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억 달러 AI 영상 플랫폼 힉스필드를 만든 창업팀
20년 전 만난 물리 소년을 찾아, 계속 자기 자신을 갈아엎은 AI 회사
#12023년, 알렉스 마슈라보프는 함께 회사를 만들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는 처음 창업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전 회사를 약 1억6600만 달러에 매각했고, 에서 생성형 AI 조직을 이끈 경험도 있었다. 그런 그가 공동창업자를 찾기 위해 꺼낸 것은 실리콘밸리의 최신 인맥이 아니었다.
#2거의 20년 전의 기억이었다. 마슈라보프는 러시아 첼랴빈스크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이었고, 카자흐스탄과 가까운 지역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학생 올림피아드에 참가했다. 마슈라보프는 프로그래밍을 했고, 그곳에는 물리를 아주 잘하던 카자흐스탄 소년이 하나 있었다.
#3그 소년이 였다. 둘은 이후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계속 붙어 다니던 절친도 아니었다. 그런데 둘라트는 혼자 머신러닝과 프로그래밍을 파기 시작했다. 초기 오픈소스 프로젝트는 훗날 PyTorch 공동창시자로 유명해지는 의 눈에도 띄었고, 2014년 무렵에는 다른 연구자들이 그의 공개 작업을 인용하고 확장하고 있었다.
#4세월이 흘러 ChatGPT가 등장했다. 마슈라보프는 대규모 AI 시스템에서 강화학습의 중요성을 보면서 함께 회사를 만들 사람을 생각했다.
#5그리고 오래된 인연 하나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때 물리 엄청 잘하던 애가 있었는데."
#6실리콘밸리에는 공동창업자 매칭 서비스도 있고 창업자 모임도 많다. 마슈라보프는 훨씬 오래된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했다.
#7자기 기억력이다. 공동창업자 리크루팅의 리드타임이 거의 20년이었다.
#8마슈라보프가 영상 AI에 뛰어든 것은 생성형 AI 붐이 시작된 뒤가 아니다.
#9그는 Yandex를 거쳐 이미지와 영상 AI를 오래 다뤘고, 등과 를 공동창업했다. AI Factory는 얼굴과 영상을 다루는 컴퓨터 비전 기술을 만들었고 Snapchat의 Cameos 같은 기능과 연결됐다. Snap은 회사를 약 1억6600만 달러에 인수했다.
#10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전편이 하나 더 있다. 샤부로프는 그전에 얼굴 필터 스타트업 를 만들었다. 그리고 Looksery 역시 2015년 Snap에 약 1억5000만 달러에 인수됐다.
#11Looksery → Snap. AI Factory → Snap. 그리고 AI Factory의 마슈라보프 → Higgsfield.
#12힉스필드는 어느 날 AI 영상이 유행하자 갑자기 나타난 회사가 아니었다. 얼굴, 카메라, 영상, 모바일 AI를 거의 10년 동안 파온 사람들의 경험이 다음 회사로 넘어온 결과에 가까웠다.
#13AI Factory 인수 뒤 마슈라보프는 Snap에 합류했다. 그곳에서 생성형 AI를 이끌며 수억 명이 쓰는 소비자 서비스 안에서 AI가 실제 제품이 되는 과정을 경험했다.
#14연구실에서 "이 모델이 얼마나 대단한가"만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어떤 기능을 가지고 놀고, 무엇을 친구에게 보내고, 어떤 기능에는 열광하면서 어떤 기능은 무시하는지를 볼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15그리고 2023년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미 한 번 크게 성공한 사람이 다시 창업하는 것은 첫 창업과 조금 다르다. 이번에 실패하면 아무도 몰랐던 사람이 실패하는 게 아니다.
#16"전에 성공했던 사람"이 실패한다. 그는 둘라트와 함께 Higgsfield AI를 만들었다.
#17힉스필드에는 또 한 명의 공동창업자가 있다. 다. 마슈라보프는 마히를 2018년 무렵부터 알고 있었다고 회고한다. AI Factory가 Snap에 인수되는 과정에서도 도움을 받았고, 힉스필드 초기에는 조언자로 중요한 의사결정에 관여하다 결국 공동창업팀의 일원이 됐다. 현재 힉스필드와 투자사들은 마슈라보프, 둘라트, 마히를 공동창업자로 소개한다.
#18그런데 이 사람의 이력이 조금 이상하다. 마히는 1989년 Apple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인터넷과 모바일, 광고 기술의 여러 세대를 지나 VeriSign, Opera Mediaworks, Amplify.ai 같은 회사들을 경험했다.
