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전쟁의 영웅이자 그리스 신화 최고의 지략가
집에 가는 데 20년이 걸린 남자, 그리고 끝내 움직이지 않았던 것
#1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오디세우스는 전쟁에 가고 싶지 않았다. 후대 전승에 따르면 그는 트로이 전쟁에 끌려가는 것을 피하려고 미친 척했다. 밭을 이상하게 갈고 소금을 뿌리며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가 그의 연기를 의심했다. 그는 갓난아기였던 를 쟁기 앞에 놓았고, 오디세우스는 아들을 치지 않으려고 멈췄다.
#2연기는 들통났다. 조금 웃긴 이야기처럼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책략가 가운데 한 사람이 군대에 안 가려고 미친 척하다가 아들 때문에 걸렸다.
#3그런데 이 장면은 20년 뒤를 알고 보면 전혀 다르게 보인다. 오디세우스는 그 순간 아들을 살렸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그 아이가 자라는 거의 모든 시간을 놓치게 된다. 그가 집에 돌아오기까지 약 20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4먼저 이 10년이었다. 오디세우스는 근육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영웅이 아니었다. 가 전장의 압도적인 전사였다면 오디세우스의 무기는 머리였다.
#5그 성격을 상징하는 것이 다. 10년 동안 트로이의 성벽을 제대로 뚫지 못하자 그리스군은 거대한 목마 안에 병사들을 숨기는 계책을 사용한다. 이 계책은 여러 고대 전승에서 오디세우스와 강하게 연결된다.
#6발상의 핵심은 황당할 정도로 단순하다. 우리가 성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말고, 적이 우리를 들고 들어가게 만들면 되잖아.
#7트로이 사람들은 목마를 성 안으로 들인다. 밤이 되자 안에서 그리스 병사들이 나온다. 고대사에서 가장 유명한 무료배송 사고였다.
#8그리고 마침내 트로이가 무너졌다. 10년짜리 전쟁이 끝났다. 이제 오디세우스는 고향 로 돌아가면 된다. 아내 와 아들이 기다리고 있다.
#9이제 집에 가면 된다. 앞으로 이 문장이 얼마나 불길한 문장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10귀환길의 유명한 사건 가운데 하나가 의 땅이다. 그곳의 것을 먹은 오디세우스의 동료들은 이상해진다.
#11싸우지도 않는다. 죽지도 않는다. 그저 돌아가고 싶지 않아진다. 고향을 잊고 그곳에 남고 싶어 한다.
#12오디세우스는 이들을 억지로 끌고 와 배에 묶다시피 하고 다시 출항한다. 앞으로 오디세우스 앞에는 식인 거인도 나오고 마녀도 나오고 괴물도 나오고 신도 나온다. 그런데 귀향이라는 이야기에서 가장 조용하면서 무서운 적은 어쩌면 이것이다. 집을 잃는 것이 아니라,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
#13오디세우스는 아직 그것을 잃지 않았다. 그러니 다시 간다. 그리고 외눈박이 거인을 만난다.
#14오디세우스 일행은 외눈박이 거인 의 동굴에 갇힌다. 폴리페모스는 입구를 거대한 바위로 막고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잡아먹기 시작한다.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
#15그러자 오디세우스가 머리를 쓴다. 먼저 거인에게 술을 먹인다. 폴리페모스가 이름을 묻자 대답한다. "아무도 아니다."
#16거인이 술에 취해 쓰러지자 오디세우스 일행은 뾰족하게 만든 나무로 그의 하나뿐인 눈을 찌른다. 폴리페모스가 비명을 지르자 다른 키클롭스들이 묻는다. "누가 너를 해치고 있느냐?" 폴리페모스가 외친다. "아무도!"
#17그러자 도움을 받지 못한다. 말장난 하나로 구조 요청 시스템을 박살냈다.
