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을 만든 카카오 창업자이자 AI 시대의 그룹 재편을 이끄는 기업가
두 번 다음 시대를 맞힌 남자에게 세 번째 시대가 왔다
#1카카오를 만든 김범수의 첫 번째 사업은 메신저도, 포털도, 게임회사도 아니었다. PC방이었다.
#21998년 서울 한양대 앞. 외환위기의 한복판에서 김범수는 대형 PC방 '미션 넘버원'을 열었다. 훗날 한국인의 연락, 송금, 택시 호출, 쇼핑과 선물까지 파고들 회사를 만드는 사람의 출발점치고는 상당히 한국적이었다.
#3미국 IT 신화에는 차고가 자주 등장한다. 한국 버전은 조금 달랐다. PC방이었다.
#4그것도 스타크래프트를 잘하는 여성 아르바이트생이 있다는 소문까지 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던 PC방이었다. 개업 반년 만에 약 5천만원을 벌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더 재미있는 건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던 일이다.
#5개발자 은 손님들의 이용시간과 요금을 관리하는 PC방 정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은 그 프로그램을 들고 전국 PC방을 돌아다니며 영업했다. 훗날 한국 인터넷과 게임 산업의 중요한 인물들이 당시 해결하던 문제를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이런 것이었다. "3번 컴퓨터 손님 몇 시간 했지?"
#6그리고 이 작은 문제를 해결하던 사람들이 곧 훨씬 큰 문제를 풀기 시작한다. 인터넷으로 사람들이 함께 게임하게 만들 수 없을까? 그 질문에서 이 나온다.
#7그런데 김범수는 애초에 PC방 사장이 될 사람이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직원이었다.
#8김범수의 부모는 전남 담양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아버지는 공장에서 일했고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어린 김범수를 포함한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서 함께 생활하던 시기도 있었다.
#9공부 역시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재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에 들어갔고 대학에서는 과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했다. 대학원에서는 컴퓨터와 통신 분야를 접했고 1992년 삼성SDS에 입사했다.
#10그리고 그해 입사 동기 가운데 한 사람이 있었다. 이해진. 지금은 이름만 기억해두면 된다. 조금 뒤 다시 나온다.
#11삼성SDS에서 김범수는 PC통신 관련 업무를 경험했다. 사람들이 컴퓨터를 통해 연결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그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판에 뛰어들기로 했다. 안정적인 대기업을 나와 선택한 것이 바로 한양대 앞 PC방이었다.
#12잘되는 PC방은 아내에게 운영을 맡기고 김범수는 동료들과 더 위험한 쪽으로 이동했다. 1998년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을 세웠다.
#13한게임이 노린 것은 기발해서 설명하기 어려운 게임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14고스톱. 포커. 바둑. 장기. 사람들이 이미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는 게임을 인터넷으로 옮겼다. 전략은 먹혔다. 1999년 말 서비스를 시작한 한게임은 불과 몇 달 만에 가입자 100만 명을 끌어모았다.
#15그런데 인터넷 사업에는 이상한 법칙이 있었다. 사람이 많이 오면 기쁘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이 오면 돈이 든다. 서버와 인프라 비용은 계속 늘었다.
#16김범수는 유료화를 밀어붙였다. 당시 인터넷 서비스는 무료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위험한 결정이었다. 내부에서도 우려가 있었지만 한게임은 유료화에 성공했고 강력한 수익원을 확보했다. 바로 그때 아까 잠깐 등장했던 삼성SDS 입사 동기가 돌아온다. 이해진에게는 가 있었다.
#17한쪽에는 검색이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게임이 있었다. 2000년 네이버컴과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이 합병했고 이후 이라는 회사가 만들어졌다.
#18지금 생각하면 조합이 묘하다. 누군가는 인터넷에서 지식을 찾았다. 누군가는 인터넷에서 고스톱을 쳤다. 회사 입장에서는 둘 다 소중했다.
#19한게임의 수익성은 초기 NHN의 중요한 성장 동력이 됐고 네이버는 검색에 투자하며 한국 인터넷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여기서 더 기묘한 사실이 하나 생긴다. 1992년 삼성SDS에 함께 들어왔던 두 신입사원이 훗날 한국 인터넷의 양대 축을 만드는 인물이 된다. 김범수와 이해진.
#20지금 돌아보면 당시 삼성SDS 인사팀은 자신들도 모르게 한국 인터넷 국가대표 드래프트에서 엄청난 두 명을 같은 해 뽑아놓은 셈이다. 문제는 둘 다 결국 회사를 나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범수도 NHN을 떠난다.
#21보통 창업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도 된다. 대기업 퇴사. 창업. 대박. 합병. 상장. 대형 인터넷 기업의 대표.
