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던 상태 표시 앱을 세계적인 메신저로 바꾼 WhatsApp 공동창업자
아무도 쓰지 않던 WhatsApp은 어떻게 190억 달러짜리 회사가 됐을까?
#12014년 2월, 얀 쿰은 계약서 몇 장을 들고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의 낡은 건물 앞에 서 있었어. 상대는 Facebook. 발표될 인수 규모는 약 190억 달러였지.
#2그런데 안으로 들어가 회의실에 앉을 수는 없었어. 이미 사용하지 않는 옛 사회복지 사무소였거든. 책상도 없었지. 그래서 쿰은 건물 문에 계약서를 대고 서명했어.
#3이 장소가 낯설 리 없었어. 22년 전, 열여섯 살이던 쿰은 어머니와 함께 여기로 식료품 지원을 받으러 다녔거든.
#4다시 이곳에 가보자고 제안한 사람은 투자자 짐 괴츠였어. 쿰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아. 굳이 마음속까지 상상할 필요도 없고.
#5확실한 건 장면 자체야. 식료품 지원을 받으러 오던 소년이 같은 건물 앞에서, 자신이 만든 회사를 약 190억 달러에 넘기는 계약서에 서명하고 있었어.
#6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7쿰은 당시 소련에 속해 있던 우크라이나 키이우 근처에서 자랐어. 1992년, 열여섯 살에 어머니와 미국으로 이주했지. 아버지는 우크라이나에 남았어.
#8두 사람이 자리 잡은 곳은 마운틴뷰의 정부 지원 아파트였어. 어머니는 아이를 돌보는 일을 했고, 쿰은 식료품점 바닥을 쓸었어. 생활비가 부족해서 식료품 지원도 받았지.
#9미국으로 올 때 어머니가 짐에 넣은 것 중에는 소련제 공책 스무 권도 있었어. 미국에서 새 학용품을 사는 돈이라도 아끼려던 거야.
#10쿰은 열아홉 살 무렵까지 자기 컴퓨터조차 없었어. 그런데 십 대 후반부터 컴퓨터 네트워크에 빠져들었지.
#11돈을 아끼는 방법도 꽤 단순했어. 중고서점에서 네트워크 매뉴얼을 사서 읽은 다음 다시 반납하는 거였어. 그렇게 책으로 공부하다가 온라인 보안 커뮤니티 w00w00에도 들어갔어. 거기서는 다른 프로그래머와 보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만나 기술을 익혔지.
#12책. 온라인 커뮤니티. 그리고 실제 보안 업무.
#13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1997년, 쿰은 앞으로 오랫동안 자기 인생에 남게 될 사람을 만나게 돼.
#14당시 쿰은 Ernst & Young에서 보안 관련 일을 하고 있었어. 업무 때문에 Yahoo 시스템을 점검하러 갔다가 브라이언 액턴을 만났지.
#15둘은 꽤 잘 맞았어. 화려하게 사람을 상대하기보다 할 말을 바로 하는 쪽에 가까웠거든.
#16몇 달 뒤 쿰은 Yahoo의 인프라 엔지니어로 들어갔어. 대학도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수업 중에 Yahoo 공동창업자 데이비드 파일로에게 전화가 왔어. 서버에 문제가 생겼으니 회사로 와야 한다는 거였지. 결국 쿰은 대학을 그만두고 Yahoo 일에 집중했어.
#17그 무렵 개인적인 삶에서는 잃는 일이 계속됐어.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암에 걸렸어. 2000년에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지.
#18스물네 살에 부모를 모두 잃은 쿰에게 액턴이 손을 내밀었어. 자기 집으로 불렀고, 둘은 함께 스키를 타고 축구와 얼티밋 프리스비를 하며 시간을 보냈어.
#19아직 WhatsApp은 세상에 없었어.
#20둘은 공동창업자가 되기 전에 이미 친구였던 거야.
#212007년, 쿰과 액턴은 Yahoo를 떠났어. 남미를 여행하고 프리스비를 하며 쉬었지.
#22그리고 둘 다 Facebook에 지원했어.
#23둘 다 떨어졌어.
#24나중 일을 알고 보면 너무 깔끔한 복수극처럼 보이기도 해. 자신들을 채용하지 않은 Facebook에 몇 년 뒤 190억 달러를 내게 했으니까.
#25하지만 실제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지지 않아. 쿰이 Facebook에 복수하려고 WhatsApp을 만들었다는 근거는 없거든.
#26진짜 시작점은 2009년에 찾아왔어. 쿰이 iPhone을 산 거야.
#27그는 App Store를 보면서 휴대전화 앱을 중심으로 새로운 산업이 열리고 있다고 봤어. 그래서 자기도 앱 하나를 만들기로 했지.
#28다만 그 앱은 우리가 아는 WhatsApp과는 꽤 달랐어.
#29애초에 채팅 앱이 아니었거든.
#30쿰이 처음 생각한 건 연락처에 있는 사람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보여주는 서비스였어. 통화가 가능한지, 헬스장에 있는지, 배터리가 부족한지 같은 걸 이름 옆에 표시하는 거지.
