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슨을 창업한 영국의 발명가
5,127개의 시제품을 만든 제임스 다이슨은 왜 회사까지 직접 만들어야 했을까
#1제임스 다이슨은 집에서 비싼 후버 청소기를 쓰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어. 먼지봉투가 아직 가득 차지도 않았는데 흡입력이 벌써 떨어지고 있었거든.
#2봉투를 들여다보니 이유가 보였어. 미세한 먼지가 봉투의 작은 구멍을 막고 있었지. 먼지를 빨아들일수록 공기가 통하기 어려워지고, 그러면서 청소기는 점점 약해지는 거야.
#3그런데 다이슨에게는 낯선 문제가 아니었어. 그가 볼배로라는 손수레를 만들던 공장에서도 분체도장을 할 때 필터가 가루에 막히곤 했거든.
#4그러던 어느 날, 근처 목재 공장에서 거대한 원뿔 모양의 장치를 봤어. 공기를 빠르게 회전시켜 먼지 같은 입자를 바깥으로 밀어내는 산업용 사이클론 분리기였지. 먼지를 필터에 붙잡는 게 아니라 아예 공기에서 떼어내는 방식이었어.
#5다이슨은 이미 그 원리를 이용해서 자기 공장의 필터 문제를 해결해본 적이 있었어.
#6그럼 이걸 작게 만들면 어떨까?
#7집으로 돌아온 그는 후버 청소기에서 먼지봉투를 떼어냈어. 판지로 조잡한 사이클론을 만들고 청소기에 붙였지.
#8스위치를 켰어.
#9먼지가 공기에서 분리됐어.
#10물론 사람들이 돈을 내고 살 만한 청소기와는 거리가 멀었지. 그래도 한 가지는 확인된 셈이었어.
#11원리는 작동했어.
#12문제는 이제부터였어. 이 조잡한 장치를 실제 집에서 쓸 수 있는 청소기로 만드는 동안 다이슨은 결국 5,127개의 시제품을 만들게 돼.
#135,127이라는 숫자만 들으면 이야기가 단순하게 들릴 수 있어. 만든다. 실패한다. 또 만든다. 또 실패한다.
#14그러다 끝까지 버틴 5,127번째에서 마침내 성공했다는 이야기처럼 말이야.
#15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식이 아니었어.
#16처음에 다이슨은 계산으로 답을 찾으려고 했어. 예전에 자신을 가르쳤던 수학 선생님에게까지 도움을 구해서 사이클론 설계에 관한 여러 공식을 들여다봤지.
#17그런데 이상했어. 공식마다 답이 달랐거든.
#18그래서 방법을 바꿨어.
#19계산만 하지 말고 직접 만들어보기로 한 거야.
#20한 번에 하나씩 바꿨어. 사이클론의 길이. 각도. 공기가 들어오는 위치. 나가는 위치. 공기의 흐름.
#21그리고 결과를 봤지. 전보다 먼지가 잘 분리되면 그 방향을 남겼고, 더 나빠지면 그것도 답이었어. 적어도 다음에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알게 됐으니까.
#22그렇게 미세한 먼지 문제를 해결해가자 이번에는 다른 게 발목을 잡았어. 머리카락과 보풀이었지. 공장에서 쓰는 사이클론과 달리 가정용 청소기는 바닥에 떨어진 온갖 것을 빨아들여야 했거든.
#23다이슨은 훗날 바로 이 머리카락과 보풀 문제를 풀지 못하던 때가 포기에 가장 가까웠던 순간 중 하나였다고 말했어.
#24그러니까 5,127개는 같은 벽에 5,127번 부딪친 숫자가 아니야.
#25벽의 어느 부분을 바꿔야 통과할 수 있는지 하나씩 확인해본 숫자에 가까웠어.
#26그런데 실험이 조금씩 앞으로 간다고 해서 집안 사정까지 좋아지는 건 아니었어.
#27다이슨은 집 근처 작업장에서 시제품을 만들었어. 하루 종일 먼지를 뒤집어쓰고 실험한 뒤 집에 돌아오면 아내 디어드리 다이슨에게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곤 했지.
