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직과 고문, 백의종군을 거쳐 무너진 조선 수군을 다시 일으킨 장군
왕에게 버림받은 이순신은 왜 12척으로 다시 바다에 나갔을까
#11597년 2월, 조선은 여전히 전쟁 중이었어. 일본군이 다시 대규모로 밀려오고 있었고, 남쪽 바다에서는 수군이 일본군의 움직임을 막고 있었지.
#2그런데 선조가 이상한 명령을 내렸어.
#3이순신을 잡아오라는 거야.
#4문제는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 그러니까 조선 수군 전체를 지휘하며 적과 싸우고 있었다는 거였어. 그래서 명령에는 이런 상황까지 고려돼 있었지. 이순신이 일본군과 교전하고 있다면 싸움이 끝나는 틈을 봐서라도 체포하라는 거였어.
#5더 이상한 건 이순신이 패전을 거듭한 장수가 아니었다는 거야.
#6정반대였어.
#71592년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한 뒤 이순신은 옥포에서 첫 승리를 거뒀어. 사천, 당포, 당항포를 거쳐 한산도에서도 일본 수군을 크게 꺾었지. 결국 조정은 그를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했어.
#8그런 사람을 전쟁 한가운데서 끌어내려 죄인으로 만들려 하고 있었던 거야.
#9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0이순신의 군인 인생이 처음부터 승리로만 이어졌던 건 아니야.
#111572년 무과 시험을 보다가 말에서 떨어져 탈락했어. 다시 도전해 합격한 뒤에도 곧바로 수군의 유명한 지휘관이 된 게 아니었지. 처음 경험을 쌓은 곳은 북쪽 국경이었어.
#121587년에는 여진족이 녹둔도를 공격했어. 이순신은 그곳의 방어 책임을 맡고 있었고, 병력이 부족하다며 지원도 요청한 상태였어. 하지만 충분한 병력을 받지 못한 채 전투가 벌어졌고 조선군에 피해와 포로가 생겼지.
#13이순신도 책임을 피하지 못했어.
#14관직을 잃고 백의종군을 하게 됐지. 관직 없이 군대에 들어가 복무하는 처벌이었어.
#15이후 북방 작전에서 다시 공을 세우며 복귀했지만, 10년 뒤 똑같은 이름의 처벌이 훨씬 더 가혹한 모습으로 돌아오게 돼.
#16그 전에 이순신의 경력은 빠르게 올라갔어. 류성룡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추천을 받아 1591년 전라좌수사가 됐거든. 정상적인 승진 단계를 훌쩍 건너뛴 파격적인 발탁이었어.
#17그리고 바로 다음 해 일본군이 바다를 건너왔지.
#18이순신은 계속 이겼어.
#19하지만 전쟁에서 이긴다고 조정에서도 안전한 건 아니었어.
#20이순신과 오래 충돌한 수군 장수가 있었어.
#21원균이야.
#22두 사람은 전쟁 초기부터 전공을 어떻게 보고할지, 누구의 공으로 기록할지, 함대를 어떻게 움직일지를 두고 부딪쳤어.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면서 원균은 그의 지휘 아래 들어갔지만 갈등은 사라지지 않았지.
#23그러던 1597년, 일본 쪽에서 정보 하나가 들어왔어.
#24일본 장수 가토 기요마사가 바다를 건너올 테니 그때 공격하면 잡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지.
#25조정은 절호의 기회라고 봤어. 그런데 결과는 왕이 기대한 대로 나오지 않았어.
#26그렇다고 이순신이 부산 쪽으로 가는 작전을 무조건 거부하고 있었던 건 아니야. 실제로 그 지역에서 작전을 했고, 조건이 맞는다고 판단했을 때는 적극적인 공격도 제안했어.
#27문제는 이번 정보와 공격 시기, 현장의 조건, 그리고 이순신이 왕의 기대만큼 명령을 수행했느냐였어.
#28그런데 선조에게는 이미 이전부터 의심이 쌓여 있었어. 이순신이 조정을 속이고 명령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원균과의 전공 문제까지 얽혀 있었지.
#29가토 기요마사 문제는 그 위에 떨어진 결정적인 불씨였던 셈이야.
#30선조는 이순신이 적을 놓아주고 조정을 기만했다고 판단했어.
#31그러면서 아주 묘한 말을 했지.
#32조선이 믿을 것은 오직 수군뿐이라고.
#33그 말을 하면서 바로 그 수군을 이끌어온 장군을 잡아들이라고 한 거야.
#34지휘권은 원균에게 넘어갔고, 이순신은 서울로 압송됐어.
