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출신의 BLACKPINK 멤버이자 솔로 아티스트, 배우, LLOUD 창립자
4,000명 중 선택받던 리사는 어떻게 스스로 yes와 no를 말하는 사람이 됐을까?
#12010년 태국에서 열린 YG 엔터테인먼트 오디션에는 약 4,000명이 몰렸어.
#2그중 합격자는 한 명.
#3열세 살의 랄리사 마노발, 훗날의 리사였어.
#4숫자만 보면 모든 게 그날 결정된 것 같아. 수천 명을 제치고 뽑힌 아이가 한국으로 건너가 BLACKPINK가 되고, 결국 세계적인 스타가 됐으니까.
#5그런데 리사가 그 오디션에서 얻은 건 데뷔가 아니었어.
#6데뷔할 수도 있는 사람이 될 기회였지.
#7그리고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어.
#8리사는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한 아이도 아니었어. 아주 어릴 때부터 춤을 배웠고 대회에 나갔어. 태국에서 뱀뱀 등이 함께했던 댄스팀 We Zaa Cool에서도 활동했지. BIGBANG과 2NE1 같은 K-pop 가수들을 좋아하던 리사에게 YG 오디션은 자신이 오래 해오던 춤을 완전히 다른 세계로 가져갈 수 있는 문이었어.
#9심사 과정 전체가 공개된 건 아니어서, 왜 정확히 4,000명 가운데 리사 한 명이 선택됐는지를 점수표처럼 설명할 수는 없어.
#10다만 이후에도 계속 반복되는 건 있어.
#11춤. 무대에 올라갔을 때의 자신감. 동작을 빠르게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
#12YG는 그런 리사를 골랐어.
#13이제 문제는 열네 살짜리 아이가 그 선택 이후를 버틸 수 있느냐는 거였지.
#142011년, 리사는 한국으로 왔어.
#15한국어도 거의 하지 못했어. 부모님이 함께 왔지만 리사는 처음에 자신도 다시 같이 돌아가는 줄 알았다고 훗날 회상했어.
#16그런데 아니었어.
#17부모님은 태국으로 돌아갔고, 리사는 한국에 남았어.
#18열네 살이었어.
#19이제 춤만 잘 추면 되는 게 아니었어. 혼자 생활해야 했고, 돈을 관리해야 했고, 일상의 결정을 내려야 했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어야 했지.
#20그때 먼저 손을 내민 사람 가운데 하나가 제니였어.
#21제니는 리사보다 먼저 YG에서 연습하고 있었고 영어를 할 수 있었어. 리사의 기억에 제니는 처음 만났을 때 영어로 말을 걸어준 사람이었어. 한국어가 거의 들리지 않던 열네 살 리사에게는 그 짧은 인사가 꽤 큰 일이었을 거야.
#22지수와는 더 묘했어. 리사는 한국어가 서툴렀고 지수는 영어가 유창하지 않았는데 둘은 그래도 같이 밖에 나갔어. 무슨 방법으로든 대화를 이어갔고, 지수는 리사가 한국어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줬어.
#23조금 뒤 호주에서 로제가 들어왔을 때는 처음부터 따뜻하기만 했던 것도 아니야.
#24리사는 새로 온 로제를 경쟁자로 봤어.
#25연습생에게 새로 잘하는 사람이 들어온다는 건 친구가 한 명 생긴다는 뜻인 동시에, 자기 자리가 하나 줄어들 수도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26그런데 두 사람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있었어. 둘 다 가족을 다른 나라에 두고 한국에 와 있었거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경쟁심은 다른 관계로 바뀌었고, 훗날 리사는 둘이 쌍둥이 자매처럼 가까워졌다고 회상했어.
#27그렇다고 경쟁이 사라진 건 아니었어.
#28모두 같은 걸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29데뷔.
#30YG 연습생들은 매달 평가를 받았어.
#31노래와 춤을 준비하고, 때로는 팀을 짜고, 무대와 안무까지 만들어 보여줘야 했지. 누군가는 떨어졌고 누군가는 스스로 떠났어.
#32리사에게는 한국어라는 시험까지 하나 더 있었어. 회사에서는 리사가 빨리 한국어를 익히도록 주변 사람들이 영어로 쉽게 도와주지 못하게 할 정도였어.
#33그래도 리사는 눈에 띄었어.
#342012년 YG는 얼굴과 이름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채 리사가 춤추는 영상을 공개했어. 제목은 "WHO'S THAT GIRL???".
