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에 가까운 R&B 가수에서 세계적인 팝스타가 된 뒤 자신을 성공시킨 이름과 다시 씨름하게 된 Abel Tesfaye의 이야기
얼굴을 숨겼던 더 위켄드는 왜 세계적인 스타가 된 뒤 그 이름을 버리려 했을까?
#12012년 Coachella.
#2The Weeknd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큰 무대에 섰어.
#3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얼굴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가수였는데, 이제는 관객들이 그의 노래를 알고 있었고 공연장에는 자신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
#4Abel Tesfaye는 공연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어.
#5그러다 나중에 촬영된 영상을 봤어.
#6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지.
#7화면 속에는 자신이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거대한 스타가 없었어. 음악은 이미 신비롭고 위험하고 완성돼 있었는데, 그 음악을 부르는 사람은 아직 무대 위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어.
#8Abel은 댓글까지 찾아봤어.
#9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수준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인정했지.
#10그가 agent에게 한 부탁은 이상할 만큼 단순했어.
#11공연을 더 잡아달라는 거였어.
#12조금 더가 아니었어. 훗날 Abel이 회상한 숫자는 그해 약 100개였어.
#13인터넷에서는 얼굴을 숨겨 성공했던 사람이 이제는 반대로 가능한 한 자주 사람들 앞에 서려고 한 거야.
#14그런데 애초에 그는 왜 얼굴을 숨기고 있었을까?
#15그 이야기는 Toronto의 한 집에서 매트리스를 들고 나가던 십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16Abel Tesfaye는 Toronto에서 태어났어.
#17부모는 Ethiopia에서 Canada로 온 이민자였고, 부모가 일찍 헤어진 뒤 Abel은 주로 어머니와 외할머니 손에서 컸어.
#18어머니는 여러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Abel은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어. 그래서 처음 배운 언어도 영어가 아니라 Amharic이었지.
#19아버지는 거의 집에 없었어.
#20Abel은 훗날 아주 어릴 때와 열한두 살 무렵 아버지를 본 희미한 기억 정도를 이야기했어. 하지만 이 부재 하나로 훗날 그의 모든 음악이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야.
#21더 확실한 건 십대의 Abel이 학교와 점점 멀어졌다는 거야.
#22학교에서 문제가 생긴 뒤 다른 학교로 옮겼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고, 결국 친구 La Mar Taylor와 함께 그만뒀어.
#23둘은 집까지 나가기로 했어.
#24Abel이 훗날 기억한 장면이 있어.
#25매트리스를 들고 나와 친구의 van에 싣던 날이야.
#26어머니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어.
#27Abel은 그 표정을 마치 자신이 부모로서 실패했다고 느끼는 사람의 얼굴처럼 기억했지.
#28하지만 그는 떠났어.
#29친구들과 살면서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30그리고 훗날 그는 바로 그때 집을 떠난 한 번의 weekend에서 자신의 이름이 시작됐다고 설명했어.
#31The Weeknd.
#32처음부터 세계적인 pop star를 위해 만들어진 이름은 아니었어.
#33집을 나간 십대의 사건에서 나온 이름이었지.
#34집을 나온 뒤 생활은 멋진 청춘 영화와는 거리가 멀었어.
#35Abel은 친구들과 Toronto Parkdale의 작은 집에서 살았어. 그곳으로 자주 언급되는 주소가 65 Spencer Avenue야.
#36돈은 거의 없었어.
#37welfare에 기대기도 했고, 여기저기서 자기도 했고, 음식과 돈을 구하는 방식도 거칠어졌어.
#38약물도 생활 안으로 깊게 들어왔지.
#39Abel은 훗날 그 시절 drugs가 자신에게 일종의 crutch였다고 말했어.
#40그와 친구들이 밤새 벌이던 생활은 나중에 The Weeknd 음악 속 파티, 약물, 섹스, 공허함의 이미지와 닮아 있었지만, 당시에는 아직 그런 경험을 세계적인 음악으로 바꾸는 공식 같은 건 없었어.
#41음악도 곧장 잘 풀리지 않았어.
#42Abel은 여러 이름으로 작업했고, 다른 가수가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어.
#43나중에 사람들이 알게 된 The Weeknd의 소리보다 훨씬 평범한 R&B나 pop에 가까운 demo도 있었지.
#44그러다 2010년 무렵 producer Jeremy Rose와 만나 몇 곡을 함께 만들기 시작했어.
