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 로의 스타에서 오너가 되고 올림픽의 얼굴까지 된 래퍼
살인재판을 받던 래퍼는 어떻게 올림픽의 ‘행복 대사’가 됐을까
#11996년 2월, 로스앤젤레스 법정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어.
#2스눕 독은 스물네 살이었고, 이미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젊은 래퍼 가운데 한 명이었지. 데뷔 앨범 "Doggystyle"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그 느릿하고 미끄러지는 목소리는 한 번 들으면 잊기 어려웠어.
#3그런데 그날 법정을 나오는 스눕의 품에 있던 건 상도, 음반도 아니었어.
#4한 살배기 아들 코디였지.
#5스눕은 재판을 받는 동안 계속 한 가지를 생각했다고 했어. 자기가 이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을까.
#6그럴 수밖에 없었어. 1993년 필립 월더마리엄이 총격으로 숨진 사건에서 스눕과 경호원 맥킨리 리가 기소돼 있었거든. 배심원단은 살인과 폭행 공모 혐의에 무죄를 평결했어. 자발적 과실치사 혐의에는 의견이 모이지 않아 그 부분은 미결정 심리가 됐고.
#7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었어. 그 가족에게 이 일은 유명 래퍼의 극적인 인생 장면으로 정리될 수 없는 비극이었지.
#8스눕에게도 이 몇 년은 이상한 시간이었어. 그는 거의 동시에 초대형 스타가 됐고, 감옥에 갈 수도 있는 피고인이 됐거든.
#9그래서 재판이 끝난 날엔 이제 가장 위험한 시기가 지나간 것처럼 보였어.
#10그런데 오히려 그때부터, 스눕을 스타로 만든 세계가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했어.
#11스눕 독의 본명은 Calvin Broadus였어.
#12롱비치에서 자랐고, 어린 시절엔 교회에서 노래하고 피아노도 쳤지. 어머니 Beverly Tate가 만화 "Peanuts"의 Snoopy를 닮았다며 ‘Snoop’이라는 별명을 붙여줬어.
#13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삶은 훨씬 거칠어졌어. 마약 관련 범죄로 수감됐고, 보호관찰을 어기면서 감옥을 다시 드나들기도 했지.
#14그래도 음악은 계속 있었어.
#15사촌 Nate Dogg, 친구 Warren G와 함께 213이라는 그룹을 만들었거든. 거창한 스튜디오가 있었던 것도 아니야. 가진 장비를 모아 녹음하고 테이프를 돌리던 롱비치의 젊은이들이었어.
#16그런데 Warren G에게는 결정적인 연결고리가 하나 있었어.
#17의붓형제가 Dr. Dre였지.
#18어느 날 213의 테이프가 Dre에게 들어갔어. Warren이 Snoop에게 말했지. Dre가 네 목소리를 들었고, 같이 작업하고 싶어 한다고.
#19Snoop은 안 믿었어. 장난이라고 생각했지.
#20그러다 전화기 너머에서 진짜 Dre의 목소리가 들렸어.
#21월요일에 스튜디오로 오라는 거였어.
#22그 전화 한 통으로 모든 게 달라졌어.
#23Dr. Dre는 Snoop을 한번 시험해보고 돌려보내지 않았어.
#241992년 싱글 "Deep Cover"에 함께했고, 이어 자신의 앨범 "The Chronic" 곳곳에 Snoop의 목소리를 넣었지. Snoop의 솔로 앨범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미국은 벌써 그의 목소리를 알고 있었어.
#25그리고 1993년 Death Row Records에서 "Doggystyle"이 나왔어.
#26앨범은 폭발했지.
#27Snoop은 순식간에 갱스터 랩을 대표하는 스타가 됐어. 그런데 거의 같은 시기에 살인사건의 피고인이기도 했어.
#28어느 날은 음악 잡지와 TV에 나오고, 다른 날은 법정에 앉아 자기 자유가 결정되기를 기다리는 삶이었어.
