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선량한 남자에서 분노와 집착까지 연기하게 된 배우
오스카를 받은 지미 스튜어트는 왜 전쟁터로 사라졌을까
#11941년, 지미 스튜어트는 배우라면 누구나 꿈꿀 만한 자리에 올라 있었어.
#2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화사에서는 이 키 크고 마른 남자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지. 말할 때는 자꾸 머뭇거렸고, 긴 팔다리는 화면 안에서 어딘가 어색해 보였거든. 그런데 바로 그 어색함이 어느 순간 그의 가장 큰 무기가 됐어.
#3"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에서 스튜어트는 정치에 익숙하지 않은 순진한 남자를 연기했어. 말끔하게 준비된 영웅이 아니라서 오히려 믿음이 갔지. 그리고 "필라델피아 스토리"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받았어.
#4이제 할리우드 정상에 올라선 셈이었어.
#5그런데 그때 스튜어트가 경력을 멈췄어. 군에 입대한 거야.
#6유명 배우가 군에 가는 것 자체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어. 클라크 게이블도 갔고, 오랜 친구 헨리 폰다도 갔으니까. 스튜어트에게 조금 특이했던 건 그다음이었어.
#7유명 스타라면 군에서도 쓸 곳이 많았어. 조종사를 훈련할 수도 있고, 홍보나 전쟁 채권 캠페인에 나갈 수도 있었지. 실제로 스튜어트도 처음에는 그런 일을 했어.
#8그런데 그는 거기에 남으려 하지 않았어.
#9전투부대로 보내달라고 계속 요구했지.
#10오스카까지 받은 배우가 왜 굳이 죽을 수도 있는 폭격 임무로 들어가려 했을까?
#11이 얘기는 할리우드보다 훨씬 전,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철물점에서 시작돼.
#12스튜어트의 아버지 알렉산더 스튜어트는 펜실베이니아주 인디애나에서 철물점을 운영했어. 지미는 외아들이었고, 가족이 생각하기에 앞으로의 길도 꽤 자연스러웠지.
#13프린스턴대학교에 가고, 졸업하고, 안정적인 일을 얻는다. 필요하면 집으로 돌아와 가업과도 이어질 수 있었어.
#14대학 전공도 연극이 아니라 건축이었고.
#15그런데 졸업할 무렵 미국은 대공황 한가운데였어. 젊은 건축학도가 일자리를 구하기 좋은 시절은 아니었지. 그때 친구 조슈아 로건이 케이프코드의 여름 극단으로 와보라고 했어.
#16거창한 데뷔 제안 같은 건 아니었어. 스튜어트의 기억에 따르면 아코디언도 가져오라고 했대. 파티에서 연주하면 쓸모가 있을 거라는 얘기였지.
#17그렇게 건축학도였던 스튜어트가 University Players라는 극단으로 들어갔어. 그곳에서 아직 유명해지기 전의 헨리 폰다와 마거릿 설러번도 만났고.
#18여름이 끝나자 진짜 선택을 해야 했어.
#19집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배우 생활을 계속해볼까.
#20스튜어트는 가족에게 브로드웨이로 가겠다고 말했어. 훗날 그는 그 말을 들은 가족들이 모두 앉을 의자를 찾는 것 같았다고 농담했지.
#21프린스턴에서 건축을 공부시킨 외아들이 돌아와서는 철물점을 잇는 대신 배우가 되겠다고 한 거야.
#22그리고 뉴욕으로 갔어.
#23문제는,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해서 배우 일이 잘 풀리는 건 아니었다는 거지.
#24뉴욕에서 스튜어트는 헨리 폰다와 무명 배우 시절을 함께 보냈어. 역할을 구해도 작품이 오래가지 않았고, 자신이 들어가는 연극마다 문을 닫는 것 같았다고 훗날 농담할 정도였어.
#25할리우드에서도 첫 시도는 잘되지 않았어. 스크린 테스트를 받았지만 바로 계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
#26그래서 다시 펜실베이니아로 돌아왔어.
#27배우가 되겠다고 떠났던 아들이 아버지 철물점에서 다시 일을 돕고 있었던 거야.
#28그때 전화가 걸려왔어.
#29MGM이었어.
#30이번에는 계약이 나왔지. 스튜어트는 다시 할리우드로 갔어.
#31그런데 계약을 해놓고도 MGM은 고민했어.
#32이 남자를 어디에 써야 하지?
