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먼저 믿어준 파트너와 40살에 회사를 시작하고, 그를 잃은 뒤 경영까지 배워 독립을 지킨 디자이너
40살에 자기 이름을 건 아르마니는 왜 50년 동안 그 이름의 결정권을 놓지 않았을까
#11985년, 조르조 아르마니는 패션쇼를 마치고 사진을 챙겼어. 그리고 병원으로 갔지.
#2병실에는 세르조 갈레오티가 있었어.
#310년 전, 아르마니에게 자기 이름으로 회사를 만들자고 계속 밀어붙였던 사람이야. 회사를 세운 뒤에는 아르마니가 옷을 만들고, 갈레오티가 사업을 맡았어.
#4둘이 시작한 회사는 이제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었어. 그런데 갈레오티는 그 다음을 직접 보기가 어려운 상태였지.
#5아르마니는 쇼 사진을 병실로 가져갔어. 훗날 그는 마지막 무렵의 갈레오티가 사진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회상했어.
#6그해 여름, 갈레오티는 40살에 세상을 떠났어.
#7회사에는 갑자기 한 사람이 빠진 게 아니었어. 아르마니가 거의 맡지 않았던 회사의 절반이 통째로 비어버린 거였지.
#8옷은 만들 수 있었어.
#9그런데 재무는? 세금은? 계약은? 생산은? 거래처는?
#10주변에서는 아르마니 혼자서는 어렵다고 보는 사람도 있었어. 아르마니 자신도 처음부터 확신했던 건 아니었고.
#11사실 그럴 만했어.
#12애초에 자기 이름으로 회사를 만들자는 확신부터, 아르마니보다 갈레오티에게 먼저 있었거든.
#13아르마니는 1934년 이탈리아 피아첸차에서 태어났어. 밀라노에서 공부한 건 패션이 아니라 의학이었지.
#14하지만 의대 생활을 중단했고, 군 복무를 거친 뒤 1957년에는 전혀 다른 곳에서 일하게 됐어.
#15밀라노의 백화점 라 리나센테였어.
#16처음에는 쇼윈도 디스플레이를 꾸몄고, 나중에는 남성복 상품을 고르고 구성하는 일까지 맡았어.
#17의학에서는 사람의 몸을 봤다면, 백화점에서는 옷 앞에서 움직이는 사람을 보게 된 셈이야. 어떤 옷 앞에서 멈추는지, 무엇을 집는지, 결국 무엇을 사는지 말이야.
#18그러다 니노 체루티가 아르마니를 남성복 디자인으로 데려갔어.
#19체루티 밑에서 아르마니가 다룬 건 한 사람만을 위한 맞춤복이 아니었어. 여러 사람이 입을 수 있도록 생산하는 기성복이었지.
#20그리고 여기서 오래 붙들게 될 문제가 하나 생겼어.
#21남자 정장은 꼭 이렇게 딱딱해야 할까?
#22당시 재킷은 패딩과 심지로 어깨와 가슴을 단단하게 잡았어. 사람이 자연스럽게 움직인다기보다 옷이 몸의 모양을 정해주는 쪽에 가까웠지.
#23아르마니는 그 구조를 더 가볍게 만드는 방법을 오래 실험했어. 이후 여러 회사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했고, 그러다 어느새 마흔이 가까워졌어.
#24그런데 여기서 하나 짚어야 해.
#25아르마니는 실패만 거듭하던 가난한 무명 디자이너가 아니었어.
#26경력이 있었고, 일도 있었고, 돈도 벌고 있었지.
#27훗날 그는 당시 자신의 생활이 그냥 “fine”, 괜찮았다고 말했어.
#28그러니 오히려 독립할 이유가 약했어.
#29괜찮게 살고 있는데, 왜 굳이 모든 걸 걸어야 하지?
#30갈레오티는 아르마니보다 열한 살 어렸어.
#31이미 패션업계에서 이름난 경영자도 아니었고, 거액을 투자할 수 있는 유명 투자자도 아니었지.
#32그런데 아르마니가 만든 옷을 보고는 한 가지를 확신했어.
#33이 사람은 계속 다른 회사 이름 아래에서 옷만 만들고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34갈레오티는 독립하라고 계속 밀었어.
#35아르마니는 훗날 그 영향을 이렇게 표현했지.
#36“Sergio made me believe in myself.”
#37세르조가 자신을 믿게 해줬다는 거야.
#381975년, 둘은 결국 회사를 만들었어. 아르마니는 40살이었지.
#39초기 자금을 마련하면서 아르마니가 아끼던 폭스바겐 비틀도 팔았어. 작은 사무실에서 몇 명 안 되는 직원과 시작했고, 역할은 분명했어.
#40아르마니는 옷. 갈레오티는 사업.
#41그리고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옷에 붙일 수 있게 된 아르마니는 오랫동안 만져온 재킷을 더 과감하게 바꾸기 시작했어.
