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션을 1억 사용자와 AI 에이전트 플랫폼으로 키운 이반 자오와 공동창업자들
직원도 사무실도 없어진 뒤에야 노션이 보이기 시작했다
#12015년, 지금의 노션을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회사는 돈이 떨어지고 있었고 제품은 사람들이 기대한 만큼 쓰이지 않았다. 결국 직원들을 내보내고 샌프란시스코 사무실도 다른 사람에게 빌려줘야 했다. 회사를 시작했는데 회사에서 사람과 사무실이 사라졌다.
#2남은 핵심 인력은 이반 자오(Ivan Zhao)와 였다. 둘은 미국을 떠났다. 목적지는 일본 교토였다.
#3지금 보면 이것을 '창업자들이 교토에서 제품에 집중한 전설적인 리트리트'처럼 포장하기 쉽다. 당시 현실은 훨씬 덜 낭만적이었다. 노션이 거의 죽어가고 있었고, 둘은 더 싸게 버티면서 제품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했다.
#4그런데 이상하다.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이 문서와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회사의 업무까지 관리하는 그 노션이 대체 왜 이렇게까지 망했던 걸까?
#5답은 조금 황당하다. 처음부터 꿈이 너무 컸다.
#6이반 자오는 중국에서 태어나 청소년기에 캐나다로 이주했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와 게임을 좋아했고 프로그래밍 대회에도 참가했다. 캐나다에 간 뒤에는 "스폰지밥"과 "심슨 가족"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며 영어뿐 아니라 서양의 농담과 문화까지 익혔다.
#7그런데 대학에서는 전형적인 컴퓨터공학자의 길을 가지 않았다. 에서 인지과학과 미술을 공부했다.
#8이미 프로그래밍은 할 줄 알았다. 오히려 이반이 궁금했던 것은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창작하는가에 가까웠다.
#9대학 시절 주변에는 예술가 친구들이 많았다. 졸업할 때가 되자 이들에게는 자기 작품을 보여줄 포트폴리오 웹사이트가 필요했다.
#10그래서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아는 이반이 만들어줬다. 하나 만들고, 또 하나 만들고, 또 만들어줬다.
#11그러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이 사람들은 자기 웹사이트를 직접 만들 수 없지?
#12친구들에게 창의력이 없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창작을 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HTML과 CSS와 프로그래밍이라는 벽 때문에 갑자기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하는 사람이 됐다.
#13이반에게는 이것이 이상했다. 컴퓨터는 인류가 만든 가장 강력한 창작 도구 가운데 하나인데, 정작 대부분의 사람은 남이 만들어놓은 프로그램 안에서만 움직인다. 워드프로세서가 허락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스프레드시트가 허락하는 방식으로 표를 만들고, 새로운 도구가 필요하면 개발자에게 부탁한다.
#14이반은 반대로 생각했다. 사람들이 블록을 조립하듯 자기에게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 수 있으면 어떨까?
#15훗날 노션의 핵심이 되는 질문이었다.
#16이 점을 놓치면 초기 노션이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반이 만들고 싶었던 것은 '에버노트보다 좋은 메모 앱' 정도가 아니었다. 문서와 데이터베이스와 웹사이트와 여러 종류의 업무 도구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평범한 사람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조립할 수 있는 범용적인 소프트웨어를 꿈꿨다.
#17쉽게 말하면 소프트웨어 레고였다. 문제는 레고를 만들려면 블록부터 만들어야 하는데, 이반은 거의 도시 전체를 만들려고 들었다는 것이다.
#18초기 노션은 야심은 엄청났지만 복잡했고 기술적인 문제도 있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자신들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제품을 만드는 데 빠져 있었다고 이반도 훗날 돌아봤다.
#19이반은 컴퓨팅의 미래를 만들고 싶었다. 사용자는 일단 이 프로그램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부터 알고 싶었다.
#20꿈과 제품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리고 스타트업에서는 그 거리를 메우는 동안에도 월급과 서버비가 나간다.
#21그 과정에서 이반에게 중요한 사람이 나타났다. 당시 학생이던 사이먼 라스트였다. 이반은 지인을 통해 사이먼의 독특한 프로그래밍 작업을 발견했고 그에게 연락해 인턴으로 데려왔다.
#22사이먼은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이반과 풀타임으로 일하기로 했다. 그런데 작은 문제가 있었다.