#35그 뒤 Taeyang의 "Ringa Linga" 뮤직비디오에 백업 댄서로 등장했고, YG 계열 패션 브랜드 모델로도 모습을 보였어.
#36밖에서 보면 거의 데뷔 직전처럼 보였을 거야.
#37그런데 정작 데뷔는 오지 않았어.
#38YG의 새 걸그룹 계획은 계속 움직였어. 처음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멤버가 거론됐고, 데뷔 시기도 여러 차례 이야기됐다가 밀렸어.
#39연습생 입장에서 가장 어려운 건 아마 여기였을 거야.
#40시험에서 떨어졌다면 끝났다는 걸 알 수 있어.
#41리사는 떨어지지 않았어.
#42그런데 붙어 있다고 해서 언제 데뷔하는지는 알 수 없었어.
#43한 달을 버티면 또 평가가 왔고, 그걸 넘으면 다음 달이 왔어.
#44그리고 또 다음 달.
#45어느 순간 리사도 지쳤어.
#46태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거의 매일 전화를 했고, 결국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어. 데뷔 계획은 계속 미뤄지고 있었고, 차라리 태국으로 돌아가 학교에 다니고 싶었지.
#47이때 어머니가 "힘들면 돌아와"라고 했다면 리사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몰라.
#48그런데 어머니의 반응은 반대였어.
#49조금만 더 해보라고 했어.
#50네 자리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라고 했고, 여기까지 시작했으면 조금 더 버텨보라고 했지.
#51리사에게 미래를 보여줄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52어머니도 BLACKPINK를 알고 한 말이 아니었어. 몇 년 뒤 딸이 Coachella에 서고 세계적인 스타가 될 걸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야.
#53그저 지금 돌아오면 여기까지 버틴 시간이 끝난다는 것만 알았어.
#54그래서 리사는 다시 연습실로 갔어.
#55그 사이 사람은 계속 줄었어.
#56리사는 훗날 처음에는 많은 친구가 함께 연습했는데 한 명씩 줄어들었다고 기억했어. 그리고 어느 순간 제니, 지수, 로제, 리사 네 명이 계속 함께 연습하고 있었어.
#57처음부터 누군가가 "너희 넷이 BLACKPINK야"라고 정해놓은 그림이 아니었어.
#58남고, 연습하고, 또 남다 보니 네 명이 된 거야.
#592016년 8월 8일.
#60마침내 BLACKPINK가 데뷔했어.
#61리사가 한국에 온 지 약 5년이 지난 뒤였어.
#62첫 싱글 앨범 "Square One"에서 나온 "Whistle"과 "Boombayah"는 빠르게 반응을 얻었고, BLACKPINK는 데뷔 직후부터 정상급 신인으로 올라섰어.
#63하지만 그건 시작에 가까웠어.
#64"Ddu-Du Ddu-Du" 같은 곡들이 세계적으로 퍼졌고, BLACKPINK는 미국 Coachella 무대에 섰어. 앨범과 투어의 규모는 계속 커졌고, 네 사람은 K-pop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이름이 알려지는 글로벌 그룹이 됐지.
#65이 성공은 리사에게 돈과 유명세만 준 게 아니었어.
#66선택할 수 있는 위치를 만들어줬어.
#67그 변화가 처음 선명하게 보인 건 2021년이었어.
#68리사가 처음으로 혼자 낸 싱글 앨범의 제목은 "LALISA".
#69그룹에서 쓰던 Lisa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 Lalisa를 전면에 내건 거야. 뮤직비디오에는 태국적인 요소도 들어갔는데, 이건 리사가 직접 넣고 싶다고 요청한 것이었어.
#70그리고 결과가 나왔어.
#71"LALISA"와 "MONEY"는 미국 Billboard Hot 100에 진입했어. 특히 "MONEY"는 세계 여러 시장에서 오래 퍼졌지.
#72BLACKPINK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리사에게도 관심이 있을 거라는 예상과, 리사라는 이름으로 낸 음악에 실제로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야.
#73이제 그 두 번째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어.
#74그리고 2023년, 훨씬 더 큰 선택의 순간이 왔어.
#75BLACKPINK와 YG의 계약 기간이 끝나가자 당연히 질문이 쏟아졌어.
#76네 사람이 YG에 남을까? BLACKPINK는 해체할까? 각자 흩어질까?