#42아르마니가 부드러운 재킷을 역사상 처음 만든 건 아니야.
#43그보다 앞서 나폴리를 비롯한 이탈리아의 재단사들은 영국식 정장의 무거운 구조를 줄여왔어. 아르마니도 체루티 시절부터 비슷한 문제를 다루고 있었고.
#44다만 자기 이름을 얻은 뒤에는 훨씬 더 멀리 갔지.
#45패딩을 줄였어. 심지를 덜어냈어. 안쪽 구조를 가볍게 했고, 단추 위치와 비율도 바꿨어.
#46몸을 정해진 틀 안에 넣는 대신, 재킷이 몸을 따라가게 한 거야.
#47그가 원한 건 그냥 축 처지는 옷이 아니었어.
#48옷 안에서 사람이 사라지지 않는 것.
#49그런데 기존 정장에 익숙한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어. 미국 패션업계에서는 일부러 주름지고 흐트러진 옷을 팔려 한다는 반응까지 나왔지.
#50그래도 그 옷을 미국에서 밀어준 사람이 있었어.
#51뉴욕 Barneys의 프레드 프레스먼이었어.
#52그리고 얼마 뒤, 아르마니는 백화점보다 훨씬 큰 진열장을 만나게 돼.
#53영화관 스크린이었지.
#541980년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가 개봉했어.
#55주인공 줄리언 케이를 연기한 배우는 리처드 기어였고, 그는 영화에서 아르마니를 입었어.
#56유명한 장면이 하나 있어.
#57기어가 침대 위에 셔츠와 넥타이, 재킷을 펼쳐놓고 무엇을 입을지 고르는 장면이야.
#58하지만 아르마니 재킷의 진짜 특징은 그다음부터 보여.
#59기어가 걷고, 팔을 움직이고, 재킷을 벗었다가 다시 입어.
#60그러면 차이가 바로 보였어.
#61정장을 입었는데, 정장에 갇혀 있지 않은 거야.
#62편안해 보이는데 흐트러지지 않았고, 부드러운데 힘이 없어 보이지 않았어.
#63아르마니도 훗날 "아메리칸 지골로"를 자기 경력의 결정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로 꼽았어. 1982년에는 TIME 표지에 올랐지.
#64여성복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어.
#65기업과 전문직으로 들어가는 여성들이 늘던 시기에 아르마니의 부드러운 재킷은 남성 정장이 주던 권위는 가져오면서도, 그 딱딱한 구조까지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는 옷이 됐어.
#66아르마니가 여성의 사회진출을 위해 이런 옷을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
#67다만 그가 만들던 옷과 세상이 움직이던 방향이 아주 잘 만난 건 맞아.
#68회사는 빠르게 커졌어.
#69그리고 바로 그때, 처음부터 사업을 맡아주던 갈레오티가 병에 걸렸지.
#70아르마니는 예전에 갈레오티를 패션쇼 무대로 끌어내 함께 박수를 받게 하려고 한 적이 있었어.
#71갈레오티는 원하지 않았지.
#72스포트라이트는 아르마니가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어.
#73아르마니는 그런 갈레오티를 자신의 “50-50 partner”라고 불렀고, 회사의 진짜 정신이라고도 했어.
#74그 사람이 마지막에는 무대 옆이 아니라 병실에서 쇼 사진을 보고 있었던 거야.
#751985년 갈레오티가 세상을 떠나자, 아르마니는 그동안 상대에게 맡겨왔던 세계까지 직접 배워야 했어.
#76재무. 변호사. 세금. 계약. 생산.
#77회사 지분에 참여하고 싶다는 사람들도 나타났어.
#78아르마니가 훗날 기억한 대답은 짧았어.
#79“No, grazie. Ce la faccio da solo.”
#80아니요, 괜찮습니다.
#81혼자 해보겠습니다.
#82그런데 이때부터 아르마니에게 "혼자"라는 말의 뜻이 조금 달라져.
#83아르마니 회사는 실제로 많은 파트너와 함께 컸어.
#84GFT 같은 생산업체가 옷을 대규모로 만들었고, Barneys는 미국 시장을 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어. L'Oréal 같은 전문기업은 향수와 뷰티 사업을 키웠고, 안경도 전문 파트너와 협력했지.
#85회사 안에는 레오 델로르코와 실바나 아르마니처럼 오랫동안 함께한 사람들도 있었어.
#86그러니까 아르마니가 지키려 한 독립은
#87"아무도 필요 없다"
#88는 뜻이 아니었어.
#89오히려 이런 쪽에 가까웠지.
#90함께 일할 수는 있어. 하지만 마지막 결정권까지 넘길 필요는 없어.
