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bados에서 발견된 십대 가수에서 음악과 beauty, fashion의 방향을 직접 선택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이자 사업가가 된 인물
선택받던 Rihanna가 선택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12003년 여름, 미국의 음악 프로듀서 Evan Rogers는 가수를 찾으러 Barbados에 간 게 아니었어. Barbadian인 아내와 휴가를 보내러 왔을 뿐이었지. 그런데 아내와 아는 사이였던 현지 친구를 통해 노래를 좋아하는 십대 소녀 셋을 만나게 됐어.
#2그중 한 명이 15살 Robyn Rihanna Fenty였어.
#3세 친구는 함께 노래했고 각자도 노래했어. 그런데 오디션이 끝난 뒤 Rogers가 다시 만나고 싶어 한 사람은 Rihanna였어. Rihanna에게는 믿기 힘든 기회였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어. 함께 시작한 친구들이 어떤 기분일지 알았기 때문이야. 훗날 그녀는 셋이 함께 갔는데 한 명만 선택되는 일이 십대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야기했어.
#4두 번째 만남에는 친구들이 없었어. Rihanna는 학교 교복 차림으로 어머니 Monica와 함께 Rogers를 다시 만났어.
#5그 순간까지 Rihanna의 삶은 미국 음악산업과 거의 아무 관계가 없었어. Bridgetown에서 자랐고, 집에서는 훨씬 현실적인 문제들을 보고 있었지.
#6아버지 Ronald Fenty는 alcohol과 crack cocaine 문제를 겪었어. Rihanna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고, 부모의 관계는 결국 무너졌어. 하지만 Rihanna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폭력으로만 채워진 것도 아니었어. 수영과 자전거를 가르쳐주고 밖에서 함께 놀던 사람도 아버지였어.
#7어머니 Monica는 일을 하며 아이들을 키웠고, 맏이였던 Rihanna는 어린 동생 Rajad를 돌봤어. Rihanna가 훗날 자신이 빨리 자랐다고 말한 이유 중 하나였지.
#8그런 집에서 살던 소녀에게 갑자기 전혀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문이 열린 거야.
#9그런데 첫 번째 문을 연 사람은 Rihanna 자신이 아니었어.
#10누군가가 그녀를 선택했어.
#11Rihanna가 Rogers를 만난 뒤 곧바로 학교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사라진 건 아니야.
#12Rogers와 그의 오랜 음악 파트너 Carl Sturken은 Rihanna에게 가능성이 있다고 봤지만, 가능성만으로 음반 계약을 받을 수는 없었어. Rihanna는 학교를 다니면서 방학 등을 이용해 미국으로 건너갔고, 다시 Barbados로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하며 demo를 만들었어. 그 과정은 약 1년 동안 이어졌어.
#13어머니 Monica에게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어. 십대 딸을 다른 나라의 음악 프로듀서에게 맡겨야 했으니까. 하지만 Rogers의 아내가 Barbadian이라는 연결이 있었고, 가족은 Rogers 부부와 관계를 쌓아가며 기회를 지켜봤어.
#14결국 Rihanna는 16살 무렵 가족과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어.
#15그 demo에 들어 있던 노래 가운데 하나가 `"Pon de Replay"`였어.
#16Demo가 음반사들에 전달됐고 Def Jam이 빠르게 움직였어. 당시 막 Def Jam의 사장이 된 Jay-Z 앞에서 Rihanna가 직접 노래하는 오디션이 잡혔지.
#17Rihanna는 `"Pon de Replay"`와 다른 곡들, 그리고 Whitney Houston의 노래를 불렀어. 세계적인 rapper인 Jay-Z가 바로 앞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몹시 긴장했다고 훗날 회상했어.
#18하지만 오디션이 끝났다고 바로 집에 갈 수 있었던 건 아니야.
