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전 보건복지부 장관
정치인이기를 포기하자 유시민이 가장 잘하는 일이 남았다
#12013년 2월 19일. 유시민이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국회의원도 해봤다. 보건복지부 장관도 해봤다. 자기 당도 만들어봤다. 경기도지사에도 도전했다. 한때는 대선주자급 정치인으로 거론됐다.
#2그런데 떠나면서 성공을 말하지 않았다. "열에 하나도 보답하지 못한 채 떠나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354세였다. 유시민은 자신이 추구했던 정치적 목표가 틀렸다고 생각해서 떠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그 일을 잘 해내지 못했다고 판단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4이상한 퇴장이었다. 보통 여기까지 올라간 정치인은 한 번 더 선거를 준비한다.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나온다. 자기에게 아직 기회가 남았다고 말한다.
#5유시민은 다른 결론을 내렸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그만두겠다. 그리고 그 무렵 나온 책의 제목은 공교롭게도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6정치를 어떻게 다시 할 것인가가 아니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7정치인이었던 유시민보다 정치인을 그만둔 유시민이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기 시작했다.
#8왜? 답을 찾으려면 이 남자가 처음부터 정치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는지를 봐야 한다.
#91985년. 26세의 유시민은 감옥에 있었다. 경제학과 학생이던 그는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1984년 에 연루돼 구속됐다.
#10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감옥에서 항소이유서를 썼다.
#11변호사가 직접 한번 써보라고 권했다는 것이 훗날 유시민의 설명이다. 유시민은 썼다.
#12그런데 글이 감옥 밖으로 나갔다. 누나 이 변호사를 통해 동생의 글을 접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항소이유서를 복사해 주변에 돌렸다.
#13감옥 안에는 유시민이 있었다. 밖에서는 유시민의 문장이 돌아다녔다. 아직 "거꾸로 읽는 세계사"도 나오기 전이었다. 유명 작가도 아니었다.
#14작가 유시민보다 문장이 먼저 유명해진 셈이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이상할 만큼 오래 반복된다.
#15문제가 생긴다. 유시민은 생각한다. 자기 논리를 만든다. 쓴다. 말한다. 그것으로 사람을 설득하기도 한다. 그것 때문에 싸우기도 한다. 40년 뒤까지 거의 같은 방식이었다.
#16유시민은 1959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유태우는 교사였다. 유시춘의 회고에 따르면 아버지는 방학이면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자녀들에게 읽혔다. 장녀 유시춘이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자 딸을 돌보기 위해 자신도 대구로 전근했다.
#17그리고 아들의 이름에도 생각을 담았다. 가족의 회고에 따르면 사주와 역학에도 관심이 있던 아버지는 아들이 먹고살려면 민첩해야 한다고 생각해 '민첩할 민(敏)'을 넣었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지킨 처럼 나라가 어려울 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는 뜻도 있었다고 한다.
#18첫 번째 뜻은 지나칠 정도로 실현됐다. 학생운동가였다가 수감자가 됐다. 작가가 됐다. 유학생이 됐다. 시사평론가가 됐다. 국회의원 보좌관이 됐다. 국회의원이 됐다. 장관이 됐다. 당 대표가 됐다. 정치를 그만뒀다. 다시 작가가 됐다. 방송인이 됐다. 유튜브 진행자가 됐다.
#19아버지는 아들이 굶지 않게 민첩하라고 이름을 지었다. 아들은 직업으로 그 뜻을 증명했다.
#20그런데 이 집에서 사회문제에 뛰어든 사람은 유시민 하나가 아니었다. 누나 유시춘 역시 교사이자 작가였고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에 참여했다. 1980년대에는 해직도 겪었다.
#21동생은 감옥에서 글을 썼다. 누나는 밖에서 그 글을 복사했다. 하지만 감옥에서 나온 유시민이 향한 곳은 국회가 아니었다.
#22유시민은 와 결혼해 독일로 갔다. 한경혜는 대학입학 예비고사에서 제주 전체 수석을 했고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했다. 독일에서는 수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23유시민은 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24아내는 수학자가 됐다. 남편은 나중에 정치인이 됐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복잡한 문제를 풀게 됐는지는 굳이 판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25유시민은 이미 글을 쓰고 있었다. 1988년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출간됐다.
#26학생운동을 했던 청년. 감옥에서 항소이유서를 썼던 청년. 독일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작가.
#27여기서 인생이 굳어졌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나타났다.
#28학생운동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이해찬이 국회의원이 된 뒤 보좌관으로 일해달라고 제안했다.
#29유시민은 훗날 당시 자신은 정치인이 될 생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좋은 뜻으로 국회의원이 된 선배를 돕는다고 생각했다.
#30정치인이 될 생각은 없었다. 일단 이 말을 기억해두자. 그는 곧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까지 된다.