#35몇 년 동안 일본군과 싸웠던 통제사가 이제 자기 나라의 죄인이 됐어.
#36이순신은 국문을 받고 고문까지 당했지. 죄가 무겁게 결정됐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어.
#37하지만 정탁을 비롯해 이순신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고, 결국 그는 살아남았어.
#381597년 4월 1일, 감옥에서 나온 이순신에게 사람들이 찾아왔어. 친척과 지인들이 그를 맞았고, 류성룡과 정탁 같은 조정 인물들도 사람을 보내 안부를 물었지.
#39술도 들어왔어. 이순신은 그날 몸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많이 마셨다고 일기에 남겼어.
#40왕에게는 죄인이 됐지만 모두가 그를 버린 건 아니었던 거야.
#41그래도 관직은 사라졌어.
#42이번에도 백의종군이었어. 이순신은 도원수 권율의 휘하로 가서 아무 관직도 없는 몸으로 다시 전쟁에 참가해야 했지.
#43자기를 감옥에 넣고 고문까지 한 조정을 위해 왜 다시 전쟁터로 갔을까?
#44이순신은 후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할 만한 멋진 설명을 남기지 않았어. 왕을 용서했다고 선언하지도 않았고, 개인적인 원한보다 나라가 중요했다고 연설하지도 않았지.
#45대신 행동이 남아 있어.
#46명령을 받았어. 그리고 갔지.
#47그런데 감옥에서 나온 지 2주도 지나지 않아 더 끔찍한 일이 생겼어.
#484월 13일, 이순신은 어머니를 만나러 가던 중이었어. 그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지.
#49그는 일기에 가슴을 치며 슬퍼했다고 적었어. 해조차 캄캄하게 보일 정도였다고 했지.
#50관직을 잃고, 고문을 받고, 이제 어머니까지 잃었어.
#51그런데 전쟁은 기다려주지 않았어.
#52그리고 이순신이 수군에서 사라진 사이, 바다에서는 훨씬 더 큰 일이 벌어지고 있었지.
#53새로운 삼도수군통제사는 원균이었어.
#54그런데 지휘관을 바꾼다고 어려운 작전 조건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 조정은 수군이 부산 쪽으로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를 원했어.
#55현장에서는 위험하다는 목소리가 나왔어. 원균 아래의 지휘관들 가운데도 그런 작전을 계속하면 함대가 무너질 수 있다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지.
#56원균 역시 압박을 받았어. 권율은 원균이 두려워서 움직이지 않는다고 보고 불러다가 곤장을 치기까지 했어.
#57결국 함대가 움직였지.
#581597년 7월, 칠천량에서 일본군과 맞닥뜨렸어.
#59결과는 재앙이었어.
#60일본 함대가 공격해왔고 조선의 배들이 불탔어. 진형이 무너지고 병사들이 흩어졌지. 수많은 장수와 병사가 죽었고 전라우수사 이억기도 목숨을 잃었어.
#61원균 역시 전투 뒤 사라졌어. 살아남은 한 사람은 지친 원균이 칼을 든 채 소나무 아래 앉아 있고 일본군이 접근하는 모습까지 봤다고 보고했어. 다만 그 사람이 원균의 죽음 자체를 직접 목격한 건 아니었지.
#62칠천량을 단순히 "이순신은 천재였고 원균은 무능해서 망했다"라고 설명하면 편해.
#63하지만 실제 상황은 훨씬 복잡했어.
#64함대를 지휘한 원균에게 최종적인 책임이 있었어. 동시에 위험한 작전을 요구한 조정이 있었고, 권율의 압박도 있었지. 현장 지휘관들도 위험성을 알고 있었어. 거기에 지친 조선 수군과 일본군의 공격이 겹쳤어.
#65그 끝에 무너진 건 배 몇 척이 아니었어.
#66배가 여기저기 흩어졌어. 병사도 흩어졌지. 무기와 군량도 사라졌어.
#67조정은 누가 살아 있는지, 실제로 쓸 수 있는 배가 몇 척인지조차 곧바로 정확히 알지 못했어.
#68조선 수군은 단순히 작아진 게 아니었어.
#69함대라는 조직 자체가 무너진 거야.
#70그리고 바로 그때, 조정은 몇 달 전에 죄인으로 만들었던 사람을 다시 찾게 돼.
#711597년 7월 22일,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전라좌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했어.
#72몇 달 전에는 잡아다가 국문하라고 했던 사람이야.
#73이번에는 무너진 수군을 맡으라는 거였지.
#74명령이 실제 전쟁터의 이순신에게 도착한 건 8월 3일이었어. 선전관이 찾아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라는 왕의 문서를 전달했지.
#75그걸 받은 이순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어.
