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를 해양 강국으로 바꾸고 끝내 페르시아로 망명한 전략가
페르시아를 꺾은 남자는 왜 페르시아 왕에게 갔을까?
#1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앞에 한 망명자가 나타났어. 이름은 테미스토클레스였지.
#2그런데 보통 망명자가 아니었어.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아버지 크세르크세스가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했을 때, 그 원정을 좌절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테네 사람이었거든.
#3이제 테미스토클레스에게는 군대도, 함대도 없었어. 아테네로 돌아갈 수도 없었지. 한때 페르시아 왕을 상대로 싸우던 남자가 이제는 그 페르시아 왕의 아들에게 자기 목숨을 맡기러 온 거야.
#4그런데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그를 죽이지 않았어.
#5받아들였지.
#6왜 그랬을까?
#7답을 찾으려면 테미스토클레스가 아직 페르시아와 싸우기 전으로 돌아가야 해. 그때부터 그는 힘으로 상대를 누르기보다, 상대 앞에 놓인 선택 자체를 바꾸는 데 능했거든.
#8아테네 근처 라우리온 은광에서 큰 수입이 생겼어. 시민들에게 나눠줄 수도 있는 돈이었지.
#9테미스토클레스는 다른 제안을 했어. 돈을 나눠 갖지 말고, 그걸로 삼단노선 함대를 만들자는 거였어.
#10먼 미래의 전쟁만 이야기했다면 쉽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아테네에는 이미 눈앞의 적이 있었어. 해상 경쟁국 아이기나였지.
#11아이기나와 싸우려면 배가 필요했어. 그러니 시민들 앞의 선택은 막연한 미래 대비가 아니었어. 지금 돈을 받을 것인가, 지금 싸우고 있는 적을 상대할 함대를 가질 것인가.
#12아테네는 배를 택했어.
#13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함대는 아이기나보다 훨씬 거대한 상대를 만나게 돼.
#14페르시아였어.
#15기원전 480년, 크세르크세스의 대군이 그리스로 내려왔어.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그리스군의 방어선이 무너졌고, 페르시아군은 아테네로 향했지.
#16이제 아테네에는 끔찍한 선택이 남았어.
#17도시를 지키는 게 아니라, 비우는 거였어.
#18주민들은 피난했고 싸울 수 있는 많은 남자는 함대에 올라탔어. 페르시아군은 결국 아테네에 들어왔고, 아크로폴리스가 함락되고 도시가 불탔지.
#19그런데 아테네는 전쟁에서 사라지지 않았어.
#20시민과 함대가 남아 있었거든.
#21몇 년 전 나눠 가질 수도 있었던 은이 이제 바다 위의 군함이 되어 있었어. 그 함대 덕분에 아테네는 도시를 잃고도 계속 싸울 수 있었지.
#22하지만 배가 있다고 이기는 건 아니야. 페르시아 함대는 훨씬 컸어. 넓은 바다에서 그 숫자를 마음껏 쓰게 두면 불리했지.
#23테미스토클레스는 페르시아의 배를 없앨 수 없었어.
#24대신 그 많은 배가 쓸모없어지는 장소를 찾았어.
#25그곳이 살라미스 주변의 좁은 바다였어.
#26넓은 바다에서는 배가 많을수록 유리해. 하지만 좁은 수역에서는 많은 배를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부터 어려워져. 테미스토클레스는 바로 그 차이에 걸었지.
#27문제는 페르시아만이 아니었어. 그리스 연합군도 어디서 싸울지를 놓고 갈라져 있었거든. 일부 지휘관은 살라미스를 떠나 펠로폰네소스 쪽으로 물러나려 했어.
#28그래서 테미스토클레스는 위험한 수를 던졌어.
#29시킨노스를 몰래 크세르크세스에게 보낸 거야.
#30전해진 메시지의 핵심은 이랬어. 그리스군이 도망치려 한다. 지금 움직이면 잡을 수 있다.
#31크세르크세스는 움직였어. 페르시아 함대가 그리스군의 퇴로를 막기 시작했지.
#32이 한 번의 움직임으로 테미스토클레스는 두 가지를 노렸어. 페르시아 함대를 자신이 원하는 좁은 바다로 끌어들이고, 동시에 떠나려던 그리스군도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
#33결과를 알고 보면 완벽한 계략처럼 보여. 하지만 그 순간에는 위험한 도박이었어. 적을 좁은 바다로 불러들였다고 승리가 보장되는 건 아니니까.
#34그날 밤, 테미스토클레스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어.
#35한때 그의 가장 강한 정치적 경쟁자였던 아리스테이데스였어.
