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가까이 링을 떠났다가 45세에 다시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된 복서
알리에게 진 뒤 무너졌던 조지 포먼은 어떻게 45세에 다시 챔피언이 됐을까
#11994년 11월 5일, 라스베이거스. 조지 포먼은 마흔다섯 살이었어. 상대는 스물여섯 살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 마이클 무어러. 프로 35전 35승, 아직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선수였지.
#2포먼은 상황이 정반대였어. 마지막 경기에서 토미 모리슨에게 졌고, 그 뒤 17개월 동안 실전도 없었거든. 그런데 이날 포먼은 아주 오래된 빨간 트렁크를 꺼내 입었어.
#320년 전, 무하마드 알리에게 세계 챔피언 자리를 잃던 밤에 입었던 바로 그 트렁크였지.
#4경기가 시작되자 무어러가 더 빨랐어. 먼저 치고 움직였고, 포먼의 왼쪽 눈은 점점 부어올랐지. 9라운드가 끝났을 때 세 명의 심판 모두 무어러가 앞선다고 보고 있었어.
#5무어러의 코너에서는 트레이너 테디 아틀라스가 계속 같은 말을 했어. 포먼의 오른손 앞에 오래 서 있지 말라는 거였지.
#6점수로는 무어러가 이기고 있었어.
#7하지만 포먼에게는 아직 점수표 전체를 한 번에 필요 없게 만들 수 있는 오른손이 남아 있었지.
#810라운드.
#9포먼이 왼손을 뻗었어. 그리고 짧은 오른손이 들어갔지.
#10무어러가 뒤로 넘어졌어.
#11심판이 카운트를 시작했어.
#12열.
#13무어러는 일어나지 못했어.
#1445세 299일. 조지 포먼은 다시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됐어.
#15그런데 포먼은 링을 뛰어다니지 않았어. 자기 코너로 가서 무릎을 꿇었지.
#16그리고 기도했어.
#17처음 세계 챔피언이 된 스물네 살의 포먼과는 꽤 다른 모습이었어.
#18포먼은 휴스턴의 Fifth Ward에서 자랐어. 집은 넉넉하지 않았고, 학교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지. 싸움을 했고 거리에서 문제를 일으켰고 결국 학교도 그만뒀어.
#19방향을 바꾼 곳 가운데 하나가 Job Corps였어. 젊은 사람들에게 교육과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포먼은 그곳에서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기술도 배웠지.
#20그리고 찰스 "독" 브로더스라는 복싱 코치를 만났어.
#21거리에서 싸우던 덩치 큰 소년이 링 안에서 싸우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거야.
#22변화는 빨랐어.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헤비급 금메달을 땄고, 프로가 된 뒤에는 첫 37경기를 전부 이겼어. 그중 34경기가 KO였지.
#231973년에는 세계 챔피언 조 프레이저와 붙었어. 프레이저는 무하마드 알리에게 프로 첫 패배를 안긴 선수였는데, 포먼은 그런 프레이저를 두 라운드 동안 여섯 번 쓰러뜨렸어.
#24스물네 살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
#25당시 포먼은 단순히 강한 복서가 아니었어. 무서운 복서였지. 거의 웃지 않았고, 상대를 노려봤고, 링에서는 앞으로 밀고 들어가 힘으로 무너뜨렸어.
#2637번 싸워 한 번도 진 적이 없었으니, 어느 순간부터 강하다는 건 포먼이 가진 능력 하나가 아니게 됐어.
#27거의 자기 자신과 같은 뜻이 된 거지.
#28그러다 1974년, 알리를 만났어.
#29경기는 당시 자이르의 킨샤사에서 열렸어. 많은 사람은 포먼이 이길 거라고 봤지. 알리는 더 나이가 들었고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도 받고 있었어. 반면 포먼은 젊고 무패였고, 정상급 상대들을 계속 무너뜨리고 있었거든.
#30그런데 알리는 포먼이 원하는 방식으로 싸워주지 않았어.