#33스튜어트 자신도 초창기 영화를 보고 비슷한 생각을 했어. 너무 마르고, 긴 팔과 다리만 화면에서 덜렁거리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거든.
#34그러던 시기에 마거릿 설러번이 다시 나타났어. 그녀는 "Next Time We Love"에서 스튜어트를 상대역으로 원했고, 아직 카메라 연기에 익숙하지 않았던 그가 영화에 맞는 움직임과 말투를 익히도록 도왔어.
#35그리고 또 한 사람이 스튜어트의 이상한 점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어.
#36프랭크 카프라였지.
#37카프라는 스튜어트의 어색함을 고치려 하지 않았어.
#38느린 말투. 감정이 올라오면 높아지는 목소리. 완벽한 영웅처럼 보이지 않는 평범한 인상.
#39그걸 그대로 썼지.
#40"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의 제퍼슨 스미스는 노련한 정치인이 아니야. 순진하고 서툴러. 그래서 부패한 권력과 맞설 때 그의 미숙함이 오히려 진심처럼 보였어.
#41한때 영화사가 어디에 써야 할지 몰랐던 특징이 이제는 관객이 그를 믿는 이유가 된 거야.
#42그리고 1941년, 스튜어트는 "필라델피아 스토리"로 오스카를 받았어.
#43철물점집 아들이 할리우드 정상에 도착한 순간이었지.
#44그런데 바로 그때 군복을 입었어.
#45스튜어트는 원래부터 비행을 할 줄 알았어. 군에 들어가기 전부터 민간 조종사로 꽤 많은 비행 경험을 쌓아둔 상태였지.
#46군에서도 그 경험은 쓸모가 있었어. 조종사를 가르쳤고, 유명 배우라는 점 때문에 홍보 임무에도 투입됐어.
#47그 일들이 가짜 군 복무였던 건 아니야. 전쟁에는 조종사를 훈련하는 사람도 필요했고, 대중의 참여를 끌어낼 유명인도 필요했으니까.
#48그런데 스튜어트는 계속 전투 임무를 원했어.
#49결국 1943년 영국으로 갔고, B-24 리버레이터 폭격기 부대를 지휘하게 됐어.
#50여기서는 영화처럼 다시 찍을 수가 없었어.
#51폭격기는 독일 상공으로 날아갔고, 대공포와 전투기가 기다리고 있었지. 출발한 비행기가 돌아오지 않는 일도 있었어.
#52독일 고타를 공격한 임무에서는 스튜어트가 탄 B-24도 대공포에 맞았어. 기체가 손상됐고, 그의 발 근처 바닥에도 큰 구멍이 뚫렸지.
#53그래도 돌아와야 했어.
#54더구나 그는 자기 목숨만 챙기면 되는 조종사도 아니었어. 지휘관이었거든. 편대의 비행기 한 대 한 대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고, 돌아오지 않는 비행기는 곧 돌아오지 않는 승무원을 뜻했어.
#55스튜어트는 유럽에서 모두 20회의 전투 임무를 수행했어.
#56그리고 살아서 돌아왔지.
#57그런데 이상하게도, 전쟁 전보다 더 쉬워 보여야 할 일이 이제 어려워졌어.
#58다시 배우가 되는 일이었어.
#59전쟁 전의 스튜어트는 오스카 배우였어. 하지만 몇 년이나 할리우드를 떠나 있었고, 그 사이 영화산업도 계속 움직였지.
#60스튜어트는 자신이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해했어. 전쟁에서 겪은 일들과 비교하면 연기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회의를 느꼈다는 회고도 남겼고.
#61그 무렵 곁에 있던 사람이 헨리 폰다였어.
#62둘은 무명 배우일 때부터 친구였고, 둘 다 스타가 됐고, 둘 다 전쟁에 갔다가 돌아왔어.
#63그렇다고 만나서 매번 전쟁 이야기를 한 건 아니야.
#64같이 연을 날렸어. 모형 비행기를 만들기도 했고.
#65스튜어트는 폰다가 가끔 배우로서의 자신을 안심시켜준 게 도움이 됐다고 기억했어.
#66그 시기에 카프라가 새 영화를 가져왔어.
#67"멋진 인생"이었지.
#68스튜어트가 연기한 조지 베일리는 평생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자기가 원하던 삶을 미뤄온 사람이야.
#69그러다 어느 날 돈이 사라지고 모든 게 무너지지. 감옥에 갈지도 모르고, 가족에게 화를 내고, 살아온 인생 전체가 실패처럼 느껴져.