#29그러니 1996년의 평결은 새 출발처럼 보일 만했지.
#30하지만 먼저 Dre가 Death Row를 떠났어.
#31Dre가 떠난 지 몇 달 뒤엔 Tupac Shakur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총격을 당했어.
#32엿새 뒤 세상을 떠났지.
#33Snoop과 Tupac 사이가 마지막까지 완벽했던 것도 아니었어. 동부와 서부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던 때, Snoop이 Biggie와 Puff Daddy에게 개인적인 적대감은 없다는 취지로 말한 걸 Tupac이 못마땅해했다는 게 Snoop의 훗날 이야기였어.
#34언젠가 다시 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35그럴 시간은 오지 않았어.
#36그리고 Death Row의 Suge Knight도 감옥에 갔어.
#37짧은 시간 사이에 Dre가 떠나고, Tupac이 죽고, Suge가 사라진 거야.
#38그런데 Snoop은 여전히 앨범을 내야 했어.
#39Dre 없이 만든 두 번째 앨범 "Tha Doggfather"는 1위로 데뷔했어. 실패라고 부를 수는 없지. 다만 "Doggystyle" 같은 폭발은 아니었어.
#40더 골치 아픈 건 Death Row와의 관계였어. Snoop은 훗날 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느꼈고, 자기 커리어를 자기 뜻대로 움직이기 어려워졌다고 회고했지.
#41법정에서는 자유를 얻었는데,
#42자기를 스타로 만든 회사에서는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던 거야.
#43Snoop은 정면으로 맞설 생각을 했어.
#44그가 훗날 이야기한 프로젝트 제목은 아주 노골적이었지.
#45"Fuck Death Row."
#46자기를 스타로 만든 레이블을 대놓고 공격하겠다는 거였어.
#47그때 전혀 다른 방식으로 힙합 사업을 하던 사람이 나타났어.
#48Master P였어.
#49뉴올리언스를 기반으로 No Limit Records를 키운 사람이었지. Snoop의 계획을 들은 Master P는 더 세게 공격하라고 부추기지 않았어.
#50말렸어.
#51Snoop의 회고에 따르면, 그런 음반을 계속 밀어붙이면 앨범이 나오기도 전에 죽을 수 있다는 취지로 경고했어.
#52실제로 누군가 Snoop을 죽이려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다는 뜻은 아니야. 중요한 건 당시 Snoop 자신이 그 상황을 그만큼 위험하게 느꼈다는 거지.
#53Snoop은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어.
#54Master P는 다른 선택을 보여줬어.
#55그냥 나가는 거였어.
#56Master P가 말한 ‘나가기’는 레이블만 바꾸는 일이 아니었어.
#57Snoop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벗어나야 했어. 결국 가족을 데리고 루이지애나의 배턴루지로 옮겼지.
#58Death Row를 향한 공격적인 음반을 준비하던 사람이, 가족과 함께 환경 자체를 바꿔버린 거야.
#59Snoop은 나중에 그 이동이 자신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어.
#60그리고 Master P 곁에서는 또 하나를 봤지.
#61소유였어.
#62Snoop의 회고를 들어보면 Death Row 시절엔 자기가 살던 집이나 타던 차조차 Suge Knight 명의였다고 해. 세상이 보기엔 모든 걸 가진 슈퍼스타였는데, 정작 자기 이름으로 가진 건 생각보다 적었던 거지.
#63Master P는 다른 얘기를 했어.
#64집도 자기 것. 차도 자기 것. 사업도 자기 것.
#65스타가 되는 것과 자기 것을 갖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거야.
#66Snoop은 나중에 아주 짧게 정리했어.
#67Master P가 자기 목숨을 구했다고.