#31친구 알렉스 피시먼과 아이디어를 이야기했고, 피시먼은 iPhone 개발자 이고르 솔로멘니코프를 소개해줬어.
#322009년 2월 24일, 자기 생일에 쿰은 WhatsApp Inc.를 등록했어.
#33이때 액턴은 아직 공동창업자가 아니었어.
#34몇 달 뒤 첫 WhatsApp이 나왔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어. 앱은 자꾸 멈췄고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어. 무엇보다 거의 아무도 쓰지 않았지.
#35쿰은 피시먼과 문제를 하나씩 찾아 고쳤어. 그때 메모에 사용한 게 어머니가 미국으로 가져왔던 소련제 공책 가운데 하나였어.
#36학용품 살 돈을 아끼려고 챙겨왔던 공책에, 이제 아들은 사람들이 거의 쓰지 않는 앱의 문제점을 적고 있었던 거야.
#37그렇다고 사용자가 갑자기 늘어난 건 아니었어.
#38결국 쿰은 지쳤지. 어느 날 프리스비를 마친 뒤 액턴에게 WhatsApp을 접고 취직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어.
#39액턴은 조금만 더 해보라고 했어. 몇 달만 더.
#40그 한마디 때문에 WhatsApp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 다만 쿰이 바로 그만두지 않게 한 건 맞아.
#41그리고 그 몇 달 사이, 쿰이 만들어낸 게 아닌 변화 하나가 찾아왔어.
#422009년 6월, Apple이 iPhone에 푸시 알림을 지원하기 시작했어. 앱을 열어놓지 않아도 새로운 일이 생기면 휴대전화에 알림을 띄울 수 있는 기능이야.
#43쿰은 WhatsApp에도 이 기능을 붙였어. 누군가 자기 상태를 바꾸면 연락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림이 가게 만든 거지.
#44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45피시먼 주변의 러시아어권 사용자들이 상태 칸에 이런 걸 적기 시작했어.
#46“늦잠 잤어.” “지금 가는 중.”
#47이건 더 이상 상태 표시가 아니었어. 상대에게 보내는 말이었지.
#48상태를 바꾸면 상대 휴대전화에 알림이 가니까, 사람들이 그 기능으로 서로 대화를 시작한 거야. 피시먼이 보기에도 어느 순간 이건 사실상 메신저가 되어 있었어.
#49쿰도 그걸 봤어. 산타클라라의 집에서 Mac Mini 화면을 보고 있는데 사용자들의 상태가 계속 바뀌고 있었거든.
#50자기가 생각한 제품과 사람들이 원하는 제품이 달랐던 거야.
#51여기서 쿰은 사용자에게 원래 용도대로 쓰라고 하지 않았어.
#52자기 아이디어를 바꿨어.
#53WhatsApp에 제대로 된 메시지 기능을 넣었지.
#54지금 우리가 아는 WhatsApp은 사실 그때부터 시작된 셈이야.
#55메시지만 넣은 건 아니었어.
#56당시 인터넷 서비스는 새 사용자 이름과 비밀번호를 만들고, 그 안에서 친구를 다시 찾아 추가하는 경우가 많았어. 쿰은 그 과정 자체를 없애고 싶어 했지.
#57전화번호를 계정처럼 사용하면 됐어. 휴대전화 주소록에는 이미 아는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들어 있었고.
#58굳이 새로운 친구 목록을 처음부터 만들 필요가 없었던 거야.
#59쿰 자신도 Skype 같은 서비스의 사용자 이름과 비밀번호를 기억하는 걸 귀찮아했어. WhatsApp은 사용자가 시스템을 공부해야 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가능한 한 그냥 되는 서비스를 지향했지.
#60메시징으로 방향을 바꾼 뒤 사용자가 빠르게 늘기 시작했어.
#61그제야 쿰은 다시 액턴을 찾아갔어.
#62두 사람은 액턴의 집 부엌 테이블에 앉아 WhatsApp으로 서로 메시지를 보내봤어.
#63액턴은 가능성을 봤지.
#64그는 Yahoo 시절 친구 다섯 명을 설득해서 모두 25만 달러를 투자받았고, 자신도 WhatsApp에 본격적으로 합류했어.
#65몇 달 전에는 액턴이 쿰에게 조금만 더 버텨보라고 했지. 이번에는 살아나기 시작한 WhatsApp이 액턴을 끌어들인 거야.
#66그렇게 둘은 회사를 키웠어.
#67그런데 당시 빠르게 성장하는 인터넷 서비스라면 거의 당연해 보이던 선택 하나를 거부했어.
#68광고였어.
#69쿰의 책상에는 액턴이 손으로 쓴 메모가 붙어 있었어.
#70No Ads! No Games! No Gimmicks!
#71광고도, 게임도, 눈속임도 하지 말자는 거였어.
#72두 사람이 광고 사업을 몰랐던 건 아니야. 오히려 Yahoo에서 오랫동안 광고 사업이 돌아가는 모습을 안쪽에서 봤지.
