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카폰다에서 자라 10대에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의 핵심으로 올라선 축구선수
상대는 너무 크고, 너는 너무 작잖아
#12023년 4월 29일, 캄노우.
#2라민 야말은 바르셀로나 벤치에 앉아 있었어. 나이는 15살. 아직 성인 선수라기보다 학교에 다닐 나이였지.
#3처음 1군 경기 명단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 셰일라 에바나에게 했을 때, 어머니가 먼저 본 건 아들의 재능이 아니었어.
#4몸집이었어.
#5상대 선수들은 저렇게 큰데, 너는 너무 작지 않느냐고 걱정했지.
#6야말은 괜찮다고 했어. 자기가 뛰게 되면 잘할 거라고.
#7그날 상대는 레알 베티스였어. 바르셀로나가 3-0으로 앞서기 시작하자 야말은 벤치에서 생각했어.
#8오늘이구나.
#9사비 에르난데스가 그를 불렀고, 야말은 15세 9개월 16일의 나이로 그라운드에 들어갔어.
#10막상 들어가니 자신만만했던 말과는 조금 달랐어. 관중의 함성이 너무 커서 귀가 먹먹해지는 것 같았고, 짧게 뛰었을 뿐인데 다리는 한 시간을 뛴 것처럼 피곤했어.
#11그래도 수비수를 향해 달려들었어. 슈팅도 했고, 동료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패스도 찔러 넣었지.
#12경기가 끝난 뒤에는 부모와 저녁을 먹었어.
#13그리고 다시 라 마시아로 돌아갔어.
#14조금 전까지 수만 명 앞에서 바르셀로나 역사에 남을 데뷔전을 치른 아이가 다시 유소년 선수들이 생활하는 곳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운 거야.
#15잠은 오지 않았어.
#16그런데 이상하지.
#17바르셀로나는 왜 이렇게 어린 아이를 성인 선수들 사이에 넣을 생각을 했을까?
#18그 답을 찾으려면 캄노우가 아니라 작은 동네 운동장으로 돌아가야 해.
#19야말의 아버지 무니르 나스라위는 모로코 출신이고, 어머니 셰일라는 적도기니 출신이야.
#20부모가 헤어진 뒤 야말의 어린 시절은 한 장소에만 있지 않았어. 아버지와 가족이 있는 마타로의 로카폰다와 어머니가 살던 그라놀례르스를 오갔지.
#21처음 축구를 배운 곳도 바르셀로나가 아니었어.
#22그라놀례르스의 작은 지역 클럽 CF 라 토레타였어.
#23가족이 야말을 훈련에 데려다주기 어려운 날이면 클럽 사람이 직접 차로 데리러 가기도 했어. 그러니까 세계 최고의 유소년 시스템이 야말을 키우기 전에, 우선 이 아이가 계속 운동장에 올 수 있게 해준 사람들이 있었던 거야.
#24그리고 운동장에만 풀어놓으면 문제가 하나 생겼어.
#25공을 안 줬어.
#26어린 야말은 공을 잡으면 자기가 계속 몰고 갔어. 한 명을 제치고, 또 한 명을 제치고, 골까지 직접 넣으려고 했지.
#27첫 코치였던 레오 지오르다넬라는 결국 이 특별한 아이를 벤치에 앉히기도 했어.
#28못해서가 아니야.
#29너무 혼자 해서.
#30야말에게 필요했던 첫 번째 큰 축구 수업은 더 화려하게 드리블하는 법이 아니었어.
#31공을 동료에게 넘기는 법이었지.
#32로카폰다에서는 또 다른 축구를 배웠어.
#33야말이 11~12살 정도였을 때 함께 공을 차는 사람들 중에는 스무 살 가까운 형들도 있었어.
#34정면으로 부딪치면 답이 없었겠지.
#35그러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어.
#36상대가 다가오기 전에 방향을 틀고, 빈 공간으로 빠지고, 공을 빼앗기지 않으면서 몸싸움도 피해야 했어.
#37야말은 훗날 그 경험 덕분에 큰 선수들을 상대하는 두려움이 줄었다고 이야기했어.
#38물론 로카폰다의 거리축구 하나가 지금의 야말을 전부 만들었다고 할 수는 없어.