#70결국 술집에 앉아 기도해.
#71스튜어트는 나중에 이 장면을 연기하다 예상하지 못한 진짜 감정이 올라왔다고 말했어.
#72여기서 곧장 "전쟁 경험 때문에 그렇게 연기했다"고 말하면 이야기는 깔끔해져. 하지만 확인된 사실은 거기까지 가지 않아. 스튜어트 자신도 그런 단순한 인과를 남긴 건 아니고.
#73다만 조지 베일리가 전쟁 전의 스튜어트가 연기하던 인물들보다 훨씬 깊이 무너지는 사람이라는 건 분명해.
#74지금 보면 "멋진 인생"은 완벽한 복귀작처럼 느껴지지.
#75당시에는 아니었어.
#76높은 제작비와 기대만큼 상업적으로 성과를 내지 못했고, 스튜어트는 자기가 관객을 잃은 게 아닐까 걱정했어.
#77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기억하는 ‘성공적인 귀환’은 당시 스튜어트에게는 아직 성공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던 거야.
#78그런데 바로 그때, 할리우드 쪽에서도 판이 바뀌고 있었어.
#79전쟁 전 MGM 시절에는 스튜디오가 배우와 장기 계약을 맺고 역할을 정했어. 배우는 회사가 만든 시스템 안에서 움직였지.
#80전쟁 뒤에는 그 구조가 조금씩 약해졌고, 스튜어트도 예전 같은 MGM 전속 배우가 아니었어.
#81이때 에이전트 루 와서먼이 색다른 계약을 만들었어.
#82유니버설이 스튜어트에게 큰 고정 출연료를 주기 어렵다면, 영화가 성공했을 때 수익의 일부를 나누자는 방식이었지.
#83그 흐름에서 나온 중요한 작품이 "윈체스터 73"이야.
#84이게 할리우드 최초의 수익배분 계약이었던 건 아니야. 이미 비슷한 선례는 있었어.
#85하지만 스튜어트에게는 큰 변화였지.
#86영화가 성공하면 돈을 더 버는 것만이 아니었어. 작품과 파트너를 선택하는 힘도 커졌거든.
#87예전에는 MGM이 ‘지미 스튜어트를 어디에 써야 할까’를 고민했어.
#88이제는 스튜어트가 ‘어떤 지미 스튜어트를 보여줄까’를 훨씬 더 많이 선택할 수 있게 된 거야.
#89그리고 그 선택권을 가진 뒤 만난 감독 가운데 한 사람이 앤서니 맨이었어.
#90맨은 사람들이 익숙하게 봐온 스튜어트의 얼굴에서 다른 걸 봤지.
#91분노였어.
#92"윈체스터 73"의 린 맥애덤은 제퍼슨 스미스 같은 사람이 아니야.
#93한 남자를 집요하게 쫓고, 복수에 매달리고, 화를 내고, 폭력을 써.
#94그런데 얼굴은 여전히 지미 스튜어트였어.
#95바로 그게 강했지.
#96관객이 오랫동안 믿어온 친근한 남자가 분노하니까, 그 분노가 더 거칠게 느껴졌어.
#97이건 한 번의 실험으로 끝나지 않았어. 스튜어트와 맨은 "Bend of the River", "The Naked Spur", "The Far Country", "The Man from Laramie" 같은 서부극을 계속 만들었어.
#98그 안에서 스튜어트는 의심했고, 복수했고, 돈에 흔들렸고, 폭력적인 순간도 보여줬지.
#99그렇다고 예전의 스튜어트가 사라진 건 아니야.
#100같은 1950년에는 "하비"에도 나왔거든. 여기서는 아무도 볼 수 없는 거대한 토끼를 가장 친한 친구로 여기는 온화한 남자를 연기했어.
#101한쪽에는 복수심에 사로잡힌 총잡이. 다른 쪽에는 보이지 않는 토끼와 친구인 남자.
#102둘 다 지미 스튜어트였어.
#103그가 어두운 배우로 바뀐 게 아니야.
#104배우로서 들어갈 수 있는 방이 더 많아진 거지.
#105그리고 앨프리드 히치콕은 그중에서도 꽤 불편한 방의 문을 열었어.
#106"이창"에서 스튜어트는 다리가 부러져 집에 갇힌 사진작가 제프리를 연기해.
#107심심해진 그는 창밖을 보기 시작하지. 건너편 사람들의 집을 보고, 생활을 관찰하고, 결국 한 남자가 아내를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해.