#31이해찬이 정치의 문을 열었다면 유시민을 그 안쪽까지 데려간 사람은 노무현이었다.
#32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노무현이 돌풍을 일으켰다. 유시민은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33노무현은 대통령이 됐다. 유시민의 인생도 빨라졌다. 2003년 국회의원이 됐다.
#342006년에는 장관이 됐다. 1985년에는 국가에 맞서 감옥에서 항소이유서를 쓰고 있었다.
#3521년 뒤에는 국무위원이었다. 정치인이 될 생각이 없었던 사람은 어느새 권력의 중심 가까이까지 들어와 있었다.
#36그런데 한경혜는 남편을 오래 지켜본 사람이었다. 그는 훗날 유시민의 성향을 생각하면 정치에 꼭 잘 맞는 사람인지 걱정했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호불호가 강한 사람이 현실정치를 잘할 수 있을지 우려했다.
#37유시민은 말에 강했다. 논리를 빠르게 잡았다. 상대가 틀렸다고 생각하면 그 틀린 부분을 찾아냈다.
#38그리고 말했다. 정치에 엄청난 장점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장점이었다. 그런데 정치에는 이상한 규칙이 하나 있다.
#39상대방의 논리를 완벽하게 무너뜨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내 편이 되는 것은 아니다.
#40오히려 더 싫어할 수도 있다. 유시민에게 잘 맞는 경기와 정치라는 경기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412007년 유시민은 보건복지부 장관에서 물러났다. 2008년 총선. 대구 수성구을에 출마했다.
#42졌다. 2010년. 이번에는 경기도지사에 도전했다. 야권 단일후보가 됐다. 또 졌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기 당을 없애는 승부까지 걸었다.
#432011년 국민참여당은 민주노동당, 새진보통합연대와 합쳐 을 만들었다.
#44가 있었다. 이 있었다. 이 있었다. 유시민도 있었다.
#452012년 총선에서 13석을 얻었다. 이번에는 되는 것 같았다. 더 큰 진보정당. 더 큰 정치세력. 다시 시작할 기회.
#46그리고 총선 직후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이 터졌다. 당 안에서 싸움이 시작됐다.
#47갈등은 봉합되지 않았다. 유시민은 구당권파와 대립하는 쪽에 섰다. 결국 당은 갈라졌다.
#48자기 당을 없애서 더 큰 당을 만들었는데 그 당이 내부에서 무너졌다. 유시민, 심상정, 노회찬 등은 통합진보당을 나와 다시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드는 길로 갔다.
#49같은 난파선에서 나온 세 사람이었다. 그 뒤 세 사람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간다.
#50심상정은 정치에 남았다. 노회찬도 정치에 남았다. 유시민은 몇 달 뒤 정치 자체에서 내렸다.
#51그래서 2013년 2월의 그 문장이 나온다. "열에 하나도 보답하지 못한 채 떠나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52정치인이 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런데 정치인으로 계속 사는 데는 실패했다고 스스로 판단했다.
#53그래서 포기했다. 정말로. 그리고 그 포기가 유시민의 인생을 뒤집었다.
#54책을 썼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의 한국현대사". "국가란 무엇인가". "역사의 역사".
#55그리고 에 나갔다. 이곳에서는 유시민에게 없는 능력이 별로 필요하지 않았다.
#56공천받을 필요가 없었다. 지역구 사람들의 표를 모을 필요가 없었다. 당내 세력을 관리할 필요가 없었다.
#57상대의 논리를 공격한 뒤 다음 선거에서 그 사람과 연대할 가능성까지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58읽는다. 생각한다. 복잡한 사건을 구조화한다. 말한다. 상대편에는 , 나중에는 같은 논객이 앉았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했다.
#59논쟁했다. 그게 프로그램이었다. 정치에서는 골칫거리가 될 수 있었던 성향이 방송에서는 콘텐츠가 됐다.
#60정치인이었던 유시민은 유권자에게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부탁했다. 잘 안 됐다.
#61정치를 그만두자 사람들은 돈을 내고 그의 책을 샀다. TV를 켜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62유시민은 정치에서 재기한 것이 아니었다. 게임을 바꿨다. 그리고 자신이 잘하는 것만 남았다.
#632015년. 유시민이 경찰서로 갔다. 이번에는 잡혀간 사람이 유시민이 아니었다.
#64딸 이었다. 유수진은 서울대 사회학과에 진학해 학생회장을 지냈고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65학생운동가의 딸이 학생운동을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생각을 그대로 물려받은 딸은 아니었다.
#66유수진은 아버지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어떤 문제에서는 아버지보다 더 급진적인 입장에 섰다.
#672015년 박근혜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 과정에서 유수진이 경찰에 연행됐다.
#68유시민이 경찰서로 찾아갔다. 면회 시간이 지났다. 딸을 만나지 못했다. 옷만 전달했다.