#19계약 협상은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새벽 3시 무렵까지 계속됐어. Jay-Z는 나중에 Godfather식 농담이었다고 설명했지만, Rihanna에게 계약서에 서명한 뒤 문으로 나가거나 29층 창문으로 나가는 방법이 있다는 식의 농담까지 던졌어.
#20실제로 Rihanna를 감금했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그만큼 Def Jam이 다른 음반사와 만나기 전에 Rihanna와 계약하고 싶어 했다는 당시 분위기를 보여주는 일화에 가까워.
#21그날 Rihanna는 계약서에 서명했어.
#22Barbados에서 친구 둘과 함께 노래했던 소녀가 이번에는 미국의 대형 음반사에게 선택된 거야.
#232005년 `"Pon de Replay"`가 나오자 모든 일이 빠르게 움직였어.
#24노래는 미국 Billboard Hot 100 2위까지 올라갔어. 첫 싱글부터 Rihanna는 무명에서 벗어났지. 같은 해 첫 앨범 `"Music of the Sun"`이 나왔고, 불과 몇 달 뒤인 2006년에는 두 번째 앨범 `"A Girl Like Me"`가 이어졌어. `"SOS"`와 `"Unfaithful"` 같은 히트곡도 나왔어.
#25Rihanna에게는 몇 년 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 시절이 거의 없었어.
#26오히려 반대의 문제가 생겼어.
#27성공이 너무 빨랐어.
#28Barbados에서 막 건너온 십대가 평생 음악산업에서 일해온 어른들에게 둘러싸였어. Rihanna는 훗날 초기에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니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따랐다고 이야기했어. 음악뿐 아니라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서도 자신의 결정권은 지금보다 훨씬 작았지.
#29Rihanna는 이미 유명했지만, 그 유명한 Rihanna가 정말 자신인지에 대해서는 점점 의문이 생겼어.
#30세 번째 앨범을 준비할 무렵 그 답답함이 작은 행동 하나로 튀어나왔어.
#31`"Good Girl Gone Bad"`의 사진 촬영을 앞둔 밤이었어.
#32Rihanna는 허락을 기다리지 않고 머리를 짧게 잘라 검게 염색했어.
#33다음 날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촬영장에 나타났지.
#34그리고 그 시기에 `"Umbrella"`가 왔어. 처음부터 Rihanna를 위해 만들어진 노래조차 아니었어. 다른 대형 가수들에게 갈 가능성이 있었던 곡이 결국 Rihanna에게 도착했지.
#35그런데 이번에는 이전과 조금 달랐어.
#36노래를 선택받아 부르는 것만이 아니라 Rihanna 자신도 어떤 가수가 될지를 적극적으로 선택하기 시작했거든.
#37짧은 검은 머리와 더 날카로운 visual, 달라진 sound가 합쳐졌고 `"Umbrella"`는 세계적인 hit가 됐어.
#38Rihanna가 처음으로 자기 career의 힘을 느꼈다고 회상하는 시기도 바로 이 무렵이야.
#39그런데 불과 2년 뒤,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를 결정한다는 문제가 훨씬 잔혹한 방식으로 돌아오게 돼.
#402009년 2월, Grammy Awards를 앞두고 당시 연인이던 Chris Brown이 Rihanna를 폭행했어.
#41사건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Rihanna에게는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었어.
#42부상을 입은 자신의 얼굴을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유출된 거야.
#43경찰은 그 사진이 가정폭력 수사 과정에서 촬영된 증거 사진처럼 보인다며 내부 조사를 시작했어. 하지만 이미 늦었어. Rihanna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모습은 전 세계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이미지가 되어 있었어.
#44Rihanna는 훗날 그 일이 굴욕적이었다고 이야기했어. 자신의 실제 삶이 인터넷에서 entertainment처럼 소비되는 느낌을 받았고, 자신을 보호해야 할 사람들조차 보호해주지 못한다면 어디에서 안전할 수 있느냐는 생각도 했어.