#22엔딩 크레딧을 올리기에 부족한 것이 없다. 그런데 김범수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극장을 나갔다. NHN 대표를 거친 그는 회사를 떠나 다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2006년 설립한 이었다.
#23사람들은 아마 기대했을 것이다. 한게임을 만든 사람이니 이번에도 뭔가 엄청난 것이 나오겠지. 나왔다. 그런데 사람들이 별로 안 왔다.
#24콘텐츠 공유 서비스 부루닷컴을 시도했다. 잘되지 않았다. 집단지성 서비스 위지아닷컴도 만들었다. 이 역시 기대만큼 자리 잡지 못했다.
#25결과만 놓고 보면 김범수의 인생은 한게임에서 카카오톡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천재 창업자의 연속 홈런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그 사이에 몇 년 동안 다음 답을 찾지 못하던 시간이 있었다.
#26첫 번째 성공 전에는 자신이 성공할 수 있을지 몰랐다. 첫 번째 성공 뒤에는 오히려 더 불편한 질문이 가능해졌다. 한게임은 실력이었을까, 한 번의 행운이었을까?
#27김범수가 실제로 이 질문을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두 번째 성공을 기다리던 그의 상황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했다.
#28그리고 그때 작은 기계 하나가 등장했다. 이었다.
#29김범수는 PC 인터넷의 등장을 이미 한 번 경험했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보자 인터넷의 중심이 다시 이동하고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
#30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에 접속하는 시대에서, 사람이 인터넷을 들고 다니는 시대. 아이위랩은 모바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31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카카오톡은 김범수 한 사람이 어느 날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려 혼자 만든 발명품이 아니다. 을 비롯한 초기 아이위랩 구성원들이 제품을 기획하고 개발하며 함께 만들어낸 결과였다.
#322010년 3월 18일. 카카오톡이 출시됐다. 지금 보면 기능은 놀라울 정도로 평범해 보인다. 메시지를 보낸다. 사진을 보낸다. 여러 사람이 함께 이야기한다.
#33하지만 당시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돈을 내던 시대였다.
#34"어디야?" "가는 중." "몇 분?" "5분."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대화다. 당시에는 네 문장을 보내는 데 돈이 들었다. 심지어 "ㅇㅇ"에도 돈을 냈다. 인류가 긍정을 표현하는 데 통신비가 필요했던 시대다.
#35카카오톡은 데이터 연결만 있으면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전화번호부를 이용해 친구를 연결했고 여러 명이 동시에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이 몰렸다. 출시 약 1년 만에 가입자가 1천만 명을 넘어섰다. 김범수에게 두 번째 홈런이 나왔다.
#36그런데 카카오에는 이상한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이 너무 좋아했다.
#37가입자가 늘어난다. 좋다. 메시지가 늘어난다. 서버도 늘려야 한다. 안 좋다.
#38가입자가 또 늘어난다. 언론에서는 대박이라고 한다. 회사에서는 서버 비용을 계산한다.
#39카카오톡은 무료였다. 즉, 사람들이 열심히 쓸수록 카카오가 자동으로 부자가 되는 구조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용량이 폭발하면서 비용부터 따라왔다.
#40한게임에서는 유료화로 문제를 풀었던 김범수가 이번에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메신저 자체에서 돈을 받기보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 위에 사업을 올리는 것이었다.
#41선물하기가 붙었다. 광고가 붙었다. 그리고 중요한 수익모델 하나가 등장했다. 게임. 김범수의 첫 번째 성공을 만들어준 바로 그것이다. 한게임으로 한 번 나타났던 게임이 카카오톡의 수익화에서도 다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42사업사를 의인화한다면 이쯤에서 게임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하는 것 같다. "형, 또 나야."
#432012년 카카오톡 게임하기가 등장하면서 모바일게임은 카카오톡의 사회적 연결망을 타고 폭발적으로 퍼졌다. 게임 개발사들은 엄청난 이용자를 만났고 카카오는 중요한 수익원을 확보했다. 메신저가 플랫폼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44카카오의 확장은 빨랐다. 친구에게 연락한다. 카카오. 선물을 보낸다. 카카오.
#45돈을 보낸다. 카카오. 택시를 부른다. 카카오. 웹툰을 본다. 카카오. 은행 업무를 한다. 또 카카오.
#46이쯤 되면 한국인의 스마트폰에서 카카오는 앱 하나라기보다 디지털 건물의 집주인에 가까워졌다. 2014년에는 과 합병했다.
#47이 사건을 한국 인터넷의 긴 역사 위에 놓으면 상당히 묘하다. 김범수는 한때 이해진의 네이버와 같은 회사에 있었다. 그 회사를 떠나 카카오를 만들었다. 그리고 카카오는 나중에 네이버의 오랜 포털 라이벌이었던 다음과 합쳤다. 한국 인터넷사는 가끔 기업사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장편 드라마처럼 보인다.
