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택연금과 출판 금지 속에서도 마지막 대작을 세상 밖으로 보낸 과학자
교황과 친했던 갈릴레오는 왜 종교재판의 피고인이 됐을까?
#11632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세 사람이 우주를 놓고 토론하는 책을 냈어. 제목은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였지.
#2살비아티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를 옹호했고, 사그레도는 양쪽 이야기를 들었어. 심플리치오는 지구가 움직이지 않고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전통적인 우주관을 지켰고.
#3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토론이 그다지 팽팽하지 않아. 갈릴레오가 힘을 싣는 논증은 주로 살비아티에게 가고, 심플리치오는 자꾸 밀리거든.
#4그러다 마지막에 특별한 주장이 하나 나와. 인간이 어떤 자연현상의 원인을 알아냈다고 해도, 전능한 신에게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야. 인간이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도 같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거지.
#5이 생각을 중요하게 여긴 사람은 교황 우르바누스 8세였어. 갈릴레오에게 책에 꼭 넣으라고 했던 주장이기도 했고.
#6갈릴레오는 넣었어. 그런데 그 말을 심플리치오에게 시켰지.
#7그렇다고 심플리치오가 교황을 직접 풍자한 인물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 다만 교황이 중요하게 여긴 논증이, 책에서 계속 수세에 몰리던 인물의 입에서 나온 건 사실이야.
#8더 묘한 건 갈릴레오와 교황의 관계였어. 둘은 원래 적이 아니었거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였지.
#9그런데 어떻게 갈릴레오는 그 교황의 시대에 종교재판 피고인이 된 걸까?
#10사실 갈릴레오는 위험선이 어디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어.
#111616년, 그는 태양이 중심에 있고 지구가 움직인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를 물리적 사실로 유지하거나 옹호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받은 적이 있었거든.
#12그러다 1623년 상황이 달라지는 것처럼 보였어. 갈릴레오를 오래전부터 높이 평가했던 마페오 바르베리니가 교황이 된 거야. 새 이름은 우르바누스 8세였지.
#13갈릴레오는 이듬해 로마로 갔고, 새 교황을 무려 여섯 번이나 만났어. 1616년 이후 닫혀 있던 문이 다시 조금 열린 것처럼 느낄 만한 상황이었지.
#14하지만 완전히 열린 건 아니었어.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를 하나의 수학적 가설로 놓고 다른 우주관과 비교하는 건 가능했어. 그렇다고 지구가 실제로 움직인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말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지.
#15갈릴레오는 그 차이를 알고 있었어.
#16그리고 그 좁은 경계 안에서 끝까지 밀고 들어갔어.
#17"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는 몰래 찍은 책이 아니야. 검열과 출판 허가 절차를 거쳤고, 우르바누스 8세가 요구한 주장도 들어갔어.
#18문제는 책 전체의 방향이었지.
#19갈릴레오는 특히 바닷물의 밀물과 썰물을 중요하게 봤어. 그는 지구가 움직이기 때문에 바닷물이 이런 움직임을 보인다고 생각했고, 조수가 지구의 운동을 보여주는 물리적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믿었어.
#20오늘날에는 그 설명이 틀렸다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갈릴레오에게 조수는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었어.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를 계산상의 가설에서 실제 우주의 모습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 증거였거든.
#21그래서 책의 마지막 날에 이 논증을 강하게 밀어붙였어. 그리고 그 뒤에 교황이 강조했던 주장을 심플리치오에게 맡겼지.
#22책은 1632년 2월에 나왔어. 허가받은 책이었어.
#23그런데 몇 달 만에 상황이 뒤집혔지. 로마에서 책의 유통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고, 10월에는 갈릴레오에게 로마 종교재판소로 나오라는 명령이 떨어졌어.
#24건강이 좋지 않았던 갈릴레오는 출발을 미루려고 했어. 하지만 이번에는 교황의 태도도 달랐지. 정말 여행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픈지 의사에게 확인시키고, 움직일 수 있다면 로마로 보내라는 강한 지시까지 나왔거든.
#25몇 년 전에는 교황을 만나러 로마에 갔던 사람이었어.
#26이번에는 피고인으로 가야 했지.
#27그리고 재판이 시작되자 17년 전의 문서가 다시 나타났어.
#281633년 재판에서 문제가 된 1616년 기록에는, 갈릴레오가 알고 있던 경고보다 더 강한 내용이 적혀 있었어.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어떤 방식으로도 유지하거나 가르치거나 옹호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지.
#29이 강한 명령이 정확히 어떤 지위를 가졌는지, 갈릴레오에게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전달됐는지는 훗날까지 논쟁거리가 됐어.
#30하지만 1633년 재판에서는 상황을 훨씬 어렵게 만들었지.
