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를 만든 K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모든 것을 설계하고 싶었던 사람에게 마침내 모든 것을 설계할 권한이 생겼을 때
#12024년 4월 25일, 대한민국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 중 하나의 자회사 대표가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초록색 줄무늬 티셔츠. LA 다저스 모자. 옆에는 변호사들. 뒤에는 카카오톡 대화가 띄워졌다.
#2상황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는 사흘 전 자회사 경영진에 대한 감사를 시작했고, 민희진 등 경영진이 경영권 탈취를 시도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민희진은 자신이 먼저 하이브 산하 의 신인 걸그룹 이 뉴진스의 콘셉트를 모방했다는 문제를 내부적으로 제기했고 이후 감사가 시작됐다는 취지로 맞섰다.
#3보통 이런 상황에서 회사 대표가 기자회견을 하면 법무팀이 인간의 언어를 제거한 듯한 입장문을 읽는다. 그날은 반대였다.
#4카카오톡 대화가 등장했고, 회사에서 겪었다는 일들이 쏟아졌고, 감정이 올라오자 욕설도 섞였다. 기업 분쟁을 설명하는 자리였는데 어느 순간 IR 설명회와 직장인 단톡방 폭로전 사이 어딘가로 들어가고 있었다. 옆에는 변호사들이 있었다. 그날은 변호사들의 표정마저 콘텐츠가 됐다.
#5기자회견은 인터넷을 집어삼켰다. 발언은 밈이 됐고, 입고 나온 티셔츠와 모자까지 화제가 됐다. 20년 넘게 사람들에게 이미지를 보여주는 일을 해온 사람답게, 커리어 최대 위기 중 하나에서도 본의 아니게 스타일링까지 콘텐츠가 된 셈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6어느 순간 대한민국 사람들이 아이돌 노래가 아니라 의결권, 주주간계약, 풋옵션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대체 이 사람은 누구길래 걸그룹 하나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여기까지 온 걸까. 답을 찾으려면 22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72002년. 민희진은 에 공채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8처음부터 유명 프로듀서도 아니었고 아이돌 제작자도 아니었다. 디자인을 전공했고 음반 커버 작업에 관심이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SM 음악의 열렬한 팬이어서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LP와 영화 OST 등을 접했고, 재즈와 브라질 음악, 프렌치팝, 디스코, 펑크, 라운지 등 다양한 음악과 이미지를 자기 방식대로 소비했다고 훗날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SM 아이돌을 너무 좋아해서 회사에 들어간 사람이 아니라, SM과는 조금 다른 자기 취향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이 훗날 SM 아이돌의 이미지를 바꾸게 된 것이다.
#9처음에는 앨범 디자인이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영역이 점점 넓어졌다. 앨범을 디자인하다 사진에 관여하고, 사진에 관여하다 콘셉트를 만들고, 콘셉트를 만들다 어느 순간 그룹 전체가 어떤 사람들처럼 보여야 하는지까지 생각하게 됐다.
#10회사에서 일을 잘하면 생기는 가장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이 더 생겼다.
#11는 민희진이라는 이름이 팬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데 중요한 팀이었다. 특히 민희진은 샤이니의 "Romeo"를 기억에 남는 작업으로 꼽았다. 자신이 샤이니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가 명확했고 앨범명 "Romeo"도 직접 제안했다고 회고했다. 원하는 이미지가 너무 미묘해서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 어려웠고, 아예 자신이 사진을 찍을까 고민할 정도였다고 했다.
#12보통 사람은 사진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으면 수정 요청을 한다. 민희진은 잠시 직업을 하나 더 가질 생각을 했다.
#13이 집요함은 이후에도 반복된다. , 샤이니, , , 등 여러 SM 아티스트의 비주얼 작업에 참여하면서 민희진은 앨범 재킷을 예쁘게 만드는 사람을 넘어섰다.
