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우저에서 시작해 제품 개발의 공동 작업 공간으로 성장한 디자인 소프트웨어 회사
어도비가 200억 달러를 내고도 갖지 못한 회사
#12023년 12월 18일. 의 200억 달러가 사라졌다. 가 그의 회사 피그마를 사겠다고 발표한 지 15개월 만이었다.
#2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만든 바로 그 어도비였다. 필드는 이 거래를 원했다.
#3하지만 영국과 유럽의 규제기관은 피그마가 독립적인 경쟁자로 남아야 한다고 봤다.
#4결국 거래는 깨졌다. 필드는 실망했다고 말했다. 이상한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5약 1년 7개월 뒤 피그마는 주식시장에 상장했다. 첫날 시장이 매긴 회사의 가치는 어도비가 제안했던 200억 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6팔지 못한 회사가, 팔기로 했을 때보다 더 비싼 회사가 된 것이다. 어떻게?
#7답을 찾으려면 11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 피그마는 200억 달러짜리 회사는커녕,
#8무엇을 만드는 회사인지조차 제대로 정해지지 않았다.
#92011년, 브라운대학교. 딜런 필드는 컴퓨터공학 수업에서 조교였던 를 만났다.
#10월리스가 어느 날 브라우저에서 돌아가는 그래픽 데모를 보여줬다. 핵심은 WebGL이었다.
#11쉽게 말하면 웹브라우저가 컴퓨터의 그래픽 처리 능력을 직접 활용하게 해주는 기술이었다.
#12당시 웹은 지금과 달랐다. 문서를 읽고 간단한 서비스를 사용하는 데는 충분했지만, 전문 디자이너가 하루 종일 쓰는 그래픽 프로그램을 돌리기에는 무리였다.
#13그런데 필드는 이미 다른 가능성을 본 적이 있었다. 같은 서비스였다.
#14예전에는 문서 파일을 컴퓨터에 저장하고 이메일로 보냈다. Google Docs에서는 링크 하나를 열면 여러 사람이 같은 문서에 들어왔다.
#15필드는 생각했다. 문서가 이렇게 바뀔 수 있다면 디자인도 가능하지 않을까?
#16문제는 둘이 무슨 디자인 프로그램을 만들지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사진 편집기도 만져봤다.
#17여러 아이디어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필드가 검색 데이터를 보다가 한 가지를 발견했다.
#18밈이 엄청나게 커지고 있었다. 필드는 월리스를 설득했다. 최고의 밈 생성기를 만들자.
#19둘은 정말 만들었다. 며칠이면 됐다. 그리고 곧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월리스는 이런 걸 계속 만들 거라면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했다.
#20필드는 생각했다. 내가 대학까지 나와서 하려던 게 이건가? 학교로 돌아가는 것도 고민했다.
#21피그마의 공동창업자들이 처음 함께 만든 것 가운데 하나는 혁명적인 디자인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22망한 밈 생성기였다. 그런데 완전히 쓸모없지는 않았다. 월리스가 거기에 만든 텍스트 렌더링 기술 일부는 나중에 피그마 첫 버전에 다시 사용됐다.
#23실패한 제품은 사라졌지만 코드 일부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둘은 더 어려운 문제를 선택했다.
#24전문 디자인 프로그램 전체를 브라우저에서 만들자.
#25이 결정부터 피그마는 당시 스타트업의 상식과 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통은 빨리 제품을 내놓는다.
#26사람들이 쓰는지 본다. 안 쓰면 바꾼다. 피그마는 그럴 수 없었다. 브라우저에서 전문 그래픽 프로그램이 빠르게 움직이게 만드는 것부터 어려웠다.
#27벡터 그래픽도 처리해야 했다. 폰트도 제대로 보여야 했다. 복잡한 화면을 확대하고 움직여도 버벅이면 안 됐다.
#28둘은 투자자에게 아예 경고했다. 앞으로 2년 동안 제품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29그 말을 듣고도 돈을 준 사람이 있었다. 였다.
#30리머는 필드가 아직 인턴이던 시절부터 그를 눈여겨봤다. 제품이 정확히 무엇이 될지 모호했지만 필드와 월리스에게 베팅했다.
#31반대로 다른 투자자는 기술을 보고 감탄한 뒤 거절했다. 였다.
#32Mozilla CEO 출신인 릴리는 브라우저 기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만한 사람이었다.
#33필드가 브라우저에서 돌아가는 이미지 편집 데모를 보여줬다. 릴리는 놀랐다.
#34기술은 대단했다. 그런데 사업으로는 이해되지 않았다. 필드가 기억하는 반응은 거의 이런 뜻이었다.
#35“놀랍네. 그런데 누가 신경 쓰지?” 릴리는 투자하지 않았다. 필드는 이상한 선택을 했다.
#36자신을 거절한 사람을 계속 만났다. 몇 달에 한 번씩 릴리를 찾아가 질문했다.
#37제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업에 대해 물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피그마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382012년에 시작했는데 2013년에도 없었다. 2014년에도 없었다. 투자자들이 물었다.