#39라 토레타에서는 혼자 하던 축구에 패스를 더했고, 바르셀로나에서는 언제 빠르게 공격하고 언제 기다려야 하는지를 배웠으니까.
#40야말의 본능을 없앤 게 아니었어.
#41그 본능을 언제 꺼내야 하는지 배우기 시작한 거야.
#42야말의 재능은 오래 숨어 있지 않았어.
#43에스파뇰에서도 테스트를 받았지만, 2014년 일곱 살의 야말이 선택한 곳은 바르셀로나였어.
#44여기서 한 가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어.
#45흔히 “일곱 살에 라 마시아에 들어갔다”고 말하지만, 일곱 살부터 곧바로 라 마시아 기숙사에서 살았다는 뜻은 아니야. 먼저 바르셀로나 유소년 시스템에 합류해 연령별 팀을 밟아 올라갔어.
#46그런데 속도가 빨랐어.
#47자기 나이보다 높은 단계로 계속 올라갔지.
#48그렇다고 모든 문이 자동으로 열린 건 아니었어.
#4915살에 U-19 팀인 후베닐 A까지 올라갔을 때는 오히려 경기를 거의 뛰지 못하는 시기가 있었어. 자기보다 서너 살 많은 선수들과 경쟁해야 했고, 그 팀에서도 자리를 얻어야 했지.
#50그러던 어느 날 1군 쪽 훈련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어.
#51야말은 연습경기에서 골을 넣고 도움도 만들었어.
#52그걸 본 사비의 형이자 당시 코칭스태프였던 오스카르 에르난데스가 물었어.
#53“너는 어떻게 경기를 못 뛰고 있지?”
#54야말의 대답은 짧았어.
#55자기도 모르겠다고.
#56그 뒤 야말은 후베닐에서 조금씩 더 뛰기 시작했고, 동시에 1군 훈련에도 불려갔어.
#57그러니까 사비가 아무도 모르던 천재를 어느 날 갑자기 발견한 이야기는 아니야.
#58라 토레타에서 시작해 바르셀로나 유소년 지도자들을 거치고, 여러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이 아이를 연결해왔어.
#59사비가 한 결정은 마지막 문에서 특히 컸어.
#60정말 15살을 성인 경기장에 넣을 것인가.
#61그는 넣었어.
#62그래서 이야기는 다시 2023년 4월 29일의 캄노우로 돌아와.
#63어머니가 너무 작다고 걱정했던 아이가 들어가자마자 성인 수비수를 향해 달려들던 그날로.
#64그 뒤부터 시간은 이상할 정도로 빨라져.
#65바르셀로나에 데뷔한 지 다섯 달도 지나지 않은 2023년 9월, 야말은 스페인 성인 대표팀에 데뷔했어.
#6616세 57일.
#67그리고 데뷔전에서 골까지 넣었지.
#68다음 해에는 유로 2024 대표팀에 들어갔어.
#69여기까지만 들으면 이미 완성된 프로 선수의 이야기 같아.
#70그런데 대표팀 숙소에 들어간 야말에게는 해결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었어.
#71학교 숙제.
#72야말은 아직 중등교육 과정을 마치지 않은 학생이었어. 방에서 할 일이 없으면 iPad를 꺼내 과제를 했지.
#73그러면 아래층에서 니코 윌리암스와 페르민 로페스가 PlayStation을 하자고 불렀어.
#74숙제를 하던 16살은 내려가 형들과 게임을 했고, 며칠 뒤에는 유럽 최고의 수비수들을 상대하러 경기장에 나갔어.
#75크로아티아전에서는 유로 역사상 가장 어린 출전 선수가 됐어.
#76프랑스와의 준결승에서는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지.
#77스페인이 0-1로 뒤지고 있을 때 야말이 페널티 지역 바깥에서 왼발로 공을 감아 찼어.
#78공은 골대 안쪽을 맞고 들어갔어.
#7916세 362일.
#80유로 역사상 최연소 득점이었어.
#81그런데 그 대회 도중 학교 시험 결과도 나왔어.
#82야말은 휴대전화로 결과를 확인했어.
#83합격.
#84그리고 가장 먼저 어머니에게 전화했어.
