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 Quixote"를 쓴 스페인 작가
네 번 탈출에 실패한 세르반테스는 왜 계속 다음 일을 시작했을까?
#11571년 10월 7일, 24세의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열병을 앓고 있었어. 그런데 지중해에서 큰 해전이 벌어지자 쉬는 대신 전투에 나갔지.
#2그날 세 발의 총상을 입었어. 두 발은 가슴에 맞았고, 다른 한 발은 왼손에 평생 남을 장애를 만들었어.
#3그런데 세르반테스는 그 손을 숨기지 않았어. 40여 년이 흐른 뒤 누군가 늙고 불편해진 그의 손을 조롱했을 때도, 그는 상처가 생긴 장소부터 다시 꺼냈거든.
#4레판토 해전.
#5그에게 그 손은 단순히 망가진 신체가 아니었어. 자신이 어디에서 그 상처를 입었는지가 중요했던 거지.
#6그리고 정작 더 긴 고생은 그 전투에서 살아남은 뒤 시작됐어.
#71575년, 세르반테스는 동생 로드리고와 스페인으로 돌아가고 있었어. 그런데 타고 있던 배가 지중해의 해적들에게 붙잡혔지.
#8문제는 세르반테스가 가지고 있던 추천서였어. 유력 인사들이 써준 편지를 본 납치범들은 그가 꽤 중요한 사람이고, 높은 몸값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어.
#9그래서 집이 아니라 알제로 끌려갔어.
#10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거의 5년이야. 그렇다고 몸값이 마련되기만 기다린 건 아니었어.
#111576년에는 동료들과 육로로 빠져나가려고 했어. 그런데 길을 안내하던 사람이 사라지면서 실패했지.
#121577년에는 먼저 풀려난 동생 로드리고와 구조선을 보내는 계획을 세웠어. 세르반테스와 약 14명의 포로가 해안 근처에 숨어 배를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계획이 밀고됐어.
#131578년에는 오랑이라는 스페인 거점에 사람을 보내 탈출을 도와줄 안내인을 구하려 했어. 편지를 나르던 사람이 붙잡히면서 또 무너졌고.
#141579년에는 규모를 더 키웠어. 60명이 넘는 포로가 함께 빠져나가는 계획이었는데, 같은 스페인인 후안 블랑코 데 파스가 밀고하면서 이것도 실패했지.
#15네 번이었어.
#16그런데 이상한 건 실패 횟수만이 아니야.
#17실패할수록 세르반테스의 탈출 계획은 작아진 게 아니라 더 커졌어.
#18결국 네 번 모두 실패했어.
#19세르반테스를 알제 밖으로 꺼내려고 움직인 사람들은 스페인에도 있었어. 어머니 레오노르 데 코르티나스와 누이 안드레아를 비롯한 가족이 계속 몸값을 모았지.
#20그리고 당시 포로들의 몸값을 마련해 풀어주던 삼위일체 수도회의 후안 힐이 알제로 왔어.
#21그래도 돈이 부족했어. 후안 힐은 현지에서 부족한 금액을 더 마련했고, 1580년 9월 마침내 500에스쿠도의 몸값이 갖춰졌어.
#22세르반테스는 자유가 됐어.
#23스스로 네 번이나 빠져나오려 했던 사람이 결국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건, 멀리 있던 다른 사람들도 그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지.
#24이제 33세였어. 전쟁도 끝났고 포로 생활도 끝났어.
#25그럼 여기서부터는 좀 풀릴 것 같잖아.
#26그렇지 않았어.
#27세르반테스는 계속 글을 썼어. 1585년에는 "La Galatea"를 출간했고 희곡도 썼지. 실제 무대에 오른 작품도 있었어.
#28하지만 인생을 바꿔놓을 만큼 결정적인 성공은 오지 않았어.
#29그 사이 젊은 시절 세르반테스가 재능을 칭찬했던 로페 데 베가가 스페인 연극계의 거대한 스타가 되어가고 있었어.
#30세르반테스에게는 다른 수입이 필요했어. 왕실을 위해 식량과 물자를 조달했고, 나중에는 세금을 걷었지.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공직을 얻으려고 지원한 적도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
#31그러니까 문학 하나만 바라보며 버틴 건 아니야.