#76분했는지, 어이가 없었는지, 감옥에서 당한 일을 떠올렸는지도 몰라.
#77확실히 아는 건 그다음 행동이야.
#78이순신은 움직였어.
#79다시 남쪽 바다로 향했지.
#80그런데 이번에는 지휘할 함대부터 찾아야 했어.
#81이순신이 복귀했을 때 잘 정비된 12척의 배가 항구에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니야.
#82칠천량 뒤 살아남은 배와 병사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거든.
#83이순신은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하나씩 다시 모았어.
#84배. 병사. 무기. 군량. 정보.
#85부서진 조직의 조각들을 다시 군대로 만들어야 했어.
#86이순신이 돌아왔다는 소식 자체도 영향을 줬어. 피난하던 사람들 가운데 다시 수군 주변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이 생겼지.
#87그래도 예전 함대와 비교하면 턱없이 적었어.
#88그래서 조정에서는 이런 이야기까지 나왔어.
#89이제 수군을 없애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거야. 남은 수군 병력을 육군에 합쳐 땅에서 싸우게 하자는 생각이었지.
#90배가 거의 사라진 상황이니 황당한 제안만은 아니었어.
#91하지만 이순신은 반대했어.
#92수군이 바다를 막고 있기 때문에 일본군의 해상 이동을 견제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어. 여기서 수군 자체를 없애버리면 바닷길을 그대로 내주게 돼.
#93그리고 아직 전선 12척이 남아 있다고 보고했지.
#9412척.
#95예전 함대와 비교하면 너무 적어 보였어.
#96하지만 중요한 비교는 100척과 12척이 아니었어.
#9712척과 0척이었지.
#9812척은 0척이 아니었어.
#99배가 남아 있으면 싸울 수 있어. 사람을 다시 모을 수 있어. 배를 더 모을 수도 있지.
#100이순신은 수군을 없애지 않았어.
#101바다에 남았어.
#102이순신에게 숫자의 차이를 단숨에 없애줄 비밀 병기가 있었던 건 아니야.
#103거북선 함대도 없었어.
#104대신 살아남은 판옥선과 화포가 있었고, 몇 년 동안 실제 바다에서 싸운 경험이 있었지. 무엇보다 어디에서 싸울지 선택할 여지가 있었어.
#105이순신이 택한 곳이 명량이었어.
#106울돌목이라고도 부르는 좁은 바닷길이야. 물살이 빠르고 거칠어서 큰 함대가 넓은 바다처럼 마음껏 펼쳐지기 어려운 곳이지.
#107그렇다고 이순신이 물살이 몇 시 몇 분에 바뀔지 정확히 계산해놓고 자연이 일본군을 쓰러뜨리기를 기다렸다는 식으로 보면 곤란해.
#108그는 이 바다의 지형과 조류를 이용했어.
#109하지만 물살이 대신 싸워준 건 아니야.
#110이순신은 결전 전에 이미 벽파진 부근에서 접근하는 일본 함선들과 접촉하고 있었어. 적이 오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
#111명량에 나설 무렵 판옥선은 13척이 됐어.
#112그런데 숫자만 보면 놓치기 쉬운 문제가 하나 있었어.
#113배는 13척이었어.
#114하지만 아직 13척이 하나의 함대는 아니었지.
#1151597년 9월 16일, 압도적으로 많은 일본 함대가 명량으로 들어왔어.
#116조선 수군은 훨씬 적었지.
#117그런데 싸움이 시작되자 상황이 더 나빠졌어.
#118이순신의 다른 배들이 뒤에 머물고 있었거든.
#119두려워할 이유는 충분했어. 불과 몇 주 전에 칠천량에서 조선의 주력 수군이 무너지는 걸 겪었잖아. 육군에서도 병사들이 달아난다는 보고가 이어질 정도로 조선군 전체의 사기가 떨어져 있었어.
#120그런 사람들 앞에 또 거대한 일본 함대가 나타난 거야.
#121이순신의 기함은 앞으로 나갔어. 다른 배들이 충분히 따라오지 않는 상황에서 먼저 적을 상대했지.
#122화포가 발사됐고 일본 함선들이 밀려들었어. 좁은 수로와 거센 물살은 일본군이 숫자의 우위를 한꺼번에 쓰기 어렵게 만들었어.
#123그래도 그것만으로는 안 됐어.
#124이순신에게는 자기 함대가 필요했거든.
#125그는 신호를 올렸어.
#126안위의 배가 다가왔지. 이순신은 안위를 거칠게 질책했고 군법까지 거론하며 싸움에 들어오게 했어.
#127안위가 움직였어.