#68물론 Snoop의 변화가 Master P 한 사람 때문이었다고 볼 수는 없어. 이미 살인재판을 겪었고, 아버지가 됐고, Tupac의 죽음과 Death Row의 붕괴까지 봤으니까.
#69다만 Master P는 복수 말고도 다른 길이 실제로 있다는 걸 눈앞에서 보여준 사람이었어.
#701998년 Snoop은 No Limit에서 "Da Game Is to Be Sold, Not to Be Told"을 냈어.
#71앨범은 다시 차트 정상에 올랐지.
#72Master P는 Snoop에게 앨범 하나만 던져주고 끝내지도 않았어. Mystikal, Silkk the Shocker, C-Murder 같은 No Limit 아티스트들의 음악에 계속 참여시키면서 완전히 다른 환경 안으로 집어넣었어.
#73Snoop은 Death Row와 함께 과거가 되지 않았어.
#74그리고 오래지 않아 익숙한 사람도 돌아왔지.
#75Dr. Dre였어.
#76둘이 Death Row 때문에 헤어진 뒤 30년 동안 완전히 끊겨 있었던 건 아니야. 1990년대 후반부터 Snoop은 다시 Dre와 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실제로 둘은 여러 번 다시 음악을 만들었어.
#77처음에는 Dre가 Snoop을 자기 세계로 데려왔지.
#78이번엔 둘 다 Death Row 밖에서 다시 만난 거야.
#79Snoop은 과거를 없애면서 살아남은 게 아니었어.
#80과거까지 들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어.
#812004년이면 Snoop은 더 이상 신인이 아니었어.
#82이미 ‘1990년대 서부 힙합의 스타’라고 과거형으로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시점이었지.
#83그런데 Pharrell Williams와 만든 "Drop It Like It's Hot"이 Billboard Hot 100 1위에 올랐어.
#84Snoop 자신의 이름으로 기록한 첫 Hot 100 1위였어.
#85"Doggystyle" 때가 아니야.
#86커리어가 시작되고 10년이 훌쩍 지난 다음이었어.
#87새로운 세대의 프로듀서와 만나자 익숙한 Snoop의 목소리에서 또 다른 음악이 나온 거야.
#88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음악 바깥에서도 전혀 다른 역할이 생겼어.
#89시작은 아들 코디의 풋볼이었어.
#90Snoop은 아들의 경기를 지켜보다 코칭에 관여했고, 2005년 로스앤젤레스 지역 아이들을 위한 Snoop Youth Football League를 만들었어.
#91그곳을 거친 아이 가운데 훗날 NFL 쿼터백이 되는 C.J. Stroud도 있었지.
#92그런데 Stroud의 어머니 Kimberly는 처음부터 좋아한 게 아니었어.
#93리그를 운영하는 사람이 Snoop Dogg라고?
#94망설였지.
#95그 이름에 붙어 있던 이미지가 있었으니까.
#96그래도 직접 연습 현장에 가봤어. 그리고 생각이 바뀌었어. 운영은 진지했고, 사람들은 프로페셔널했거든.
#97결국 아들을 맡겼어.
#98Stroud는 그 리그에서 두 시즌을 뛰었어.
#99이 장면은 꽤 묘하지.
#100한때 많은 부모가 자기 아이에게 들려주기 싫어했을 법한 음악의 주인공에게,
#101이번에는 한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맡긴 거니까.
#1022008년에는 더 뜻밖의 자리에 나타났어.
#103Martha Stewart의 낮 시간대 TV 프로그램이었지.
#104Snoop은 Martha와 함께 으깬 감자를 만들었어.
#105한쪽은 미국의 요리와 생활문화를 상징하는 인물이었고, 다른 쪽은 "Doggystyle"의 래퍼였어. 겉으로 보면 일부러 안 어울리는 둘을 붙여놓은 것 같았지.
#106그런데 방송을 해보니 둘이 잘 맞았어.
#107Snoop은 나중에 Martha가 래퍼들을 낮 시간대의 주류 TV 안에 자연스럽게 데려온 걸 높이 평가했어.