#23사이먼의 아버지가 교장 선생님이었다. 아들이 대학을 그만두고 웬 창업자와 정체를 설명하기도 어려운 소프트웨어를 만들겠다고 하니 아버지는 이반을 직접 만나러 왔다. 이반은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24교장 선생님의 걱정은 상당히 합리적이었다. 이반은 훗날 사이먼이 술집에 들어갈 나이가 되지 않았던 시절, 옆 카페와 술집이 화장실을 공유한다는 것을 이용해 사이먼을 카페에서 화장실을 거쳐 술집으로 데리고 들어간 일까지 웃으며 회고했다.
#25그 대학생은 결국 노션의 공동창업자가 됐다. 그리고 몇 년 뒤, 그때는 아무도 알 수 없었던 훨씬 중요한 선택을 한다.
#26회사가 잘될 때 합류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거의 사라졌을 때도 남는다.
#272015년 무렵 상황은 한계에 가까워졌다. 제품은 원하는 만큼 성장하지 않았다. 돈은 줄어들었다. 팀 전체를 그대로 유지하면 모두가 함께 침몰할 수 있었다.
#28결국 사람들을 내보냈다. 샌프란시스코 사무실도 다시 빌려줬다. 그리고 이반과 사이먼은 교토로 갔다.
#29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성장 공식을 거의 역순으로 실행한 셈이었다. 직원을 줄인다. 사무실을 없앤다. 실리콘밸리를 떠난다.
#30마지막에는 창업자 둘과 노트북이 남았다. 훗날 세상의 업무 공간을 정리해주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먼저 자기 회사부터 극단적으로 정리한 셈이다.
#31그런데 아직 하나가 부족했다. 시간이었다.
#32회사가 다시 제품을 만들려면 몇 달이라도 더 버텨야 했다. 이때 이반의 어머니가 15만 달러를 빌려줬다.
#33화려한 벤처캐피털 투자 라운드가 아니었다. 투자자는 한 명이었다. 엄마였다.
#34하지만 이 돈의 진짜 가치는 15만이라는 숫자에 있지 않았다. 제품은 실패했다. 직원들은 떠났다. 사무실도 포기했다. 아들이 만들겠다는 것은 여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소프트웨어였다.
#35그런 상황에서 어머니가 빌려준 돈은 이반과 사이먼에게 한 번 더 시도할 시간을 사줬다.
#36그리고 둘은 그 시간을 거의 전부 제품에 집어넣었다.
#37교토에서의 생활은 극단적으로 단순했다. 이반은 디자인했다. 사이먼은 코딩했다.
#38그리고 국수를 먹었다. 이반의 회고를 따르면 두 사람은 당시 삶에서 코딩과 국수 먹는 일 이외의 것을 거의 제거해버린 수준이었다.
#39특히 이반은 당시 아직 작은 스타트업 제품이던 Figma를 엄청난 시간 동안 사용했다. 하루 18시간 이상 사용할 정도였다는 일화가 남아 있을 만큼 디자인을 계속 뜯어고쳤다.
#40하루는 24시간이다. 18시간을 디자인 도구에 쓰면 남는 여섯 시간 안에 잠과 밥과 인간 생활을 해결해야 한다.
#41사실상 '생활'이라는 기능을 비활성화한 셈이다. 교토에서 이반의 인생 데이터베이스에는 속성이 몇 개 남지 않았다.
#42디자인. 코딩. 국수. 노션 공식 계정도 훗날 이 시절을 두 창업자가 교토에서 속옷 차림으로 코딩하며 Notion 1.0을 만들던 때라고 회상할 정도였다.
#43화려한 창업 신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회사가 가장 작아진 이 순간, 노션은 지금 우리가 아는 노션에 가장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442016년 3월, 다시 만든 Notion 1.0이 세상에 나왔다. 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반은 훗날 당시 Product Hunt 커뮤니티의 반응이 없었다면 노션이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45그러면 보통 성공담에서는 여기서 음악이 올라온다. 망할 뻔한 창업자들이 교토로 갔다. 모든 것을 걸고 제품을 다시 만들었다. 마침내 출시했다.
#46그리고 성공했다. 아니었다. 노션 스스로 훗날 돌아본 기록에 따르면 2013년 회사를 시작하고 2018년 Notion 2.0을 출시하기 전까지 제대로 된 성장 신호를 거의 보지 못했다.
