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26대 대통령이자 러프 라이더스 지휘관
목장은 실패했는데, 왜 그곳에서 대통령으로 가는 길이 시작됐을까?
#11884년 2월 14일, 25세의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뉴욕의 집에 있었어. 이틀 전 첫딸이 태어났는데, 축하할 상황이 아니었지. 어머니 미티가 장티푸스로 죽어가고 있었고, 아내 앨리스 해서웨이 리 루스벨트도 심각하게 아팠거든.
#2새벽에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어. 오후에는 아내가 뒤따랐지.
#3같은 집에서, 같은 날이었어.
#4루스벨트는 그날 일기에 커다란 X를 그었어. 그리고 이렇게 적었지.
#5“The light has gone out of my life.”
#6그런데 그에게는 이제 막 태어난 딸이 있었어.
#7그런 사람이 몇 달 뒤 향한 곳은 가족 곁도, 조용한 휴양지도 아니었어.
#8다코타의 황야였지.
#9여기서 하나 이상한 점이 있어.
#10루스벨트가 아내와 어머니를 잃고 충동적으로 서부를 찾아간 건 아니야. 그는 이미 전해인 1883년에 다코타 배드랜즈에 가본 적이 있었거든. 들소를 사냥하러 갔다가 아예 목장 사업에 돈까지 넣었어.
#11그러니까 비극이 그를 처음 서부로 데려간 건 아니었어.
#12대신 비극 이후 그는 이미 알고 있던 그곳으로 더 깊이 들어갔지.
#131884년 여름, 루스벨트는 다코타로 돌아가 외딴 곳에 엘크혼 목장을 만들었어. 말을 타고, 소를 몰고, 사냥하고, 글을 썼지.
#14왜 하필 이런 삶이었을까?
#15답을 찾으려면 훨씬 전으로 돌아가야 해.
#16어린 루스벨트는 심한 천식에 시달렸어. 밤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였지.
#17아버지 시어도어 루스벨트 시니어는 아들에게 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어. 루스벨트는 집에 운동기구를 놓고 몸을 단련하기 시작했지. 권투도 배웠고, 자연을 돌아다니며 동물을 관찰하고 표본을 모으는 데도 빠졌어.
#18몸이 약하다고 조심해서 사는 대신, 몸을 일부러 쓰는 쪽을 택한 거야.
#19그리고 1878년, 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어.
#20루스벨트에게 행동과 육체적 도전은 다코타에서 갑자기 생긴 습관이 아니었어. 약한 몸을 상대할 때도 그랬고, 아버지를 잃은 뒤에도 그랬지.
#211884년에는 훨씬 큰 상실이 찾아왔고, 그는 다시 움직였어.
#22이번에는 서쪽으로.
#23그런데 루스벨트가 혼자 모든 것을 버리고 황야로 떠났다고 생각하면 중요한 사람이 빠져.
#24누나 애나 루스벨트였어. 가족들은 그녀를 배미라고 불렀지.
#25루스벨트가 다코타를 오가는 동안 어린 앨리스를 돌본 사람이 배미였어. 루스벨트가 짓고 있던 새 집 사가모어 힐의 공사와 살림 준비도 맡았지.
#26한 사람은 서쪽으로 갔어.
#27다른 한 사람은 그의 딸과 집을 붙잡고 있었지.
#28그래서 루스벨트는 황야에서 움직일 수 있었어.
#29다코타에서 루스벨트는 꽤 눈에 띄는 사람이었어.
#30하버드 출신의 부유한 뉴욕 청년. 안경을 썼고, 동부식 말투를 썼지.
#31서부 사람들에게는 전형적인 풋내기로 보일 만했어. 실제로 안경 때문에 놀림도 받았지.
#32루스벨트는 그곳에서 소를 몰고, 사냥하고, 긴 거리를 말을 타며 목장 일을 배웠어. 서부 사람들의 존중을 얻으려면 돈이나 집안보다 실제로 같이 움직이는 편이 빨랐거든.
#33그러다 어느 날,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34도둑들이 그의 배를 훔쳐 간 거야.
#351886년 봄, 세 남자가 엘크혼 목장의 배를 훔쳐 달아났어.
#36루스벨트는 그냥 신고하고 기다리지 않았지.
#37빌 시월과 윌모트 다우와 함께 새 배부터 만들었어. 그리고 얼음이 녹기 시작한 강을 따라 도둑들을 추격했지.
#38며칠 뒤 결국 세 사람을 붙잡았어.