#19마슈라보프와 둘라트가 AI 시대의 창업자라면, 마히는 PC 시대부터 기술 산업의 몇 번의 지각변동을 이미 지나온 사람이다.
#20창업팀을 게임 파티처럼 보면 대략 이렇다. 프로그래밍 올림피아드 소년이 성장한 CEO. 물리 올림피아드 소년이 성장한 CTO. 그리고 갑자기 1989년 Apple부터 시작한 사람이 한 명 들어온다.
#21한 명만 레벨 99다. 마슈라보프는 마히를 얼마나 신뢰하느냐를 설명하면서, 금성에 가서 외계 문명과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함께 데려갈 사람이라는 취지의 표현까지 썼다.
#22공동창업자 평가치고 업무 범위가 상당히 넓다. 이렇게 세 사람의 역할도 묘하게 갈렸다.
#23마슈라보프는 시장과 제품을 봤다. 둘라트는 모델과 인프라를 파면서도 제품 감각을 갖춘 기술 창업자였다. 마히는 수십 년의 사업 경험과 전략을 가져왔다.
#24그리고 2023년부터 이 팀은 약 1년을 연구개발에 쏟았다. 문제는 그렇게 열심히 만든 첫 번째 답이 정답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252024년 힉스필드가 처음 크게 내놓은 것은 라는 모바일 앱이었다.
#26사진이나 셀카를 넣으면 자신이 등장하는 AI 영상을 만들 수 있었다. 지금 보면 당시의 힉스필드는 전문 영상 제작 플랫폼보다는 재미있는 소비자용 생성형 AI 앱에 더 가까웠다.
#27제품이 완전히 망한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사용했다. 그래서 오히려 위험했다.
#28스타트업에서 아무도 안 쓰는 제품은 버리기 쉽다. 진짜 무서운 것은 애매하게 잘되는 제품이다. 몇 년 동안 "조금만 더 하면 되지 않을까?" 하며 붙잡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29그런데 팀이 전문 크리에이터들의 실제 작업 방식을 살펴보니 이상한 점이 보였다.
#30영상 만드는 사람들은 여전히 데스크톱 앞에 앉아 있었다. 힉스필드가 생각했던 모바일 중심의 경험과 실제 전문 제작자의 작업 방식 사이에 틈이 있었다.
#311년 동안 만든 제품이면 창업자에게 거의 자식 같은 존재다. 힉스필드는 자식을 버리지는 않았다.
#32다만 집안의 장남 자리에서는 내렸다. 그리고 더 열심히 만들기 전에 사람들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33힉스필드는 할리우드급 감독부터 지역 광고 제작자까지 영상 업계 사람 8명을 만났다.
#34질문은 단순했다. AI 영상에서 뭐가 가장 문제입니까? 여덟 명이 같은 종류의 답을 했다.
#35카메라 컨트롤. AI에게 "멋진 자동차 광고를 만들어줘"라고 하면 그럴듯한 영상은 나온다. 그런데 감독이 원하는 것은 그다음이다.
#36카메라가 여기서 천천히 들어가고, 인물을 따라가다가, 여기서 돌리 줌을 하고, 마지막에는 이런 구도로 끝나야 한다.
#37기존 생성 모델은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 수 있었지만 감독이 원하는 정확한 촬영 의도를 반복해서 구현하기 어려웠다. 원하는 숏 하나를 얻으려고 프롬프트를 계속 고치다 보면 인간이 AI를 훈련하는 건지 AI가 인간을 훈련하는 건지 애매해졌다.
#38힉스필드는 사용자 인터뷰 결과를 상당히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8명을 인터뷰하고 4명을 채용했다.
#39사용자 인터뷰 전환율 50%. 이쯤 되면 사용자 조사인지 채용 설명회인지 조금 애매하다.
#40하지만 이 선택이 중요했다. 모델을 만드는 ML 엔지니어 옆에 실제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앉았다.
#41한쪽은 모델 아키텍처와 추론을 이야기했다. 다른 쪽은 렌즈와 돌리와 크레인과 줌을 이야기했다.
#42그 사이에서 힉스필드의 첫 번째 강력한 답이 나왔다. 였다.
#432025년 힉스필드는 웹 기반 영상 제작 플랫폼을 본격적으로 내놓았다. Camera Controls에서는 Dolly In, Crane Up, 360 Orbit, Crash Zoom, FPV Drone 같은 영화 촬영의 움직임을 직접 선택할 수 있었다.