#45Rose는 훗날 자신이 Abel에게 더 어둡고 거친 R&B 방향을 제시했다고 주장했어. 반면 Abel 주변 사람들은 Rose가 The Weeknd의 sound 전체를 만든 것처럼 말하는 데 강하게 반발했지.
#46확실한 건 이 시기에 "What You Need", "Loft Music", "The Morning"으로 이어지는 초기 작업이 생겼다는 거야.
#47그리고 Rose와 갈라선 뒤 Doc McKinney, Illangelo 같은 producer들이 Abel과 함께 작업하면서 그 소리는 훨씬 선명해졌어.
#48Abel은 음악을 자꾸 느리게 만들고 싶어 했어.
#49아름답고 몽환적인 sample 위에 불편하고 차가운 이야기를 얹었지.
#50나중에 수많은 사람이 The Weeknd의 특징이라고 부르게 될 방식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었어.
#51하지만 아직 한 가지 문제가 있었어.
#52그 음악을 누가 불렀는지 아무도 몰랐다는 거야.
#532010년 말, 인터넷에 세 곡이 올라왔어.
#54"What You Need".
#55"Loft Music".
#56"The Morning".
#57가수 이름은 The Weeknd.
#58그런데 얼굴이 없었어.
#59정보도 거의 없었어.
#60사람들은 이게 한 사람인지, group인지조차 궁금해했어.
#61이런 mystery는 나중에 보면 기가 막힌 marketing strategy처럼 보여.
#62하지만 Abel 자신의 설명은 조금 달라.
#63그는 당시 사진 속 자기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어.
#64camera-shy였고, 자신의 얼굴을 내놓고 싶어 하지 않았지.
#65그래서 음악에는 자기 사진 대신 다른 이미지를 붙였어.
#66처음부터 "얼굴을 숨기면 사람들이 열광할 거야"라고 계산했다기보다, 자신을 보여주기 싫어서 시작한 선택에 가까웠어.
#67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어.
#68사람들이 오히려 더 궁금해했어.
#69누구인지 모르니까 음악을 더 들었고, 음악을 듣고 나면 다시 정체를 궁금해했지.
#70그때부터 Abel도 이 mystery가 가진 힘을 알게 됐어.
#71처음에는 insecurity 때문에 숨었는데, 그 숨는 방식이 효과가 있다는 걸 깨닫자 이번에는 의식적으로 계속 숨은 거야.
#72약점이 전략으로 변한 셈이었어.
#73그 무렵 Abel은 American Apparel에서도 일하고 있었어.
#74그리고 어느 날 매장에서 The Weeknd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일이 생겼어.
#75동료들은 노래를 들었어.
#76그런데 바로 옆에서 일하던 Abel이 그 가수라는 사실은 몰랐어.
#77온라인에서는 The Weeknd가 점점 커지고 있었지만, 오프라인의 Abel은 여전히 평범한 매장 직원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거야.
#78두 사람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았지.
#79그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어.
#80Toronto의 또 다른 음악 네트워크가 그 노래를 듣기 시작했거든.
#81The Weeknd의 초기 성공담은 흔히 이렇게 줄어들어.
#82"정체불명의 가수가 인터넷에 노래를 올렸고 Drake가 발견했다."
#83Drake가 중요했던 건 맞아.
#84하지만 그 사이에는 사람이 더 있었어.
#85오랜 친구 La Mar Taylor가 있었고, Drake와 OVO를 함께 만들던 Oliver El-Khatib가 있었어.
#86The Weeknd의 음악이 그쪽으로 흘러갔고 OVO의 blog를 통해 소개되면서 훨씬 많은 사람이 듣기 시작했지.
#87그리고 Drake가 그 음악을 공개적으로 밀었어.
#88당시 Drake는 이미 Toronto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rapper였어.
#89이 spotlight의 효과는 엄청났어.
#90하지만 The Weeknd가 Drake가 손을 내미는 순간 갑자기 만들어진 건 아니었어.
#91노래도 있었고, 이미 독특한 세계도 있었고, 친구들과 producer들이 쌓아놓은 작업도 있었어.
#92Drake는 그 모든 것 앞에 엄청나게 밝은 조명을 켜준 사람이었지.
#932011년 3월, "House of Balloons"가 무료로 공개됐어.
#94반응은 폭발적이었어.
#95그해 "Thursday", "Echoes of Silence"까지 이어졌지.
#96얼굴을 거의 보여주지 않았는데도 The Weeknd라는 이름은 빠르게 퍼졌어.
#97그리고 Abel은 Drake의 앨범 "Take Care" 작업에도 깊게 들어갔어.