#18하지만 아직 문제가 있다. 눈이 멀어도 거인은 동굴 입구를 지킬 수 있다. 오디세우스는 다시 생각한다. 폴리페모스가 밖으로 나가는 양의 등을 만져 사람을 찾을 테니, 사람들을 양의 배 아래 매달아 탈출시킨다.
#19완벽하다. 가짜 이름. 술. 기습. 탈출. 배까지 도착했다. 이제 정말 입만 다물면 된다.
#20그런데 오디세우스는 떠나는 배에서 폴리페모스를 조롱한다. 그리고 굳이 자기 진짜 이름을 밝힌다. "너를 눈멀게 한 사람은 오디세우스다."
#21악플러와 말싸움에서 완벽하게 이긴 뒤 마지막 댓글에 실명과 주소를 남긴 셈이다.
#22더 큰 문제가 있었다. 폴리페모스의 아버지는 바다의 신 이었다. 폴리페모스는 아버지에게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방해해달라고 빈다.
#23오디세우스가 바보라서 일을 망친 게 아니다. 너무 오디세우스다워서 망쳤다.
#24그를 살린 것은 자신의 머리였다. 그러니 그 머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세상에 알려주고 싶었다. 오디세우스의 가장 큰 장점과 가장 큰 결함이 한 장면에서 동시에 폭발한다.
#25그래도 귀환은 계속된다. 바람을 다스리는 는 오디세우스를 도와 위험한 바람들을 자루에 담아준다. 이제 순풍을 타고 가면 된다.
#26놀랍게도 정말 이타카까지 온다. 고향이 보일 정도다. 오디세우스가 잠든다.
#27그런데 부하들이 생각한다. 대장이 저 자루에 뭘 숨겼지? 혼자 챙긴 보물 아닐까?
#28연다. 바람이 전부 튀어나온다. 배가 다시 먼 바다로 날아간다. 내비게이션: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습니다. 부하들: 가방 한번 열어볼까? 내비게이션: 경로를 다시 탐색합니다.
#29그리고 이후에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는다. 식인 거인족 에게 함대 대부분을 잃는다.
#30출발할 때는 왕이었다. 배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31다음에는 의 섬에 도착한다.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돼지로 만들어버린다.
#32이쯤 되면 새로운 섬은 휴게소가 아니다. 신규 재난 콘텐츠 업데이트다. 의 도움을 받은 오디세우스는 키르케의 마법에 저항하고 결국 동료들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린다. 임무 완료. 이제 집에 가면 된다.
#33그런데 오디세우스는 키르케와 가까워지고 그 섬에서 약 1년을 보낸다. 오디세우스가 말하는 "집에 가는 중"은 현대인의 "지금 출발했어"와 조금 비슷하다. 방향은 맞다. 시간 개념이 다를 뿐이다.
#34그러다 키르케가 정말 집으로 돌아가려면 해야 할 일을 알려준다. 저승으로 가라고 한다. 집에 가는 경로에 죽은 자들의 세계가 포함되어 있었다.
#35오디세우스는 살아 있는 몸으로 죽은 자들의 영역을 찾아가 예언자 에게 귀환에 관한 조언을 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람을 만난다. 어머니 다.
#36오디세우스가 트로이로 떠났을 때는 살아 있었다. 그런데 아들이 집에 돌아오는 동안 세상을 떠났다.
#37여기서 이야기가 처음 달라진다. 지금까지 오디세우스의 20년은 황당한 모험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오디세우스가 바다에서 하루를 보낼 때마다 이타카에서도 하루가 흘렀다.
#38아기는 자라고 있었다. 아버지는 늙고 있었다. 아내도 늙고 있었다. 개도 늙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기다릴 시간이 끝나버렸다.
#39집은 오디세우스가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멈춰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40저승에서는 아킬레우스도 만난다. 트로이 전쟁 최고의 전사. 젊어서 죽는 대신 불멸의 명성을 얻은 영웅.