#45상황은 단순하지 않았어.
#46Rihanna는 사건 뒤 Brown에게 다시 돌아간 적도 있었어. 그를 여전히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 하지만 결국 그 선택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어.
#47한동안 Rihanna는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어.
#48그러다 어린 여성 팬들이 자신의 행동을 보고 폭력적인 관계로 돌아가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기 시작했어. 그래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기로 했지.
#49그렇다고 평생 `domestic violence victim`이라는 단어로만 불리고 싶은 것도 아니었어.
#50말해야 했지만, 그 사건 하나가 Rihanna라는 사람 전체가 되는 것도 원하지 않았어.
#512007년 Rihanna는 머리를 잘라버리면서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결정하려 했어.
#522009년에는 그 결정권 자체를 빼앗기는 경험을 한 거야.
#53사건 뒤 Rihanna가 곧바로 더 강한 사람이 되어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 건 아니야.
#54한동안 집에 있었어.
#55다시 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studio로 돌아간 뒤에도 쉬운 일이 아니었어. `"Rated R"`에 들어갈 음악은 이전보다 자신의 실제 감정과 가까웠고, Rihanna는 노래를 듣거나 녹음하면서 감정을 견디기 어려워했어. 녹음 도중 울 것 같아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적도 있었어.
#56그래도 작업을 계속했어.
#572009년 말 나온 `"Rated R"`는 이전 앨범보다 훨씬 어둡고 거칠었어.
#58하지만 여기서 Rihanna가 처음 creative control을 얻었다고 보면 시간 순서가 틀려. 그 변화는 이미 `"Good Girl Gone Bad"` 무렵부터 시작됐어.
#59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변화였어.
#60이전에는 어떤 모습과 sound가 멋있을지를 선택했다면, 이제는 자신의 실제 삶을 어디까지 음악 안에 보여줄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어.
#61원하지 않았던 사진 한 장으로 너무 많은 것을 강제로 보여준 뒤, Rihanna는 완전히 숨어버리는 대신 무엇을 보여줄지는 자신이 선택하는 방향으로 움직였어.
#62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선택의 범위는 음악보다 훨씬 커졌어.
#63Rihanna가 creative control을 얻었다는 말은 모든 것을 혼자 했다는 뜻이 아니야.
#64오히려 반대에 가까웠어.
#65자신보다 어떤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을 찾아 오래 함께 일했어.
#66Ciarra Pardo는 Rihanna의 visual 작업에서 시작해 Fenty Corp의 creative 영역을 이끌었고, Jahleel Weaver는 stylist assistant로 Rihanna를 만난 뒤 점점 더 큰 역할을 맡으며 creative director로 성장했어.
#67Rihanna는 음악, fashion, beauty 같은 서로 다른 프로젝트를 연결할 creative system을 주변에 만들기 시작했어.
#682014년에는 PUMA의 Women's Creative Director가 됐어. 단순히 운동화를 신고 광고에 등장하는 celebrity ambassador가 아니라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는 역할이었어.
#692016년 `"Anti"` 시기에는 변화가 음악 사업 자체에서도 보였어.
#70Rihanna는 자신의 Westbury Road Entertainment를 만들었고 이전 음악의 masters를 확보했어. `"Anti"`에서는 executive producer와 creative direction에도 자신의 이름을 올렸지.
#71처음 미국에 왔을 때 Rihanna는 음악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는 십대였어.
#72이제는 자신의 음악을 둘러싼 구조까지 만들고 있었어.
#73그리고 바로 다음 해, 그 능력이 완전히 다른 산업으로 넘어가.
#742017년 Fenty Beauty가 출시됐어.
#75여기서 흔히 생기는 오해가 하나 있어.
#76Rihanna가 40가지 foundation shade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아니야. 이전에도 M·A·C이나 Make Up For Ever 같은 브랜드에는 넓은 shade range가 있었고, Iman Cosmetics처럼 Black women을 위한 beauty market을 오래 개척해온 브랜드들도 있었어.
