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앵커로는 맞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토크쇼에서 자신의 방식을 찾고, 결국 자기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하는 위치까지 간 방송인
뉴스 앵커 자리에서 밀려난 오프라는 어떻게 자기 방송을 소유하게 됐을까?
#11977년 4월 1일, 볼티모어의 WJZ-TV가 22살짜리 저녁 뉴스 앵커 오프라 윈프리를 메인 앵커 자리에서 내렸어.
#2몇 달 전만 해도 방송국은 도시 곳곳에 오프라를 알리는 광고를 내걸고 있었지.
#3“What is an Oprah?”
#4그런데 이제 방송국이 내린 답은 별로 좋지 않았어. 오프라는 뉴스 앵커에 잘 맞지 않는다는 거였거든.
#5문제는 그 판단이 완전히 엉뚱한 것도 아니었다는 거야.
#6오프라는 아직 경험이 부족했어. 베테랑 공동 앵커 제리 터너와의 관계도 좋지 않았고, 뉴스 원고를 쓰고 편집하는 일도 좋아하지 않았지.
#7무엇보다 기자에게 요구되는 한 가지를 잘하지 못했어.
#8사건과 거리를 두는 것.
#9한번은 화재로 집을 잃은 사람들을 취재하러 갔어. 기자라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답을 받아 시청자에게 전달하면 되는 자리였지.
#10오프라는 거기서 멈추지 못했어. 자기 담요를 가져다줬고, 피해자들과 함께 울었어.
#11이 일 하나 때문에 앵커 자리에서 내려온 건 아니야. 당시에는 경험과 방송국 내부 판단, 공동 앵커와의 관계 같은 여러 문제가 겹쳐 있었어.
#12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지. 오프라가 사람들의 감정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뉴스 진행 방식과 잘 맞지 않았다는 것.
#13WJZ는 결국 그녀를 메인 저녁 뉴스에서 내렸어.
#14그렇다고 방송국에서 완전히 내보낸 것도 아니었어.
#15그래서 오히려 더 난감해졌지.
#16오프라도 다른 방송국으로 가려고 했어. 필라델피아에도 지원했고, 미니애폴리스에도 지원했지.
#17채용되지 않았어.
#18자기는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었는데 뉴스에서는 실패했고, 다른 도시에서도 불러주는 곳이 없었던 거야.
#19그러던 1978년, WJZ에서 다른 프로그램을 맡아보라는 이야기가 나왔어.
#20"People Are Talking."
#21아침 토크쇼였지.
#22오프라는 반기지 않았어. 자신은 진지한 기자가 되고 싶었지, 아침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 진행자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었거든.
#23그때 빌 베이커가 오프라를 설득했어. 토크쇼가 성공하면 뉴스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도 있다는 거였지.
#24게다가 오프라에게는 마땅한 다른 선택지도 없었어.
#25결국 자신이 원하지 않던 의자에 다시 앉았어.
#26이번에는 뉴스 데스크가 아니었지.
#27오프라 옆에는 리처드 셰어가 있었어.
#28둘은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웃었고, 방청객에게 말을 걸었어. 오프라는 상대의 이야기에 놀라면 놀란 표정을 지어도 됐고, 슬프면 슬퍼해도 됐지. 자기 경험을 꺼내도 괜찮았어.
#29뉴스에서는 억눌러야 했던 반응들이 여기서는 오히려 방송을 움직였어.
#30오프라는 첫 방송을 하고 거의 바로 느꼈다고 훗날 회고했어.
#31이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다고.
#32그렇다고 첫날부터 완성된 진행자였던 건 아니야. 오프라는 셰어와 약 6년 동안 "People Are Talking"을 진행하면서 타이밍과 리듬을 익혀갔어.
#33언제 웃을지. 언제 기다릴지. 무거운 이야기를 하다가 언제 분위기에 숨을 돌릴 틈을 줄지.
#34오프라의 힘은 사람과 함께 우는 데만 있지 않았어.
#35같이 울다가도 같이 웃을 수 있다는 데 있었지.
#36뉴스에서는 진행자가 사건 밖에 있어야 했어.
#37오프라는 자꾸 안으로 들어갔고.
#38그런데 토크쇼에서는 바로 그 순간 이야기가 살아났어.
#391984년의 오프라는 더 이상 무명의 진행자가 아니었어. 볼티모어에서 약 6년 동안 성공적으로 지역 토크쇼를 진행한 사람이었지.
#40그때 시카고의 WLS-TV에서 연락이 왔어.
#41데니스 스완슨에게는 살려야 할 아침 프로그램이 하나 있었어.
#42"A.M. Chicago."
#43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경쟁 프로그램에 크게 밀리고 있었다는 거야.
#44상대는 필 도나휴였어.
#45도나휴는 방청객 사이를 오가며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는 낮 시간대 토크쇼의 길을 먼저 닦은 사람이었고, 시카고는 그의 안방 시장이었지. 오프라도 훗날 도나휴가 없었다면 "The Oprah Winfrey Show"도 없었을 거라고 인정했어.
#46볼티모어에 남으면 이미 잘되는 일을 계속할 수 있었어.
#47시카고로 가면 전국적으로 알려진 도나휴와 경쟁해야 했고.
#48이번에는 누가 오프라를 실패한 자리로 밀어 넣은 게 아니었어.
#49오프라가 스스로 들어간 거야.
#50그리고 몇 달 뒤, 순위가 뒤집혔어.