#41그런데 죽은 아킬레우스가 오디세우스에게 하는 이야기는 영웅 신화를 묘하게 뒤집는다. 죽은 자들을 다스리는 것보다 살아서 보잘것없는 사람 밑에서 일하는 편이 낫다는 취지로 말한다.
#42살아 있을 때 영광의 상징이었던 남자가 죽은 뒤에는 삶을 원한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어떻게든 살아서 집에 돌아가려는 오디세우스가 서 있다.
#43둘의 이야기는 여기서 갈라진다. 한 사람은 영광을 얻고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한 사람은 영광을 얻은 뒤에도 10년을 더 써서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44그러면 다른 질문이 남는다. 아킬레우스는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45살아 있는 세계로 돌아온 오디세우스에게 다음 위험이 기다린다. 이다. 그들의 노래를 들은 사람은 유혹당해 파멸한다.
#46정상적인 해결책은 간단하다. 안 들으면 된다. 오디세우스의 해결책은 다르다. "그런데 무슨 노래인지 궁금한데?"
#47부하들의 귀에는 밀랍을 넣는다. 그리고 자신은 배의 돛대에 묶으라고 한다. 노래를 듣고 자신이 아무리 풀어달라고 해도 절대로 풀어주지 말라고 명령한다.
#48세이렌의 노래가 들리자 예상대로 오디세우스는 풀어달라고 몸부림친다. 부하들은 오히려 줄을 더 단단히 묶는다. 결국 그는 노래를 듣고도 살아남는다.
#49위험하니까 피하는 사람이 아니다. 위험한 게 뭔지는 직접 알고 싶은 사람이다. 그리고 자기 미래의 판단력을 믿지 못하겠으면 아예 자기 몸을 기둥에 묶는다. 고대 그리스식 자기통제 시스템이다.
#50다음 바닷길에는 두 존재가 기다린다. 한쪽에는 여러 머리로 선원들을 낚아채는 괴물 . 다른 쪽에는 배 전체를 삼킬 수 있는 거대한 소용돌이 . 둘 다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51현대식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A안: 일부가 죽을 수 있음. B안: 전원이 죽을 수 있음.
#52회의 결과 A안이다. 오디세우스의 배가 스킬라 쪽으로 지나가면서 동료들을 잃는다. 그래서 후대에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는 양쪽 모두 위험한 선택지 사이에 낀 상황을 표현하는 말로 살아남게 된다.
#53그런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 태양신 의 소가 있는 섬이 나온다. 경고는 명확하다. 절대로 소를 먹지 마라.
#54오디세우스도 부하들에게 말한다. 절대로 먹지 마라. 그리고 오디세우스가 잠든다. 부하들이 소를 잡아먹는다.
#55바람 자루 때도 오디세우스가 잠들었다. 이번에도 잔다. 이쯤 되면 이타카 귀환의 최대 위험 요소가 포세이돈인지 오디세우스의 수면시간인지 헷갈린다.
#56하지만 이번 결과는 웃을 수 없다. 신들의 분노가 떨어진다. 배가 파괴된다. 동료들이 죽는다. 마침내 오디세우스 혼자 남는다.
#57트로이를 떠날 때의 오디세우스에게는 모든 것이 있었다. 왕이었다. 전쟁 영웅이었다.
#58배가 있었다. 부하들이 있었다. 전리품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감이 있었다. 귀환길은 그에게 무언가를 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씩 빼앗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59배가 줄어든다. 사람이 줄어든다. 동료들이 죽는다. 마지막 배마저 사라진다. 그리고 바다에 한 사람이 남는다. 트로이를 무너뜨린 왕에게 자기 몸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표류한 오디세우스가 도착한 곳이 의 섬이다.
#60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약 7년을 보낸다.
#61이 감옥은 폴리페모스의 동굴과 전혀 다르다. 괴물에게 잡아먹힐 위험도 없다. 전쟁도 없다. 칼립소는 아름다운 여신이다.