#98"Crew Love", "Shot for Me", "The Ride" 같은 곡과 연결됐고, 자신이 원래 갖고 있던 material 가운데 일부를 Drake 프로젝트로 넘기기도 했어.
#99Abel은 기회가 필요했고, 그 기회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어.
#100하지만 한 가지는 하지 않았어.
#101Drake의 artist가 되지는 않았지.
#102그는 La Mar Taylor 등 자신의 오래된 사람들과 XO를 중심으로 별도의 길을 만들었어.
#103집을 함께 나갔던 친구가 몇 년 뒤에는 세계적으로 커지는 The Weeknd의 creative team 중심에 그대로 남아 있었던 거야.
#104이제 음악은 성공했어.
#105하지만 Abel 자신은 아직 한 가지를 따라잡아야 했어.
#106그래서 Coachella 영상이 중요했어.
#107The Weeknd는 이미 유명했지만 Abel은 유명한 performer가 되는 과정을 건너뛴 채 성공해버렸어.
#108전통적인 가수라면 작은 무대에서 시작해서 조금씩 큰 무대로 올라가며 관객을 다루는 법을 배울 수도 있었어.
#109The Weeknd는 인터넷에서 먼저 폭발했지.
#110음악과 mystery가 Abel보다 앞서 달려간 거야.
#1112012년 자신의 공연 영상을 본 순간 그는 그 차이를 직접 본 셈이었어.
#112그래서 공연을 피하지 않았어.
#113더 많이 잡았어.
#114춤도 배웠고, 계속 tour를 돌았어.
#115작은 club에서 시작한 사람이 점점 더 큰 극장과 arena로 올라갔지.
#116Abel은 훗날 자신이 사람들이 "저 사람은 정말 대단해질 수 있었는데"라고 기억하는 사람이 되는 걸 두려워했다고 말했어.
#117그러니까 이미 얻은 성공을 지키는 게 목표가 아니었어.
#118자신이 머릿속에서 상상한 The Weeknd의 크기까지 실제 Abel을 끌어올려야 했던 거야.
#119공연 문제는 그렇게 조금씩 해결됐어.
#120그러자 다음 벽이 나타났어.
#1212013년 첫 정규앨범 "Kiss Land"가 나왔어.
#122Billboard 200 2위.
#123숫자만 보면 실패가 아니야.
#124하지만 "House of Balloons"를 통해 새로운 R&B의 상징처럼 떠오른 사람에게 기대됐던 폭발적인 mainstream breakthrough도 아니었어.
#125Abel 자신도 나중에 당시를 꽤 솔직하게 돌아봤어.
#126이미 mixtape 세 장과 Drake 작업을 거치면서 감정적으로 소진돼 있었고, 처음 세계를 돌며 tour를 하는 중에 앨범을 만들었어.
#127writer's block도 겪었어.
#128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을 만큼 고집도 세졌지.
#129"Kiss Land"는 The Weeknd의 세계를 확장했지만 한 가지를 보여줬어.
#130독특한 음악을 만드는 것과 모든 사람이 흥얼거리는 pop song을 만드는 건 다른 기술이라는 것.
#131Abel은 다시 자신에게 부족한 걸 배울 곳을 찾아갔어.
#132이번에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pop songwriter 중 한 명에게.
#133Max Martin이었어.
#134Abel은 처음부터 underground에만 남고 싶어 했던 사람이 아니야.
#1352013년 인터뷰에서도 그는 분명히 star가 되고 싶다고 말했어.
#136그렇다면 문제는 하나였어.
#137어떻게?
#138그 기회 가운데 하나가 Ariana Grande의 "Love Me Harder"였어.
#139Abel에게 이 collaboration은 단순히 유명 가수와 duet을 하는 일이 아니었어.
#140그는 훗날 이 작업을 Max Martin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종의 ticket처럼 설명했어.
#141Max Martin은 Britney Spears, Backstreet Boys, Katy Perry 같은 대형 pop hit를 만들어온 사람이었지.
#142처음부터 둘이 완벽하게 맞은 건 아니었어.
#143Abel은 자신만의 분위기를 지키려 했고, Martin 역시 자신의 방식이 있었어.
#144부딪히면서 서로를 배웠어.
#145그리고 2015년 "Can't Feel My Face"가 나왔어.
#146처음 들으면 놀랄 만큼 밝았어.
#147Michael Jackson을 떠올리게 하는 rhythm에 chorus는 한 번만 들어도 기억났지.
#148초기 팬들에게는 The Weeknd가 갑자기 너무 pop이 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어.