#108문제는 제프리가 하는 일 자체가 썩 떳떳하지 않다는 거야.
#109남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있으니까.
#110그런데 관객도 같이 봐.
#111왜냐하면 보고 있는 사람이 지미 스튜어트거든.
#112오랫동안 믿을 만한 사람을 연기해온 그가 저쪽 창문을 보니까, 관객도 자연스럽게 따라보게 돼.
#113히치콕은 스튜어트의 친근함을 없애지 않았어.
#114그 친근함을 이용한 거야.
#115"현기증"에서는 더 멀리 갔어.
#116스튜어트가 연기한 스코티는 매들린이라는 여성에게 집착해. 그녀가 죽은 뒤에는 매들린과 닮은 주디를 만나지.
#117그런데 주디를 그대로 사랑하지 않아.
#118죽은 매들린처럼 바꾸려고 해.
#119옷. 머리. 색.
#120살아 있는 사람을 자기가 잃어버린 이미지에 맞춰 다시 만들려는 거야.
#121"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에서 아무 의심 없이 믿었던 얼굴이 이제는 집착과 통제의 얼굴이 됐어.
#122그런데도 관객은 그를 따라가.
#123스튜어트의 가장 강한 무기는 사실 한 번도 사라지지 않았던 셈이야.
#124사람들이 그를 믿는다는 것.
#125달라진 건, 그 믿음을 얼마나 불편한 곳까지 끌고 갈 수 있느냐였지.
#126스튜어트의 대표작 가운데 몇 편은 촬영이 끝난 뒤에도 이상한 삶을 살았어.
#127"멋진 인생"은 개봉 당시 기대만큼 흥행하지 못했지만, 훗날 복잡한 저작권 사정 때문에 TV에서 반복해서 방송되기 쉬운 시기가 생겼어.
#128크리스마스마다 사람들이 다시 보기 시작했지.
#129그 반복이 쌓이면서 조지 베일리는 오래된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라 미국의 크리스마스 문화에 붙어 있는 인물이 됐어.
#130"현기증"은 다른 방식으로 뒤늦게 커졌어.
#1311958년 처음 나왔을 때부터 호평만 받은 영화는 아니었고, 지금 같은 압도적인 지위를 바로 얻은 것도 아니야.
#132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비평가들이 계속 다시 봤어.
#133평가가 올라갔고, 결국 세계 최고의 영화를 꼽는 주요 비평가 투표에서 1위에 오를 정도가 됐지.
#134스튜어트는 영화를 찍고 끝낼 수 있었어.
#135하지만 그 영화가 몇십 년 뒤 무엇이 될지는 끝낼 수 없었던 거야.
#136그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믿을 만한 미국인’의 얼굴로 기억했어.
#137이상하지.
#138바로 그 믿음 때문에 그의 분노도, 엿보기에도, 집착에도 더 힘이 생겼으니까.
#139스튜어트는 1997년에 세상을 떠났어.
#140그리고 그가 죽은 뒤 가족은 아버지가 거의 이야기하지 않던 시간을 다시 만나게 됐어.
#141전쟁이었지.
#142딸 켈리 스튜어트-하코트에 따르면 스튜어트는 집에서 2차 세계대전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어. 그런데 사후에 가족이 그가 직접 쓴 전쟁 일기와 비행 기록을 발견했어.
#143거기에는 두려움도 있었고, 불확실함도 있었고, 전쟁 속에서 겪던 어려움도 남아 있었어.
#144그리고 뜻밖에도 아버지가 다시 등장했어.
#145켈리에 따르면 그 기록에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 하는 스튜어트의 마음도 드러나 있었지.
#146그러고 나면 오래전 펜실베이니아의 철물점이 다시 보여.
#147아버지 알렉산더는 프린스턴을 졸업한 외아들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어.
#148아들은 정말 돌아왔지.
#149그런데 집에 와서는 배우가 되겠다고 했어.
#150그리고 떠났어.
#151브로드웨이로 갔고, 할리우드로 갔고, 오스카를 받았고, 전쟁터로 갔고, 폭격기를 지휘했고, 살아 돌아왔어.
#152다시 배우가 된 뒤에는 사람들이 알고 있던 자기 얼굴의 반대편까지 연기했지.
#153그런데 그 모든 일이 끝난 뒤 발견된 손글씨 속에는 훨씬 오래전부터 있던 사람이 남아 있었어.
#154아버지의 철물점을 떠난 아들.
#155그래도 여전히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