#32안정된 일을 찾았어. 돈을 벌려고 했고. 먹고살려고 했지.
#33그런데 바로 그 일이 세르반테스를 다시 감옥으로 데려갔어.
#34세금을 걷던 세르반테스는 왕실 자금 일부를 금융업자에게 맡겼어. 그런데 그 금융업자가 파산하면서 회계 문제가 세르반테스에게 돌아왔지.
#351597년, 그는 세비야 감옥에 들어갔어.
#3650세였어.
#37여기서 그의 인생을 잠깐 세워보면 꽤 묘해.
#38전쟁터에서 총을 맞았어. 귀국하다 붙잡혀 거의 5년을 포로로 살았고. 네 번 탈출해서 네 번 실패했어. 스페인으로 돌아와 글을 썼지만 결정적인 성공은 없었지. 먹고살려고 정부 일을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그 일 때문에 감옥에 들어왔어.
#39오늘날 세르반테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은 아직 출간되지도 않았어.
#40그런데 훗날 그는 그 책이 감옥에서 "잉태됐다"고 썼어.
#41"Don Quixote"였어.
#42여기서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생겨났어. 세르반테스가 감옥에서 "Don Quixote"를 썼다는 거야.
#43그런데 확인되는 말은 조금 달라. 세르반테스 자신은 그 작품이 감옥에서 "잉태됐다"고 했어.
#44첫 문장을 정확히 언제 썼는지, 감옥 안에서 실제로 얼마나 썼는지, 처음부터 우리가 아는 규모의 장편을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어.
#45그러니까 빈칸이 남아 있는 거지.
#46세르반테스는 감옥에서 나왔고, 몇 년이 흘렀어.
#47그러고 나서 아주 이상한 남자가 세상에 나타났어.
#48이 남자의 본래 이름은 알론소 키하노였어. 기사들이 세상을 떠돌며 모험하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읽은 시골 신사였지.
#49그러다 자신도 그런 기사가 되어야 한다고 믿기 시작해.
#50새 이름은 Don Quixote. 볼품없는 말은 로시난테. 평범한 여성은 그의 상상 속에서 귀부인 둘시네아가 됐어.
#51그리고 낡은 갑옷을 입고 길을 나섰지.
#52문제는 현실이었어.
#53풍차를 보면 거인이라고 믿었어. 돌진했고. 쓰러졌지.
#54사람을 잘못 이해하고, 얻어맞고, 망신당하는 일도 계속됐어.
#55그런데도 또 다음 모험으로 갔어.
#56세르반테스가 자기 인생의 실패를 그대로 Don Quixote에게 옮겼다고 말할 증거는 없어. 작품이 겨냥했던 중요한 대상 가운데 하나는 당시 인기 있던 기사소설의 관습이었거든.
#57그래도 그의 삶을 알고 나면 한 장면은 자꾸 겹쳐 보여.
#58알제의 세르반테스도 첫 탈출이 실패했다고 멈추지 않았어. 다시 했고, 또 실패했고, 또 계획했어.
#59그리고 수십 년 뒤 그가 만든 남자도 실패를 이야기의 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지.
#601604년 무렵, 세르반테스는 57세를 바라보고 있었어. 그때 스페인 문학계의 스타는 그가 아니라 로페 데 베가였지.
#61그 무렵 로페가 남긴 편지에는 세르반테스와 아직 정식 출간 전이던 "Don Quixote"를 비웃는 흔적도 남아 있어.
#62그리고 1605년, "Don Quixote" 1부가 나왔어.
#63이번에는 달랐지.
#64책은 빠르게 퍼졌고 판본이 이어졌어. 같은 해 열린 축제에 벌써 Don Quixote로 분장한 사람이 나타났을 정도였어.
#65세르반테스는 57세가 되어서야 자기 이름을 대표할 작품을 얻은 셈이야.
#66그런데 그해가 깔끔한 해피엔딩이었던 건 아니었어.
#671605년 바야돌리드에서 세르반테스의 집 근처에 한 남자가 칼에 찔리는 일이 생겼어. 이름은 가스파르 데 에스펠레타였어.
#68세르반테스 가족은 다친 그를 집으로 옮겼지만, 에스펠레타는 결국 죽었어. 수사가 시작되면서 세르반테스와 가족도 사건에 휘말렸고, 세르반테스는 잠시 구금됐지.
