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증 인증으로 가입을 엄격히 통제하는 80만 회원 여성 커뮤니티
들어가려면 신분증을 내야 하는 인터넷 카페
#1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하는 절차는 보통 이렇다. 아이디 정하고, 비밀번호 정하고, 이메일 인증하고, 끝.
#2여성시대에 들어가려면 얼굴 사진과 신분증을 찍어서 제출해야 한다.
#3신분증에는 생년월일과 주민등록번호 일부가 보여야 한다.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때 하는 절차와 같다. 다른 점은 카드는 한도가 나오고 이쪽은 게시판 글쓰기 권한이 나온다는 것이다.
#4회원 수는 약 80만 명이다. 80만 명이 그 절차를 통과했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광역시 하나가 통째로 신분증을 제출하고 게시판에 들어간 셈이다.
#52009년, 다음 카페에 커뮤니티 하나가 개설됐다. 이름은 여성시대. 여기서 짚고 갈 것이 하나 있다. 자체 서버가 아니다. 다음이 운영하는 카페 서비스 위에 방 하나를 빌린 것이다.
#7세입자의 삶에는 장점이 있다. 서버비를 안 내고, 개발자를 안 쓰고, 트래픽이 터져도 내 문제가 아니다. 카페 개설 버튼 한 번이면 끝난다.
#8단점도 하나 있다. 건물주가 마음먹으면 언제든 끝난다. 이 사실이 11년 뒤에 문제가 된다.
#9여성시대의 가입 조건은 셋이다. 하나, 실명 확인된 다음 아이디. 둘, 여성.
#10셋, 만 19세 이상 40세 미만. 앞의 둘은 그렇다 치자. 문제는 셋째다.
#11인터넷 커뮤니티에 정년이 있다. 마흔한 살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명문 규정은 별로 회자되지 않는다. 다만 스물아홉에 가입한 사람이 열두 해를 활동하면 규정상 신규 가입 자격을 잃은 나이가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12동창회도 나이로 자르지 않고, 헬스장도 나이로 자르지 않는다. 나이로 자르는 곳은 보통 신체검사가 있는 조직이다.
#13그리고 실제로 여기에는 신체검사에 준하는 절차가 있다.
#14가입에 성공해도 끝이 아니다. 신규 회원은 7등급에서 시작한다. 등급이 낮으면 볼 수 있는 게시판과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된다.
#15등급을 올리려면 인증을 해야 한다. 인증 방법은 자기 얼굴과 신분증을 함께 찍어 올리는 것이다.
#16정리하면 이렇다. 게시판에서 화장품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자기 얼굴과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를 낯선 관리자에게 보낸다.
#17이 절차를 요구하는 다른 기관을 나열해 보자. 은행, 증권사, 통신사, 출입국관리소, 그리고 여성시대.
#18이 목록에서 하나만 커뮤니티다.
#193-1. 그런데 이게 작동했다
#20인터넷 서비스의 상식으로는 이건 자살 행위다. 가입 이탈률이 폭발해야 정상이다.
#21그런데 80만 명이 통과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절차 자체가 상품이었다.
#22신분증을 내고 들어온 사람들만 있는 방이라면,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확신이 생긴다. 남초 커뮤니티가 여성인 척하고 들어와 판을 흔드는 일이 구조적으로 어려워진다.
#23입장료가 비쌀수록 안이 조용해진다. 더쿠가 문을 며칠만 열어서 얻은 것을, 여성시대는 신분증으로 얻었다.
#24방식은 다르고 목적은 같다. 누가 들어오는지를 통제하면 무엇을 말하는지도 통제된다.
#25회원 80만 명은 다음 카페 전체에서도 최상위권 규모다. 카페 하나가 웬만한 독립 커뮤니티보다 크다. 게시판 서비스 위에 얹힌 방 하나가, 자체 서버를 굴리는 회사들과 규모를 겨뤘다.
#262010년대 중반, 여성시대는 국내 최대 여초 커뮤니티였다. 뷰티, 연예, 생활, 시사 정보가 이곳에서 돌았고, 여기서 나온 글이 기사가 됐다.
#27기자들이 남의 카페 게시판을 취재원으로 삼는 시대가 그렇게 시작됐다.
#28세를 들면 좋은 점만 있는 게 아니다. 카페 서비스는 카페 서비스의 문법을 강요한다. 게시판 구조를 마음대로 못 바꾸고, 디자인을 못 고치고, 앱을 따로 못 만들고, 기능을 추가하려면 다음이 만들어 주기를 기다려야 한다.
#30집을 늘리려면 건물주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건물주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31그리고 2010년대 후반, 다음 카페라는 플랫폼 자체가 늙기 시작했다. 젊은 사용자는 카페를 쓰지 않았고, 앱 경험은 개선되지 않았고, 검색은 밀렸다.
#32세입자가 아무리 잘해도 건물이 낡으면 같이 낡는다.
#332020년 4월, 여성시대 이용자들이 대거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도착지는 더쿠였다. 사흘 만에 약 11만 명이 더쿠로 들어갔다.
#34이 사건은 두 문서에서 서로 다른 이름으로 기록된다. 여성시대 쪽에서는 이탈이고, 더쿠 쪽에서는 테라포밍이다.
#35이사 가는 사람은 이사라고 부르고, 받는 동네는 개발이라고 부른다. 11년 동안 쌓인 커뮤니티가 사흘 만에 인구의 상당 부분을 잃으면 성격이 바뀐다. 남은 사람도 바뀌고, 간 사람도 새 동네에 맞춰 바뀐다.
#36커뮤니티는 서버에 저장되는 게 아니라 사람에게 저장된다. 사람이 옮기면 커뮤니티도 옮겨간다. 여성시대의 상당 부분은 지금 더쿠 안에 있다.
#37주소만 그대로 남았다.
#38여성시대는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이었다. 2015년의 대규모 분쟁을 비롯해 혐오 표현, 명예훼손,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반복해서 비판과 법적 문제가 제기됐다.
#39이 문서는 그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 성별 갈등을 소재로 웃음을 만드는 것은 이 위키가 하는 일이 아니고, 그 갈등의 당사자들이 실제로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40여기서는 이 커뮤니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커졌으며 왜 옮겨갔는지만 기록한다.
#41같은 나라에서 같은 시기에, 세 개의 커뮤니티가 입구 문제를 각각 다르게 풀었다.
#42**디시인사이드**는 문을 없앴다. 가입도 필요 없고 닉네임도 그때그때 만든다. 회원 1,100만 명을 얻고 질서를 잃었다.
#43**더쿠**는 문을 1년에 며칠만 열었다. 25만 명을 얻고 성장을 포기했다.
#44여성시대는 문에 검문소를 세웠다. 신분증을 확인하고, 성별을 확인하고, 나이를 확인했다. 80만 명을 얻고 플랫폼에 갇혔다.
#45셋 다 통했다. 그리고 셋 다 대가를 치렀다. 인터넷 커뮤니티 운영에서 확실한 것은 하나뿐이다. 입구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거의 다 결정한다.
#46문을 열면 사람이 오고 질서가 간다. 문을 잠그면 질서가 남고 사람이 안 온다.
#47중간은 없었다. 중간을 시도한 커뮤니티들은 지금 이름이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