#28좋은 이야기만 있었던 건 아니었어. 시제품이 깨지고, 실험이 실패하고, 다이슨이 화를 내는 날도 있었어.
#29아들 제이크는 나중에 작업장에서 재료가 깨지는 소리와, 모형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아버지가 답답해하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했어.
#30그러는 사이 가족의 시간은 계속 흘렀어. 아직 초기 시제품을 만들던 무렵 셋째 아이가 태어났고, 시제품 숫자가 수천 개까지 올라갈 즈음에는 가족이 돈을 아껴 써야 할 정도로 형편이 빠듯해졌지.
#31디어드리는 미술을 가르치며 생활비를 보탰어. 그녀 자신도 예술가였고, 다이슨은 훗날 한 작품에 오랜 시간을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한 가지 문제를 몇 년씩 붙잡고 있는 것도 이해해줬다고 회고했어.
#32하지만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빚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
#33경제적 부담은 계속 커졌어.
#34그리고 다이슨 자신도 흔들리고 있었지.
#35결과를 알고 나서 과거를 보면 이야기가 너무 깔끔해져. 5,127번째 시제품이 결국 성공했다는 걸 아니까, 마치 다이슨도 언젠가는 반드시 해결될 거라고 처음부터 확신했던 것처럼 보이거든.
#36그렇지 않았어.
#37문제가 오래 풀리지 않을수록 자신을 점점 더 의심했다고 나중에 직접 이야기했어.
#38다만 아무 근거도 없이 버틴 것도 아니었지. 공장의 거대한 사이클론은 실제로 작동했고, 처음 판지로 만든 조잡한 사이클론에서도 먼지는 공기에서 분리됐어.
#39그래서 어떤 시제품이 실패했을 때 곧바로 사이클론이라는 생각 자체가 틀렸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었어.
#40모양이 틀렸을 수도 있어. 각도가 잘못됐을 수도 있고. 공기의 흐름이 문제일 수도 있었지. 미세먼지는 해결했지만 머리카락을 처리하는 방식이 아직 틀렸을 수도 있었고.
#41자기 판단을 의심하면서도 다음에 시험해볼 건 남아 있었던 거야.
#42그렇게 약 5년이 흘렀어.
#43마침내 실제로 쓸 수 있는 기술이 나왔지.
#44보통 발명 이야기라면 여기서 고생이 끝날 것 같아.
#45다이슨은 반대였어.
#46기술을 완성하고 나서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됐거든.
#47다이슨은 처음부터 자기 이름을 붙인 거대한 가전회사를 세우고 싶었던 게 아니었어.
#48훨씬 쉬운 길이 있었거든.
#49기존 청소기 회사에 기술을 빌려주고 사용료를 받는 방식, 그러니까 라이선스였어.
#50그 회사들에는 이미 공장이 있었어. 판매망도 있었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브랜드도 있었지.
#51다이슨은 기술을 만든다. 기존 회사가 생산해서 판다.
#52그게 훨씬 덜 위험한 선택이었어.
#53그래서 여러 제조업체를 찾아다녔지.
#54그런데 계약이 좀처럼 성사되지 않았어.
#55이유가 하나였던 건 아니야.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소비자들이 정말 원할지 의심한 회사도 있었고, 사업 전략이나 특허 문제처럼 다른 이유로 협상이 멈춘 경우도 있었어.
#56그리고 기존 청소기 회사에는 다이슨과 전혀 다른 사정도 하나 있었어.
#57먼지봉투 자체가 돈이 됐어.
#58청소기를 한 번 팔고 끝나는 게 아니었거든. 소비자는 쓰면서 교체용 먼지봉투를 계속 사야 했지.
#59훗날 다이슨과 후버 사이의 특허소송에서도, 교체용 봉투가 청소기 업체에 상당한 이익을 안겨주기 때문에 기존 기술을 바꿀 유인을 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전문가 증언이 다뤄졌어.
#60다이슨에게 먼지봉투는 없애야 할 문제였어.