#149그런데 Abel은 그 과정에서도 곡을 더 moody하고 dark하게 밀어갔어.
#150노래 내용까지 밝아진 것도 아니었지.
#151그는 자신의 어두운 세계를 버린 게 아니라, 훨씬 많은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문을 만든 거야.
#152초기 The Weeknd의 방법과 묘하게 닮아 있었어.
#153아름다운 sound 안에 불편한 이야기를 숨기는 것.
#154이번에는 그 아름다움의 규모가 세계적인 pop radio까지 커졌을 뿐이었어.
#155"Can't Feel My Face"는 미국 1위에 올랐어.
#156"Beauty Behind the Madness"는 The Weeknd를 cult R&B star가 아니라 세계적인 pop star로 바꿔놓았지.
#157그다음 "Starboy"도 거대한 hit가 됐어.
#158이제 The Weeknd는 더 이상 얼굴 없는 mystery singer가 아니었어.
#159큰 머리, 독특한 fashion, cinematic한 music video까지 하나의 이미지가 됐어.
#160사람들은 얼굴을 몰라서 궁금해하던 단계에서, 멀리서 silhouette만 봐도 누구인지 알아보는 단계로 넘어갔지.
#161그리고 2019년 말 한 곡이 나왔어.
#162"Blinding Lights".
#163처음 들으면 1980년대 pop처럼 밝고 빠르게 달려.
#164하지만 노래 속 사람은 한밤중에 외롭고,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그 사람이 없으면 제대로 볼 수도 없다고 말하고 있어.
#165The Weeknd가 오래 써온 방식이 거의 완벽한 pop song으로 압축된 셈이었어.
#166Max Martin, Oscar Holter를 비롯한 collaborators와 만든 이 곡은 radio에서 터지고, streaming에서 터지고, 여러 나라 chart에서 터졌어.
#167TikTok에서는 dance challenge까지 생겼지.
#168하지만 TikTok 하나가 이 노래를 만든 건 아니야.
#169"Blinding Lights"는 유행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어.
#170미국 Hot 100 Top 10에 57주 머물렀고, 전체 chart에는 90주 있었어.
#171Billboard가 21세기 Hot 100 성적을 집계했을 때 1위가 됐어.
#1722025년에는 Spotify에서 최초로 50억 stream을 넘어선 곡이 됐지.
#1732010년에는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던 사람이 10년 뒤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생되는 노래 가운데 하나를 부르고 있었어.
#174그리고 2021년에는 Super Bowl halftime stage에 섰어.
#1752012년 Coachella 화면 속 자신을 보며 실망했던 사람에게는 거의 믿기 힘든 거리였지.
#176그런데 바로 그다음부터 이상한 일이 시작됐어.
#177The Weeknd가 너무 커져버린 거야.
#1782022년 9월, Los Angeles의 SoFi Stadium.
#179수만 명이 The Weeknd를 보러 왔어.
#180공연이 시작됐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Abel의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어.
#181결국 그는 공연을 중단해야 했어.
#182관객 앞에서 사과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공연을 줄 수 없다고 말했지.
#183처음에는 목소리의 물리적인 문제처럼 보였어.
#184하지만 몇 년 뒤 Abel은 이 사건을 다르게 설명했어.
#185당시 그는 stadium tour를 돌면서 동시에 HBO series "The Idol" 제작에 깊게 관여하고 있었어.
#186너무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하고 있었고, 훗날 그는 그날의 voice loss를 panic attack과 연결해서 이야기했지.
#187목소리를 잃은 사건이 곧장 "The Weeknd를 그만두겠다"는 결정으로 이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
#188하지만 상징은 이상할 정도로 강했어.
#18915년 가까이 The Weeknd라는 목소리를 만들며 살아온 사람이,
#190The Weeknd로 가장 거대한 무대에 섰을 때,
#191갑자기 그 목소리를 잃은 거야.
#192그리고 그 무렵 Abel과 The Weeknd 사이의 경계도 점점 이상해지고 있었어.
#193"The Idol"은 Abel의 다음 큰 도전이었어.
#194그는 음악만 만든 게 아니야.
#195co-creator이자 executive producer였고, Tedros라는 주요 인물도 직접 연기했어.
#196하지만 제작 과정은 크게 흔들렸고, 감독이 바뀌고 상당 부분이 다시 만들어졌어.
#197공개된 뒤 평단 반응도 좋지 않았고, 작품은 한 season 뒤 끝났어.
#198당시 Abel은 작품을 강하게 방어했어.
#199하지만 2025년에 다시 돌아봤을 때는 훨씬 다른 말을 했지.
