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 소년에서 에도 막부의 창업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에야스는 정말 기다려서 천하를 얻었을까?
#11600년 9월, 일본의 유력 다이묘들이 두 편으로 갈라지고 있었어. 곧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수만 명이 맞붙을 상황이었지.
#2그런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상대편에 있던 무장들에게 손을 뻗고 있었어.
#39월 3일에 보낸 편지 하나가 남아 있어. 원래 서군 쪽 성에 있다가 동군으로 돌아선 무장을 칭찬하면서, 앞으로도 힘써 달라고 독려한 내용이야.
#4이에야스가 보고 있던 건 단순한 병력표가 아니었던 거지.
#5적이 8만 명이라고 해도 그 8만 명이 정말 끝까지 한편으로 싸울까? 누가 움직이지 않을까? 누가 돌아설까? 누가 이미 이쪽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6아직 칼은 본격적으로 부딪치지 않았는데, 사람들의 선택을 놓고 벌이는 전쟁은 이미 시작돼 있었어.
#7그런데 이에야스가 원래부터 이렇게 싸웠던 건 아니야.
#828년 전에는 정반대였거든.
#9이에야스는 1542년 마쓰다이라 다케치요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어.
#10그의 집안은 미카와의 작은 세력이었고, 서쪽의 오다와 동쪽의 이마가와라는 큰 세력 사이에 끼어 있었지. 어느 편에 서느냐가 곧 생존 문제였어.
#11그리고 그 정치의 대가를 어린 다케치요도 치렀어.
#12그는 다른 세력에 보내는 인질이 됐거든.
#13처음에는 이마가와 쪽으로 가던 길이었지만 중간에 오다 측 손에 들어갔고, 나중에는 교환돼 다시 이마가와 쪽으로 보내졌어.
#14어디서 살지도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없었지. 누구 편에 속할지도 마찬가지였어.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지도 어른들의 정치적 선택에 달려 있었고.
#15훗날 일본의 다이묘들이 “이에야스 편에 설까, 반대편에 설까?”를 고민하게 되는데, 어린 이에야스에게는 그런 선택권 자체가 없었던 거야.
#161572년, 상황은 많이 달라졌어.
#17이에야스는 미카와와 도토미를 지배하는 다이묘가 됐고 오다 노부나가와 동맹도 맺고 있었어.
#18그런데 다케다 신겐이 밀고 들어왔지.
#19신겐은 당시 가장 강력한 전국시대 다이묘 가운데 하나였어. 다케다군이 이에야스의 영역을 압박하면서 하마마쓰성 주변까지 위험해졌어.
#20이에야스에게는 성이 있었어. 버틸 수도 있었지.
#21그런데 그는 밖으로 나갔어.
#22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다케다군과 맞붙은 거야.
#23그리고 처참하게 졌어.
#24도쿠가와군은 무너졌고, 이에야스는 하마마쓰성으로 달아나야 했지. 퇴각 과정에서 가신들도 죽었어. 주군을 살리기 위해 뒤에 남아 싸운 사람들도 있었고.
#25이 패배에는 나중에 온갖 전설이 붙었어. 겁에 질려 말 위에서 실수했다는 이야기, 처참한 자기 모습을 그림으로 남겨 평생 교훈으로 삼았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야.
#26하지만 그런 전설이 없어도 충분해.
#27이에야스는 자기 판단으로 더 강한 적을 쫓아나갔고, 패했고, 부하들도 그 대가를 함께 치렀어.
#28여기서 흔히 이렇게 정리하고 싶어져.
#29‘그날 이후 이에야스는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30그런데 이후의 삶을 보면 그렇게 깔끔하지 않아.
#31미카타가하라 뒤에도 신겐은 강했어.
#32이에야스가 복수해서 신겐을 쓰러뜨린 것도 아니었지.
#33그런데 1573년 신겐이 죽어.
#34이에야스는 살아 있었고.
#35다케다 가문은 한동안 더 버텼지만 1582년 결국 오다·도쿠가와 세력의 공격 속에서 무너졌어.
#36이에야스의 인생에는 이런 일이 반복돼.
#37자기보다 강한 사람을 매번 직접 쓰러뜨린 건 아니야. 때로는 졌고, 때로는 물러났고, 그런데 그 사이 주변 상황이 달라졌지.
#38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상대가 죽기만 기다렸다는 뜻도 아니야.