#91갈레오티가 죽은 뒤 아르마니는 디자이너이면서 경영자가 됐어. 나중에는 스스로를 designer-businessman, 디자이너이자 사업가라고 부를 정도였지.
#92그리고 그 독립을 개인 성격이 아니라 회사의 구조로 만들기 시작했어.
#93초기의 아르마니는 외부 생산업체와 라이선스가 꼭 필요했어.
#94작은 디자인 회사가 갑자기 늘어난 세계적인 수요를 혼자 감당할 수는 없었거든.
#951981년에는 엠포리오 아르마니가 나왔고, 그 뒤 아르마니라는 이름은 더 많은 영역으로 퍼졌어.
#96향수. 안경. 청바지. 가구. 레스토랑. 호텔.
#97그런데 회사에 돈과 규모가 생기자 반대 방향으로도 움직이기 시작했어.
#98제품을 만들어주던 회사에 투자하고, 생산시설을 직접 확보하고, 유통도 더 많이 자기 통제 안으로 가져왔지.
#99처음에는
#100아르마니가 디자인하고 다른 회사가 만드는 구조
#101였다면, 점점
#102아르마니가 아르마니를 만드는 구조
#103가 된 거야.
#104이게 중요했어.
#105회사를 안 팔겠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독립할 수 없어.
#106안 팔아도 제품을 만들고, 팔고, 투자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하거든.
#107아르마니는 그 힘까지 회사 안에 만들었어.
#108같은 시기 LVMH 같은 거대 럭셔리 그룹은 여러 유명 브랜드를 한 회사 아래 모으며 성장했어.
#109아르마니는 다른 길을 갔지.
#110다른 패션 브랜드를 사 모으기보다 자기 이름을 계속 넓혔어.
#111Giorgio Armani. Emporio Armani. Armani Exchange. Armani/Casa. Armani Beauty.
#112거기에 레스토랑과 호텔까지.
#1131957년 라 리나센테에서 작은 쇼윈도를 꾸미던 사람이 수십 년 뒤에는 사람들이 입고, 먹고, 머무는 공간 전체에 아르마니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었어.
#114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회사들이 아르마니 자체를 원하기 시작했어.
#115Gucci가 접근했고,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와도 이야기가 오갔어.
#116거대 그룹에 들어가면 자본과 유통망, 규모를 더 쉽게 얻을 수 있었어.
#117아르마니는 계속 결정권을 남기는 쪽을 택했지.
#11840살에는 갈레오티가 먼저 믿어줘야 자기 이름을 걸 수 있었던 사람이었어.
#119수십 년 뒤에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럭셔리 기업들이 그 이름의 가치를 인정해도, 넘길지 말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거야.
#1202025년 9월 4일, 조르조 아르마니는 91세로 세상을 떠났어.
#121죽을 때까지 자신이 만든 회사의 압도적인 지분을 가지고 있었지.
#122그런데 유언이 공개되면서 조금 뜻밖의 내용이 나왔어.
#123아르마니는 후계자들에게 회사를 절대로 팔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124일정 기간이 지나면 먼저 지분 15%를 외부 파트너에게 넘기고, 이후에는 더 큰 지분 매각이나 상장으로 갈 수도 있도록 길을 만들어뒀어.
#125후보에는 오랫동안 함께 일한 L'Oréal과 EssilorLuxottica가 있었고, 평생 독립을 지키며 거리를 뒀던 LVMH도 포함됐어.
#126그렇다고 아무에게나 회사를 넘길 수 있게 해둔 건 아니었어.
#127아르마니가 만든 재단과 오랜 동료 레오 델로르코 등이 강한 의결권을 갖도록 했거든.
#128외부 파트너가 들어올 길은 열었어. 하지만 아르마니의 방식을 오래 지켜본 사람들도 결정 구조 안에 남겨뒀지.
#129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마음속 이유까지 단정할 수는 없어.
#130다만 그의 50년을 보면 한 가지는 분명해.
#131아르마니에게 독립은 혼자 있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니었어.
#1321975년, 조르조 아르마니보다 먼저 "Giorgio Armani"라는 이름에 베팅한 사람은 세르조 갈레오티였어.
#13310년 뒤 갈레오티가 사라졌고, 사람들은 아르마니 혼자서는 어렵다고 봤지.
#134그 뒤 아르마니는 옷뿐 아니라 회사를 배웠어. 많은 기업과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마지막 결정권은 계속 자기 손에 남겼고.
#135그리고 2025년에는 아르마니 자신이 사라졌어.
#1362026년 현재, 첫 외부 지분 파트너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
#137남은 사람들에게 오래전 질문이 조금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 셈이야.
#138아르마니가 없어도 아르마니를 계속 만들 수 있을까?
#139처음에는 갈레오티가 아르마니보다 먼저 그 이름을 믿었어.
#14050년 뒤에는 그 이름을 넘겨받은 사람들이 자기들을 믿어야 할 차례가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