#108Martha가 Snoop을 얌전한 다른 사람으로 바꾼 건 아니었어.
#109Snoop인 채로 들어갈 수 있는 방을 하나 더 만들어준 거지.
#110둘은 2015년 Justin Bieber의 코미디 roast에서 다시 가까워졌고, 2016년에는 "Martha & Snoop's Potluck Dinner Party"까지 함께 시작했어.
#111물론 영리한 TV 기획이기도 했지.
#112그런데 관계는 그걸 넘어서 오래갔어. Martha는 Snoop의 세계에 들어왔고, Snoop도 Martha의 세계에 들어갔어.
#113둘 다 상대 때문에 자기 세계가 넓어진 거야.
#114Snoop의 인생을 보면 ‘끊임없는 이미지 변신’이라고 말하고 싶어져.
#115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전 역할을 버린 적이 거의 없어.
#116래퍼를 그만두고 풋볼 코치가 된 게 아니야. 코치를 그만두고 TV 스타가 된 것도 아니고. Martha와 요리한다고 롱비치의 Snoop을 지운 것도 아니야.
#117역할이 바뀐 게 아니라 계속 쌓였어.
#118래퍼. 아버지. 사업가. 풋볼 코치. TV 스타. Martha의 친구.
#119그 모든 걸 하면서도 여전히 랩을 했지.
#120그리고 2022년, 가장 오래된 관계 하나가 완전히 뒤집혔어.
#121Snoop Dogg가 Death Row Records 브랜드를 인수했어.
#122여기서는 정확히 볼 필요가 있어. 과거 Death Row의 모든 음악 권리와 모든 마스터를 한꺼번에 되찾았다는 뜻은 아니야. 공개된 거래에서 핵심으로 확인되는 건 Death Row Records 브랜드의 인수였어.
#123그래도 장면 자체는 충분히 묘해.
#1241990년대 Snoop은 Death Row의 아티스트였어.
#125나오려고 애썼고, "Fuck Death Row"라는 프로젝트까지 생각했지.
#126Master P를 만나 싸움을 키우는 대신 다른 곳으로 갔고, 그에게서 자기 것을 소유하는 방식을 배웠다고 나중에 이야기했어.
#127그리고 20여 년 뒤,
#128Snoop이 Death Row의 오너가 됐어.
#129젊었을 때는 어떻게 빠져나갈지를 고민했던 브랜드를, 나이가 들어서는 직접 산 거야.
#130복수라고 하기엔 훨씬 이상한 결말이지.
#131그리고 거기서도 옛사람 하나가 다시 옆에 있었어.
#132Death Row를 인수한 직후 Snoop은 Super Bowl LVI 하프타임 무대에 올랐어.
#133옆에는 Dr. Dre가 있었지.
#13430년 전엔 Dre가 롱비치의 무명 래퍼가 담긴 테이프를 듣고 전화를 걸었어.
#135이번에는 둘 다 자기 이름으로 거대한 커리어를 만든 뒤였어.
#1362024년에는 둘이 "Missionary"라는 앨범도 함께 냈지. Snoop이 소유한 Death Row와 Dre의 Aftermath가 같은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렸어.
#137처음에는 Dre가 Snoop을 발견했어.
#138이제는 둘 다 자기 세계를 가진 상태에서 다시 만난 거야.
#139그리고 그해 Snoop은 또 전혀 다른 곳으로 갔어.
#140올림픽이었어.
#141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NBC는 Snoop을 특별 특파원으로 보냈어.
#142선수들을 만나고, 경기를 보고, 스포츠를 직접 해보고, 올림픽 성화까지 들었지.
#143그리고 베르사유에서는 Martha Stewart와 승마복을 맞춰 입고 승마 경기를 봤어.
#1441993년의 Snoop에게 이 장면을 보여줬다면 믿었을까.