#39기회가 열리면 오히려 놀랄 만큼 빨리 움직였어.
#401582년 6월, 혼노지의 변이 일어났어.
#41오다 노부나가가 교토 혼노지에서 아케치 미쓰히데의 공격을 받고 죽은 거야.
#42지금 보면 엄청난 권력 공백이 열린 순간이지.
#43하지만 그때 이에야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천하를 어떻게 차지하지?’가 아니었어.
#44살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거였어.
#45당시 이에야스는 자기 영지에 있지 않았어. 사카이 근처에 있었고 수행원도 많지 않았지. 노부나가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주변 질서가 무너졌고, 이에야스 자신도 위험해졌어.
#46그래서 일행은 이가를 통과해 미카와로 돌아갔어. 그 과정에서 여러 지역 인물과 상인, 무장들의 도움도 필요했고.
#47어쨌든 살아 돌아왔어.
#48그런데 그다음에는 기다리지 않았어.
#49다케다 가문이 사라진 뒤 주인이 불분명해진 가이와 시나노를 놓고 경쟁에 뛰어들었거든. 호조 가문 등과 맞서면서 결국 가이와 남부 시나노까지 확보했고, 다섯 나라를 지배하는 거대한 다이묘가 됐어.
#50조금 전까지 목숨 걸고 도망치던 사람이, 권력의 빈틈이 보이자 바로 들어간 거야.
#51노부나가가 죽은 뒤 가장 빠르게 치고 올라온 사람은 이에야스가 아니었어.
#52도요토미 히데요시였지.
#53히데요시는 아케치 미쓰히데를 빠르게 격파하고, 노부나가가 남긴 권력의 중심으로 올라섰어.
#54이에야스가 순순히 받아들인 건 아니야.
#551584년 고마키·나가쿠테 전투에서 실제로 싸웠어. 도쿠가와 측은 히데요시 측의 주요 지휘관들에게 큰 피해를 줬고, 전장에서 이에야스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보여줬지.
#56그런데 한 전투에서 잘 싸우는 것과 일본 전체의 권력 균형을 뒤집는 건 다른 일이었어.
#57히데요시는 계속 강해졌어. 다이묘들이 하나씩 그 질서로 들어갔고, 1585년에는 관백이 됐지.
#58그리고 바로 그때, 이에야스 곁에서 아주 오래된 사람이 떠났어.
#59이시카와 가즈마사는 이에야스의 오랜 가신이었어.
#60이에야스가 이마가와의 지배에서 빠져나온 뒤에도 곁에 있었고, 이마가와 쪽에 남아 있던 이에야스의 아내와 아들을 되찾는 과정에도 관여했던 사람이야.
#61그런데 1585년, 가즈마사가 갑자기 이에야스를 떠났어.
#62향한 곳은 히데요시였고, 가족도 함께 데리고 갔지.
#63가즈마사는 도쿠가와 내부를 너무 잘 아는 사람이었어. 군사 조직도 알고 있었고.
#64왜 떠났는지는 지금도 확실하지 않아.
#65가족 문제였을 수도 있고, 히데요시의 회유가 있었을 수도 있고, 도쿠가와 내부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어.
#66하나로 단정할 수 없어.
#67그 점 자체가 중요해.
#68이에야스의 부하들이 모두 운명처럼 끝까지 충성한 건 아니었어. 오래 함께한 사람도 떠날 수 있었고, 더 강한 권력자는 바로 그런 틈을 이용할 수 있었지.
#69히데요시는 군대만으로 이에야스를 압박하지 않았어.
#70자기 여동생 아사히히메를 이에야스와 혼인시켰고, 나중에는 어머니 오만도코로까지 도쿠가와 쪽에 보냈어.
#71가족이 정치적 보증이 된 거야.
#721586년 10월, 이에야스는 마침내 오사카로 갔어.
#73다음 날이면 히데요시와 공식적으로 만나야 했지.
#74그런데 전날 밤, 히데요시가 먼저 찾아왔어.
#75당시 기록을 보면 히데요시는 이에야스가 머물던 곳으로 직접 와서 손을 잡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고, 두 사람은 서로 술을 따라 마셨어.
#76몇 년 전에는 전장에서 싸웠던 두 사람이야.
#77한쪽은 이제 일본 최고의 권력자가 됐고, 다른 한쪽은 그 질서 안으로 들어가려는 상황이었지.