#14특히 f(x)는 민희진의 감각을 설명하기 좋은 사례였다. 음악도 조금 이상했다. 제목도 이상했다. 사진도 이상했다. 당시의 전형적인 걸그룹과 비교하면 어딘가 한 번씩 비껴가 있었다. 그런데 그 이상한 것들이 한꺼번에 모이면 오히려 아주 선명했다. 민희진에게 '이상하다'는 것은 고쳐야 하는 오류라기보다 다른 사람과 달라질 수 있는 재료에 가까웠다.
#15그리고 이런 방식은 점점 K팝의 중요한 문법이 됐다. 앨범 재킷, 로고, 의상, 헤어스타일, 사진, 뮤직비디오, 폰트가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같은 세계의 물건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 아이돌을 노래 몇 곡의 묶음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로 설계하는 방식이었다.
#16시간이 흘렀다. 민희진은 2017년 SM 등기이사까지 올라갔다. 2002년 공채 평사원으로 들어온 그래픽 디자이너가 약 15년 만에 회사 이사가 된 것이다.
#17여기까지만 보면 완벽한 성공담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성공해서 일이 너무 많아졌다.
#18민희진은 당시 한 달에 뮤직비디오를 다섯 편 진행할 정도로 과중한 업무를 했고 제대로 휴가를 쓰기도 어려웠다고 훗날 회고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했고, 잘했고, 잘했더니 더 많은 일이 왔다. 그리고 더 잘했더니 더 많은 일이 왔다. 꿈을 직업으로 만드는 데는 성공했는데 어느 순간 그 직업이 자신의 삶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꿈을 이루는 것과 꿈속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19결국 2019년 민희진은 약 17년간 몸담은 SM을 떠났다. 성공하지 못해서 떠난 것이 아니었다. 너무 높은 곳까지 올라간 뒤 떠났다.
#20그리고 여기서 쉬었으면 이야기가 평범했을 것이다. 민희진이 다음으로 간 곳은 휴양지가 아니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였다.
#21당시 빅히트는 지금의 하이브로 성장하던 회사였다. 민희진을 영입한 핵심 인물은 이었다.
#22묘한 조합이었다. 한 사람은 작곡가 출신 제작자였다. 한 사람은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 제작자였다. 둘 다 무대 위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대 뒤에서 아티스트의 운명을 결정하는 위치까지 올라왔다.
#23민희진은 빅히트에서 최고브랜드책임자(CBO)를 맡았다. 그리고 얼마 뒤 더 큰 변화가 생겼다. 2021년 하이브는 새로운 독립 레이블 어도어를 설립했고 민희진이 대표이사가 됐다.
#24이건 단순한 승진이 아니었다. SM에서 민희진은 남의 땅에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가와 비슷했다. 아무리 영향력이 커져도 결국 SM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작업했다. 하이브에서는 아예 작업장 하나가 생겼다. 이제 회사의 조직부터 신인 그룹의 방향까지 훨씬 넓은 범위를 자기 방식으로 설계할 수 있었다.
#252002년 앨범을 디자인하던 사람이 약 20년 만에 사실상 이런 질문을 받은 셈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처음부터 네 방식대로 만들어봐." 그 결과가 무엇일지는 아직 아무도 몰랐다.
#262022년 7월 22일. 유튜브에 갑자기 뮤직비디오 하나가 올라왔다. "Attention". 그룹 이름은 뉴진스. , , , , 다섯 멤버가 등장했다.
#27일반적인 K팝 데뷔는 꽤 친절하다. 멤버를 한 명씩 공개한다. 콘셉트 사진을 보여준다. 티저를 푼다. D-7, D-6, D-5를 세면서 팬들에게 "곧 나옵니다"를 반복한다.
#28뉴진스는 달랐다. "안녕하세요, 뉴진스입니다"보다 "뉴진스입니다. 일단 보세요"에 가까웠다.