#73그들이 싫어한 건 단순히 화면에 광고가 뜨는 모습만이 아니었어. 광고를 더 정확하게 보여주려면 사용자가 누구인지, 뭘 좋아하는지, 뭘 하는지 더 많이 알아야 해. 그러다 보면 엔지니어의 관심도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일에서 데이터 수집과 광고 최적화 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봤어.
#74쿰에게는 개인적인 배경도 있었어. 소련에서 자라면서 개인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엿들리고 기록될 수 있다는 감각을 경험했거든.
#75그래서 WhatsApp은 사용자에 대해 가능한 한 적게 알려고 했어. 광고 대신 사용자가 작은 이용료를 직접 내는 방식도 택했지.
#76서비스를 쓰는 사람이 고객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
#77그런데 광고 없이도 WhatsApp은 계속 커졌어.
#78그리고 어느 순간, 한 회사가 쿰에게 계속 연락하기 시작했지.
#79Facebook이었어.
#80마크 저커버그는 2012년부터 쿰에게 접근하기 시작했어. 둘은 만나고,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눴지. 갑자기 2014년에 거대한 제안서 한 장이 날아온 게 아니었어. 관계는 거의 2년에 걸쳐 이어졌어.
#81몇 년 전 Facebook은 쿰과 액턴을 직원으로 뽑지 않았어.
#82이제 Facebook이 갖고 싶어 한 건 두 사람의 이력서가 아니었지.
#83두 사람이 만든 네트워크였어.
#842014년 2월, 저커버그의 집에서 협상이 마지막 단계로 들어갔어. Facebook이 내놓은 거래는 발표 기준 약 190억 달러 규모였고, 쿰이 중요하게 여긴 WhatsApp의 독립성에 관한 조건도 논의됐어.
#85받아들일 만한 조건이 나왔어.
#86그래도 쿰은 바로 결정하지 않았지.
#87액턴에게 전화했어.
#88조건을 이야기하고 거래를 진행해도 될지 물었어. 액턴은 저커버그와 함께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찬성했지.
#89쿰은 다시 저커버그에게 돌아갔어. 두 사람은 악수했고, 포옹했어.
#905년 전 쿰은 WhatsApp을 그만둘지 액턴에게 이야기했어.
#91이번에는 WhatsApp을 팔지 같은 사람에게 물었던 거야.
#92계약 서류가 준비되자 짐 괴츠가 한 장소에 가보자고 했어.
#93101 Moffett Boulevard. WhatsApp 사무실에서 두 블록쯤 떨어진 곳이었어.
#94쿰과 액턴, 괴츠가 함께 갔지. 예전 사회복지 사무소는 이미 사라지고 건물은 비어 있었어.
#95하지만 쿰은 그 주소를 알고 있었어.
#961992년, 미국에 막 도착한 열여섯 살 소년이 어머니와 식료품 지원을 받으러 오던 곳이었으니까.
#97책상은 없었어. 그래서 쿰은 문에 계약서를 대고 서명했어.
#98서명을 마친 세 사람은 다시 WhatsApp 사무실로 돌아갔어. 쿰은 회사 단체 채팅방으로 직원들을 불러 모은 뒤 Facebook과 합치게 됐다고 알렸지. 잠시 뒤 저커버그도 들어와 직원들에게 이야기했어.
#99그리고 쿰은 다시 일하러 갔어.
#100뒤에서 보면 모든 일이 처음부터 이곳을 향해 움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해.
#101실제로는 아니었어.
#102처음 만든 WhatsApp은 메신저조차 아니었고, 거의 아무도 쓰지 않았어. 쿰은 그만두려고 했지. 그러다 사람들이 자기 제품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쓰는 걸 발견했어.
#103그때 쿰이 한 건 정답을 지켜내는 일이 아니었어.
#104자기가 처음 생각한 답을 버리는 일이었지.
#105Facebook에 인수된 뒤에도 WhatsApp은 계속 커졌어. 개인 메시지와 통화에는 종단간 암호화가 기본으로 적용됐어.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만 내용을 읽을 수 있게 하는 방식이지.
#106하지만 사용자 데이터와 WhatsApp을 어떻게 돈 버는 서비스로 만들지를 두고 창업자들과 Facebook 사이의 긴장도 커졌어.
#107액턴은 2017년에 떠났고, 쿰도 2018년에 회사를 떠났어.
#108그리고 2025년, Meta는 WhatsApp의 Status와 Channels가 모여 있는 Updates 영역에 광고를 도입했어. 개인 채팅 안에 광고를 넣은 건 아니고, 개인 메시지와 통화의 종단간 암호화도 유지됐지.
#109그래도 쿰의 책상에 붙어 있던 문장은 더 이상 문자 그대로의 현실은 아니게 됐어.
#110No Ads! No Games! No Gimmicks!
#111그 문구가 붙어 있던 작은 회사는 사라졌고, WhatsApp은 수십억 명이 쓰는 서비스가 됐어.
#112하지만 2014년의 그날로 돌아가면 장면은 훨씬 조용해.
#113빈 건물. 책상도 없는 입구. 그리고 문에 계약서를 대고 서명하는 쿰.
#114스물두 해 전에는 어머니와 식료품 지원을 받으러 왔던 바로 그곳이었어.
#115이번에는 다른 서류를 들고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