#85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인 선수들이 너무 크다며 걱정하던 그 어머니에게.
#86유로 결승 상대는 잉글랜드였어.
#87후반 시작 직후 야말이 오른쪽에서 공을 잡았어.
#88안으로 들어오던 야말의 시야 반대편에서 니코 윌리암스가 달려오고 있었지.
#89야말이 패스했어.
#90니코가 넣었어.
#91대표팀 숙소에서 야말에게 게임하자고 방문을 두드리던 형이, 유로 결승에서는 야말의 패스를 받아 선제골을 넣은 거야.
#92스페인은 2-1로 이겼고 유럽 챔피언이 됐어.
#93야말은 대회 최우수 영플레이어로 선정됐지.
#94이쯤이면 아름답게 끝낼 수도 있었어.
#9516살 학생이 숙제를 하면서 유로를 우승했다.
#96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엔딩 자막을 기다려주지 않았어.
#972024년 8월 14일.
#98아버지 무니르가 마타로에서 흉기에 찔렸어.
#99중상을 입고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지.
#100야말은 이제 너무 유명한 사람이 되어 있었어. 병원으로 곧장 달려가면 언론과 사람들이 몰려 상황이 더 복잡해질 수 있었어.
#101그래서 먼저 아버지와 전화로 이야기했어.
#102그리고 다음 날 아침.
#103야말은 바르셀로나 훈련장에 나타났어.
#104팀과 함께 훈련을 마친 뒤 병원으로 가 아버지를 만났지.
#105이 사건이 야말을 더 강한 선수로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 그런 건 알 수 없으니까.
#106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어.
#107세계적인 스타가 된다는 건 가족에게 위기가 생겼을 때 병원에 가는 방식까지 달라질 만큼 큰 변화였어.
#108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곳은 야말의 이야기에서 계속 등장하던 바로 그 지역이었어.
#109로카폰다.
#110로카폰다의 우편번호는 08304야.
#111야말은 골을 넣으면 손가락으로 마지막 세 숫자를 만들어 보이곤 해.
#112304.
#113어릴 때 자기보다 훨씬 큰 형들과 공을 차던 곳.
#114아버지와 가족이 살던 곳.
#115친할머니가 모로코에서 스페인으로 건너와 가족의 기반을 만들었던 곳.
#116그리고 이제는 아버지가 공격당한 기억까지 생긴 곳.
#117로카폰다는 성공하기 위해 지워야 할 과거가 아니었어.
#118그렇다고 좋은 기억만 모인 아름다운 고향도 아니었지.
#119그런데 야말은 세계적인 경기장에서 골을 넣고도 계속 그 숫자를 손으로 만들었어.
#120유로 우승 뒤 야말에게 붙는 질문은 달라졌어.
#12115살 때는 바르셀로나 1군에서 뛸 수 있느냐가 문제였어.
#122이제는 바르셀로나가 이 선수에게 얼마나 많은 걸 맡길 수 있느냐가 문제였지.
#123한지 플리크가 감독이 된 2024-25 시즌, 야말은 18골 21도움을 기록했어. 바르셀로나는 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 스페인 슈퍼컵을 모두 우승했지.
#124하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된 건 아니었어.
#125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인터 밀란을 만났고, 야말은 활약했지만 바르셀로나는 결승에 가지 못했어.
#126실패의 모양도 달라진 거야.
#127예전에는 출전 기회를 받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면, 이제는 아무리 잘해도 팀을 마지막 문 너머까지 데려가지 못하는 밤을 겪어야 했어.
#128그다음 시즌에도 상승은 멈추지 않았어.
#129바르셀로나는 다시 라리가 정상에 올랐고, 야말은 리그 올해의 선수로 뽑혔어. 2025년 발롱도르에서는 2위까지 올라갔지.
#130아직 열아홉 살 생일도 오기 전이었어.
#1312022년 카타르 월드컵 때 야말은 15살이었어.
#132아직 바르셀로나 1군 데뷔도 하지 않은 학생이었지.
#133그리고 월드컵이 딱 한 번 지나갔어.
#1342026년.
#135이번에는 야말이 관중 쪽에 있지 않았어.