#29그리고 사람들이 봤다. "Attention"에 이어 "Hype Boy"가 나왔다. "Cookie"가 나왔고, 이후 "Ditto", "OMG", "Super Shy" 등이 이어졌다. 뉴진스는 빠르게 K팝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30음악은 당시 유행하던 강한 K팝 사운드와 비교하면 힘을 빼고 있었다. 스타일링에는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의 감각이 섞였다. 멤버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강조했고, 로고와 앨범 패키지부터 영상과 프로모션까지 하나의 방향으로 묶였다. 민희진이 SM에서 오랫동안 실험했던 방식이 이제 하나의 신인 그룹 전체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20년 동안 쌓아온 취향의 결과 발표였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31뉴진스를 이해하려면 이 부분도 중요하다. 강한 총괄 제작자가 있었다고 해서 모든 것을 그 사람이 직접 만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희진의 또 다른 특징은 이상한 사람을 잘 골라 이상한 일을 맡기는 것이었다.
#32대표적인 사람이 이다. 광고 제작사 을 이끌던 신우석은 원래 아이돌 업계에 깊은 관심이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민희진을 잘 몰라 미팅 전 인터뷰를 찾아봤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에게 뉴진스의 영상을 맡겼다. 그리고 나온 것이 "Ditto"와 "OMG"였다.
#33특히 "Ditto"에는 라는 가상의 인물이 등장한다. 캠코더로 뉴진스를 바라보는 한 사람을 통해 팬과 아이돌 사이의 관계 자체를 이야기하는 기묘한 뮤직비디오가 만들어졌다. 민희진은 모든 것을 직접 통제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신우석은 자신에게 상당한 창작 자율성이 주어졌다고 설명했다.
#34이것은 중요한 힌트다. 민희진의 능력이 모든 사진을 직접 찍고 모든 곡을 직접 만드는 것이었다기보다, 서로 다른 창작자들을 골라 하나의 방향 안에서 움직이게 만드는 능력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질문은 훗날 더 중요해진다.
#35뉴진스는 성공했다. 민희진 역시 더 이상 업계 사람들만 아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아니었다. "뉴진스를 만든 사람"이 됐다. 여기까지 오는데 약 20년이 걸렸다.
#36그런데 뉴진스 데뷔 후 2년도 지나지 않은 2024년 4월 22일, 하이브가 어도어 경영진에 대한 감사를 시작했다. 속도가 갑자기 달라진다.
#37앞부분은 20년짜리 이야기였다. 이제부터는 며칠 단위다. 하이브는 민희진 등 어도어 경영진이 경영권을 탈취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민희진 측은 이를 부인했다. 자신이 아일릿의 뉴진스 콘셉트 모방 문제 등을 하이브 내부에 제기한 뒤 감사가 시작됐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38그리고 사흘 뒤. 4월 25일. 초록색 티셔츠. LA 다저스 모자. 카카오톡.
#39우리가 처음 봤던 장면으로 돌아온다.
#40기자회견 이후 여론은 크게 출렁였다. 누군가에게 민희진은 거대 기업과 싸우는 창작자였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과 뉴진스를 지나치게 동일시하는 경영자였다.
#41하지만 인터넷 여론과 법률 판단은 같은 것이 아니다. 하이브는 민희진의 어도어 대표이사 해임을 추진했고, 민희진은 이를 막기 위해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422024년 5월 법원은 민희진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다만 판결의 의미를 단순히 "법원이 민희진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인정했다"라고 이해하면 안 된다. 법원은 민희진이 어도어를 하이브의 지배 범위에서 벗어나게 할 방법을 모색한 것은 분명하다고 보면서도, 그것이 구체적인 실행 단계까지 나아갔다고 보기 어렵고 어도어에 대한 배임행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43즉, 아무 일도 없었다는 판결도 아니었고, 경영권 탈취가 법적으로 확정됐다는 판결도 아니었다.
#44그런데 법적 싸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452024년 8월 어도어 이사회는 민희진을 대표이사에서 해임했다. 11월에는 민희진도 어도어 사내이사에서 사임하며 회사를 떠났다. 그런데 사건은 여기서 갈라지기 시작한다.