#44이것은 단순한 기능 추가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당시 AI 영상 경쟁의 가장 화려한 전장은 기초 모델이었다. 누가 더 사실적인 영상을 만드는가. 누가 더 긴 영상을 만드는가. 누가 더 좋은 모델을 훈련하는가.
#45OpenAI, , , 같은 회사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엔진을 만들고 있었다.
#46힉스필드는 조금 다른 질문을 했다. 좋은데, 운전대는 누가 만들지? 사용자가 원했던 것은 "Camera Controls라는 버튼을 만들어주세요"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카메라 움직임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47고객에게 정답을 물은 게 아니다. 고객에게 고통을 물었다. 정답은 회사가 만들었다.
#48둘라트는 이 과정의 기술적 중심에 있었다. 그는 모델과 훈련 인프라뿐 아니라 제품 감각까지 갖춘 공동창업자로 평가받았고, Camera Controls와 이후의 제작 기능들을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49그렇게 힉스필드는 "가장 좋은 AI 모델을 가진 회사"와는 조금 다른 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50그런데 Camera Controls가 답인 줄 알았더니 또 다른 곳에서 숫자가 터졌다.
#51힉스필드는 쉽게 사용할 수 있는 Visual Effects도 내놓았다. 카메라가 우주에서 지상으로 날아들고, 인물의 눈으로 빨려 들어가고, 옷과 장면이 순식간에 변하는 식의 효과를 일반 크리에이터도 만들 수 있게 했다.
#52이 기능들은 Instagram과 TikTok 같은 소셜 플랫폼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윌 스미스, 마돈나 같은 유명 인물과 관련 계정들이 힉스필드로 만든 콘텐츠를 공개하면서 제품의 존재감도 커졌다.
#53여기서 마슈라보프의 Snap 시절이 복선처럼 돌아온다. 그는 Snap을 떠났다. 하지만 사람들이 기술적으로 가장 복잡한 기능보다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기능에 반응한다는 경험까지 버린 것은 아니었다.
#54AI 연구자들은 모델의 성능을 비교한다. 일반 사용자의 평가 방식은 조금 다르다.
#55"와 이거 봐ㅋㅋ" 때로는 이 네 글자가 훨씬 강력한 성장 지표다. 웹 제품 출시 뒤 힉스필드의 매출 흐름은 빠르게 올라갔다. 초기에는 불과 몇 주 만에 연환산 매출 1000만 달러 수준에 도달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56그런데 사용자 행동을 들여다보니 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영상 한 개를 만들고 끝내지 않았다.
#57광고 한 편을 통째로 만들기 시작했다.
#58힉스필드는 다시 방향을 틀었다. AI로 재미있는 짧은 영상을 만드는 것에서, 전문 크리에이터의 제작 도구로, 다시 광고와 마케팅의 전체 제작 과정으로 영역을 넓혔다.
#59그리고 예상 밖의 고객들이 돈을 쓰기 시작했다.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였다.
#60생성형 AI가 처음 등장했을 때 광고 제작사와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는 자동화에 가장 먼저 위협받을 직업군처럼 이야기되곤 했다.
#61그런데 현실에서는 그 사람들이 AI를 집어 들었다. 멸종 예정 공룡이 AI를 타고 출근하기 시작한 셈이다.
#622026년에는 이 변화가 더 선명해졌다. 힉스필드는 개인 크리에이터용 영상 생성기를 넘어 기업용 콘텐츠 제작 플랫폼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2026년 8월 회사는 Fortune 500 기업 가운데 390곳이 자사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63기업 고객의 비중도 크게 올라갔다. 그리고 를 내놓았다.
#64이제 질문은 "영상 하나 만들어줘"에서 끝나지 않는다. 브랜드와 제품을 이해하고, 광고 아이디어를 만들고, 필요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작업 전체로 AI의 범위를 넓히기 시작했다.
#65영상 생성기가 광고 제작 시스템으로 변하고 있었다.
#66힉스필드는 영화 제작 쪽도 놓지 않았다. 에서는 단순한 텍스트-투-비디오를 넘어 카메라, 렌즈, 초점거리, 캐릭터, 색보정, 샷 구성 등을 하나의 제작 환경 안에서 다루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67회사가 밝힌 제작 과정에는 실제 영화 업계 출신 인력들이 깊게 참여한다. Cinema Studio 역시 출시 후 몇 달 사이 여러 차례 버전이 바뀌었다.