#31로프 쪽으로 물러났고, 포먼이 큰 주먹을 계속 쓰게 했지.
#32포먼은 때렸어. 또 때렸어. 그런데 알리는 버텼어.
#33대신 포먼이 점점 지쳐갔지.
#348라운드, 알리가 반격했어.
#35포먼이 쓰러졌고, 카운트 안에 일어나지 못했어.
#36프로 첫 패배. 세계 타이틀도 사라졌어.
#37그런데 포먼을 흔든 건 경기 결과만이 아니었어. 예전에는 사람들이 포먼을 보면 겁을 냈는데, 이제는 다가와 등을 두드렸어. 안됐다는 듯 위로했지.
#38포먼은 나중에 그 시절을 일종의 애도처럼 기억했어. 자기 일부를 잃은 것 같았다고 했지.
#39하지만 여기서 자주 생기는 오해가 하나 있어.
#40포먼은 알리에게 진 뒤 바로 복싱을 그만두고 목사가 된 게 아니야.
#41오히려 계속 싸웠어. 다시 이겼고, 1976년에는 조 프레이저를 또 꺾었지.
#42포먼은 알리와 다시 싸우고 싶어 했어. 한 번의 패배를 지우고, 예전의 자신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거야.
#43알리가 포먼의 복싱 인생을 끝낸 건 아니었어.
#44대신 쉽게 끝나지 않는 문제를 남겼지.
#45포먼은 자기가 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어.
#461977년 3월, 포먼은 푸에르토리코에서 지미 영과 싸웠어.
#47판정으로 졌지.
#48무더운 환경에서 격렬한 경기를 치른 뒤 포먼은 크게 탈진했어. 그리고 라커룸에서 평생 종교적인 경험으로 설명하게 될 일을 겪었다고 말했지.
#49포먼의 기억으로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는 것 같았어. 깊은 공허 속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신에게 살려달라고 기도했다고 했지.
#50물론 몸 상태도 따로 봐야 해. 포먼은 심하게 지쳐 있었고 의료적인 처치가 필요했어. 그 경험을 신과의 만남으로 받아들인 건 포먼 자신의 해석이었지.
#51하지만 포먼에게는 분명한 경계선이 됐어.
#52그는 복싱을 떠났어.
#53스물여덟 살이었지.
#54그리고 목사가 됐어.
#55휴스턴에서 설교를 시작했고, 아이들을 위한 Youth and Community Center도 만들었어.
#56한때 상대를 겁주는 게 일이었던 남자가 이제 사람들 앞에서 성경을 들고 말하기 시작한 거야.
#57알리에 대한 감정도 바로 바뀐 건 아니었어. 몇 년이 걸렸지.
#58그러다 포먼은 어느 순간 아주 단순한 말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회상했어.
#59자기가 졌다고.
#60알리가 자기를 이겼다고.
#61그걸 인정하는 데 몇 년이 필요했던 거야.
#62시간이 흐른 뒤 알리가 포먼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어. 포먼을 칭찬하고 다시 복싱으로 돌아오라고 권했지. 켄 노턴 같은 선수를 상대해달라는 이야기도 했어.
#63예전의 포먼이었다면 기다리던 제안이었을지도 몰라.
#64그런데 거절했어.
#65이미 목사였거든.
#66포먼은 거의 10년 동안 프로 경기를 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1987년의 복귀를 단순히 "링이 그리워서"라고 설명하면 맞지 않아.
#67그 사이 현실적인 문제가 생겼어.
#68Youth Center를 유지하는 데 돈이 많이 들어갔거든.
#69포먼은 자기 돈을 계속 넣고 있었고 재정 부담이 커졌어. 그러다 한 교회에서 센터를 위한 돈을 모으던 장면을 훗날 자주 이야기했지.
#70사람들이 헌금을 했는데 충분하지 않았어.
#71목사가 회중에게 한 번 더 부탁했어.
#72조금만 더 내달라고.
#73포먼은 강단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봤어.