#78둘이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몰라.
#79굳이 멋진 대사를 만들어낼 필요도 없어.
#80히데요시가 왔어. 이에야스의 손을 잡았어. 둘이 술을 마셨어.
#81그리고 다음 날 이에야스는 공식적으로 히데요시에게 신종했어.
#82이건 이에야스의 승리가 아니야.
#83그가 힘의 차이를 인정한 장면이지.
#84그런데 중요한 건 그다음이야.
#85고개를 숙였다고 사라지지는 않았거든.
#861590년, 히데요시가 호조 가문을 무너뜨린 뒤 이에야스에게 큰 이동을 명령했어.
#87이에야스는 오랫동안 기반으로 삼았던 미카와·도토미·스루가 등을 떠나 간토로 옮겨야 했지.
#88새 중심은 에도였어.
#89지금의 도쿄를 알고 보면 ‘미래의 수도를 받은 행운’처럼 보일 수도 있어. 반대로 히데요시가 위험한 경쟁자를 황무지로 내쫓았다고도 말하곤 하지.
#90하지만 당시에는 둘 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어.
#91이에야스는 오랫동안 쌓아온 옛 기반을 잃었어.
#92대신 훨씬 넓은 땅을 얻었고, 그 새 영지를 다시 조직해야 했지.
#93그 일을 해냈어.
#94히데요시에게 도전하지 않는 동안에도 이에야스의 힘은 사라지지 않았어.
#95그러니까 ‘기다렸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해.
#96기다리는 동안에도 자기 위치를 계속 바꾸고 있었거든.
#97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어.
#98이에야스보다 먼저였지.
#99그래서 이에야스 이야기는 자주 이렇게 정리돼.
#100‘그는 히데요시가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
#101하지만 처음부터 그 순간 하나만 노리고 살았다고 볼 근거는 없어.
#102히데요시가 살아 있을 때 이에야스는 실제로 그 체제 안에서 움직였어. 정면으로 뒤엎으려 하지 않았고.
#103그런데 히데요시가 죽자 조건이 달라졌어.
#104후계자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아직 어렸고, 정권은 오대로와 오봉행 같은 유력자들의 균형에 기대야 했어. 그리고 이에야스는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인물 가운데 하나였지.
#1051599년 마에다 도시이에까지 죽으면서 균형은 더 불안해졌어.
#106이에야스의 영향력은 커졌고, 그걸 위험하게 보는 사람들도 늘었어.
#1071600년, 결국 충돌이 시작돼.
#108우에스기 가게카쓰 문제 때문에 이에야스는 동쪽으로 움직였어.
#109그 사이 이시다 미쓰나리 등이 반이에야스 세력을 조직하기 시작했지. 모리 데루모토가 명목상 총대장이 되고, 우키타 히데이에와 오타니 요시쓰구 같은 유력자들도 합류했어.
#110이에야스 입장에서는 꽤 위험했어.
#111자기는 동쪽에 있는데, 서쪽에서는 큰 적대 세력이 만들어지고 있었으니까.
#112그렇다고 우에스기 쪽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었어.
#113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지.
#114이에야스가 이긴다는 걸.
#115하지만 그때의 이에야스는 몰랐어.
#116그래서 그는 군대가 어디 있는지만 본 게 아니야.
#117그 군대를 이루는 사람들도 보고 있었어.
#118젊은 이에야스는 강한 다케다군을 봤어.
#119그리고 싸우러 나갔지.
#120그 결과 무너졌어.
#1211600년에는 또 거대한 적군이 나타났어.
#122그런데 이번에는 먼저 다른 질문을 던졌어.
#123저 사람들이 정말 한편일까?
#124서군에 이름이 올라 있다고 모두 끝까지 싸울까? 모리와 미쓰나리의 이해관계는 정말 같을까? 이미 이쪽과 접촉 중인 사람은 없을까?
#125실제로 균열이 있었어.
#126고바야카와 히데아키는 서군 쪽에 있었지만 전투 전부터 동군 측과 접촉하고 있었어.
#127와키자카 야스하루도 동군 인물과 연결돼 있었고, 모리 가문 안에서도 생각이 하나로 모이지 않았어. 깃카와 히로이에는 이에야스 측과 접촉했고, 시마즈군 역시 미쓰나리의 지시에 완전히 맞춰 적극적으로 움직인 건 아니었지.