#200"The Idol"이 half-baked였다고 인정했어.
#201자신이 음악에서는 거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갔지만, television과 film은 다른 세계였어.
#202그리고 동시에 Abel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어.
#203The Weeknd라는 이름을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하나?
#204Abel에게 The Weeknd는 엄청난 일을 해줬어.
#205사진 찍히기 싫어하던 청년이 숨어 있을 수 있게 해줬고,
#206실제 자신보다 훨씬 위험하고 극단적인 character를 음악 안에서 만들 수 있게 해줬고,
#207결국 세계적인 stadium artist가 되게 해줬어.
#208Abel은 그 이름을 자신의 vehicle이라고 불렀어.
#209자신을 여기까지 데려다준 이동수단.
#210그런데 동시에 prison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고도 했어.
#211The Weeknd라는 사람에게 팬들이 기대하는 것이 생겼고,
#212그 캐릭터가 계속 유지돼야 했고,
#213실제 Abel과 public persona가 점점 뒤섞였지.
#2142023년부터 그는 The Weeknd라는 이름을 끝내는 문제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어.
#2152025년 album "Hurry Up Tomorrow"는 당시 The Weeknd 이름으로 내는 마지막 album처럼 제시됐지.
#216심지어 앨범의 마지막은 다시 아주 오래전으로 돌아가게 만들어졌어.
#2172011년 "House of Balloons"의 시작과 연결되는 구조였어.
#218마치 원을 닫는 것처럼 보였지.
#21917살에 집을 나간 weekend에서 생긴 이름이,
#22015년 가까이 세계를 돌고,
#221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끝나는 것처럼.
#222이보다 더 깔끔한 결말은 없어 보였어.
#223그런데 실제 인생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어.
#2242026년 8월.
#225Stockholm 공연에서 Abel은 관객에게 자신의 stage name 이야기를 다시 꺼냈어.
#226그는 The Weeknd retirement를 조금 시험해봤다고 했어.
#227그리고 그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했지.
#228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성공시킨 persona를 죽이고 Abel Tesfaye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 그 가능성을 가까이서 느껴보자 생각이 달라진 거야.
#229그러니까 The Weeknd의 이야기는 흔히 기대하는 식으로 끝나지 않아.
#230가면을 벗고 진짜 자신으로 돌아왔다.
#231그런 결말이 아니야.
#232처음에는 Abel이 The Weeknd 뒤에 숨었어.
#233그러다 The Weeknd가 Abel보다 커졌어.
#234너무 커져서 벗어나고 싶어졌지.
#235그런데 막상 벗으려 하자 이번에는 그 가면 없는 자신이 낯설어진 거야.
#236둘을 어디까지 분리할 수 있는지는 아직 Abel 자신도 결정하는 중인 것처럼 보여.
#237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건 인터뷰가 아니야.
#238공연 일정이야.
#2392026년 9월.
#240Japan의 Belluna Dome.
#241그리고 10월.
#242Korea의 Goyang Stadium.
#243공연 포스터에 적힌 이름은 Abel Tesfaye가 아니야.
#244여전히 The Weeknd야.
#245한때 얼굴조차 보여주기 싫었던 청년은 이제 수만 명 앞에 서.
#2462012년에는 자신의 공연 영상을 보고 "이건 내가 원하는 greatness가 아니다"라고 느껴 약 100개의 공연을 더 잡아달라고 했던 사람이야.
#247이제는 stadium에서 공연해.
#248그리고 열일곱 살 때 La Mar와 매트리스를 van에 싣고 집을 떠난 한 번의 weekend에서 시작됐던 이름도 아직 그와 함께 움직이고 있어.
#249처음에는 숨을 곳이었던 이름.
#250나중에는 세계가 알아보는 이름.
#251너무 커져서 감옥처럼 느껴졌던 이름.
#252그래서 없애려 했던 이름.
#2532026년에도 경기장 전광판에는 여전히 그 이름이 떠 있어.
#254The Weeknd.
#255Drake가 The Weeknd의 음악을 세상에 크게 알리기 전, 무명이던 Abel은 오히려 Drake에게 갈 수도 있는 곡을 만들고 있었어. 몇 년 뒤에는 자신의 곡들을 "Take Care"에 넘길 만큼 가까워졌지만, 정작 Drake의 OVO에는 들어가지 않고 XO를 만들었지. 서로의 음악에 큰 영향을 준 두 Toronto 스타의 관계는 그 뒤에도 협업과 거리감 사이를 계속 오가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