#69그가 살인범이었다는 뜻은 아니야.
#70그런데 연도만 놓고 보면 묘해.
#711605년, "Don Quixote"가 성공했어. 그리고 같은 해 세르반테스는 또 갇혔지.
#72이번에는 그 뒤가 달랐어.
#73세르반테스가 오히려 더 많은 작품을 내놓기 시작했거든.
#741613년에는 "Novelas ejemplares". 1614년에는 "Viaje del Parnaso". 1615년에는 희곡과 막간극을 묶은 책.
#75그리고 같은 해 "Don Quixote" 2부가 나왔어.
#76젊을 때부터 작가가 되려고 했던 사람이 인생 마지막 시기에 가장 굵직한 후기 작품들을 연달아 내놓은 거야.
#77그런데 진짜 2부가 나오기 1년 전, 누군가 먼저 Don Quixote의 다음 이야기를 출간해버렸어.
#781614년, 알론소 페르난데스 데 아베야네다라는 이름으로 "Don Quixote" 속편이 출간됐어.
#79세르반테스가 쓴 책은 아니었어.
#80아베야네다가 실제로 누구였는지도 지금까지 확정되지 않았고.
#81중요한 건 세르반테스가 이미 자기 2부를 쓰고 있었다는 점이야. 그러니까 가짜 속편을 보고 처음 2부를 시작한 건 아니었어.
#82대신 그 가짜 책이 나중에 진짜 소설 안으로 들어와.
#83세르반테스의 2부에서는 등장인물들이 가짜 "Don Quixote"가 출간됐다는 사실을 알게 돼. Don Quixote 자신도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모험담을 써버렸다는 걸 알게 되고.
#84심지어 가짜 Don Quixote가 사라고사에 갔다는 말을 듣자, 진짜 Don Quixote는 그곳에 가지 않기로 해.
#85현실에서 출간된 가짜 소설이 소설 속 주인공의 여행 경로를 바꿔버린 거야.
#86그런데 가짜 속편의 공격은 책 안에서 끝나지 않았어.
#87세르반테스의 손까지 건드렸거든.
#88아베야네다의 서문에는 세르반테스의 나이와 불편한 손을 겨냥한 조롱이 있었어.
#89그러자 1615년 진짜 2부의 서문에서 세르반테스는 그 손이 어디에서 다쳤는지 다시 꺼냈어.
#90레판토.
#9124세였던 그가 총을 맞은 지 44년이 지난 뒤였지.
#92이야기 첫머리에서 남은 그 상처가 인생 끝무렵 다시 등장한 거야.
#93그리고 이제 세르반테스는 자기 주인공에게도 이전과는 다른 걸 준비했어.
#94다음 모험이 없는 끝이었어.
#952부 마지막에 Don Quixote는 고향으로 돌아와. 정신을 되찾고 자신이 편력기사 Don Quixote가 아니라 알론소 키하노였다는 걸 받아들이지.
#96유언을 남기고.
#97죽어.
#98계속 실패하면서도 다음 모험으로 나가던 남자가 마침내 멈춘 거야.
#99그런데 세르반테스의 손에는 아직 다른 원고가 남아 있었어.
#100"Los trabajos de Persiles y Sigismunda".
#1011616년 4월, 죽음이 가까워진 세르반테스는 그 책을 세상에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었어.
#1024월 22일, 세르반테스는 죽었어.
#103"Persiles"는 이듬해 출간됐지.
#104Don Quixote에게는 더 이상 다음 모험이 없었어.
#105그 마지막을 써준 세르반테스는 자기 삶이 끝나기 직전까지 다음 책을 준비하고 있었어.
#1061612년, 세르반테스가 살아 있을 때 "Don Quixote"는 이미 영어로 번역됐어.
#107그 뒤 영국에서는 와 존 플레처가 쓴 것으로 기록된 "Cardenio"라는 연극이 무대에 올랐어. 이 작품은 "Don Quixote" 속 카르데니오 이야기와 연결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정작 희곡 자체는 사라져버렸어.
#108세르반테스가 쓴 카르데니오 이야기는 지금도 읽을 수 있어.
#109그 이야기가 건너간 셰익스피어의 무대는 작품째 사라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