#128반대로 오타니 요시쓰구처럼 얼마 전까지 이에야스와 정무에서 협력하다가 미쓰나리 쪽으로 간 사람도 있었어.
#129사람은 양쪽으로 움직였어.
#1301600년의 동군과 서군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두 팀이 아니었던 거야.
#131이해관계와 관계, 두려움과 계산이 엮인 연합이었어.
#132그리고 이에야스는 그 사실을 이용했지.
#1331600년 9월 15일, 세키가하라의 본전투가 시작됐어.
#134후대에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가 생겼지.
#135고바야카와 히데아키가 움직이지 않자 이에야스가 그의 진영을 향해 총을 쏘게 했고, 겁을 먹은 고바야카와가 결국 서군을 배신했다는 이야기야.
#136극적이긴 해.
#137하지만 확실한 동시대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려워.
#138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고바야카와가 전투 전에 이미 동군 측과 접촉했고, 전투 중 실제로 서군을 공격했다는 거야.
#139그 순간 이미 있던 균열이 크게 벌어졌어.
#140오타니 요시쓰구 측이 무너지고, 다른 부대들도 움직였어.
#141거대한 전투의 승패는 대략 반나절 만에 기울었지.
#142전장에 서 있던 숫자와, 끝까지 같은 목적으로 싸울 숫자가, 같지 않았던 거야.
#143어린 다케치요에게는 자기 편을 고를 힘이 없었어.
#144다른 사람들이 어떤 동맹을 맺느냐에 따라 자신이 어디로 보내질지가 정해졌지.
#145그런데 1600년에는 반대가 됐어.
#146다른 사람들이 고민했어.
#147이에야스 편에 설까? 반대편에 설까? 싸울까? 가만히 있을까? 연락해볼까? 중간에 돌아설까?
#148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의 선택 때문에 움직이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선택이 자기 쪽으로 모이게 만드는 사람이 된 거야.
#149세키가하라에서 이에야스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뒀어.
#150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어.
#1511600년에 세키가하라는 끝났어.
#152그런데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살아 있었고 오사카성도 남아 있었어.
#153이에야스가 쇼군이 된 것도 바로 그해가 아니야.
#1541603년이었어.
#155그리고 더 이상한 건 그다음이야.
#156평생 올라온 자리인데, 2년 만에 아들에게 넘겼거든.
#1571605년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쇼군이 됐어.
#158히데타다는 세키가하라 본전투에 늦은 사람이기도 했어. 우에다성에서 사나다 마사유키에게 발이 묶였거든.
#159그런 아들에게 이에야스는 쇼군 자리를 넘겼어.
#160하지만 은퇴해 사라진 건 아니야.
#161오고쇼로서 계속 강한 권력을 행사했지.
#162그러니까 직함은 넘기되, 힘은 계속 갖고 있었던 셈이야.
#163그리고 중요한 일이 하나 벌어졌어.
#164이에야스가 살아 있는 동안 쇼군 자리가 도쿠가와 가문 안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갔어.
#165젊을 때 이에야스의 문제는 ‘내가 어떻게 살아남지?’였어.
#166이제는 질문이 달라지고 있었어.
#167‘내가 없어도 이 권력이 어떻게 남지?’
#168히데요리는 오사카에 남아 있었어.
#169게다가 이에야스의 손녀 센히메는 히데요리의 아내였어. 두 가문은 적대 관계만이 아니라 가족 관계로도 묶여 있었지.
#1701611년에는 성장한 히데요리와 이에야스가 니조성에서 직접 만났어.
#171후대에는 이에야스가 그 자리에서 히데요리의 위엄을 보고 두려워해 제거를 결심했다는 이야기도 생겼어.
#172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마음속 결정을 단정할 수는 없어.
#173분명한 건 세키가하라 11년 뒤에도 도요토미 문제가 끝나지 않았다는 거야.
#1741614년 다시 전쟁이 시작됐어.
#175호코지 범종 명문 문제도 정치적 갈등의 한 요소가 됐고, 오사카 전투가 벌어졌지.
#176도요토미 측에는 전국에서 낭인들이 모였고, 사나다 노부시게가 지킨 사나다마루에서는 도쿠가와군이 큰 피해를 입었어.
#177겨울 전투 뒤에는 화의가 이루어졌어.