#74거기 있던 사람들은 부자가 아니었어. 그런데 한때 세계 헤비급 챔피언으로 큰돈을 벌었던 자신 때문에 다시 주머니를 열고 있었지.
#75포먼은 그 순간이 부끄러웠다고 했어.
#76그러고는 생각했지.
#77돈은 내가 벌겠다고.
#78그가 가장 잘 아는 일이 하나 있었어.
#79복싱.
#80문제가 있다면, 그때 포먼이 이미 서른여덟 살이었고 몸무게가 300파운드를 넘어 있었다는 거였어.
#81예전에 입던 복싱 옷은 맞지 않았어.
#82포먼은 체중계를 샀고 올라가봤지.
#83305파운드. 약 138킬로그램.
#84포먼은 자기 몸보다 체중계를 먼저 의심했어.
#85그래서 반품했어.
#86새 체중계를 하나 더 샀는데, 이번에는 한동안 올라가보지도 않았다고 해.
#87그래도 훈련은 시작했어. 달리고, 몸을 만들고, 10년 가까이 쓰지 않았던 선수의 몸을 다시 만들었지.
#88한 번은 아내 Joan에게 집에서 10마일 떨어진 곳까지 달려갈 테니 차로 데리러 와달라고 했어. 그런데 Joan이 차를 몰고 나가보니 포먼은 이미 그곳까지 갔다가 다시 집 쪽으로 뛰어오고 있었지.
#891987년 3월.
#90거의 정확히 10년 만에 포먼은 프로 링으로 돌아왔어.
#91서른여덟 살. 267½파운드.
#92첫 상대 Steve Zouski를 4라운드에 멈춰 세웠어.
#93그렇다고 사람들이 바로 믿은 건 아니야.
#94많이 웃었어.
#95너무 늙었다. 너무 뚱뚱하다. 초반 상대들도 강하지 않다.
#96그 비판에는 실제 근거가 있었어. 포먼은 처음부터 정상급 선수들과 싸운 게 아니었거든.
#97대신 실제 경기를 계속 치르면서 10년 동안 사라진 감각을 되찾았어.
#98한 경기. 또 한 경기. 그리고 또 한 경기.
#991988년에는 아홉 번이나 싸웠어.
#100어느 날 큰딸 Michi가 TV로 아버지 경기를 봤어.
#101그리고 포먼에게 말했지.
#102채널을 잘못 튼 줄 알았다고. 스모 레슬링이 나오는 줄 알았다는 거야.
#103젊은 포먼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불쌍하게 보는 것조차 견디기 힘들어했어.
#104그런데 이번에는 딸이 자기 몸을 놀려도 같이 웃었지.
#105복귀한 포먼은 예전과 꽤 달랐어. 자기 나이를 농담했고, 배를 농담했고, 먹는 것도 농담거리로 만들었어.
#106그 변화를 한 가지 이유로만 설명하기는 어려워.
#107목사로 산 시간도 있었고, 자녀들의 아버지로 산 시간도 있었어. Youth Center의 아이들과 지낸 시간도 있었고, 그냥 나이를 먹으며 여러 번 이기고 져본 시간도 있었지.
#108하지만 웃는 사람이 됐다고 세계 챔피언이 되는 건 아니야.
#109결국 강한 상대를 만나야 했어.
#1101990년 포먼은 게리 쿠니를 2라운드에 KO시켰어.
#111그리고 1991년에는 현역 세계 챔피언 에반더 홀리필드와 싸울 기회를 얻었지.
#112포먼은 마흔두 살.
#113홀리필드는 스물여덟 살이었어.
#114홀리필드는 빨랐고, 포먼에게 많은 펀치를 맞혔어.
#115그런데 포먼은 쓰러지지 않았어.
#11612라운드가 다 끝났고, 포먼은 판정으로 졌지.
#117결과만 보면 세계 타이틀 도전에 실패한 거야.
#118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어.