#46민희진과 하이브의 주주간계약 문제. 민희진의 풋옵션 문제. 뉴진스와 어도어의 전속계약 문제. 손해배상 사건. 민형사상 여러 고소·고발.
#47이제 "민희진 재판에서 누가 이겼나?"라는 질문에는 한 문장으로 답할 수 없게 됐다. 서로 다른 재판이기 때문이다.
#48뉴진스와 어도어 사이에서는 2025년 10월 법원이 전속계약이 유효하다고 판단하며 어도어 측 손을 들어줬다. 반면 민희진과 하이브 사이 주주간계약·풋옵션 사건에서는 2026년 2월 1심 법원이 하이브의 주주간계약 해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하이브가 민희진에게 약 255억 원의 풋옵션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민희진이 어도어를 독립시키는 방안을 모색한 정황은 인정하면서도 그것만으로 주주간계약을 해지할 정도의 중대한 위반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49다만 이것도 끝난 판결은 아니다. 하이브가 항소했다. 그러니까 인터넷에서 "법원이 어도어 손을 들어줬다." 와 "법원이 민희진 손을 들어줬다."
#50라는 말을 동시에 봤다면 둘 중 하나가 반드시 거짓인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사건을 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51샤이니와 f(x)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독자가 풋옵션을 배우고 있다. 민희진의 커리어 후반부를 이해하려면 K팝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52여기서부터는 웃기기 어려워진다. 뉴진스 멤버들은 민희진의 대표 복귀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이후 어도어와 전속계약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됐고, 멤버들은 독자 활동을 시도하면서 NJZ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 문제는 결국 법정으로 갔다.
#53중요한 것은 민희진 개인과 뉴진스 멤버들의 법적 지위와 사건을 하나로 섞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두 이야기를 완전히 분리하기도 어려웠다. 왜냐하면 뉴진스라는 그룹의 정체성과 민희진이라는 제작자의 이름이 처음부터 너무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54여기서 민희진 커리어 전체를 관통하는 이상한 역설이 생긴다. 민희진이 뉴진스를 너무 성공적으로 설계했기 때문에, 민희진 없이도 뉴진스가 완전히 같은 뉴진스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까지 생겼다.
#55반대로 다른 질문도 가능하다. 뉴진스라는 성공에서 민희진의 몫을 지나치게 크게 보는 것은 아닐까.
#56다섯 멤버가 있었다. 음악을 만든 작곡가와 프로듀서들이 있었다. 안무가가 있었다. 신우석 같은 영상 창작자가 있었다. 하이브의 자본과 인프라도 있었다.
#57그렇다면 뉴진스를 만든 것은 누구였을까. 아마 답은 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58신우석 이야기는 훗날 기묘한 후일담을 만든다. 민희진 체제에서 신우석과 돌고래유괴단은 뉴진스의 독특한 영상 세계를 만드는 중요한 파트너였다.
#59그런데 민희진이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새 어도어와 돌고래유괴단 사이에 뉴진스 관련 영상과 계약을 둘러싼 갈등이 벌어졌다. 결국 법정까지 갔다. 민희진은 신우석 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2026년 1월 1심에서는 돌고래유괴단 측 법인이 어도어에 10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단이 나왔고, 신우석 개인을 상대로 한 청구는 기각됐다.
#60앞에서는 이것이 성공 공식이었다. 좋은 창작자를 찾고, 믿고 맡기고, 기존 K팝 문법에서 벗어난다. 조직이 깨지고 나니 바로 그 제작 과정에서의 자율성과 구두 협의, 계약상 권리의 경계가 분쟁의 소재가 됐다. 성공할 때 장점이었던 것이 조직이 무너진 뒤에는 위험이 됐다.
#61민희진과 하이브의 관계도 비슷했다.