#77Fenty가 바꾼 건 40이라는 숫자의 발명이 아니었어.
#78Fenty Beauty는 첫날부터 40 shades를 핵심으로 내놓았고, Kendo와 함께 17개국 약 1,600개 매장에서 동시에 대규모 출시했어.
#79아주 밝은 피부부터 아주 어두운 피부까지 처음부터 같은 고객으로 계산한 거야.
#80Rihanna에게는 그게 그렇게 이상한 생각도 아니었어.
#81Barbados에서 자란 그녀에게 서로 다른 피부색은 특별한 diversity campaign이 아니라 일상이었어. 자신의 가족 안에서도 피부색의 차이를 봤어. 오히려 beauty industry에 깊이 들어간 뒤에야 어두운 피부에 맞는 foundation을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더 분명하게 알게 됐다고 했어.
#82제품이 나오자 Rihanna도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 돌아왔어.
#83자기 피부에 맞는 foundation을 처음 찾은 여성들이 makeup counter에서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거야.
#84그 순간 40 shades는 marketing 숫자 이상이 됐어.
#85어떤 사람들에게는 거대한 beauty industry가 이제야 "당신도 처음부터 여기의 고객이었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던 거야.
#86경쟁사들도 빠르게 shade range를 확대하기 시작했고, 업계에서는 결국 `"Fenty Effect"`라는 말까지 생겼어.
#87Fenty Beauty는 Rihanna를 음악 밖에서도 거대한 사업가로 만들었고, 회사 지분 가치는 그녀를 billionaire 반열에 올리는 핵심 자산이 됐어.
#88하지만 Fenty라는 이름이 붙는다고 모든 것이 성공한 건 아니었어.
#892019년 Rihanna는 LVMH와 함께 luxury fashion house Fenty를 시작했어.
#90세계 최대 luxury group 가운데 하나와 세계적인 superstar가 처음부터 새로운 maison을 만드는 거대한 프로젝트였어. Rihanna는 LVMH maison을 이끄는 최초의 Black woman이라는 역사적인 위치에도 올랐어.
#91겉으로 보면 다음 성공은 이미 정해진 것처럼 보였어.
#92그런데 그렇지 않았어.
#93높은 가격대와 어려운 시장 환경 속에서 Fenty ready-to-wear는 기대만큼 자리를 잡지 못했고, COVID-19까지 겹쳤어. 2021년 Rihanna와 LVMH는 fashion house의 활동을 중단했어.
#94Fenty Beauty를 만든 사람이 Fenty fashion에서도 자동으로 성공한 건 아니었던 거야.
#95그 대신 잘되는 사업에는 계속 집중했어. Savage X Fenty는 성장했고, Rihanna는 2023년 그 회사의 CEO 자리도 전문경영인에게 넘기고 executive chair로 남았어.
#96이것도 Rihanna가 가진 선택권의 한 형태였어.
#97모든 자리를 자신이 붙잡는 것이 control은 아니었어.
#98잘하는 사람에게 맡길 수도 있고,
#99작동하지 않는 프로젝트는 멈출 수도 있었어.
#100그리고 Rihanna가 얻게 된 선택권을 가장 이상하게 보여주는 건 어쩌면 성공한 사업이 아니라 나오지 않은 앨범이야.
#101Rihanna의 마지막 studio album `"Anti"`는 2016년에 나왔어.
#102그 뒤 팬들은 계속 다음 앨범을 기다렸어.
#1031년이 지나고,
#1045년이 지나고,
#105거의 10년이 지나도 새 studio album은 나오지 않았어.
#106사업이 너무 잘돼서 Rihanna가 음악을 버렸다는 추측도 따라다녔어.
#107하지만 Rihanna의 설명은 달랐어.
#108그녀는 그동안 studio에 있었어.
