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바섬을 탈출해 백일천하를 연 프랑스 황제
1,100명으로 돌아온 나폴레옹은 어떻게 22일 만에 다시 황제가 됐을까?
#11815년 3월 7일, 프랑스 남동부 라프레 근처였어. 북쪽으로 올라가던 나폴레옹 앞을 왕의 제5보병연대가 막아섰지.
#2그들은 환영하러 나온 사람들이 아니었어. 엘바섬을 탈출해 프랑스로 돌아온 전직 황제를 붙잡으라는 명령을 받은 군인들이었거든.
#3나폴레옹이 섬에서 데리고 나온 병력은 약 1,100명뿐이었어. 이 정도로는 프랑스를 정복하는 전쟁을 할 수가 없었지. 왕의 군대와 하나씩 싸우고, 도시를 차례로 점령하고, 마지막에 파리를 포위한다? 그런 식으로 가면 시작부터 승산이 없었어.
#4그러니까 여기서 제5연대가 명령대로 총만 쐈다면 정말 끝날 수도 있었어.
#5그런데 나폴레옹이 병사들 앞으로 걸어 나갔어. 자신을 겨눈 총구 앞까지 직접 간 거야.
#6후대에는 이 장면에 아주 유명한 대사가 붙었어. 자기 황제를 죽이고 싶다면 쏘라는 식의 말이지. 다만 정확한 문구는 나중에 전설 속에서 다듬어진 흔적이 있어서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려워.
#7그래도 확실한 건 하나야.
#8병사들이 쏘지 않았다는 것.
#9그리고 잠시 뒤에는 더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나폴레옹을 잡아야 할 병사들이 오히려 그에게 합류하기 시작했거든.
#10엘바에서 작은 군대를 끌고 온 사람이 프랑스군을 무찌른 게 아니었어.
#11프랑스 왕의 군대가 조금씩 나폴레옹의 군대로 바뀌고 있었던 거야.
#12그런데 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13답을 보려면 불과 열한 달 전으로 돌아가야 해.
#141814년 봄, 상황은 정반대였어. 유럽의 연합군이 프랑스로 밀려들어오고 있었고, 파리까지 위협받고 있었지.
#15나폴레옹은 여전히 전투에서 이기기도 했어. 하지만 몇 번의 승리로 전쟁 전체를 되돌릴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나가고 있었어.
#16결국 파리가 함락됐어.
#17그래도 나폴레옹은 계속 싸우고 싶어 했지. 문제는 바로 옆에 있던 사람들이었어. 오랜 전쟁과 징집에 프랑스는 지쳐 있었고, 나폴레옹과 수많은 전장을 함께한 원수들 가운데서도 더는 싸울 수 없다고 보는 사람이 나왔어.
#18황제는 싸우겠다고 했는데, 그 전쟁을 실제로 치러야 할 사람들이 멈추기 시작한 거야.
#19결국 나폴레옹은 퇴위했어.
#20적에게 전장에서 완전히 포획돼 왕좌를 빼앗긴 게 아니었어. 마지막에는 자기 군 지휘관들의 지지가 무너지면서 황제 자리도 무너진 거지.
#21그리고 며칠 뒤에는 더 어두운 일이 있었어.
#221814년 4월 12일 밤, 나폴레옹은 독약을 먹었어. 러시아 원정 때부터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지니고 다니던 독약이었지.
#23그런데 죽지 않았어. 심한 고통 끝에 살아남았어.
#24며칠 뒤 나폴레옹은 마지막까지 곁에 남은 근위병들과 작별했어. 그리고 지중해의 작은 섬으로 떠났지.
#25엘바였어.
#26나폴레옹은 패배했지만 평범한 죄수가 되진 않았어. 황제라는 칭호도 남아 있었고, 엘바섬의 주권자가 됐어. 작은 정부를 꾸릴 수도 있었고, 충성스러운 병사 일부도 데리고 갈 수 있었지.
#27그래서 섬에 도착한 뒤에도 가만히 있지 않았어. 행정을 손보고, 도로를 정비하고, 재정을 들여다봤어. 한때 유럽 대륙의 거대한 제국을 움직이던 사람이 이번에는 지중해의 작은 섬을 운영하고 있었던 거야.
#28이대로 작은 군주처럼 사는 것도 가능해 보였어.
#29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생활이 자꾸 불안해졌어.
#30프랑스가 약속한 돈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고, 작은 궁정과 군대를 유지하는 데는 계속 비용이 들었어. 게다가 유럽 열강이 자신을 엘바보다 훨씬 먼 곳으로 옮길지 모른다는 소문도 들렸지.
#31가족 문제도 있었어.