#39여기서 끝낼 수도 있었어. 하지만 당시 루스벨트는 그 지역의 보안관 대리 역할도 맡고 있었거든. 직접 죄수들을 법 집행기관에 넘기기로 했지.
#40잠들면 위험했어.
#41그래서 죄수들을 지키며 책을 읽었어.
#42황야에서 도둑을 쫓아가 붙잡은 뒤, 잠들지 않으려고 책을 읽으며 죄수를 호송하는 사람.
#43다코타 시절 루스벨트의 모습은 이런 식이었어.
#44그렇다고 엘크혼 목장이 루스벨트 혼자 사는 은신처였던 것도 아니야.
#45시월과 다우는 원래 메인주에서부터 알고 지낸 믿을 만한 사람들이었어. 루스벨트가 서부 생활을 시작하자 함께 와서 집을 짓고 목장을 관리했지.
#46그러다 두 사람의 아내와 아이들도 엘크혼으로 왔어. 시월의 어린 딸 키티는 루스벨트가 뉴욕에 두고 온 딸 앨리스와 비슷한 또래였지.
#47목장 안에 가족들이 늘어났어.
#48루스벨트 자신은 오히려 그 집에서 조금씩 이방인처럼 느끼기 시작했지.
#49비슷한 시기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이디스 커밋 캐로와 다시 가까워졌어. 두 사람은 1886년 결혼했지.
#50그리고 바로 그 무렵, 다코타에서 만든 그의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했어.
#511886년 겨울, 루스벨트는 이디스와 유럽에서 신혼여행 중이었어.
#52그 사이 다코타에는 혹독한 겨울이 닥쳤지.
#53이미 가뭄과 과도한 방목으로 약해져 있던 소들이 계속된 눈보라와 추위를 견디지 못했어. 지역 전체에서 엄청난 수의 소가 죽었고, 루스벨트의 가축도 절반 이상 사라졌지.
#54그는 큰돈을 잃었어.
#55그리고 결국 목장 사업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지.
#56다코타에서 몇 년을 보냈다고 하면 흔히 그곳에서 강한 사람이 되어 성공적으로 돌아온 장면을 떠올리기 쉬워.
#57실제 결과는 반대였어.
#58목장 사업은 실패했거든.
#59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실패에서 사라지지 않은 게 있었어.
#60루스벨트는 다코타에서 겪은 일을 글로 썼어. 서부에서 말을 타고 사냥하고 목장을 운영했던 경험은 책과 기사로 남았지.
#61그리고 다시 정치로 들어갔어.
#62순탄하지는 않았어. 뉴욕 시장 선거에서는 3위로 졌지.
#63그 뒤 연방 공무원 제도를 감독하는 공직을 맡았고, 뉴욕 경찰위원이 됐어. 밤에 직접 거리를 돌며 경찰이 근무하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했지.
#64그다음에는 해군부 차관보가 됐어.
#65사무실 안에만 있는 사람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어.
#66그리고 1898년, 전쟁이 시작됐어.
#67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이 시작되자 루스벨트는 해군부 차관보 자리를 내려놓았어.
#68직접 전쟁에 가기로 한 거야.
#69그는 지원병 기병대를 만드는 데 참여했지만 처음부터 최고 지휘관을 맡지는 않았어. 군 경험이 더 많았던 레너드 우드가 대령이 됐고, 루스벨트는 중령으로 들어갔지.
#70그 부대가 훗날 유명해진 러프 라이더스였어.
#71구성이 묘했어.
#72서부의 카우보이와 사냥꾼들이 있었고, 동부 명문대 출신 운동선수들도 있었지.
#73루스벨트 자신이 살아온 두 세계가 한 부대에 들어간 셈이었어.
#74하버드와 배드랜즈.
#75그런데 정작 쿠바에 도착하자 대부분의 말은 함께 가지 못했어.
#76기병대인데 많은 병사가 걸어서 싸워야 했지.
#77쿠바에서 레너드 우드가 상급 부대 지휘를 맡게 되면서 루스벨트가 러프 라이더스를 지휘하게 됐어.
#78그리고 케틀 힐 전투가 벌어졌지.
#79대부분의 러프 라이더스가 걸어서 올라가는 동안 루스벨트는 말을 타고 전진했어.
#80그 장면은 강렬했어.
#81하지만 러프 라이더스만으로 승리한 전투는 아니었어. 버펄로 솔저를 포함한 미 육군 정규부대들도 함께 싸웠고, 산후안 고지 전투 전체의 승리는 여러 부대가 만든 결과였지.
