뷔전부터 추가시간 프리킥 결승골을 넣었고, 인터 마이애미는 2023 Leagues Cup에서 창단 첫 트로피를 들어 올렸어.
#1922024년에는 Supporters' Shield를 차지했고.
#1932025년에는 마침내 MLS Cup까지 우승했어.
#1942007년 베컴의 미국행에서 시작된 두 번째 커리어가, 이제 실제 우승팀의 형태까지 갖추게 된 거야.
#195그런데 베컴의 위치가 얼마나 멀리 바뀌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은 축구장 밖에도 있어.
#1962025년, 그는 축구와 자선활동에 대한 공로로 기사작위를 받았어.
#197윈저성에서 찰스 3세에게 작위를 받은 사람의 이름은 이제 Sir David Beckham이 됐어.
#19827년 전을 떠올리면 이상한 장면이야.
#1991998년에는 잉글랜드가 월드컵에서 탈락하자 베컴의 인형이 목매달렸어. 살해 협박을 받고 나라를 망친 선수처럼 취급됐지.
#200그런데 같은 나라에서 훗날 기사작위를 받은 거야.
#201물론 기사작위가 1998년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용서'는 아니야. 그 사이의 긴 축구 경력과 자선활동까지 포함한 훨씬 넓은 평가였어.
#202그래도 한 사회 안에서 한 사람의 위치가 얼마나 크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이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도 드물어.
#203그리고 2026년 6월에는 또 하나의 별이 생겼어.
#204이번에는 축구 경기장이 아니었어.
#205Hollywood Boulevard였어.
#2062026년 6월 12일, 데이비드 베컴은 Hollywood Walk of Fame에 자신의 별을 받았어.
#207분야는 Sports Entertainment.
#208그 자리에 빅토리아도 함께 있었어.
#209이 장면은 꽤 이상한 방식으로 20여 년 전을 되돌려 보여줘.
#210맨유 말기에는 베컴의 셀러브리티성이 축구선수에게 너무 커진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어. 퍼거슨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과정에서도 그 문제는 계속 따라다녔지.
#211그런데 이제는 바로 그 축구와 대중문화의 경계를 넘나든 삶 때문에 할리우드에 이름이 남은 거야.
#212그렇다고 베컴의 이야기가 "축구를 버리고 브랜드가 된 사람"의 이야기는 아니야.
#213오히려 반대에 가까워.
#214어린 시절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직접 뛰는 것만이 축구라고 생각했을 거야.
#215그 꿈을 이뤘고.
#216그 자리에서 밀려났고.
#217다른 나라로 갔고.
#218유럽을 떠났고.
#219선수 생활마저 끝났어.
#220그런데 축구와의 관계는 끝날 때마다 다른 모양으로 다시 나타났어.
#221맨유의 소년은 맨유 선수가 됐고.
#222잉글랜드의 악당은 잉글랜드 주장이 됐고.
#223유럽을 떠난 스타는 MLS 선수가 됐고.
#224은퇴한 선수는 MLS 구단의 공동 소유주가 됐어.
#225그리고 한때 자신이 미국으로 들어오며 만들었던 충격을, 16년 뒤에는 메시가 자기 팀으로 들어오는 장면에서 반대편에 서서 바라보게 됐어.
#2262007년 LA행을 발표했을 때만 보면 베컴은 축구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227길게 놓고 보면 조금 다르게 보여.
#228그는 자신이 처음 꿈꿨던 '축구선수'라는 한 자리에서는 계속 멀어졌는데, 이상하게도 그럴 때마다 축구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더 커지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