#32어머니와 여동생 폴린 보나파르트는 엘바에 왔어. 하지만 나폴레옹이 정말 기다리던 아내 마리 루이즈와 어린 아들은 오지 않았어. 둘은 오스트리아에 있었지.
#33나폴레옹은 결국 두 사람을 다시 만나지 못했어.
#34그런데 가족은 멀어지는 동안, 바다 건너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에게 훨씬 중요한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어.
#35새 왕의 자리가 생각만큼 단단하지 않다는 소식이었지.
#36프랑스에는 루이 18세가 돌아와 있었어. 나폴레옹 이전의 왕가가 다시 권력을 잡는 부르봉 왕정복고가 시작된 거야.
#37하지만 왕 한 명이 돌아온다고 지난 25년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혁명도 있었고, 나폴레옹의 제국도 있었고, 그 아래서 출세한 군인들도 수없이 많았어.
#38특히 군대가 복잡했어. 나폴레옹 밑에서 승진하고 전쟁을 치렀던 장교와 병사들 가운데 일부는 새 왕정 아래에서 자기 위치가 달라졌다고 느꼈지.
#39그렇다고 프랑스 전체가 나폴레옹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은 아니야. 왕당파도 많았고, 끝없는 전쟁에 지쳐 나폴레옹의 귀환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많았어.
#40하지만 나폴레옹에게 필요한 건 전 국민의 환영이 아니었어.
#41딱 하나면 됐어.
#42왕이 자기 병사들에게 나폴레옹을 향해 총을 쏘게 할 수 있느냐.
#43그게 흔들린다면, 약 1,100명으로도 틈이 생길 수 있었어.
#44그리고 1815년 2월, 정말 작은 틈 하나가 열렸어.
#45엘바에는 영국 측 감시관 닐 캠벨 대령이 있었어. 그런데 2월 16일, 캠벨이 섬을 떠났지.
#46그다음 날부터 움직임이 빨라졌어. 나폴레옹의 배 인콘스탄트를 출항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작업이 진행됐고, 다른 배들도 준비되기 시작했어.
#47그런데 겉으로 보면 나폴레옹은 여전히 섬에 눌러앉을 사람처럼 행동했어. 오페라단을 부르는 계획도 세웠고, 3월 일정도 잡았고, 공사도 계속 지시했거든.
#48주변 사람들조차 정확한 계획을 다 알지 못했어.
#49그리고 2월 26일.
#50나폴레옹이 움직였어.
#51계획이 바깥으로 새는 걸 늦추려고 다른 배들이 항구를 빠져나가는 것도 막았어. 누군가 먼저 프랑스 본토에 가서 경고할 시간을 줄이려는 거였지.
#52그날 밤 작은 선단이 바다로 나갔어.
#53일곱 척. 약 1,100명.
#54왕에게는 나라가 있었어. 관료도 있었고 군대도 있었지.
#55나폴레옹에게는 작은 선단, 천 명 남짓한 병사, 그리고 자기 이름이 있었어.
#56그걸로 프랑스에 돌아가려 한 거야.
#573월 1일, 나폴레옹은 프랑스 남부 골프주앙에 상륙했어.
#58나중의 전설만 보면 이 순간부터 프랑스군이 줄줄이 나폴레옹에게 달려온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시작은 그렇지 않았어.
#59나폴레옹은 앙티브의 제87연대를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했어.
#60거절당했어.
#61보낸 사람들까지 붙잡혔지.
#62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가 있어. 나폴레옹이 나타나기만 하면 병사들이 자동으로 황제 편으로 돌아선 게 아니라는 뜻이거든.
#63남부에서 천천히 사람을 모으고 있었다면 왕에게도 시간이 생겼을 거야. 군대를 모으고 길을 막고, 나폴레옹을 포위할 수 있었겠지.
#64그래서 나폴레옹은 기다리지 않았어.
#65왕당파가 강한 지역을 피하고 험한 산길을 택해서 북쪽으로 빠르게 올라갔어. 목표는 그르노블이었지.
#66병력은 부족했어.
#67그래서 속도가 필요했어.
#68왕이 준비를 끝내기 전에 다음 장소로 가야 했거든.
#69그리고 3월 7일, 라프레에서 왕의 군대와 마주친 거야.
#70제5연대가 길을 막았고, 나폴레옹은 앞으로 나갔어.
#71병사들은 쏘지 않았어.
#72그리고 그의 편에 섰지.
#73바로 이 순간부터 귀환의 성격이 바뀌었어. 전까지는 엘바에서 데려온 병사들과 움직였지만, 이제는 자신을 잡으러 나온 왕의 병사까지 데리고 북쪽으로 가기 시작한 거야.
#74곧 더 큰 일이 이어졌어.