#62"오디세이"에서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불멸과 늙지 않는 삶까지 제안한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원하지 않는다. 그는 바닷가에 앉아 이타카를 그리워한다.
#63이상하다. 우리가 읽고 있는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모험담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은 모험을 더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64영원히 젊게 살 수도 있다. 하지만 페넬로페는 인간이다. 늙는다. 오디세우스 자신도 인간으로 살면 늙는다. 이타카도 영원하지 않다.
#65그래도 돌아가고 싶다. 저승에서 죽은 아킬레우스는 삶을 원했다. 살아 있는 오디세우스는 불멸보다 자기 삶을 원한다.
#66결국 신들의 결정과 아테나의 도움으로 칼립소는 그를 보내준다. 오디세우스는 다시 바다로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이타카에 도착한다.
#67처음 질문은 하나였다. 이 남자는 대체 언제 집에 가는가? 이제 질문이 달라진다. 20년 뒤 돌아온 곳도 정말 예전의 집인가?
#68아버지가 떠날 때 갓난아기였던 텔레마코스는 성인이 되어 있다. 페넬로페 주변에는 오디세우스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구혼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오디세우스의 집에서 그의 재산을 축내며 페넬로페에게 자신들 중 한 명과 결혼하라고 압박한다.
#69그런데 페넬로페도 평범한 상대가 아니다. 시아버지의 수의를 다 짜면 재혼하겠다고 해놓고 낮에는 천을 짜고 밤에는 몰래 풀어버린다. 오디세우스가 바다에서 머리로 살아남았다면 페넬로페는 이타카에서 머리로 시간을 벌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책략가가 집에 돌아왔더니 자기 못지않게 질긴 책략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70그리고 오디세우스도 달라져 있었다. 폴리페모스에게는 안전하게 탈출한 뒤 굳이 자신의 이름을 외쳤다. 이번에는?
#71거지로 변장한다. 정체를 숨긴다. 상황을 관찰한다. 누가 적이고 누가 자기 편인지 확인한다.
#7220년 전 오디세우스: "내가 누군지 기억해라!" 20년 뒤 오디세우스: "저 그냥 지나가던 거지인데요."
#73적어도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는 확실히 성장했다.
#74오디세우스는 마침내 텔레마코스와 만난다. 이 관계에는 묘한 슬픔이 있다.
#75아버지가 떠날 때 텔레마코스는 아기였다. 오디세우스는 아들의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지 못했다. 첫걸음도. 소년이 되어가는 시간도. 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구혼자들에게 시달리며 성장하는 과정도.
#76텔레마코스에게 오디세우스는 추억 속 아버지라기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이야기를 들어온 전설적인 아버지에 가까웠다.
#77그런데 돌아와 보니 보호해야 할 아기가 없다. 자기 옆에서 싸울 수 있는 성인 남자가 있다.
#78오디세우스는 아들의 성장을 보지 못했다. 대신 그 성장의 결과와 만난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궁전을 되찾을 계획을 세운다.
#79오디세우스는 아직 거지 모습이다.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데 한 존재가 그를 알아본다. .
#80오디세우스가 트로이로 떠나기 전부터 키웠던 늙은 개다. 젊고 건강했던 주인이 사라진 뒤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아르고스 역시 늙고 쇠약해졌다.
#81그런데 돌아온 주인을 알아본다. 오디세우스도 아르고스를 알아본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달려가 끌어안을 수도 없다.
#82아르고스는 마침내 돌아온 주인을 본다. 그리고 죽는다. 아르고스는 기다렸다.
#83지금까지 '20년'은 숫자였다. 트로이 전쟁 10년. 귀환 10년. 하지만 늙은 개 한 마리가 그 숫자를 갑자기 시간으로 바꿔놓는다.
#84오디세우스가 괴물과 싸우는 동안 아르고스는 늙고 있었다.