#62민희진의 커리어를 건축가에 비유하면 이상할 정도로 잘 맞는다. SM에서는 남의 땅에서 건물을 설계했다. 처음에는 벽지 정도를 고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방을 설계하고, 외관을 설계하고, 결국 건물 전체의 인상에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됐다.
#63하이브에 오자 작업할 공간이 훨씬 커졌다. 어도어라는 자기 작업장도 생겼다. 그리고 뉴진스라는 건물을 지었다. 건물은 대박이 났다.
#64문제는 하나였다. 땅은 하이브의 것이었다. 건축가와 땅 주인이 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까지 이 싸움에 들어왔다.
#65물론 실제 회사의 법적 권리관계가 이 비유처럼 단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희진 커리어에서 반복된 핵심 질문은 분명하다. 누가 결정할 권리를 가지는가.
#662002년 민희진에게는 거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씩 늘어났다. 앨범을 결정할 권한. 비주얼을 결정할 권한. 그룹의 콘셉트를 결정할 권한. 조직을 운영할 권한. 마침내 자기 레이블과 자기 걸그룹까지 생겼다.
#67그리고 가장 많은 권한을 얻은 순간, 그 권한의 경계를 둘러싼 가장 큰 싸움이 시작됐다.
#68이렇게 보면 민희진의 이야기는 성공과 몰락으로 단순하게 나눌 수 없다. 평사원이었다. 이사가 됐다. SM을 떠났다.
#69하이브 CBO가 됐다. 어도어 대표가 됐다. 뉴진스를 성공시켰다. 그리고 어도어 대표 자리에서 내려왔다. 회사를 떠났다. 뉴진스에 대한 공식적인 제작 권한도 잃었다. 20년 동안 하나씩 얻었던 것들이 몇 년 사이 다시 손에서 빠져나갔다.
#70그렇다고 "민희진은 몰락했다"고 끝내기도 어렵다. 2026년 풋옵션 사건 1심에서는 민희진에게 유리한 판단이 나왔다. 반면 다른 형사 사건에서는 민희진이 하이브와 빌리프랩 관계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고소가 불기소 처분되기도 했다. 어도어가 민희진과 다니엘 측 등을 상대로 제기한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도 이어졌다.
#71사건마다 당사자도 다르고 쟁점도 다르고 결과도 다르다. 민희진의 이야기는 아직 법적으로도 끝나지 않았다.
#72그런데 더 중요한 변화가 하나 생겼다. 민희진이 다시 회사를 만들었다.
#73새 회사의 이름은 다. 이 대목에서 민희진은 묘하게 2002년으로 돌아온다.
#74SM도 없다. 어도어도 없다. 처음 뉴진스를 만들 때 사용할 수 있었던 하이브의 거대한 인프라도 없다.
#75하지만 2002년과 완전히 다른 것이 하나 있다. 그때는 회사가 있었지만 민희진이라는 이름이 없었다. 지금은 이전의 회사와 직함을 잃었지만 민희진이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76민희진은 2026년 풋옵션 1심 판결 뒤 다시 본업에 집중하며 새로운 음악으로 놀라게 하겠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냈다. 그래서 이제 꽤 흥미로운 실험이 시작된다.
#77뉴진스의 성공에서 민희진의 몫은 정확히 무엇이었을까. 디자인 감각이었을까. 음악을 고르는 귀였을까.
#78사람을 찾아내는 능력이었을까. 마케팅이었을까. 멤버들의 매력을 발견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서로 다른 창작자들의 결과물을 하나의 방향으로 묶어 "이것은 뉴진스다"라고 느끼게 만드는 능력이었을까.
#79과거만 들여다봐서는 완벽하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이제 시험해볼 방법이 생겼다. 다음 결과물을 보면 된다.
#80민희진과 하이브 사이의 법정 싸움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러나 민희진이라는 제작자에 관한 더 흥미로운 판결은 어쩌면 법원에서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81SM도 없고, 어도어도 없고, 처음의 뉴진스도 없는 자리에서 무엇을 만들어내는가. 다음 작품이 나오면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