#75제7연대를 지휘하던 샤를 드 라 베두아예르가 자기 병사들을 이끌고 나폴레옹에게 합류했어.
#76그날 밤 나폴레옹은 그르노블로 들어갔지.
#77중요한 건 병사 몇천 명이 더 생긴 것만이 아니었어.
#78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이 달라졌다는 거야.
#79처음에는 이런 질문이었겠지.
#80나폴레옹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81그런데 그르노블 이후에는 이쪽으로 바뀌기 시작했어.
#82왕이 정말 이 사람을 막을 수 있을까?
#83루이 18세에게는 아직 믿을 만해 보이는 사람이 하나 있었어.
#84미셸 네 원수였지.
#85네는 나폴레옹 전쟁의 대표적인 지휘관이었지만, 무조건 황제만 따르던 사람은 아니었어. 1814년에는 오히려 나폴레옹에게 더는 전쟁을 계속할 수 없다고 압박하며 퇴위 쪽으로 밀었던 인물이야.
#86왕정복고 뒤에는 새 왕을 받아들였고, 나폴레옹이 돌아왔을 때도 처음에는 왕의 편에서 그를 막으러 갔어.
#87왕 입장에서는 꽤 든든했겠지. 나폴레옹의 옛 원수가 나폴레옹을 잡으러 가고 있었으니까.
#88그런데 네가 현장으로 갈수록 이상한 소식이 계속 들어왔어.
#89나폴레옹은 멈추지 않았고, 왕의 병사들이 그에게 넘어가고 있었어. 네 주변의 군대 역시 그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않았지.
#903월 14일, 네도 돌아섰어.
#91나폴레옹에게 합류한 거야.
#92이제 라프레의 사건을 한 연대의 감정적인 돌발 행동이라고만 볼 수 없게 됐어.
#93왕에게 군대는 있었어.
#94그런데 그 군대에게 나폴레옹을 쏘라고 명령할 수 있는지는 점점 불확실해지고 있었지.
#95그르노블이 열리고, 리옹에서도 나폴레옹의 진격은 멈추지 않았어. 네까지 합류했지.
#96이제 소식이 나폴레옹보다 먼저 북쪽으로 달려갔어.
#97처음에 한 장교가 생각할 질문은 이런 거였을 거야.
#98나폴레옹을 지지할까? 왕을 지지할까?
#99그런데 여러 연대가 나폴레옹에게 넘어갔다는 얘기를 들은 다음에는 다른 질문이 생겨.
#100다음 주에도 정말 루이 18세가 왕일까?
#101이 질문은 사람의 행동을 바꿀 수 있었어. 반드시 열렬한 나폴레옹 지지자라서가 아니어도 말이야.
#102권력이라는 건 명령서만으로 유지되지 않거든. 다른 사람들도 그 명령을 따를 거라는 믿음이 같이 있어야 해.
#103그런데 왕의 부대가 하나씩 나폴레옹에게 넘어갈 때마다 그 믿음이 약해졌어. 반대로 나폴레옹이 정말 파리까지 갈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점점 강해졌지.
#104성공이 다음 성공을 부르고 있었던 거야.
#105결국 3월 19일, 루이 18세는 파리를 떠났어.
#106그리고 다음 날.
#1073월 20일, 나폴레옹이 튈르리궁으로 들어갔어.
#108엘바를 떠난 지 22일째였어.
#109파리를 포위한 것도 아니고, 왕의 주력군을 대전투에서 꺾은 것도 아니었어.
#110약 1,100명으로 출발한 유배자가 다시 황제가 된 거야.
#111여기에는 묘한 대칭이 있어.
#1121814년에는 자기 군대가 더는 자신을 위해 싸우지 않아서 나폴레옹이 왕좌를 잃었어.
#1131815년에는 왕의 군대가 자신과 싸우지 않아서 그 왕좌를 되찾았지.
#114그런데 이 방식에는 한계가 있었어.
#115파리로 돌아온 나폴레옹은 평화를 원한다고 유럽에 알리려 했어.
#116하지만 유럽 열강 입장에서는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 오랫동안 전쟁을 벌여 간신히 그를 몰아냈는데, 한 번 유배를 허락했더니 섬에서 빠져나와 몇 주 만에 다시 황제가 됐으니까.
#117더 묘한 건, 나폴레옹이 엘바에 있는 동안 유럽 강대국들끼리 사이가 좋았던 것도 아니라는 거야.
#118빈 회의에서는 전후의 영토와 세력 문제를 두고 서로 심하게 부딪치고 있었어.
#119그런데 나폴레옹이 돌아왔어.
#120그러자 다시 공동의 적이 생겼지.