#39“제품 언제 나와?” 필드는 말했다. “내년이요.” 다음 해가 됐다. 아직 없었다.
#40그 사이 더 위험한 문제가 생겼다. CEO였다. 딜런 필드는 스무 살 무렵 회사를 시작했다.
#41정규직으로 조직생활을 오래 해본 경험도 없었다. 인턴 다음 직업이 CEO에 가까웠다.
#42그런데 이제 자신보다 경험 많은 사람들을 채용해 이끌어야 했다. 잘되지 않았다.
#43필드는 제품의 모든 부분에 관여했다. 사소한 결정까지 붙잡았다. 자신도 나중에 그 시절을 micromanaging이라고 표현했다.
#44제품은 계속 늦어졌다. 팀은 지쳤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의 암 투병까지 겹쳤다.
#45결국 선임 팀원들이 CEO에게 직접 개입했다. 메시지는 단순했다. 도움이 필요하다.
#46필드는 며칠 동안 회사에서 물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때 한 사람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47존 릴리였다. 처음 피그마를 보고 투자하지 않았던 바로 그 사람. 그사이 릴리는 피그마의 투자자이자 필드의 멘토가 되어 있었다.
#48그는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아직 회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49필드도 변해야 했다. 자신보다 경험 많은 리더들을 데려오고, 모든 것을 직접 붙잡는 대신 권한을 나누기 시작했다.
#50피그마가 살아남기 위해 해결해야 했던 문제 가운데 하나는 브라우저가 아니었다.
#51창업자 자신이었다.
#522015년. 처음 필드를 거절했던 릴리도 생각을 바꿨다. 피그마가 더 이상 멋진 기술 데모로만 보이지 않았다.
#53그동안 인터넷에서는 이미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Google Docs는 문서를 함께 쓰게 만들었다.
#54는 코드를 만드는 과정 자체를 여러 사람이 공유하게 만들었다.
#55그런데 디자인은 여전히 개인 컴퓨터의 파일에 가까웠다. 디자이너가 작업한다.
#56파일을 보낸다. 누군가 피드백한다. 다시 고친다. 또 보낸다. 릴리가 처음 던졌던 질문, “누가 신경 쓰지?” 에 답이 생기기 시작했다.
#57같은 해 릴리가 속한 Greylock은 피그마에 1,400만 달러를 투자했다.
#58그리고 2015년 말, 회사를 시작한 지 약 3년 만에 피그마가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59그런데 아직 결정적인 기능 하나가 빠져 있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같은 디자인을 편집하는 기능.
#60피그마는 곧 그것을 만들기 시작했다. multiplayer. Google Docs처럼 같은 파일 안에 여러 사람의 커서가 들어오는 기능이었다.
#61이번에는 기술보다 사람이 문제였다. 디자이너들이 싫어했다. 상사가 내 작업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으면 어떡하지?
#62아무나 들어와 디자인을 건드리면? 모두가 한마디씩 하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 될까?
#63“이게 디자인의 미래라면 직업을 바꾸겠다”는 식의 반응까지 나왔다. 피그마 팀 내부에서도 이것이 정말 옳은 선택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64하지만 한 가지 생각은 분명했다. 인터넷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인데 왜 파일을 다시 복사해서 주고받아야 하지?
#65그래서 밀어붙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하자 예상하지 못했던 장점이 나타났다.
#66두 명의 디자이너가 동시에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다. `final`
#67`final2` `final_final` 같은 파일이 필요 없어졌다. 링크는 하나였다.
#68디자이너가 수정하면 개발자도 같은 최신 화면을 봤다. 제품 관리자도 들어왔다.
#69카피라이터도 들어왔다. 디자인 파일이 디자이너 한 명의 작업물이 아니라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기 시작했다.
#70처음에는 “위원회가 디자인하는 끔찍한 미래”라고 걱정했던 기능이, 오히려 피그마를 단순한 디자인 프로그램 이상으로 만들고 있었다.
#71그 변화는 작은 스타트업에서 끝나지 않았다. 같은 대기업에서 피그마 사용이 빠르게 퍼졌다.
#72Square의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제품을 옮겼다. Microsoft 같은 거대한 조직에서는 여러 제품 팀이 같은 디자인 시스템을 공유하는 데 피그마를 사용했다.
#73이제 질문이 달라졌다. 피그마에서 그림을 더 잘 그릴 수 있는가? 그것만이 아니었다.
#74회사의 제품 팀이 하루 종일 어디에서 함께 일하는가? 피그마는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75그리고 그걸 누구보다 심각하게 봐야 하는 회사가 있었다. 어도비. 어도비에는 이미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가 있었다.
#76심지어 UI·UX 디자인을 위한 도 있었다. 피그마가 들어온 시장을 어도비가 몰랐던 것이 아니다.
#77직접 경쟁하고 있었다. 그런데 2022년 9월, 어도비는 경쟁을 계속하는 대신 피그마를 사겠다고 발표했다.
#78가격은 약 200억 달러. 어도비 역사상 가장 큰 인수였다. 왜 그렇게 비쌌을까?