#11942세의 남자가 현역 세계 챔피언과 12라운드를 끝까지 싸웠으니까.
#120홀리필드도 나중에 포먼에게 가진 걸 다 쏟아부었는데도 쓰러뜨리지 못한 일을 이야기했지.
#121포먼은 그날 벨트를 얻지 못했어.
#122대신 복귀가 농담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어.
#123젊은 시절의 포먼에게 패배는 자기 자신을 무너뜨리는 일이었어.
#124두 번째 포먼은 지고도 계속 갈 수 있었지.
#125그리고 실제로 또 졌어.
#1261993년, 토미 모리슨은 포먼 앞에 서서 힘 대 힘으로 붙지 않았어. 움직이고, 치고, 빠졌지. 포먼은 잡지 못했고 판정으로 졌어.
#127마흔네 살.
#128그 뒤 17개월 동안 경기가 없었어.
#129그러다 다음 기회가 세계 타이틀전으로 왔지.
#13045세의 포먼 대 35전 무패의 26세 마이클 무어러.
#131딱 봐도 자연스러운 대진은 아니었어.
#132이 경기는 나중에 너무 멋지게 정리되곤 해.
#133포먼이 일부러 초반을 내주고 마지막 한 방을 기다렸다는 식으로 말이지.
#134하지만 실제 경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어.
#135무어러가 잘 싸우고 있었어. 더 빨랐고, 더 많이 맞혔고, 포먼의 눈은 부어올랐지.
#1369라운드가 끝났을 때 심판들도 모두 무어러를 앞세웠어.
#137다만 한 가지가 남아 있었어.
#138포먼의 오른손.
#13945세가 됐어도 그 주먹 하나로 경기를 끝낼 힘은 남아 있었지.
#140그래서 테디 아틀라스도 계속 무어러에게 그 거리를 경고했던 거야.
#14110라운드.
#142왼손. 그리고 오른손.
#143무어러가 쓰러졌어.
#144아홉 라운드 동안 쌓인 점수가 한 번에 의미를 잃었지.
#14520년 전 킨샤사에서는 젊은 포먼이 계속 힘을 썼고 알리가 기다렸어. 결국 포먼이 지쳤고 알리가 그를 쓰러뜨렸지.
#146그렇다고 45세의 포먼이 알리의 전술을 그대로 따라 했다는 뜻은 아니야. 무어러에게 밀린 아홉 라운드도 계획된 함정이 아니었고.
#147다만 둘 사이에 한 가지 차이는 있었어.
#148젊은 포먼은 모든 순간을 힘으로 가져가려고 했어.
#149늙은 포먼은 모든 라운드를 이길 필요가 없었지.
#150한 번의 기회가 남아 있으면 됐어.
#151그리고 그 한 번이 왔어.
#152빨간 트렁크만 보면 20년짜리 복수극처럼 보일 수도 있어.
#153하지만 1994년의 포먼과 알리는 이미 친구였어.
#154한때 포먼은 알리에게 진 사실을 지우고 싶어 했어. 다시 싸워 결과를 바꾸고 싶었지.
#155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둘은 전화로 이야기했고, 종교 이야기도 나눴고, 가족끼리도 가까워졌어.
#156그래서 무어러를 쓰러뜨린 건 알리를 대신 이긴 장면이 아니었어.
#157그때 포먼은 이미 알리에게 진 과거를 지우지 않고도 다시 챔피언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지.
#158무어러가 쓰러진 뒤 포먼은 코너로 가서 무릎을 꿇었어.
#1591977년의 패배 뒤 목사가 됐던 사람이 1994년의 승리 뒤에도 그대로 남아 있었던 거야.
#160그리고 두 번째 챔피언 시절도 깔끔하진 않았어.
#161WBA의 의무 방어 문제로 타이틀을 잃었고, 악셀 슐츠에게는 논란 많은 판정승을 거뒀어. IBF가 재대결을 명령하자 그 벨트도 포기했지.
#16245세의 기적 뒤에 긴 왕조가 이어진 건 아니야.