#475년이었다. Notion 1.0을 만들고도 다시 2년을 더 버텨야 했다. 이반은 훗날 2018년의 Notion 2.0을 사실상 자신들이 만들고 싶었던 진짜 1.0에 가까운 제품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48소프트웨어 버전 번호에 대한 상당히 자유로운 해석이다. 하지만 그 2.0에서 마침내 무언가가 달라졌다.
#492018년 Notion 2.0에는 테이블과 칸반 보드, 캘린더, 데이터베이스 등 지금의 노션을 떠올리게 하는 기능들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50문서는 문서대로, 프로젝트 관리는 프로젝트 관리대로 따로 존재하던 세계에서 노션은 이들을 하나의 블록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51그리고 Product Hunt에서 반응이 폭발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노션으로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52누군가는 회사 위키를 만들었다. 누군가는 프로젝트 관리 시스템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독서 기록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공부 계획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자기 인생 전체를 관리하는 대시보드를 만들었다.
#53템플릿을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커뮤니티가 생겼다. 영어밖에 없던 노션의 사용법을 다른 언어로 알리는 데 자발적으로 나선 사용자들도 있었다.
#54노션이 모든 사용법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사용자가 노션 위에서 노션의 사용법을 만들기 시작했다.
#55생산성을 높이려고 노션을 켰다가 세 시간 동안 대시보드 아이콘을 고르는 새로운 형태의 비생산성까지 함께 탄생했지만, 그것마저 이 제품의 이상한 매력이었다.
#56그리고 여기서 거의 10년 전 이반이 품었던 질문이 돌아온다. 왜 사람들은 자기 도구를 직접 만들 수 없지?
#57이제 사람들이 정말 자기 도구를 만들고 있었다.
#58여기에서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다. 였다. 악셰이는 이미 뉴스 앱 를 공동창업해 LinkedIn에 매각한 경험이 있는 창업자였다. 초기 노션에 개인적으로 투자했던 그는 이후 아예 회사에 합류했다.
#59그런데 이미 창업과 매각을 경험한 사람이 들어와서 처음부터 거창한 경영 전략만 짠 것은 아니었다.
#60고객지원에 깊숙이 들어갔다. 수많은 사용자의 질문에 직접 답하면서 사람들이 노션을 어디에 쓰고, 어디에서 막히고, 왜 좋아하는지를 배웠다.
#61이반은 사이먼을 제품 쪽 공동창업자, 악셰이를 비즈니스 쪽 공동창업자로 설명한다.
#62세 사람의 역할을 거칠게 압축하면 재미있다. 이반은 왜 만들어야 하는지를 붙잡았다. 사이먼은 그것을 실제로 만들었다. 악셰이는 사람들이 그것을 쓰는 회사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63노션이 회사이기 전에 한동안 이반과 사이먼 두 사람이었다. 이제 다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64성장은 점점 빨라졌다. 이반은 노션 사용자가 처음 1,000명을 넘어섰을 때 찍었던 사진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65지금 보면 1,000명은 작은 숫자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제품을 만들고도 제대로 된 성장 신호를 찾지 못했던 사람에게는 1억 명보다 오히려 1,000명이 믿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66우리가 만든 것을 정말 원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 사실을 숫자로 처음 확인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67사용자는 이후 100만 명을 넘어섰고, 2024년에는 1억 명을 돌파했다.
#682015년에는 직원들을 내보냈다. 2016년에는 어머니에게 빌린 돈으로 시간을 샀다. 2018년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성장 신호가 나타났다.
#69그리고 몇 년 뒤에는 1억 명이었다.
#70회사가 커지면서 아주 우스운 역전도 일어났다. 초기의 노션은 돈이 없어 이반이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71그런데 노션이 성장하고 흑자까지 내기 시작하자 급하게 외부 투자를 받을 이유가 줄었다.
#72이번에는 투자자들이 노션의 관심을 얻어야 했다. 투자자들이 사무실을 찾아오고, 쿠키 반죽이나 개 간식 같은 선물까지 보내며 관계를 만들려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73몇 년 전에는 돈이 없어서 엄마에게 전화했던 회사였다. 이제는 돈을 주겠다는 사람들이 간식을 들고 찾아왔다.
#74회사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기업가치 그래프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75하지만 이 이야기를 여기서 끝내면 노션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 하나를 놓치게 된다.