#85또 한 사람이 오디세우스를 알아본다. 그를 어릴 때부터 알았던 유모 다. 거지의 발을 씻겨주던 그녀는 다리에 있는 오래된 흉터를 보고 그가 오디세우스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86이것도 묘하다. 세상 사람들이 오디세우스를 기억하는 방식은 거대하다. 트로이. 목마. 전쟁. 괴물. 세이렌.
#87하지만 집에서 그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어릴 적 몸에 생긴 흉터다.
#88세상은 영웅을 기억한다. 가족은 사람을 기억한다. 하지만 아직 한 사람이 남아 있다. 페넬로페다.
#89페넬로페는 구혼자들에게 시험을 제안한다. 오디세우스의 활을 당겨 정해진 과녁을 통과시키는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것이다.
#90구혼자들이 도전한다.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러자 궁전 안에 있던 거지가 활을 잡는다. 오디세우스다.
#91자기 집을 20년 가까이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공포영화다. 죽은 줄 알았던 집주인이 이미 거실에 앉아 있었다.
#92오디세우스는 활을 다룬다. 그리고 텔레마코스와 충성스러운 이들의 도움을 받아 구혼자들과 싸운다. 복수는 매우 폭력적이고, 현대의 감각으로 읽으면 불편할 정도로 가혹한 장면도 있다.
#93오디세우스는 고난을 겪고 완전히 온화한 인간이 되어 돌아온 영웅이 아니다. 여전히 계산적이고 냉혹하다.
#94그래서 질문은 남는다. 오디세우스는 정말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까? 아니면 살아남고 승리하는 방법이 훨씬 정교해진 것뿐일까?
#95어쨌든 궁전은 다시 그의 것이 된다. 왕이 돌아왔다. 그런데 아직 귀환은 끝나지 않았다.
#96페넬로페는 돌아온 남자를 곧바로 남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20년이다. 확인해야 한다.
#97그래서 하인에게 말한다. 오디세우스의 침대를 방 밖으로 옮기라고. 그러자 오디세우스가 즉시 반응한다.
#98그 침대는 그렇게 옮길 수 없다. 자신이 살아 있는 올리브 나무를 중심으로 침대를 만들고 그 주위에 방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이 진짜 오디세우스다.
#99페넬로페는 그제야 확신한다. 괴물도 아니다. 신도 아니다. 활쏘기도 아니다. 20년짜리 모험의 마지막 관문은 부부만 아는 침대 이야기였다.
#100그리고 이 장면에는 오디세우스 이야기 전체가 들어 있다. 오디세우스는 20년 동안 움직였다. 트로이로 갔다. 섬에서 섬으로 떠돌았다.
#101바다를 건넜다. 저승까지 갔다. 다시 바다를 건넜다. 그런데 그가 돌아가려 했던 곳의 중심에는 처음부터 움직일 수 없는 침대가 있었다.
#102오디세우스에게는 아직 늙은 아버지 도 남아 있다. 이제 세 세대를 놓고 보면 시간이 더 선명해진다.
#103오디세우스가 떠날 때 그는 아들이었다. 동시에 갓난아기의 아버지였다. 돌아왔을 때 자기 아버지는 노인이 되어 있고 자기 아들은 성인이 되어 있다.
#104오디세우스만 20년을 여행한 것이 아니다. 라에르테스는 20년을 늙었다. 페넬로페는 20년을 버텼다. 텔레마코스는 20년을 자랐다. 아르고스는 20년을 기다렸다. 안티클레이아에게는 그 시간을 끝까지 기다릴 기회조차 없었다.
#105그래서 "오디세이"의 가장 강력한 적은 포세이돈이 아닐지도 모른다. 시간은 누구도 이길 수 없다.
#106집으로 돌아갈 수는 있다. 떠났던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107오디세우스는 그리스식 이름 Odysseus로 알려져 있지만 라틴 전통을 거치면서 Ulysses, 한국어로는 율리시스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그래서 수천 년 뒤 가 소설 "율리시스"라는 제목을 붙였을 때 그 뒤에는 바로 이 고대 영웅이 있었다.