#36아리스테이데스는 테미스토클레스와 경쟁하다 아테네에서 도편추방까지 당했던 사람이야. 그런데 페르시아가 침공하자 추방자들이 돌아왔고, 그도 다시 전쟁에 뛰어들었어.
#37후대의 기록에 따르면 아리스테이데스는 밤바다를 건너와 페르시아 함대가 그리스군을 포위했다고 알려줬어.
#38테미스토클레스가 만들려고 했던 바로 그 상황이었지.
#39둘이 갑자기 친구가 될 필요는 없었어. 지금 서로 싸울 때가 아니라는 것만 알면 됐으니까.
#40곧 살라미스 해전이 벌어졌어. 좁은 바다에서 페르시아는 수적 우세를 마음껏 쓰기 어려웠고, 여러 그리스 도시의 함선이 함께 싸웠어. 아리스테이데스도 인근 프시탈레이아에서 전투에 참여했지.
#41살라미스는 테미스토클레스 혼자 이긴 전투가 아니야.
#42하지만 그리스군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에서 싸우도록 만드는 데 그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분명해.
#43그는 페르시아의 힘을 없앤 게 아니었어.
#44그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려운 곳으로 끌어들인 거야.
#45아테네는 살아남았고, 테미스토클레스는 영웅이 됐어.
#46그런데 전쟁이 끝나자 게임의 규칙도 달라졌어.
#47페르시아군이 물러난 뒤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의 성벽 재건을 밀어붙였어. 스파르타가 경계하자 협상으로 시간을 끄는 동안 아테네에서는 공사를 서둘렀지.
#48그는 항구도시 피레우스도 강화했어. 바다는 살라미스 한 번을 위한 임시방편이 아니었거든. 앞으로 아테네가 강해질 방법이라고 본 거야.
#49하지만 전쟁이 끝나면 정치가 돌아와.
#50스파르타와 어떻게 지낼지,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어떻게 이어갈지, 다음 시대의 아테네를 누가 이끌지를 두고 다시 경쟁이 시작됐어. 키몬 같은 새로운 지도자도 떠올랐지.
#51테미스토클레스 자신도 쉬운 정치인은 아니었던 것 같아. 고대 기록에는 그가 명예와 인정을 강하게 원했던 사람으로 반복해서 등장해.
#52문제는 그가 실제로 엄청난 공을 세웠다는 거야.
#53민주정 아테네는 영웅에게 큰 명예를 줄 수 있었어. 하지만 한 번 도시를 구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영구적인 정치적 면책권까지 주는 체제는 아니었지.
#54정책 갈등도 있었고, 정적도 있었고, 스파르타와의 긴장도 있었어. 테미스토클레스의 강한 명예욕 역시 공격받을 수 있었고.
#55결국 시민들은 도자기 조각을 집어 들었어.
#56이번에는 거기에 테미스토클레스의 이름을 적었지.
#57테미스토클레스는 도편추방을 당했어.
#58몇 년 전 그는 아테네를 살리기 위해 시민들에게 도시를 떠나 배에 올라타자고 했어.
#59이번에는 시민들이 그에게 도시를 떠나라고 한 거야.
#60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있어. 그가 페르시아와 내통한 죄로 도편추방된 건 아니야. 도편추방이 먼저였고, 훨씬 심각한 반역 혐의는 나중에 찾아왔어.
#61테미스토클레스는 아르고스로 갔어. 그 뒤 스파르타의 전쟁 영웅 파우사니아스가 페르시아와 내통했다는 혐의를 받는 사건이 터졌지.
#62조사가 이어지면서 테미스토클레스의 이름까지 나왔어. 실제로 그가 파우사니아스의 음모에 얼마나 관여했는지는 확정하기 어려워.
#63하지만 정치적 결과는 치명적이었어.
#64이제 단순히 아테네 밖에서 살면 되는 게 아니었어.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그를 추적했고, 테미스토클레스는 도망자가 됐지.
#65그리고 여기서 기묘한 일이 벌어져.
#66페르시아와 연결됐다는 혐의를 받은 남자가 정말 페르시아를 향해 도망치기 시작한 거야.
#67테미스토클레스에게는 더 이상 함대가 없었어. 이제는 만나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자신을 넘기지 않게 만들어야 했지.
#68코르키라는 그를 오래 보호할 수 없었어.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동시에 적으로 돌릴 수는 없었으니까.
#69다음으로 찾아간 사람은 몰로시아인의 왕 아드메토스였어.
#70그런데 이 왕과도 편한 사이가 아니었어. 테미스토클레스가 예전에 아드메토스의 요청을 반대한 적이 있었거든.
#71이제 그 왕에게 목숨을 부탁해야 했어.