#31교황을 불쾌하게 만든 책을 썼다는 것과, 17년 전에 받은 명령을 어기고 책을 냈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니까.
#32당시 유럽의 분위기도 예전과 달랐어. 30년 전쟁이 한창이었고, 가톨릭교회는 종교개혁에 대응해 교리와 통제를 강화하던 반종교개혁의 긴장 속에 있었어. 우르바누스 8세 자신도 정치적인 압력을 받고 있었고.
#33그러니까 갈릴레오의 재판을 "교황이 화가 나서 친구를 처벌했다"는 이야기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어. 두 사람의 관계가 무너진 일, 1616년 문서, 책의 내용, 출판 허가 문제, 당시의 정치와 종교 상황이 겹쳐 있었던 거야.
#341633년 6월 22일, 갈릴레오는 "이단 혐의가 매우 강한" 사람이라는 판결을 받았어. 자신의 견해도 철회해야 했고.
#35여기서 유명한 전설 하나가 따라붙어. 갈릴레오가 판결을 받은 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야.
#36하지만 그 자리에서 정말 그렇게 말했다는 믿을 만한 동시대 증거는 없어.
#37실제로 그에게 돌아온 건 더 조용한 처벌이었어.
#38가택연금이었지.
#39재판이 끝난 뒤 갈릴레오는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어. 한동안 시에나에서 대주교 아스카니오 피콜로미니와 지냈지.
#40그런데 거기서 벌써 연구를 다시 시작했어. 이번에는 우주의 구조가 아니라 물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관한 문제였어. 친구 마리오 귀두치도 코페르니쿠스 문제 말고 "다른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좋겠다고 격려했고.
#41그해 12월, 갈릴레오는 피렌체 근교 아르체트리의 빌라 일 조이엘로로 돌아왔어.
#42이 집을 찾는 데 도움을 준 사람이 있었어. 갈릴레오의 딸 비르지니아, 수도원에 들어간 뒤에는 마리아 첼레스테라고 불리던 딸이었지.
#43마리아 첼레스테는 아버지가 자기 수도원 가까이에서 살 수 있도록 집을 알아봤어. 서로 가까이 지내기 위해 고른 곳이었던 셈이야.
#44그런데 그 집이 이제 아버지의 감옥이 됐어.
#45갈릴레오는 과학 이야기를 나눌 방문객도 자유롭게 만날 수 없었어. 몸이 아파 피렌체에서 치료받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허락되지 않았고, 같은 요청을 계속하면 더 엄한 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까지 받았지.
#46그리고 1634년 4월 2일, 마리아 첼레스테가 죽었어. 서른세 살이었어.
#47재판 중에도 아버지를 걱정하며 편지를 보내고, 돌아와 살 집까지 찾아줬던 딸이었지.
#48갈릴레오는 큰 충격을 받았어.
#49그래도 연구는 이어졌어.
#50가택연금을 당한 뒤 갈릴레오가 갑자기 물리학을 새로 시작한 건 아니야.
#51떨어지는 물체, 경사면을 내려가는 운동, 속도가 변하는 방식, 던진 물체의 궤적, 구조물의 강도. 이런 문제는 이미 수십 년 동안 붙잡아온 것들이었거든.
#52이제 그 연구들을 다시 꺼내기 시작했어. 전에 얻었던 결과를 정리하고, 새 생각이 떠오르면 이미 써놓은 부분으로 돌아갔지.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예전 계산도 다시 들여다봤고.
#53머리가 좀처럼 쉬지 않았던 거야.
#54하늘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공개적으로 말할 자유는 크게 줄었지만, 물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생각하는 일까지 멈춘 건 아니었어. 그렇게 오래된 연구들이 조금씩 한 권의 원고로 묶여갔지.
#55그런데 원고가 완성된다고 끝이 아니었어.
#56누가 그 책을 찍어줄 수 있을까?
#571635년, 베네치아에 있던 갈릴레오의 친구 풀젠치오 미칸치오가 출판 가능성을 알아봤어.
#58결과는 좋지 않았지.
#59막혀 있던 건 문제가 된 "대화" 한 권만이 아니었어. 갈릴레오가 이미 쓴 책은 물론이고 앞으로 쓸 책까지 폭넓게 출판 허가가 막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거든.
#60그래서 꽤 독특한 방법까지 거론됐어. 프랑스나 독일, 플랑드르의 도서관에 원고를 두고, 읽고 싶은 사람들이 직접 베껴가게 하자는 생각이었지.
#61인쇄가 안 되면 필사라도 시키자는 거야.
#62하지만 갈릴레오에게는 원고보다 더 잘 움직이는 게 있었어.
#63사람들이었지.