#77결과는 그 어느 쪽도 아니었어.
#78네 멤버는 BLACKPINK의 그룹 활동은 YG와 계속하기로 했어.
#79대신 개인 활동 계약은 갱신하지 않았지.
#80이 차이가 중요해.
#81리사는 BLACKPINK를 버리고 YG를 떠난 게 아니야. 그렇다고 자신의 모든 개인 활동을 이전처럼 YG에 맡긴 것도 아니고.
#82BLACKPINK로 움직일 때와 리사 개인으로 움직일 때의 구조를 나눈 거야.
#83그리고 2024년 2월, 리사는 자신의 회사 LLOUD를 만들었어.
#84이미 세계적인 그룹에 속해 있는데 왜 굳이 회사를 만들었을까?
#85리사 자신의 설명은 거창하지 않았어.
#86자기에게 집중하는 팀이 필요했어. 자신의 솔로 프로젝트를 함께 움직여줄 사람들, 더 다양한 음악과 스타일을 시험할 수 있게 해줄 사람들이 필요했지.
#87다른 아티스트를 잔뜩 영입해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제국을 만들겠다는 이야기도 아니었어.
#88자신을 위한 작은 기반에 가까웠어.
#89그런데 회사를 만들자 전에는 몰랐던 일까지 리사의 일이 됐어.
#90뮤직비디오에는 얼마가 들까. 촬영에는 얼마가 들까. 어떤 사람과 일할까. 이 아이디어를 할까, 말까.
#91YG 연습생일 때는 다른 사람들이 평가하고 결정하는 일이 훨씬 많았어.
#92이제는 리사가 답해야 했어.
#93리사는 LLOUD에서 일하면서 배운 게 있다고 했어.
#94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어.
#95그전처럼 "괜찮아요"라고 하면 상대는 정말 괜찮다는 건지 알 수 없었어.
#96이제는 yes인지 no인지 말해야 했지.
#97묘한 변화였어.
#98열세 살 리사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YG 심사위원에게 yes를 받는 것이었어.
#99연습생 리사는 매달 평가를 통과해야 했고, 회사가 자신을 데뷔시킬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
#100그런데 이제 리사가 해야 하는 일은 자신이 yes와 no를 말하는 것이었어.
#101물론 이걸 "YG에서 자유를 빼앗겼던 리사가 마침내 자유를 되찾았다"는 이야기로 만들 수는 없어. 리사 자신이 LLOUD를 만든 이유를 그렇게 설명한 적은 없으니까.
#102오히려 현실은 더 재미있었어.
#103BLACKPINK라는 과거의 성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리사라는 개인의 다음 선택은 직접 해보겠다는 거였지.
#104LLOUD를 만든 지 두 달쯤 뒤에는 미국의 대형 음반사 RCA Records와 파트너십을 맺었어.
#105여기에도 중요한 조건이 하나 있었어.
#106이 체제에서 새로 만드는 자신의 레코딩은 리사가 소유하기로 한 거야.
#107과거 BLACKPINK 음악이나 YG에서 발표한 모든 음원의 소유권을 가져왔다는 뜻은 아니야. 새 파트너십 아래 만들어질 자신의 음악을 소유하는 구조였어.
#108리사는 그 사실을 두고 꿈같다고 말했어.
#10913살 때는 세계적인 기획사와 계약할 기회를 얻는 게 목표였던 아이가, 이제는 자기 회사 이름을 한쪽에 놓고 세계적인 레이블과 어떤 조건으로 일할지를 정할 수 있게 된 거야.
#110그렇다면 이제 답은 나온 걸까?
#111아직 아니었어.
#112LLOUD 아래에서 처음 내놓은 싱글은 "Rockstar"였어.
#113뮤직비디오는 서울도, Los Angeles도 아닌 Bangkok에서 찍었어. 태국에서 춤을 시작했던 리사가 자신의 회사로 새 출발을 하면서 다시 Bangkok의 거리를 무대로 택한 거지.
#114"Rockstar"는 Billboard Global Excl. U.S. 차트 1위에 올랐고, 리사는 MTV Video Music Awards에서 Best K-pop을 받았어.
#1152025년에는 첫 정규 솔로 앨범 "Alter Ego"를 냈어.
#116이번엔 이름 하나로 자신을 정의하는 대신 다섯 개의 서로 다른 페르소나를 만들었어. 여러 장르와 스타일을 시험하고 싶었던 리사의 생각이 앨범 전체의 장치가 된 거야.