#136스페인 대표팀의 선발 공격수로 경기장에 있었어.
#137대회에서 8경기 중 7경기에 선발로 나갔고, 결승까지 올라갔어.
#138결승 상대는 아르헨티나였어.
#139이쯤 되면 축구 팬들이 한 사람을 떠올리지 않기가 어려워.
#140리오넬 메시.
#141야말이 아기였던 2007년, 젊은 메시가 자선 달력 촬영에서 아기 야말과 함께 찍힌 사진이 있어. 훗날 야말이 스타가 되자 그 사진은 다시 발견됐고 사람들은 운명 같은 장면이라고 했어.
#142둘 다 바르셀로나에서 자랐고, 둘 다 왼발을 잘 쓰는 공격수였고, 이제 야말은 바르셀로나의 10번까지 달고 있었어.
#143그리고 19년 뒤 둘은 월드컵 결승에서 스페인과 아르헨티나 선수로 같은 경기장에 섰어.
#144이보다 더 완벽한 ‘왕위 계승’ 이야기도 없어 보여.
#145하지만 실제 경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어.
#146야말이 결승골을 넣은 것도 아니었어.
#147연장 106분, 니코 윌리암스가 머리로 연결한 공을 페란 토레스가 마무리했어.
#148스페인 1-0.
#149스페인이 세계 챔피언이 됐어.
#150야말도 19살에 월드컵 우승자가 됐지.
#151사람들이 야말과 메시를 비교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야.
#152사진도 있고, 클럽도 같고, 등번호도 같고, 플레이에서도 닮은 장면을 찾을 수 있으니까.
#153야말 역시 메시를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고 존중해.
#154하지만 비교를 받을 때마다 그가 반복해서 말한 건 조금 달랐어.
#155자기는 자기 길을 가고 싶다는 것.
#156메시가 되는 게 아니라 라민 야말로 남고 싶다는 거야.
#157어쩌면 그래서 어린 시절 이야기가 더 재미있어져.
#158지금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야말의 무기는 드리블이야.
#159그런데 네다섯 살 때 첫 코치가 애써 가르쳐야 했던 건 패스였어.
#160공을 좀 놓으라고.
#161혼자 다 하지 말라고.
#162그리고 시간이 지나 야말 자신이 특히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기술 가운데 하나도 패스가 됐어.
#163유로 결승에서 니코 윌리암스의 골을 만든 것도 그 패스였지.
#1642026년 월드컵 결승이 끝난 지 약 여섯 주.
#165야말은 다시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있었어.
#1668월 31일 라요 바예카노전에서 두 골을 넣었고, 첫 번째 골로 바르셀로나 통산 50골을 채웠어.
#16719살에.
#168월드컵 우승조차 이 선수에게는 결말이 아니라 다음 시즌 사이에 있었던 사건 하나가 되어버린 셈이야.
#169지금 그의 등에는 10이 있어.
#170바르셀로나에서 그 숫자를 보면 수많은 사람이 메시를 떠올려.
#171하지만 야말이 골을 넣은 뒤 자기 손으로 만드는 숫자는 따로 있어.
#172304.
#173로카폰다의 숫자야.
#17415살에게 1군이 너무 이르지 않겠느냐고 묻던 시간도 지나갔고, 16살에게 유로가 너무 큰 무대가 아니냐고 묻던 시간도 지나갔어.
#175이제 겨우 19살인데 이미 유로와 월드컵을 우승했고 바르셀로나의 10번이 됐어.
#176앞으로 어떤 기록까지 갈지는 아무도 몰라.
#177다만 세계가 자꾸 그를 ‘다음 누구’라고 부르는 동안, 야말은 골을 넣고 손가락을 들어 자기 숫자를 보여주고 있어.
#178304.
#179네 살짜리 야말에게 처음 필요했던 건 드리블 수업이 아니었어. 아르헨티나 출신 첫 코치 는 공을 혼자 끌던 아이에게 패스를 가르치려고 벤치에 앉혔지. 그런데 2026년, 그 아이가 월드컵 결승에 올라오자 상대는 하필 코치의 조국 아르헨티나였어. 야말을 사랑하지만 자기 나라도 사랑했던 첫 코치는 그날 누구를 응원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