#178그런데 다음 해 다시 싸웠지.
#1791615년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 히데요리와 요도도노가 죽었고, 도요토미 가문은 정치적 경쟁 세력으로 사라졌어.
#180세키가하라에서 무려 15년이 지난 뒤였어.
#181오사카 여름 전투에서 사나다 노부시게의 군대는 이에야스의 본진 가까이까지 밀고 들어왔어.
#182이에야스가 자결을 생각했다는 후대의 전설까지 사실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183본진이 위협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거든.
#18431세의 이에야스는 미카타가하라에서 쫓겨 하마마쓰로 돌아갔어.
#18570대의 이에야스도 마지막 전쟁에서 완전히 안전한 곳에 있지는 않았고.
#186그가 오래 살았다는 건 위험을 피했다는 뜻이 아니야.
#187위험한 상황을 여러 번 통과하고도 계속 남았다는 뜻에 더 가까워.
#1881615년 도요토미가 사라진 뒤, 무가제법도와 금중병공가제법도 같은 규범들이 마련됐어.
#189물론 에도 막부의 모든 제도를 이에야스 혼자 완성한 건 아니야. 히데타다와 이에미쓰 시대에도 계속 정비됐지.
#190그래도 방향은 분명해.
#191전국시대에는 힘 있는 다이묘가 군대를 일으켜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있었어.
#192도쿠가와 정권은 이제 그런 다이묘들이 어떤 규칙 안에서 움직일지를 정하려 했어.
#193‘다음 전쟁에서 누가 이길까?’에서 ‘어떻게 해야 다음 전쟁 자체가 덜 일어날까?’로 문제가 바뀐 거야.
#194이에야스 하면 유명한 두견새 이야기가 있어.
#195울지 않는 두견새라면 노부나가는 죽이고, 히데요시는 울게 만들고,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이야기지.
#196그런데 이건 이에야스 자신이 남긴 말이 아니야. 후대에 만들어진 인물평이야.
#197실제 생애를 보면 더 복잡해.
#198미카타가하라에서는 기다리지 않았어. 강한 적을 쫓아 성 밖으로 나갔다가 크게 졌지.
#199노부나가가 죽었을 때도 가만히 있지 않았어. 살아 돌아오자 옛 다케다 영지를 두고 바로 움직였어.
#200히데요시와는 싸웠어. 그런데 상대가 훨씬 강해지자 고개를 숙였지.
#201히데요시의 체제 안에서는 간토라는 새 기반을 만들었어.
#202히데요시가 죽자 다시 움직였고, 세키가하라에서는 적과 싸우기 전에 그 적군이 정말 하나인지부터 봤어.
#203쇼군이 된 뒤에는 그 자리조차 아들에게 넘겼어.
#204이에야스는 늘 기다린 사람이 아니야. 늘 공격한 사람도 아니고, 끝까지 저항만 한 사람도 아니었어.
#205상황이 달라졌는데도 같은 방법을 고집하지 않았던 거야.
#206젊은 이에야스는 강한 적군을 보고 바로 뛰쳐나갔어.
#207노년의 이에야스는 먼저 물었지.
#208저 군대는 정말 한 팀일까?
#209그리고 마지막에는 질문이 한 번 더 달라졌어.
#210내가 어떻게 살아남을까?
#211그게 아니라,
#212내가 없어도 이걸 어떻게 살아남게 할까?
#2131616년 이에야스는 죽었어.
#214다케다 신겐도 없었고, 오다 노부나가도 없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없었어.
#215하지만 이에야스가 남긴 건 단순히 오래 산 한 명의 승자가 아니었어.
#216아들 히데타다가 이미 쇼군이었고, 도쿠가와 권력은 다음 세대로 넘어가 있었지.
#217다른 사람들의 선택 때문에 인질로 보내졌던 소년이, 수십 년 뒤에는 다른 사람들의 선택이 모이는 중심이 됐어.
#218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중심이 자기 한 사람과 함께 사라지지 않도록 만들어놓기 시작했어.
#2191611년, 이에야스에게 아주 뜻밖의 물건 하나가 들어왔어.
#220스페인 국왕 측에서 보낸 유럽산 기계시계였지. 1581년에 만들어진 그 시계는 지금도 일본에 남아 있어.
#221전국시대의 마지막 승자에게 대체 왜 지구 반대편의 왕이 시계를 보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