#121프랑스 안의 분열은 나폴레옹에게 도움이 됐어.
#122반대로 유럽 안의 분열은 나폴레옹이 돌아오면서 줄어들었어.
#123연합국이 다시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나폴레옹은 모든 적군이 모이기 전에 먼저 움직여야 했어.
#124그래서 1815년 6월, 다시 전쟁터로 나갔어.
#1256월 16일, 나폴레옹은 리니 전투에서 게프하르트 레베레히트 폰 블뤼허의 프로이센군을 꺾었어.
#126하지만 완전히 없애진 못했어.
#127이틀 뒤인 6월 18일.
#128워털루 전투가 벌어졌어.
#129나폴레옹은 웰링턴 공작이 이끄는 군대를 공격했지.
#130그런데 이 전장은 라프레와는 완전히 달랐어.
#131웰링턴의 병사들은 나폴레옹을 보고 몇 달 전까지 자기들을 지휘한 황제를 떠올릴 이유가 없었어. 블뤼허의 프로이센군도 마찬가지였지.
#132나폴레옹이 앞으로 걸어 나온다고 해서 총을 내릴 사람들이 아니었던 거야.
#133이제는 상대의 충성심을 흔들어서 이길 수 없었어.
#134그 군대를 진짜로 꺾어야 했지.
#135웰링턴의 군대가 버텼고, 시간이 지나자 리니에서 패했던 프로이센군까지 전장에 도착했어.
#136프랑스군은 무너졌어.
#137라프레에서는 상대가 쏘지 않았기 때문에 나폴레옹의 귀환이 시작됐어.
#138워털루에서는 아무도 총을 내리지 않았어.
#139워털루에서 패한 나폴레옹은 다시 파리로 돌아왔어.
#140하지만 이번에는 흐름을 돌릴 수 없었지.
#1411815년 6월 22일, 두 번째 퇴위를 했어.
#142그리고 자기 어린 아들을 후계자로 내세웠어.
#143나폴레옹 2세.
#144엘바에서 기다렸지만 끝내 오지 않았던 바로 그 아이야.
#145그런데 아이는 파리에 없었어.
#146프랑스에도 없었지.
#147오스트리아 빈에 있었어.
#148아버지가 황제라고 선언해도, 수백 킬로미터 밖에 있는 어린아이가 실제로 프랑스를 통치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어.
#149나폴레옹에게 남은 문제는 이제 왕좌가 아니었어.
#150어디로 빠져나가느냐였지.
#151그는 로슈포르까지 가서 미국으로 건너갈 길을 알아봤어. 하지만 영국 해군이 바다를 막고 있었고, 결국 나폴레옹은 영국 측에 몸을 맡기게 됐어.
#152그러자 유럽은 다시 고민해야 했어.
#153한 번 유배 보냈다가 탈출한 사람을 이번엔 어디에 둘 것인가.
#154엘바는 유럽에서 가까웠어. 나폴레옹은 그 섬의 주권자였고, 병사도 있었고, 배도 있었어.
#155그리고 결국 그 조건을 이용해 정말 탈출했지.
#156그래서 두 번째 유배는 완전히 달라졌어.
#157세인트헬레나.
#158남대서양 한가운데 있는 외딴 섬이었어.
#159이번에는 나폴레옹의 작은 나라가 아니었어. 자기 군대를 거느릴 수도 없었고, 마음대로 배를 준비할 수도 없었지. 움직임과 연락도 훨씬 강하게 감시됐어.
#1601815년 10월,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에 도착했어.
#161다시는 프랑스로 돌아오지 못했어.
#1621821년 5월 5일, 그 섬에서 죽었지.
#163엘바를 떠날 때 나폴레옹에게 프랑스를 정복할 만한 군대는 없었어. 약 1,100명의 병사와 자기 이름, 그리고 새 왕정이 아직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프랑스군이 있었을 뿐이야.
#164그 틈 하나로 22일 만에 왕좌를 되찾았어.
#165하지만 유럽군에게는 똑같은 틈이 없었지.
#166그리고 유럽도 한 번 겪어보고 배운 게 있었어.
#167첫 번째에는 나폴레옹을 왕좌에서 떼어놓았어.
#168두 번째에는 나폴레옹을 유럽에서 떼어놓았지.
#1691815년에는 나폴레옹 말고도 쫓겨난 왕 하나가 작은 병력을 데리고 옛 왕국으로 돌아가려 했어. 나폴레옹의 매제이자 나폴리 왕이었던 였지. 비슷한 도박처럼 보였는데 한 사람은 22일 만에 수도로 돌아왔고, 다른 사람은 거의 시작하자마자 모든 게 무너졌어. 둘 사이에는 뭐가 달랐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