#61기존 업체 입장에서는 이미 잘 팔리는 제품 구조의 일부이면서, 계속 매출을 만들어주는 상품이기도 했지.
#62그렇다고 모든 회사가 먼지봉투를 더 팔려고 일부러 다이슨을 막았다는 뜻은 아니야.
#63그보다 단순한 의문도 있었어.
#64지금 있는 청소기가 잘 팔리는데, 왜 굳이 전부 바꿔야 하지?
#65그 질문에 다이슨은 아직 결정적인 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어.
#66정작 소비자가 직접 선택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67그러다 일본에서 기회가 생겼어.
#68Apex라는 회사가 다이슨의 기술에 관심을 보였고, 다이슨은 일본으로 가서 제품을 다시 다듬었어.
#69그렇게 나온 청소기가 G-Force였어.
#70밝은 분홍색. 비싼 가격. 당시 흔히 보던 청소기와는 꽤 다른 모습이었지.
#71그런데 팔렸어.
#72디자인상도 받았고, 다이슨에게는 사용료 수입도 들어오기 시작했어.
#73물론 이걸로 모든 일이 풀린 건 아니야. 다이슨은 계약과 판매 방식에 불만이 있었고, 제품을 자기가 원하는 만큼 키울 수도 없었어.
#74그래도 이전과는 달라진 게 하나 있었지.
#75그전까지 그가 들었던 건 대부분 “사람들이 그런 청소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제조업체들의 예상이었어.
#76일본에서는 예상이 아니라 실제 소비자가 대답했어.
#77돈을 내고 샀거든.
#78먼지봉투 없는 사이클론 청소기도 상품이 될 수 있다는 첫 의미 있는 증거였어.
#79하지만 다이슨은 이후에도 계속 다른 회사에 라이선스를 주려고 했어.
#80시간은 또 흘렀지.
#81그러다 결국, 가장 피하고 싶었던 선택 앞에 서게 됐어.
#82다이슨은 제조업이 어떤 건지 모르는 발명가가 아니었어.
#83청소기보다 먼저 볼배로를 만들었거든. 평범한 바퀴 대신 커다란 공 모양의 볼을 달아서 부드러운 땅에서도 움직이기 쉽게 만든 손수레였어.
#84제품만 발명한 것도 아니야. 회사를 만들고 직접 생산해서 팔아봤어.
#85그런데 사업이 커지자 빚과 투자, 회사 운영 방향을 둘러싼 갈등이 생겼지.
#86결국 다이슨은 자신이 시작한 회사에서 밀려났어.
#87그러니 청소기에서는 같은 일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88기술을 만든다. 기존 업체에 라이선스한다. 생산과 판매는 그들에게 맡긴다. 자신은 다시 발명으로 돌아간다.
#89그런데 그 계획이 몇 년째 제대로 되지 않았어.
#90이제 선택지는 많지 않았지.
#91발명을 포기하거나. 누군가 받아줄 때까지 더 기다리거나.
#92아니면,
#93다시 직접 제조업자가 되는 거야.
#94다이슨은 마지막 쪽을 골랐어.
#95직접 청소기를 생산하려면 돈이 필요했어.
#96공장. 부품. 금형. 사람. 재고.
#97다이슨은 큰돈을 빌렸고 가족의 자산까지 위험에 놓이게 됐어.
#98그 결정에는 디어드리도 함께 들어가 있었지. 몇 년 전부터 먼지를 뒤집어쓰고 돌아온 남편의 실패담을 듣던 사람이었고, 시제품이 수천 개로 늘어나는 동안 미술을 가르쳐 생활비를 보태던 사람이었어.
#99이제는 대형 제조업체들도 선뜻 만들지 않겠다고 했던 청소기를 직접 생산하기 위해 집까지 위험에 걸 수 있는 서류 앞에 앉은 거야.
#100디어드리는 서명했어.
#1011993년.
#102다이슨의 첫 대량생산 청소기 DC01이 생산되기 시작했어.