#76이반이 처음 만들고 싶었던 것은 사실 지금의 노션보다도 더 컸기 때문이다.
#77이반은 컴퓨터 역사를 깊게 파고들었다. 그가 매료된 것은 개인용 컴퓨팅 초창기에 존재했던 오래된 이상이었다.
#78그 세계를 따라가면 와 같은 이름들이 등장한다.
#79컴퓨터가 단순히 남이 만든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생각하고 만들고 자기 도구를 구성하는 매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80 같은 구상, Smalltalk, 그래픽 인터페이스 같은 아이디어가 태어나던 시대의 꿈이다.
#81노션은 겉으로 보면 2010년대에 등장한 생산성 소프트웨어다. 하지만 뿌리를 따라 내려가면 1970년대 사람들이 상상했던 컴퓨터의 미래와 만난다.
#82그래서 이반의 목표는 처음부터 '좋은 문서 앱'보다 훨씬 컸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꿈이 너무 컸기 때문에 첫 번째 노션은 거의 망했다.
#832025년과 2026년의 노션을 보면 이야기가 다시 이상해진다. 노션은 AI를 제품 깊숙이 집어넣기 시작했다. 회의를 기록하고, 회사 안의 정보를 검색하고, 문서를 작성하는 수준을 넘어 반복적인 업무를 실제로 수행하는 방향으로 확장했다.
#842026년에는 가 등장했다. 사용자가 해야 할 일을 자연어로 설명하고 조건을 정하면 에이전트가 반복 업무를 처리한다. 회의가 끝난 뒤 프로젝트 상태를 업데이트하거나 정보를 정리하고, 연결된 업무를 이어서 처리하는 식이다.
#85Mail과 Calendar 같은 서비스와의 연결도 깊어졌다. 노션의 변화는 대략 이렇게 볼 수 있다.
#86처음에는 블록을 조립했다. 그러면 자기 업무 도구를 만들 수 있었다. 이제는 원하는 일을 말로 설명한다.
#87그러면 AI가 그 일을 수행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반이 2013년에 오늘날의 AI 에이전트를 정확히 예측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88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가 오랫동안 붙잡아온 문제는 '개발자가 아닌 사람도 자기에게 필요한 도구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89그리고 AI는 그 목표를 이전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되고 있다.
#902026년 노션은 약 2억7천만 달러 규모의 직원·퇴직 직원 주식 매입 거래를 발표했고, 이 과정에서 회사는 약 110억 달러의 가치로 평가됐다. 노션은 2025년 말 연간 반복 매출의 절반 이상이 AI 기능을 사용하는 고객에게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91교토에서 두 사람이 국수를 먹으며 만들던 회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런데 질문은 여전히 같다.
#92노션 이야기를 단순히 '포기하지 않아서 성공한 창업자' 이야기로 읽으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
#93이반은 처음 만든 제품을 끝까지 고집하지 않았다. 제품을 다시 만들었다. 기술을 바꿨다. 기능을 바꿨다. 회사를 줄였다. 사용자에게 맞춰 방향을 조정했다.
#94방법은 수없이 바뀌었다. 그런데 질문 하나는 남았다. 왜 사람들은 자기 컴퓨터에서 자기 도구를 만들 수 없는가?
#95대학생 이반은 예술가 친구들의 웹사이트를 대신 만들어주며 그 질문을 품었다.
#96몇 년 뒤 그 질문을 풀겠다고 회사를 만들었다. 회사는 거의 망했다. 직원들이 떠났다. 사무실도 사라졌다.
#97사이먼과 교토로 갔다. 어머니에게 15만 달러를 빌렸다. 디자인하고 코딩하고 국수를 먹었다.
#98Notion 1.0을 만들었다. 그래도 성공하지 못했다. 다시 2년을 버텼다.
#99그러자 사람들이 노션으로 자기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1,000명이 됐다.
#100100만 명이 됐다. 1억 명이 됐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이 블록을 직접 조립하는 것을 넘어 말로 원하는 일을 설명하고 AI 에이전트를 만드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101어쩌면 노션의 가장 이상한 점은 1억 명이 사용하는 회사가 됐다는 것이 아니다.
#1022013년에 너무 거대한 꿈을 꾸는 바람에 거의 망했던 사람들이, 13년이 지난 지금도 그 꿈을 계속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