#51"A.M. Chicago"의 시청률은 빠르게 올라갔어. 몇 달 만에 오프라는 시카고에서 도나휴를 추월했지.
#521985년 11월 닐슨 자료에서는 오프라가 레이팅 10, 시청점유율 37을 기록했고, 도나휴는 레이팅 4, 시청점유율 15였어.
#53오프라가 토크쇼라는 장르를 새로 발명한 건 아니야. 도나휴가 이미 만들어놓은 무대였지.
#54달랐던 건 그 무대 위에서 오프라가 움직이는 방식이었어.
#55질문만 던지고 물러서지 않았어. 웃고, 반응하고, 자기 이야기를 꺼냈고, 방청객까지 대화 안으로 끌어들였지.
#56볼티모어에서 6년 동안 익힌 방식이 훨씬 큰 시장에서도 통하기 시작한 거야.
#57"A.M. Chicago"는 곧 "The Oprah Winfrey Show"가 됐고, 1986년에는 전국 신디케이션을 시작했어. 한 도시의 방송국에서만 나오던 프로그램을 여러 지역 방송국에 판매해 미국 곳곳에서 볼 수 있게 된 거지.
#58비슷한 시기, 오프라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The Color Purple"에서 소피아를 연기했고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도 올랐어.
#59지역 토크쇼 진행자가 전국적인 스타가 된 거야.
#60"The Oprah Winfrey Show"는 전국 진출 첫 두 시즌에 당시 보도 기준 약 1억1,5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어.
#61여기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꽤 익숙한 성공담이 됐을 거야.
#62실패한 앵커가 자기 재능을 발견해 스타가 됐다.
#63그런데 오프라에게는 다른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어.
#64이렇게 성공한 방송은 대체 누구의 것일까?
#65"The Color Purple"을 촬영할 무렵 오프라는 이미 시카고에서 성공한 방송인이었어.
#66그런데 영화를 찍으러 가려면 방송 일정에 맞춰야 했고, 자기 휴가를 써야 했지.
#67프로그램의 얼굴은 오프라인데, 자기 시간을 결정하는 권한까지 오프라에게 있는 건 아니었던 거야.
#68오프라는 수십 년 뒤 이 시기를 돌아보며 ownership, 그러니까 소유권을 강조했어.
#69여기에 변호사이자 매니저였던 제프리 제이콥스가 들어왔지.
#70스타가 성공하면 보통 협상의 질문은 이쪽으로 가기 쉬워.
#71“출연료를 얼마나 더 받을 수 있을까?”
#72제이콥스가 밀어붙인 건 다른 질문이었어.
#73“프로그램은 누가 소유하는가?”
#74출연료가 아무리 높아도 한 번 받고 끝나. 하지만 프로그램 자체의 경제적 성공에 참여하고, 제작을 통제하고, 콘텐츠가 자산으로 남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져.
#75오프라는 최근 당시 선택을 돌아보며 자신에게 베팅했다고 표현했어. 확실한 급여보다 프로그램의 성공에 자기 몫을 거는 쪽으로 움직인 거지.
#76그리고 1988년, 그 생각이 실제 구조로 나타나기 시작했어.
#771988년 10월부터 "The Oprah Winfrey Show"는 Harpo Productions가 제작을 맡게 됐어.
#78King World는 계속 전국 배급을 담당했지. 오프라가 모든 일을 혼자 한 건 아니야. 프로그램을 미국 각 지역 방송국에 팔아줄 강력한 배급사는 여전히 필요했어.
#79하지만 중요한 게 달라졌어.
#80프로그램을 만드는 쪽.
#81오프라는 이제 남이 만드는 방송에 출연료를 받고 등장하는 스타만이 아니었어. 자기 회사가 자기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된 거야.
#82그리고 같은 해, 오프라 측은 시카고 웨스트사이드의 TV·영화 제작시설까지 인수했어.
#83약 8만8,000제곱피트 규모였고, 인수와 개조, 장비에 들어간 돈은 당시 보도 기준 1,000만 달러가 넘었어.
#84Harpo Studios가 됐지.
#8511년 전에는 방송국이 오프라에게 뉴스 앵커 의자에서 내려오라고 했어.
#86이제 오프라는 그 의자가 놓일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었어.
#87"The Oprah Winfrey Show"는 이후 더 커졌어. 1997~98 시즌에는 미국 TV 가구의 99% 이상이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시장에 판매될 정도로 배급망이 넓어졌지.
#88미국인의 99%가 오프라를 봤다는 뜻은 아니야.
#89볼 수 있는 지역이 사실상 미국 전역으로 넓어졌다는 뜻이야.
#90그리고 소유권이 남긴 건 그 시절의 높은 수익만이 아니었어. 오프라의 회사가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그 성공에 경제적으로 참여했으며, 방송에서 쌓인 콘텐츠도 자산으로 남았지.
#91"The Oprah Winfrey Show"는 2011년에 끝났어.
#92그런데 2026년에도 Harpo는 Amazon의 Wondery와 계약을 맺고 과거 쇼의 방대한 라이브러리를 다시 유통할 수 있었어.
#93방송은 끝났는데, 방송이 만들어낸 건 남아 있었던 거야.
#941976년 볼티모어의 광고판에는 이런 문장이 붙어 있었어.
#95“What is an Oprah?”
#96처음에는 방송국이 그 질문을 던졌어.
#97그리고 방송국이 답을 정했지. 오프라가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 어떤 방송에 어울리는지.
#98나중에는 질문이 달라졌어.
#99오프라가 만든 것은, 누구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