#64베네치아에서는 미칸치오가 원고를 살피고 전달을 도왔어. 파리의 엘리아 디오다티는 갈릴레오와 이탈리아 밖 사람들을 이어줬고.
#65그러다 1636년 봄, 출판업자 한 명이 아르체트리까지 직접 찾아왔어.
#66네덜란드의 로데베이크 엘제비르였어.
#67갈릴레오는 네덜란드로 갈 수 없었어. 그러자 네덜란드의 출판업자가 갈릴레오에게 온 거야.
#68프랑스 외교관 프랑수아 드 노아이유도 이 출판 과정에 연결됐고, 나중에 완성된 책은 그에게 헌정됐어.
#69책 앞부분에는 꽤 편리한 이야기가 실렸어. 갈릴레오가 노아이유에게 원고를 건넸고, 그 원고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엘제비르에게 넘어가 출판됐다는 식이었지.
#70그런데 남아 있는 편지와 원고를 보면 갈릴레오는 훨씬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었어.
#71출판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출판을 추진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게 하고 있었던 거야.
#72갈릴레오에게 필요한 건 단순히 책을 내는 방법이 아니었어.
#73책을 내면서도 자신이 낸 것처럼 보이지 않는 방법이었지.
#74출판 계획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원고는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니었어.
#75갈릴레오는 투사체의 운동을 다루는 중요한 부분을 계속 붙잡고 있었지. 앞으로 날아가면서 동시에 아래로 떨어지는 물체가 어떤 길을 그리는지를 수학으로 설명하려는 작업이었어.
#76그때 갈릴레오는 이미 70대였어. 몸도 약해지고 있었고 시력도 빠르게 나빠졌지.
#77그래도 작업은 계속됐어.
#781637년 3월에는 투사체 운동을 다룬 Fourth Day를 마무리했어. 그리고 이듬해에는 완전히 앞을 보지 못하게 됐지.
#79그렇다고 눈먼 갈릴레오가 이 책 전체를 처음부터 구술해 만들었다는 뜻은 아니야. 오히려 이 책에는 거의 평생에 걸쳐 쌓아온 연구가 들어 있었어. 마지막 몇 년 동안 그걸 다시 꺼내고, 연결하고, 고치면서 시력이 사라지기 전에 핵심 부분을 끝낸 거지.
#80끝내 완성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어. 충돌의 힘을 다루려던 Fifth Day였어.
#81하지만 앞의 네 Day는 이미 갈릴레오를 떠나 북쪽으로 움직이고 있었어.
#821638년, 네덜란드 레이던에서 갈릴레오의 "두 새로운 과학에 관한 논의와 수학적 증명"이 출판됐어.
#83여기서 말하는 두 새로운 과학 가운데 하나는 물질과 구조물의 강도에 관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운동에 관한 것이었어. 물체가 어떻게 떨어지는지, 어떻게 가속되는지, 던진 물체가 어떤 포물선을 그리는지가 한 권 안에 들어갔지.
#841632년의 "대화"처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문제를 정면으로 밀어붙이는 책은 아니었어. 하지만 자연의 운동을 수학으로 설명하려던 갈릴레오의 물리학은 그대로 남아 있었지.
#85그리고 책은 움직이기 시작했어. 베네치아에서도 읽혔고 로마에도 들어갔어. 스트라스부르와 파리, 네덜란드에서도 퍼졌지.
#86마랭 메르센은 몇 달 만에 프랑스어판을 냈어. 르네 데카르트도 읽었는데, 갈릴레오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며 비판했지.
#87정작 갈릴레오는 그 어느 곳에도 갈 수 없었어.
#88아르체트리에 갇혀 있었고, 자기 나라에서는 자유롭게 책도 낼 수 없었고, 이제는 인쇄된 책을 눈으로 읽을 수도 없었어.
#89갈릴레오가 자기 책을 받아본 건 출판되고 거의 1년이 지난 뒤였어.
#901610년의 갈릴레오는 망원경을 들고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하늘을 보고 있었어. 1638년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
#91그 사이 자유를 잃었고, 딸을 잃었고, 자기 이름으로 마음껏 출판할 자유도 잃었어.
#92갈릴레오는 아르체트리에 남아 있었어. 책은 국경을 넘었지.
#93눈이 완전히 먼 뒤에도 새로운 구상은 나왔어.
#94가 훗날 남긴 기록에 따르면, 1641년 갈릴레오는 진자의 규칙적인 움직임을 이용해 더 정확한 시계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아들 에게 설명했어. 직접 도면을 그릴 수 없으니 장치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말로 전한 거지.
#95하지만 그 시계가 완성되는 모습은 보지 못했어.
#96갈릴레오는 이듬해인 1642년 1월 8일, 아르체트리에서 세상을 떠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