#72고대 기록에는 극적인 탄원 장면이 전해져. 세부 묘사는 문학적으로 다듬어졌을 수 있지만, 결과는 분명해. 아드메토스는 그를 넘겨주지 않았어.
#73테미스토클레스는 다시 움직였어. 아시아로 가는 배에 올랐고, 항해 중 아테네 쪽에 붙잡힐 위험이 생기자 선장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혔지. 그리고 자신이 잡히면 선장 역시 안전하지 않을 거라는 이해관계를 만들어냈어.
#74예전에는 도시와 왕의 선택을 움직이던 사람이었어.
#75이제는 낯선 선장 한 사람에게 자신을 숨겨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했지.
#76그렇게 살아남은 끝에 가장 이상한 상대를 만나게 돼.
#77페르시아 왕이야.
#78테미스토클레스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에게 자기 과거를 숨길 수 없었어.
#79그래서 오히려 먼저 꺼냈어.
#80투키디데스가 전하는 내용에 따르면 그는 크세르크세스가 자신을 공격했을 때, 자신만큼 페르시아 왕가에 큰 피해를 준 그리스인도 없다는 식으로 말했어.
#81목숨을 구하러 온 사람의 자기소개치고는 이상하지.
#82하지만 이렇게도 들릴 수 있었어.
#83나는 그만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84테미스토클레스는 크세르크세스가 그리스에서 물러날 때 자신이 도움을 주었다는 주장도 했어. 다만 투키디데스는 그 주장 일부가 사실이 아닌 자기과장이었다고 짚어.
#85그는 다시 자기 과거를 상대가 듣고 싶어 할 이야기로 바꾸고 있었던 거야.
#86그리고 시간을 요청했어.
#871년.
#88그동안 페르시아의 언어와 관습을 익혔어. 살라미스에서는 크세르크세스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움직일지 읽으려 했다면, 이제는 그 아들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말과 규칙부터 배우기 시작한 거지.
#89아르타크세르크세스 쪽에서도 계산해볼 만했어.
#90눈앞의 남자는 아버지의 원정에 큰 피해를 준 적이야. 동시에 그리스의 정치와 전쟁을 속속들이 아는 유명한 망명자였지. 게다가 아테네에도, 스파르타에도 돌아갈 수 없었어.
#91한때 위험했던 적이 상황이 바뀌자 쓸 수 있는 사람이 된 거야.
#92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그를 받아들였어.
#93테미스토클레스는 페르시아 제국 안의 마그네시아에서 두 번째 삶을 얻었어. 숨어만 지낸 것도 아니야. 왕에게 상당한 대우를 받았고, 도시들의 수입과 연결된 생활 기반도 얻은 것으로 전해져.
#94그리고 마그네시아에는 테미스토클레스와 연결되는 동전도 남아 있어.
#95이게 그의 인생을 묘하게 압축해.
#96아테네에서는 그의 이름이 도자기 조각에 적혔어.
#97그를 내보내기 위해서.
#98페르시아 제국에서는 그의 이름이 동전에 나타났어.
#99그가 다시 지위를 얻은 곳에서.
#100아테네는 테미스토클레스를 버렸지만, 그가 밀어붙인 함대와 피레우스의 중요성까지 버리지는 않았어. 그가 사라진 뒤에도 아테네는 더 강한 해양국가가 되어갔지.
#101테미스토클레스는 평생 자기보다 강한 상대를 없애기보다, 상대가 보는 선택을 바꾸는 데 뛰어났어.
#102아테네 시민들에게는 은 대신 함대를 보게 했고, 크세르크세스에게는 도망치는 그리스군을 보게 했어. 아르타크세르크세스에게는 아버지의 원수 대신 쓸모 있는 망명자를 보여주려 했지.
#103하지만 끝내 바꾸지 못한 선택도 하나 있었어.
#104자기 도시가 더 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결정한 순간이었지.
#105거대한 페르시아 함대를 좁은 바다로 끌어들인 남자도, 아테네의 선택까지 영원히 붙잡아둘 수는 없었어.
#106테미스토클레스의 죽음에는 나중에 너무 완벽한 결말이 붙었어.
#107페르시아 왕이 그에게 그리스 공격을 도우라고 하자, 조국과 싸울 수 없었던 테미스토클레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야. 어떤 전승에서는 황소의 피를 마셨다고까지 해.
#108그런데 투키디데스는 그가 병으로 죽었다고 기록하면서, 스스로 독을 먹었다는 이야기는 별도의 소문으로 전해.
#109살아 있을 때 상대에 따라 자기 과거를 다시 설명하던 남자는, 죽은 뒤에도 후대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기 속에서 또 한 번 다른 모습으로 바뀐 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