#108더 재미있는 것은 "오디세이"라는 말 자체다. 원래 오디세이는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노래한 서사시다. 그런데 이 작품의 영향이 워낙 거대해지면서 영어 odyssey는 긴 여행, 파란만장한 방랑이나 경험을 뜻하는 말로까지 확장됐다. 집에 너무 오래 못 간 나머지 자기 이름에서 나온 말이 '기나긴 여정'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109그리고 이 이야기를 전한 인물로 전해지는 사람이 다. 그런데 여기서 또 토끼굴이 열린다. 호메로스는 정확히 누구였을까? "일리아스"와 "오디세이"는 정말 우리가 상상하는 한 명의 시인이 만든 작품일까?
#110오디세우스가 이타카에 도착했다고 해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이유다.
#111Odyssey라는 이름은 현대에도 계속 돌아다닌다. 그리고 그중 유난히 절묘한 것이 다. 가족을 태우는 미니밴이다.
#112고대의 Odyssey: 집에 가는 데 10년 걸림. 현대의 Odyssey: 가족 태우고 집에 가는 차.
#113인류는 거의 3천 년 뒤 오디세우스에게 가장 필요했을 물건에 그의 이야기 이름을 붙인 셈이다. 물론 혼다의 이름 선정 의도를 이런 농담 자체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기가 막힌 조합이다.
#114그리고 2026년에는 이 "The Odyssey"를 대형 영화로 다시 만들면서 이 오래된 이야기는 또 한 번 현대 대중문화의 한가운데로 돌아왔다. 고대의 구전 서사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문학이 되고, 관용어가 되고, 소설 제목이 되고, 자동차 이름이 되고, 다시 거대한 영화가 된다.
#115오디세우스는 이타카에는 돌아왔는데 그의 이야기는 아직도 돌아다니고 있다. 거의 3천 년째다.
#116오디세우스는 완벽한 영웅이 아니다. 거짓말을 한다. 속인다. 잔혹하기도 하다. 자존심 때문에 자기 일을 망친다. 수많은 동료를 잃는다.
#117어떤 순간에는 그의 지략이 사람을 살리고, 어떤 전승에서는 같은 지략이 사람을 파멸시키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118그는 인간보다 훨씬 강한 존재들과 싸우면서 인간적인 결함을 끝까지 가지고 있다. 그리고 조금은 변한다.
#119폴리페모스 앞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숨겨 살아남은 뒤 굳이 이름을 외쳐 재앙을 부른다. 20년 뒤 이타카에서는 자기 이름을 숨기고 기다린다. 적절한 순간이 올 때까지.
#120그가 완전히 겸손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언제 이름을 말하지 않아야 하는지 안다.
#121그런데 더 중요한 변화가 있다. 처음에 우리는 오디세우스를 모험가로 만난다.
#122트로이 목마. 키클롭스. 마녀. 저승. 세이렌. 스킬라. 카리브디스. 칼립소.
#123엄청난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자꾸 잊게 된다. 오디세우스 본인은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 싶어서 떠난 것이 아니다. 그가 원했던 것은 계속 하나였다. 집에 가는 것.
#124그리고 집에 돌아왔을 때 세상에서 오디세우스가 누구인지 증명했던 것은 트로이 목마가 아니었다. 개가 그를 기억했다. 유모가 흉터를 기억했다. 아내가 침대를 기억했다.
#125세상은 오디세우스를 영웅으로 기억했다. 집은 오디세우스를 오디세우스로 기억했다.
#126그래서 어쩌면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은 트로이 목마도, 활도, 배도 아니다.
#127오디세우스는 20년 동안 움직였다. 바람도 움직였다. 파도도 움직였다. 사람도 움직였다. 시간도 움직였다. 모든 것이 흘러갔다.
#128그런데 그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했던 곳의 중심에는, 살아 있는 올리브 나무에 뿌리박혀 옮길 수 없는 침대 하나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