#117앨범은 미국 Billboard 200 7위로 데뷔했어.
#118그리고 리사는 다시 Coachella에 갔어.
#119예전에는 BLACKPINK의 멤버로 섰던 무대였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노래로 세트를 채웠어.
#120숫자로만 보면 독립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어.
#121하지만 선택권을 갖는다고 정답까지 따라오는 건 아니었어.
#122"Alter Ego"를 두고는 여러 스타일을 오가는 시도가 재미있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정작 리사만의 음악은 무엇인가가 충분히 선명하지 않다는 비판도 나왔어.
#123예전에는 회사가 데뷔시켜줄지가 질문이었다면, 이제 질문 자체가 달라진 거야.
#124리사는 혼자서 어떤 아티스트가 될까?
#125그 질문에 답하기도 전에 리사는 또 다른 일을 골랐어.
#126이번에는 춤도 노래도 아니었어.
#127연기였어.
#128HBO 드라마 The White Lotus 시즌 3.
#129리사는 이 작품에서 Mook이라는 인물을 맡았어.
#130그런데 그냥 캐스팅된 게 아니야.
#131오디션을 봤어.
#132세계적인 스타가 됐고, 수천만 명이 이름을 알고, 자기 회사까지 갖게 됐는데 새로운 분야에 들어가려니 다시 누군가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했던 거야.
#133물론 열세 살 때와 상황은 완전히 달랐어.
#134그때는 이름 없는 아이였고, 이번에는 BLACKPINK의 리사였어.
#135그래도 연기는 처음이었어.
#136첫 촬영에서는 대사를 잊을까 긴장했고, 촬영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새로 배워야 했어. 주변 배우와 스태프의 도움도 받았지.
#137그리고 우연히도 그 첫 연기의 촬영지는 태국이었어.
#138리사는 열네 살에 태국을 떠난 뒤 이렇게 오랫동안 고향에서 지낸 적이 거의 없었다고 했어.
#139이번에는 촬영 때문에 태국에 머물렀고, 어머니가 딸을 보러 찾아왔어.
#140십여 년 전에는 반대였지.
#141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왔다가, 어머니는 태국으로 돌아갔고 리사만 남았어.
#142그때 리사는 돌아가고 싶다고 전화했어.
#143어머니는 조금만 더 버텨보라고 했지.
#144그리고 이제 딸은 세계적인 스타가 되어 첫 연기를 배우러 태국에 돌아와 있었어.
#145훗날 리사는 이런 질문을 받았어.
#146지금의 자신이 열세 살의 자신을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으냐고.
#147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부 알려주겠다고 하진 않았어.
#148오히려 미래를 너무 생각하지 말라고 했어.
#149지금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라고.
#150그리고 그만두지 말라고.
#151어머니가 한국에서 돌아오고 싶어 하던 딸에게 해줬던 말과 닮아 있었어. 리사가 의도적으로 그 말을 되풀이한 건지는 알 수 없어.
#152하지만 그 사이에 한 가지는 분명히 달라졌어.
#153열세 살의 리사는 오디션을 보고 누군가의 답을 기다렸어.
#154열네 살의 리사는 회사가 자신을 언제 데뷔시킬지 기다렸고.
#155세계적인 스타가 된 뒤에도 오디션은 사라지지 않았어.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여전히 다시 시험을 받아야 했지.
#156다만 이제는 그 시험 사이의 삶을 예전보다 훨씬 많이 자신이 고를 수 있어.
#157어떤 음악을 할지. 누구와 일할지. 무엇에 yes라고 할지. 무엇에 no라고 할지. 그리고 이미 잘하는 것만 계속할지, 다시 초보자가 되는 일을 선택할지.
#158리사가 BLACKPINK의 세계적인 인기를 자기 이름만으로 오래 지속되는 음악과 연기 커리어로 바꿀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어.
#159그 답은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어.
#16013살 리사는 자신이 선택될지를 기다렸어.
#161지금의 리사는 다음에 무엇을 선택할지를 시험하고 있어.
#162리사가 태국에서 활동했던 We Zaa Cool에는 또 한 명의 미래 K-pop 스타가 있었어. 바로 이야. 같은 태국 댄스팀에서 춤추던 두 아이는 어떻게 둘 다 한국으로 건너가 서로 다른 대형 기획사에서 세계적인 아이돌이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