#79당시 피그마는 연말 반복매출이 4억 달러를 넘길 것으로 예상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80기존 고객들도 해마다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었다. 총마진은 약 90%였다.
#81하지만 어도비가 공식적으로 강조한 것은 숫자만이 아니었다. 웹. multiplayer.
#82그리고 여러 사람이 함께 제품을 만드는 방식. 피그마가 10년 동안 밀어붙인 바로 그 변화였다.
#83이 거래를 가장 흥미롭게 설명한 쪽은 오히려 거래를 막으려던 규제기관이었다.
#84영국 경쟁시장청은 피그마를 단순히 지금의 경쟁자로만 보지 않았다. 앞으로 이미지 편집이나 일러스트레이션 같은 더 넓은 영역에서 어도비를 위협할 수 있는 미래의 경쟁자로 봤다.
#85어도비 내부에서도 피그마와의 경쟁을 의식한 제품 개발이 있었다는 정황을 조사했다.
#86결국 규제기관이 던진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지금 200억 달러를 주고 이 회사를 사버리면, 앞으로 생겼을 경쟁은 어떻게 되는가?
#87어도비와 피그마는 자신들의 사업이 충분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수천 시간을 규제 심사에 썼다.
#88통하지 않았다. 2023년 12월 18일. 거래는 끝났다. 피그마는 어도비로부터 계약에 따른 10억 달러의 해지 수수료를 받았다.
#89하지만 필드에게 그날은 승리가 아니었다. 그는 거래가 옳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래가 깨진 것에 실망했다.
#90독립 회사로 남은 피그마는 예전의 피그마로 돌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영역을 넓혔다.
#91디자이너가 개발자에게 작업을 넘기는 과정을 돕는 Dev Mode. 프레젠테이션을 만드는 Slides.
#92웹사이트를 만들어 실제로 게시하는 Sites. 마케팅 콘텐츠를 만드는 Buzz.
#93벡터 작업을 확장한 Draw. 그리고 AI에게 말로 지시하면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주는 Make.
#94피그마는 자신을 더 이상 화면을 그리는 도구 하나로만 설명하지 않기 시작했다.
#95아이디어에서 실제 제품까지 가는 공간. 2025년 7월, 피그마는 상장했다.
#96공모가는 주당 33달러였다. 첫날 종가는 115.50달러. 공개시장이 매긴 회사의 가치는 어도비가 제안했던 200억 달러를 크게 넘어섰다.
#97하지만 이걸 “인수가 깨져서 성공했다”고 말하면 순서가 뒤집힌다. 거래가 깨진 직후 필드는 200억 달러짜리 엑싯을 잃었다.
#98그 뒤 독립한 피그마가 실제로 더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거래가 깨졌기 때문에 그 성장의 가치는 어도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피그마에 남았다.
#99그런데 이제 피그마 앞에는 어도비보다 더 이상한 경쟁자가 나타났다. AI다.
#100AI에게 화면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된다. 코드도 써준다. 작동하는 앱까지 만들어준다.
#101그렇다면 굳이 중간에 피그마에서 디자인할 이유가 있을까? 이 질문은 피그마의 존재 자체를 건드린다.
#102그런데 피그마가 선택한 방법은 기존 디자인 과정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었다.
#103오히려 스스로 부수기 시작했다. Figma Make에서는 말로 지시해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을 만든다.
#104AI agent는 캔버스 안에서 직접 작업한다. Code Layers는 디자인과 코드를 더 가깝게 붙인다.
#105실제 제품의 코드와 연결하는 방향까지 간다. 예전에는 디자인 → 개발자에게 전달 → 코드
#106였다면, 피그마는 그 사이의 벽 자체를 낮추려 하고 있다. 필드의 주장은 간단하다.
#107AI 때문에 코드를 만드는 일이 점점 싸고 쉬워진다면, 코드 자체보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108그 주장이 맞을지는 아직 모른다. AI가 결국 피그마 같은 디자인 도구를 훨씬 덜 중요하게 만들 수도 있다.
#109하지만 이 장면은 묘하게 처음과 닮아 있다. 2012년. 브라우저는 전문 디자인 프로그램을 만들기에 너무 약했다.
#110필드와 월리스는 브라우저를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을 그 안에 넣었다.
#111그리고 브라우저가 강해지자, 그 선택 때문에 여러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디자인할 수 있게 됐다.
#1122026년. 이번에는 AI가 디자인 프로그램 자체를 건너뛸 수 있을 만큼 강해지고 있다.
#113피그마는 또 피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도 그 기술이 더 강해지는 쪽에 회사를 걸고 있다.
#114브라우저에 걸었던 첫 번째 베팅은 맞았다. AI에 거는 두 번째 베팅의 결과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115피그마가 따라 하려 했던 도 처음부터 당연한 제품은 아니었다. 2005년에는 워드프로세서를 브라우저에서 쓴다는 것부터 이상하게 보였는데, 이듬해 Google은 그 작은 서비스 Writely를 사버렸다. Google은 왜 이미 잘 팔리던 데스크톱 문서 프로그램과 정반대 방향에 베팅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