#163그래도 포먼은 계속 싸웠어.
#1641997년, 마흔여덟 살의 포먼은 스물다섯 살 섀넌 브릭스와 싸웠어.
#16512라운드 뒤 브릭스가 판정승을 받았지.
#166경기장에서는 야유가 나왔고, 포먼이 이겼다고 본 사람도 많았어.
#167예전의 포먼이라면 이 결과를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을지도 몰라.
#1681974년의 한 번의 패배는 몇 년 동안 그를 괴롭혔으니까.
#169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어.
#170포먼은 브릭스에게 행운을 빌었고, 자기 커리어가 훌륭했다고 말했어.
#171그리고 은퇴했지.
#172두 번째 포먼도 졌어.
#173다만 이제 패배 하나가 조지 포먼 전체를 결정하지 못했어.
#174복귀 뒤 사람들이 알게 된 포먼은 1970년대의 무서운 챔피언과 달랐어.
#175웃는 Big George.
#176자기 나이와 몸을 먼저 놀리는 사람.
#177음식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
#178그 모습은 나중에 George Foreman Grill이라는 뜻밖의 성공으로 이어졌어.
#179포먼이 그 그릴을 발명한 건 아니야. 처음부터 제품에 큰 관심을 보인 것도 아니었지. 한동안 집에 그냥 두고 썼다가, 실제로 사용해본 뒤 광고에 나서기 시작했어.
#180그런데 제품이 엄청나게 팔렸어.
#181George Foreman이라는 이름이 복싱 경기장이 아니라 전 세계 주방에 들어가기 시작한 거야.
#182Youth Center에 들어갈 돈 때문에 복귀를 결심한 사람이, 그 복귀 과정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이미지 덕분에 링 밖에서 더 큰 사업적 성공까지 얻게 된 셈이지.
#183그래도 포먼이 말년에 사무실 벽에 걸어둔 것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건 승리 사진이 아니었어.
#184사진에는 1974년 킨샤사가 담겨 있었어.
#185알리는 서 있고, 포먼은 캔버스에 쓰러져 있어.
#186한때 포먼이 가장 없애고 싶어 했던 장면이었지.
#187그 패배 뒤에는 자기 일부를 잃은 것 같았고, 다시 싸워 다른 결말을 만들고 싶어 했어.
#188그 재대결은 결국 없었어.
#189대신 더 예상 밖의 일이 생겼지.
#190둘이 친구가 됐어.
#1911997년 "Academy Awards"에서는 파킨슨병으로 무대 계단을 오르기 어려워하던 알리를 포먼이 도왔어.
#1922016년 알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포먼은 다시 자기 일부가 사라진 것 같은 상실을 이야기했어.
#1931974년에도 비슷한 말을 했지.
#194하지만 이유는 완전히 달랐어.
#195그때는 알리에게 졌기 때문이었고,
#196이번에는 알리라는 사람을 잃었기 때문이었어.
#197그리고 사무실 벽의 사진은 그대로였어.
#198알리가 서 있고, 포먼이 쓰러져 있는 사진.
#19945세에 무어러를 쓰러뜨린 오른손도 그 사진을 지우지 않았어. 다시 세계 챔피언이 된 기록도 지우지 않았고. 돈도, 유명세도, 사업의 성공도 지우지 않았어.
#2002025년 조지 포먼이 세상을 떠났을 때 가족은 그를 챔피언이라는 말 하나로만 기억하지 않았어.
#201목사.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 지역의 아이들을 돌본 사람.
#202그리고 그 여러 모습 가운데 하나가 두 번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었지.
#2031974년에는 챔피언이라는 이름을 잃자 자기 자신까지 잃은 것처럼 느꼈어.
#20420년 뒤 그는 다시 챔피언이 됐어.
#205그런데 그때는 이미 그 이름 하나만으로 자신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지.
#206그래서였을까.
#207포먼은 결국 자신이 쓰러져 있는 그 사진도 벽에서 내리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