#128그다음 다른 배들이 따라오기 시작했지.
#129한 척이 버텼어. 다음 배가 들어왔어. 또 다른 배가 따라왔지.
#130처음부터 바다에는 13척이 있었어.
#131하지만 그렇게 움직이기 시작한 뒤에야 13척이 함대가 됐어.
#132전투가 계속되면서 일본군의 주요 지휘관 가운데 한 명이 죽었고, 그의 시신이 확인되자 조선군의 사기도 올라갔어. 일본 선봉의 기세는 꺾이기 시작했지.
#133조선 수군은 무너지지 않았어.
#134일본군은 돌파하지 못했어.
#135명량해전은 조선의 승리로 끝났어.
#136명량에서 일본 수군 전체가 사라진 건 아니었어.
#137일본에는 여전히 훨씬 많은 배가 남아 있었지. 그래서 이순신도 승리했다고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며 모든 일본 함대와 계속 싸우려 하지 않았어.
#138작은 함대를 보존하기 위해 이동했지.
#139전쟁도 끝나지 않았어.
#140그렇다면 명량에서 실제로 얻은 건 뭐였을까?
#141칠천량 뒤에는 수군 자체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나왔어.
#142명량 뒤에는 조선 수군이 여전히 존재했지.
#143싸웠어. 살아남았어. 다시 커질 수 있었어.
#144이순신이 13척으로 일본 수군 전체를 없앤 게 아니야.
#145조선 수군이 0이 되는 걸 막은 거야.
#146그런데 그 승리에서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또 편지가 한 통 왔어.
#1471597년 10월 14일, 집에서 편지가 도착했어.
#148봉투에는 불길한 두 글자가 적혀 있었지.
#149통곡.
#150막내아들 이면이 죽었다는 소식이었어.
#151이순신은 자신이 죽고 아들이 살아야 하는데 거꾸로 됐다며 일기에 슬픔을 남겼어.
#1521597년 한 해만 놓고 보면 믿기 어려울 정도야.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로 시작했다가 죄인이 됐어. 고문을 받고 백의종군을 했지. 어머니를 잃었어. 자신이 떠난 수군은 칠천량에서 무너졌어.
#153다시 통제사가 됐고, 흩어진 배와 사람을 모아 명량에서 싸웠어.
#154그리고 아들을 잃었지.
#155그래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어.
#156명량 이후에도 이순신은 수군을 계속 재건했어. 병력과 물자를 모으고 무너진 조직을 다시 만들었지.
#1571598년에는 명나라 수군까지 합류했어. 불과 전해에는 어느 배가 어디에 남았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던 조선 수군이 다시 연합 함대의 한 축이 된 거야.
#158그리고 그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어.
#159일본군은 조선에서 철수하기 시작했지.
#1601598년 11월, 이순신은 명나라 수군과 함께 노량에서 빠져나가려는 일본 함대와 싸웠어.
#161명량에서는 들어오는 적을 막았어.
#162노량에서는 돌아가는 적을 공격했지.
#163그리고 그 전투에서 이순신이 총탄을 맞았어.
#164그는 죽었어.
#165하지만 그 사실은 곧바로 함대 전체에 알려지지 않았어. 전투 중에 지휘관의 죽음이 알려지면 전열이 흔들릴 수 있었거든.
#166그래서 싸움은 계속됐어.
#167그게 이순신의 마지막 해전이었어.
#168불과 1년 전, 왕은 이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었어. 전쟁 중인 수군에서 끌어냈지.
#169그가 없는 동안 주력 함대가 무너졌어.
#170왕은 다시 그를 불렀어.
#171그런데 돌아온 이순신에게 주어진 건 강력한 함대가 아니었어. 흩어진 배와 겁먹은 병사들, 부족한 물자, 그리고 수군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심이었지.
#17212척은 승리를 약속하지 않았어.
#173명량에서 살아남는다는 보장도 없었지.
#174하지만 12척은 13척이 될 수 있었어. 13척에는 사람이 다시 모일 수 있었고, 살아남은 함대에는 물자와 배를 더 붙일 수 있었어.
#1750척으로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지.
#176결국 이순신이 명량에서 지켜낸 건 열두 척이나 열세 척이라는 숫자만이 아니었어.
#177다시 함대가 될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이었어.
#178전쟁이 터지기 불과 1년 전, 이순신은 아직 전국적으로 이름난 장수가 아니었어. 그런데 을 비롯한 사람들이 그를 추천했고, 이순신은 정상적인 승진 단계를 훌쩍 건너 전라좌수사가 됐지.
#179아직 한산도도, 명량도 없던 때였어.
#180그들은 이순신에게서 대체 뭘 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