#145"Doggystyle"이 나오던 해에는 살인사건 재판을 앞두고 있었어.
#14631년 뒤에는 Martha Stewart 옆에서 올림픽 승마를 보고 있었지.
#147그런데 사람들이 좋아한 이유는 Snoop이 더 이상 예전 Snoop처럼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었어.
#148정반대였어.
#149여전히 Snoop이라서 재밌었던 거야.
#150NBC도 그를 점잖은 스포츠 해설자로 만들지 않았어. 선수들을 만나고, 놀라고, 응원하고, 자기 방식대로 말하게 했지.
#151반응이 좋았고,
#152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어.
#153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동계 올림픽에서도 NBC는 Snoop을 다시 불렀어.
#154이번에는 거의 믿기 어려운 표현까지 붙었지.
#155‘Ambassador of Happiness.’
#156행복 대사.
#157Team USA의 명예 코치 역할도 맡았어.
#158한때 미국에서 갱스터 랩을 둘러싼 공포와 논쟁의 얼굴 가운데 하나였던 사람이, 30여 년 뒤에는 올림픽에서 선수들을 격려하고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이 된 거야.
#159그런데 여기서 ‘위험한 래퍼가 착한 유명인으로 변했다’고 끝내면 또 안 맞는 게 있어.
#160Snoop은 계속 랩을 하고 있었거든.
#1612024년에는 Dre와 "Missionary"를 냈고, 2025년에도 새 음악을 냈고, 2026년에는 "10 Til' Midnight"을 발표했어.
#162래퍼에서 올림픽 스타로 전향한 게 아니었어.
#163래퍼인 채로 올림픽 스타까지 된 거지.
#164그리고 그 사이, 이야기의 맨 처음에 있던 사람이 다시 돌아왔어.
#165어머니 Beverly Tate는 2021년 세상을 떠났어.
#166Calvin에게 ‘Snoop’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사람이었지. 세상이 Snoop Dogg를 알기 훨씬 전, 교회에서 노래하던 아이였을 때부터 그를 알고 있던 사람이야.
#1672025년 4월 27일.
#168Beverly가 살아 있었다면 74번째 생일이 되는 날이었어.
#169Snoop은 "Altar Call"이라는 가스펠 앨범을 냈어.
#170표지에는 어머니의 사진이 있었고, 첫 곡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노래였어.
#171그리고 그 앨범을 낸 레이블은 Death Row Records였어.
#172어머니가 Snoop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교회 소년이 자라서 갱스터 랩의 상징이 됐어. Death Row의 스타가 됐고, Death Row에서 빠져나오려 했고, 자기 것을 소유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지.
#173그러다 수십 년 뒤 Death Row의 오너가 됐어.
#174그리고 그 레이블에서 어머니에게 바치는 가스펠 앨범을 냈어.
#175Calvin Broadus가 사라지고 Snoop Dogg가 된 게 아니었어.
#176교회에서 노래하던 아이도, 롱비치의 래퍼도, Death Row의 스타도, 아버지도, 풋볼 코치도, Martha의 친구도, 사업가도, 올림픽의 ‘행복 대사’도 계속 한 사람 안에 있었어.
#177Snoop Dogg가 오래 살아남은 방식은 매번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었어.
#178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역할을 계속 늘려온 거였어.
#179Snoop이 No Limit와 정식으로 손잡기 전, 가 작은 피처링 하나를 부탁했어.
#180Snoop은 대가로 “15”를 불렀지. 자기 기억으로는 1,500달러를 뜻한 거였어.
#181그런데 Master P가 건넨 돈은 1,500달러가 아니었어.
#18235,000달러였어.
#183Death Row에서 돈과 소유 문제에 지쳐 있던 Snoop에게는 꽤 이상한 순간이었지.
#184아직 자기 소속도 아닌 래퍼에게, 왜 Master P는 그가 요구한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