#82그럼에도 미국 대중이 기억한 얼굴 가운데 가장 강한 하나는 루스벨트였어.
#83신문이 그를 다뤘고, 루스벨트 자신도 자신의 전쟁 경험을 글로 남겼지.
#84다코타에서 안경 쓴 뉴욕 청년으로 놀림받던 사람이 14년 뒤에는 전국이 알아보는 카우보이 전쟁 영웅이 되어 돌아온 거야.
#85그리고 정치권은 그 유명세를 바로 사용했어.
#861898년 루스벨트는 뉴욕 주지사 선거에 나갔어.
#87이겼지.
#88전쟁 영웅의 인기는 강력했어. 하지만 주지사가 된 뒤에는 뉴욕 공화당 조직에 꽤 골치 아픈 사람이 됐어.
#89당시 뉴욕 공화당의 실력자 토머스 C. 플랫은 정치 조직을 통해 인사와 영향력을 관리하던 사람이었어.
#90그런데 루스벨트는 플랫이 원하는 대로만 움직이지 않았지.
#91인사 문제에서도 충돌했고, 기업에 세금을 매기는 문제에서도 부딪쳤어.
#92주지사 자리에 계속 두기에는 너무 유명하고, 너무 독립적이었어.
#93그래서 묘한 해결책이 나왔어.
#94더 높은 자리로 보내버리는 거야.
#9519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는 다시 출마할 예정이었어.
#96공화당에는 부통령 후보가 필요했지.
#97플랫에게 루스벨트를 부통령으로 보내는 건 매력적인 선택이었어. 당시 부통령직은 정치적으로 힘이 약해서, 야심 있는 정치인을 사실상 옆으로 치우는 자리로 여겨지기도 했거든.
#98루스벨트 자신은 그 자리를 원하지 않았어.
#99하지만 그의 전국적인 인기는 이미 너무 커져 있었지. 플랫의 계산만으로 결정된 건 아니었지만, 결국 공화당 전당대회는 루스벨트를 부통령 후보로 선택했어.
#100당의 또 다른 실력자 마크 해나는 이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았어.
#101대통령과 루스벨트 사이에 남은 것은 한 사람의 목숨뿐이었으니까.
#102그 말은 너무 빨리 현실이 됐어.
#1031901년 9월 6일, 매킨리 대통령이 총에 맞았어.
#104처음에는 회복할 것처럼 보였지.
#105하지만 상태가 악화됐고, 9월 14일 세상을 떠났어.
#106루스벨트는 뉴욕주 버펄로로 갔어. 그리고 그날 대통령 취임 선서를 했지.
#10742세.
#108미국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대통령직을 맡은 사람이 됐어.
#109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된 게 아니었어. 전쟁 영웅이 됐다고 곧바로 대통령이 된 것도 아니었지.
#110전쟁의 유명세가 주지사 선거로 이어졌고, 주지사로서 당 조직과 충돌한 일이 부통령 후보가 되는 과정에 영향을 줬어.
#111그리고 마지막에는 누구도 계획하지 않았던 암살이 있었지.
#1121884년의 비극에서 대통령직까지 하나의 직선이 있었던 건 아니야.
#113그 사이에는 실패한 목장도 있었고, 패배한 선거도 있었고, 전쟁도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내린 선택도 있었어.
#1141900년, 아직 부통령 후보였던 루스벨트는 선거운동 중 다시 다코타의 메도라를 찾았어.
#115그가 젊은 시절 말을 타고 소를 몰고 사냥했던 곳이었지.
#116그곳에서 루스벨트는 이렇게 말했어.
#117“Here the romance of my life began.”
#1181884년 아내와 어머니를 잃은 뒤 그가 다시 찾아왔던 곳.
#119큰돈을 잃고 목장 사업을 접었던 곳.
#120그리고 16년 뒤, 미국 부통령 후보가 되어 다시 돌아온 곳.
#121그가 그곳에 만들었던 목장은 결국 실패했어.
#122하지만 그곳에서 시작된 인생까지 실패한 것은 아니었지.
#123루스벨트를 뉴욕에서 멀리 보내려고 부통령 자리를 밀었던 에게 그 선택은 꽤 합리적으로 보였어. 그런데 불과 몇 달 뒤, 힘없는 자리로 보내려던 그 정치인이 대통령이 됐지.
#124한 정치 보스는 왜 자기에게 가장 골치 아픈 사람을 대통령 바로 다음 자리에 올려놓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