#109여러 방향의 음악을 만들었고, 한동안 reggae를 중심으로 생각하기도 했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의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느끼면 다시 버렸어.
#1102025년 Rihanna는 다음 음악에는 자신이 성장한 모습이 들어가야 한다고 이야기했어. 쉽게 radio에서 소비되기 위한 음악도 아니고, 하나의 genre로 간단히 설명되는 음악도 아닐 거라고 했지.
#111오랜 공백 때문에 오히려 아무 음악이나 내놓을 수 없게 된 거야.
#112자기 이름으로 이 음악을 정말 내놓을 수 있는지,
#113이 노래들을 들고 1년 동안 tour를 다닐 수 있는지,
#114그 답이 아니라면 다시 시작했어.
#11516살 Rihanna는 음반 계약 하나를 얻기 위해 새벽까지 Def Jam 사무실에 있었어.
#116이제 Rihanna는 전 세계 사람들이 기다리는 앨범을 만들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놓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됐어.
#117물론 선택권이 커졌다고 삶이 쉬워진 건 아니야.
#118A$AP Rocky와 가족을 이루고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된 뒤에는 다른 문제가 생겼어. Rihanna는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러 갈 때조차 아이들과 보낼 시간을 빼앗는 것 같은 감정을 느낀다고 이야기했어.
#119예전에는 기회가 오면 잡아야 했어.
#120지금은 음악, beauty, fashion, 가족 가운데 어디에 시간을 줄지 선택해야 해.
#121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고, 그래서 선택의 비용도 커졌어.
#1222026년, Rihanna는 세 아이를 데리고 Barbados의 어린 시절 집을 찾았어.
#123Westbury에서 자신이 자랐던 곳이야.
#124아버지의 addiction이 있었고 부모의 싸움이 있었고, 어머니가 일하는 동안 어린 동생을 돌보던 기억이 있는 곳이야.
#125그곳에서 자란 십대는 어느 날 친구 두 명과 미국 producer 앞에서 노래했어.
#126그리고 혼자 선택됐어.
#127그 선택 하나가 Rihanna를 Barbados 밖으로 데려갔어.
#128그런데 20여 년 뒤 Rihanna가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왔을 때 그 거리의 이름은 더 이상 Westbury New Road가 아니었어.
#129`"Rihanna Drive"`였어.
#130Rihanna 자신도 한순간에는 아직 그곳에서 자라던 아이처럼 느껴지는데, 다음 순간에는 자기 아이들을 Rihanna Drive로 데려오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진다고 했어.
#131처음 그 집을 떠났을 때 Rihanna에게 가장 중요한 건 누군가 자신을 선택해주는 일이었어.
#132Producer가 선택하고,
#133음반사가 선택하고,
#134사람들이 노래를 선택해야 했어.
#135그 뒤 Rihanna가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살게 된 건 아니야. 폭력도 겪었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진도 공개됐고, 실패한 사업도 있었어.
#136다만 선택할 수 있는 범위는 계속 달라졌어.
#137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138누구와 일할지.
#139어떤 피부색을 고객으로 상상할지.
#140어떤 사업을 멈출지.
#141어떤 음악은 아직 세상에 내놓지 않을지.
#142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떠났던 집으로 언제 돌아갈지도.
#143세 친구 가운데 혼자 선택됐던 Barbados의 소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선택을 기다리는 사람보다 선택해야 하는 것이 훨씬 많은 사람이 되어 그 집 앞에 다시 서 있었어.
#144Rihanna가 자신의 성을 사업 이름으로 쓴 것과 달리, 2012년 만든 에는 조부모 Clara와 Lionel Braithwaite의 이름을 붙였어. 그리고 그 재단의 초기 큰 프로젝트 중 하나는 Barbados의 Queen Elizabeth Hospital에 암 치료 시설을 만드는 일이었지. Rihanna는 왜 세계적인 pop star가 된 뒤에도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조부모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