#103몇 년 동안 다른 회사에 만들어달라고 들고 다니던 청소기를 이제는 자기 회사가 직접 만들게 된 거지.
#104그런데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끝이 아니었어.
#105이번에는 누가 팔아줄까?
#106판매점에는 이미 청소기가 가득했어. 후버도 있었고 일렉트로룩스도 있었어. 소비자가 이미 알고 있는 이름들이었지.
#107그중 하나를 빼고 처음 보는 다이슨을 넣어야 할 이유가 뭘까?
#108한 통신판매 카탈로그의 바이어도 비슷하게 물었어.
#109다이슨은 이런 취지로 답했지.
#110당신 카탈로그가 지루하기 때문이라고.
#111바이어는 다이슨을 꽤 건방지다고 생각했어.
#112그래도 제품을 받아줬어.
#113그 뒤로 판매처가 조금씩 생겨났지.
#114그리고 여기서 처음으로 제조업체가 아니라 소비자가 직접 선택하기 시작했어.
#115사람들은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샀어.
#116다이슨은 먼지도 감추지 않았지. 투명한 먼지통을 달아서 청소기가 빨아들인 걸 그대로 볼 수 있게 했어.
#117사람들이 자기 집에서 나온 먼지를 굳이 보고 싶어 하겠느냐는 걱정도 있었어. 그런데 오히려 그 투명한 통이 청소기가 실제로 무엇을 빨아들였는지 보여주는 증거처럼 작동했지.
#118DC01은 빠르게 팔렸어.
#119출시 후 약 18개월 만에 다이슨은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청소기가 됐어.
#120불과 몇 년 전에는 자기 청소기를 만들어줄 회사를 찾아다니고 있었잖아.
#121이제는 반대로 너무 많이 팔려서 생산시설을 늘려야 했어.
#122그리고 그다음에는 더 묘한 일이 벌어졌지.
#123처음 다이슨이 바라던 미래는 단순했어.
#124후버 같은 기존의 큰 청소기 회사가 자기 기술을 받아주는 것.
#125그거면 됐어.
#126하지만 그런 미래는 오지 않았지.
#127그래서 다이슨은 직접 회사를 만들었고, 직접 청소기를 생산했어. 소비자들이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사기 시작하자 기존 업체들도 이 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128그중 하나가 후버였어.
#129후버는 Triple Vortex를 내놓았어. 후버가 내놓은 첫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였지.
#130이번에는 다이슨이 후버를 찾아가 “제 기술을 써주세요”라고 부탁하지 않았어.
#131후버를 상대로 소송을 냈어.
#132Triple Vortex가 자기 사이클론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였지.
#1332000년 영국 법원은 다이슨의 특허가 유효하다고 판단했고, 후버의 해당 제품이 그 특허를 침해했다고 결론 내렸어.
#134후버는 오랫동안 청소기 산업을 상징하던 이름이었어. 다이슨이 예전에 자신의 발명을 받아주길 바랐던 것도 바로 그런 회사였지.
#135그런데 몇 년 뒤, 두 회사가 먼지봉투 없는 기술을 놓고 마주 앉은 곳은 라이선스 협상 테이블이 아니었어.
#136법정이었어.
#137처음 제임스 다이슨은 청소기 산업의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었어.
#138이 기술을 만들어달라고.
#139몇 년 뒤에는,
#140그 문 안에 있던 회사 중 하나가 다이슨이 시장에서 가능성을 증명한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 쪽으로 들어와 있었어.
#1411907년, 천식 때문에 먼지를 견디기 힘들던 60세 청소부 가 선풍기 모터와 회전 브러시, 먼지를 받을 천 주머니를 이어 휴대용 전기청소기를 만들었어.
#142기계는 작동했지만 사업은 돈이 부족해서 흔들렸지.
#143그 발명품을 사들여 사업으로 키운 사람은 윌리엄 후버였어.
#144그럼 한 가지가 이상해져.
#145청소기를 만든 사람은 스팽글러인데, 왜 영국에서는 다른 사람의 성인 Hoover가 결국 '청소기로 청소하다'라는 뜻의 동사까지 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