#68Camera Controls에서 시작한 아이디어가 점점 "AI에게 영상 하나를 뽑아달라고 하는 것"에서 "AI와 함께 영화를 연출하는 것"으로 확장된 것이다.
#692026년에는 After Effects와 DaVinci Resolve를 사용하는 기존 제작자의 워크플로 안으로 들어가는 시도도 이어졌다.
#70처음에는 영상 제작자를 힉스필드로 데려오려고 했다. 이제는 힉스필드가 영상 제작자의 작업실로 들어가고 있다.
#71AI 영화와 창작자 생태계에도 투자하기 시작했다. 힉스필드 기술을 활용한 작품들이 영화 행사에서 상영됐고, 회사는 총상금 100만 달러 규모의 글로벌 AI 영화제도 발표했다.
#72한국과의 접점도 커졌다. 한국의 디지털 에이전시가 힉스필드를 실제 제작 과정에 활용하는 사례가 공개됐고, 한국과 일본은 회사가 중요하게 보는 아시아 시장으로 떠올랐다.
#73처음에는 셀카로 재미있는 영상을 만드는 모바일 앱이었다. 그다음에는 Camera Controls였다. 그다음에는 Visual Effects였다. Cinema Studio가 생겼다. Marketing Studio가 생겼다. 기존 영상 편집 워크플로 안으로도 들어갔다.
#74이 회사는 정말 제품 이름을 외우는 동안 사업의 경계가 바뀐다.
#75그리고 성장 숫자는 점점 현실감을 잃었다. 2025년 웹 제품을 본격적으로 내놓은 뒤 초기 연환산 매출은 빠르게 1000만 달러 수준으로 올라갔다.
#762025년 말에는 회사가 약 2억 달러의 연환산 매출 수준을 발표했다. 2026년 1월에는 Series A와 확장 라운드를 합쳐 1억3000만 달러를 조달했고 기업가치가 13억 달러에 도달했다.
#77그런데 불과 몇 달 뒤 그 숫자마저 옛날 이야기가 됐다. 2026년 8월 힉스필드는 이 주도하고 Goldman Sachs Alternatives, Intel Capital, Tribe Capital, 미래에셋캐피탈 등을 포함한 투자자들이 참여한 4억 달러 규모의 Series B를 발표했다.
#78기업가치는 54억 달러. 회사가 발표한 연환산 매출은 약 7억 달러. 사용자는 3000만 명 이상, 이용 지역은 238개 국가와 지역에 걸쳐 있다고 밝혔다.
#79약 1년 전 연환산 매출 약 2000만 달러 수준에서 약 7억 달러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80숫자만 보면 스타트업 성장 그래프라기보다 엑셀에서 단위를 잘못 입력한 것처럼 보인다.
#81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 7억 달러는 지난 1년 동안 실제로 회계상 확정된 매출 7억 달러라는 뜻이 아니다. 당시의 매출 흐름을 1년으로 환산한 annualized revenue다.
#82그래도 성장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르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83여기서 더 이상한 선택이 나온다. AI 영상 회사라면 보통 최고의 자체 영상 모델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처럼 보인다.
#84힉스필드는 점점 그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OpenAI의 Sora를 비롯해 여러 회사의 생성 모델을 제품 안에서 활용하고, 작업에 따라 적합한 모델을 연결하는 방향을 택했다. OpenAI와의 공개 사례에서는 GPT 계열 모델을 기획과 추론에 활용하고 Sora를 영상 생성에 사용하는 구조도 소개됐다.
#85둘라트 역시 핵심은 무조건 하나의 "최고 모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에 맞는 모델을 고르는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86여기에 힉스필드 자체의 카메라 제어, 제작 인터페이스, 후처리, 크리에이터 워크플로가 올라간다.
#87모두가 F1 엔진을 만들겠다고 싸우고 있을 때 운전대를 만들었던 회사가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간 셈이다.
#88Ferrari 엔진도 가져오고 Porsche 엔진도 가져올 수 있다면, 아예 자동차 전체를 만들겠다는 쪽이다.
#89물론 이 전략에는 위험도 있다. "결국 다른 회사 AI 모델을 예쁘게 묶어놓은 래퍼 아닌가?"
#90힉스필드가 앞으로 계속 받아야 할 질문이다. OpenAI나 Google 같은 기초 모델 회사가 영상 제작 인터페이스와 워크플로까지 직접 장악한다면 힉스필드의 자리가 좁아질 수도 있다. 반대로 모델들이 빠르게 교체될수록 특정 모델에 묶이지 않고 사용자가 실제 일을 끝내는 층을 장악한 회사가 더 강해질 수도 있다.