#6930여 년 전에는 유시민이 학생운동을 하다 구속돼 있었다. 이제 그는 전직 국회의원이었고 전직 장관이었다.
#70경찰서 밖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안에는 딸이 있었다. 둘의 정치적 생각은 완전히 같지 않았다.
#71그런데 자기 생각 때문에 행동한다는 점은 닮아 있었다. 유시민은 옷을 남기고 돌아갔다.
#72유시민은 분명 정치를 그만뒀다. 정확히 말하면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났다.
#73그런데 이상한 것이 하나 있었다. 노무현이었다. 2002년 유시민을 정치 한가운데로 끌어들였던 사람.
#74참여정부에서 유시민을 장관으로 기용했던 대통령. 노무현은 2009년 세상을 떠났다.
#75유시민은 2013년 정치를 떠났다. 그런데 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유시민은 에서 활동했다.
#762018년에는 이사장이 됐다. 2019년에는 "유시민의 "를 시작했다.
#77처음에는 팟캐스트를 생각했다. 직원들은 유튜브를 권했다. 전직 장관은 유튜버가 됐다.
#78아버지가 넣었다는 '민첩할 민'이 여기서 또 작동한 것처럼 보인다. 프로그램 이름도 당시 화제가 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퀸의 노래에 등장하는 '갈릴레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79"알릴레오"는 관심을 모았다. 나중에는 책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알릴레오 북's"로 이어졌다.
#80책과 정치. 유시민이 평생 오가던 두 세계가 다시 한곳에 모였다. 그는 정치인이 아니었다.
#81그런데 정치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들었다. 정치를 떠났는데 정치가 계속 따라왔다.
#82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여전히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83유시민의 두 번째 인생도 완벽한 성공담은 아니었다. 검찰이 노무현재단 계좌를 들여다봤다는 취지의 의혹을 제기했다.
#84입증하지 못했다. 2021년 유시민은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사실의 뒷받침이 없는 의혹 제기였음을 인정했다.
#85이 장면은 그의 젊은 시절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861985년에도 무기는 말과 글이었다. 작가가 된 뒤에도 그랬다. 정치에서도 그랬다.
#87"썰전"에서도 그랬다. "알릴레오"에서도 그랬다. 유시민은 생각을 강한 문장으로 만드는 데 능했다.
#88맞으면 힘이 생겼다. 틀려도 문장의 힘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유시민을 가장 멀리 데려간 능력이 때로는 그를 가장 곤란한 곳으로 데려갔다.
#892026년 6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 의원이 노무현재단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90재단 유튜브 콘텐츠에서 유시민 개인의 존재감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취지였다.
#91며칠 뒤 유시민은 노무현재단 상임고문에서 물러나겠다고 요청했다. 재단은 그를 해촉했다.
#92두 사건이 가까이 일어났다고 해서 곽상언의 비판 때문에 유시민이 물러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93유시민이 밝힌 이유가 있었다. 앞으로 자신이 할 비평 활동 때문에 재단이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을 예방하고 싶다고 했다.
#94"알릴레오 북's"도 6월 말 중단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유시민은 말을 그만두겠다고 하지 않았다.
#95비평을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조직과 거리를 뒀다. 1985년. 26세의 유시민에게는 국회의원이라는 직함도 없었다.
#96장관도 아니었다. 당 대표도 아니었다.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아니었다. 감옥에서 자기 이름으로 글을 썼다.
#9741년 뒤. 그 사이 얻었던 수많은 직함 가운데 또 하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자기 이름으로 말하고 쓰는 자리에 섰다.
#98유시민의 인생에서 계속 바뀐 것은 직함이었다. 학생운동가에서 작가가 됐다.
#99작가에서 정치인이 됐다. 국회의원이 됐다. 장관이 됐다. 당을 만들었다. 선거에서 졌다. 다시 졌다. 자기 당까지 없애며 더 큰 승부를 걸었다. 그것도 무너졌다.
#10054세에 자신이 직업정치를 잘하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내려왔다. 그리고 정치인이기를 포기하자 오히려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이 선명해졌다.
#101읽는 것. 생각하는 것. 쓰는 것. 말하는 것. 그 능력은 유시민을 감옥 밖으로 먼저 내보냈다. 권력 안으로 데려갔다. 권력 밖에서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102때로는 잘못된 판단을 멀리 퍼뜨려 사과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2026년에도 남았다.
#103그런데 하나는 아직 설명되지 않는다. 유시민은 정치인이기를 포기했다. 정당을 떠났다.
#104선거를 떠났다. 정부를 떠났다. 마침내 노무현재단에서도 한발 떨어졌다. 그런데 그의 인생에서 20년 넘게 사라지지 않은 이름이 있다.
#105노무현. 정치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결론까지 내린 유시민은 왜 그 정치로 자신을 끌어들였던 사람의 곁에서는 그렇게 오래 떠나지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