#91아직 승부는 나지 않았다.
#92여기까지 오면 처음보다 이 질문에 답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AI 영상 모델 회사라고 하기에는 다른 회사의 모델을 너무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93AI 영상 생성기라고 하기에는 영화와 광고 제작 과정 전체를 건드린다. 크리에이터 앱이라고 하기에는 기업 고객이 빠르게 커지고 Fortune 500 기업들이 들어와 있다.
#94영상 편집 프로그램이라고 하기에는 생성 모델과 AI 에이전트 쪽으로 너무 깊게 들어간다.
#95힉스필드는 이제 AI가 트렌드를 이해하고, 무엇을 만들지 판단하고, 콘텐츠를 제작하고, 마케팅 작업을 이어가는 agentic workflow까지 바라보고 있다.
#96그런데 이 혼란스러운 변화들을 처음부터 다시 보면 공통점 하나가 보인다.
#97모바일이 답이 아니었다. 바꿨다. 영상 제작자들이 카메라를 통제하지 못했다.
#98바꿨다. Visual Effects가 퍼졌다. 밀어붙였다. 사용자들이 클립 대신 광고 전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99또 바꿨다. 기업 고객이 들어왔다. 또 바꿨다. 힉스필드가 무엇을 만드는 회사냐고 물을 때마다 답이 달라지는 이유다.
#100어쩌면 이 회사가 지금까지 가장 잘 만든 것은 AI 영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101자기 자신의 다음 버전일지도 모른다.
#102그렇게 보면 힉스필드의 세 공동창업자도 다시 보인다. 마슈라보프가 두 번째 창업을 하며 가장 중요한 자리에 앉힌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103둘라트는 어린 시절 올림피아드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마히는 이전 회사 시절부터 중요한 순간을 함께했던 사람이었다.
#104새로운 회사를 만들면서 과거의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특히 둘라트의 이야기는 묘하다.
#105어린 시절에는 두 사람 모두 몰랐을 것이다. 프로그래밍 문제를 풀던 소년과 물리 문제를 풀던 소년이 잠깐 같은 대회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거의 20년 뒤 다시 중요해질 것이라고.
#106한 사람은 영상 AI 회사를 만들고 Snap으로 갔다. 다른 한 사람은 오랫동안 머신러닝과 강화학습을 파고들었다.
#107그리고 세상이 생성형 AI 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때 두 경력이 다시 만났다.
#108어떤 경력은 올라가는 동안 성공처럼 보인다. 어떤 경력은 오랫동안 옆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다가 세상이 방향을 바꾸는 순간 갑자기 앞쪽에 서게 된다.
#109둘라트에게는 그런 시간이 있었다. 2026년에는 그 연결이 또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힉스필드는 교육·비영리 영역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발표했고, 둘라트 역시 중앙아시아 농촌 학교들을 대상으로 한 STEM 프로그램을 이끄는 계획에 참여하고 있다.
#110한때 카자흐스탄의 물리 올림피아드 학생이었던 사람이 AI 회사의 CTO가 되어 다시 중앙아시아의 학생들과 연결되는 셈이다.
#111힉스필드에는 수많은 AI 모델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회사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던 자산이 하나 있었다.
#112한 사람이 오래전에 만난 다른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
#113이제 힉스필드의 상대는 훨씬 크다. OpenAI가 있다. Google이 있다. Runway가 있다. Kling이 있다.
#114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영상 생성 모델을 만들려고 한다. 힉스필드는 그 모델들까지 가져다가 크리에이터와 기업이 실제 작업을 끝내는 가장 좋은 장소가 되려고 한다.
#115그래서 힉스필드의 다음 장은 아직 성공담이라고 부르기 이르다. 54억 달러라는 기업가치도, 7억 달러라는 연환산 매출도, 3000만 명이라는 사용자도 현재까지의 숫자일 뿐이다.
#116이 회사는 첫 제품조차 오래 붙잡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의 힉스필드 역시 몇 년 뒤에는 또 다른 회사처럼 보일 수 있다.
#117그리고 그때 AI 산업 전체에도 같은 질문의 답이 조금은 나와 있을 것이다.
#118AI 시대의 승자는 최고의 엔진을 만드는 회사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잡는 운전대를 만드는 회사일까.
#119아직 답은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