#48한편 오래전 PC방에서 함께 뛰던 사람들도 다시 나타났다. 전국 PC방을 돌며 프로그램을 팔던 남궁훈은 훗날 카카오게임즈를 이끌고 회사를 상장시켰다. PC방 정산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문태식은 스크린골프 회사 마음골프를 창업했고, 그 회사는 카카오게임즈에 인수돼 카카오VX로 이어졌다.
#491998년: 김범수 — PC방. 문태식 — PC방 프로그램 개발. 남궁훈 — 전국 PC방 영업.
#5020여 년 뒤: 김범수 — 카카오 창업자. 남궁훈 — 카카오게임즈 대표를 거쳐 카카오 대표. 문태식 — 카카오VX로 다시 연결.
#51PC방 파티가 20년 넘게 완전히 해산하지 않은 셈이었다. 그런데 회사가 계속 커지자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52처음 김범수의 고민은 간단했다. 어떻게 살아남을까. 그런데 카카오가 거대해진 뒤에는 질문이 정반대가 됐다. 어디까지 커져도 되는가.
#53게임, 금융, 모빌리티, 콘텐츠, 커머스 등으로 카카오의 사업 영역이 넓어지고 계열사가 급증하면서 '문어발 확장', 골목상권 침해, 플랫폼 독점과 지배구조 문제가 사회적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카카오는 더 이상 작은 스타트업이 아니었다. 혁신을 외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한국인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만큼 그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플랫폼의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 설명해야 하는 회사가 됐다.
#54그러던 2022년 10월 15일. 그 책임의 크기를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확인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55SK C&C 판교 데이터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카카오의 여러 서비스가 대규모 장애를 일으켰다. 카카오톡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카카오 계정과 연결된 서비스들이 영향을 받았고 택시 호출, 결제 등 일상에 들어와 있던 여러 기능에서도 불편이 이어졌다.
#56그동안 사람들은 농담처럼 말할 수 있었다. "카카오 없으면 한국에서 아무것도 못 하는 거 아니야?" 2022년 10월 15일, 그 농담을 실제로 시험하는 날이 찾아왔다.
#57그리고 역설적으로 카카오의 성공 규모는 카카오가 멈췄을 때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1998년 김범수의 사업장에서 컴퓨터 몇 대가 멈추면 PC방 손님 몇 명이 불편했다. 24년 뒤, 그가 만든 서비스가 멈추자 수천만 명의 일상이 영향을 받았다.
#58카카오는 이후 자체 데이터센터 구축과 재난 대응 및 인프라 이중화 강화에 나섰다. 하지만 김범수에게 찾아올 가장 큰 위기는 아직 남아 있었다.
#59김범수는 한동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지만 카카오를 둘러싼 위기가 이어지자 다시 쇄신 작업에 관여했다. 2023년 말 경영쇄신위원장을 맡았고, 이후 와 함께 그룹의 방향을 다시 설계하는 역할을 맡았다.
#60카카오 특유의 계열사 자율경영은 빠른 확장의 동력이었지만 회사가 거대해진 뒤에는 통제와 책임의 문제가 됐다. 카카오는 계열사를 줄이고 의사결정 체계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61회사를 만드는 것과 거대해진 회사를 고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김범수에게는 처음 겪는 종류의 시험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인수를 둘러싼 사건이 터졌다.
#622023년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을 둘러싸고 카카오와 가 경쟁했다. 검찰은 카카오 측이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SM 주가를 공개매수가인 12만원보다 높게 유지하려 했다고 판단했고, 김범수가 이 과정에 관여했다고 보고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수사했다. 김범수 측은 혐의를 부인했다. 그리고 2024년 7월 김범수가 구속됐다.
#631998년 김범수는 삼성SDS를 떠나 자신의 첫 사업장 문을 열었다. 한양대 앞 PC방이었다. 26년 뒤 그는 또 다른 문을 통과했다. 이번에는 구치소였다.
#64단칸방에서 자라 서울대에 들어가고, 삼성에 입사하고, PC방을 차리고, 한게임과 NHN을 만들고, 카카오톡으로 다시 성공해 한국을 대표하는 창업자가 된 사람에게 찾아온 커리어 최대의 위기였다. 다만 여기서 이야기를 '몰락'이라고 끝내면 사실과도 맞지 않고 이후의 전개도 놓치게 된다.
#65김범수는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다가 보석으로 석방됐다. 그리고 2025년 10월 21일 1심 법원은 김범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카카오 측의 장내매수가 주가에 영향을 줬다는 사실만으로 시세조종이라고 볼 수 없고, 정상적인 시장가격보다 높은 수준으로 주가를 고정하려는 목적이나 시세조종 공모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66검찰은 이 판단에 불복해 항소했다. 2026년 3월 항소심 절차가 시작됐고, 6월에는 첫 정식 공판이 열렸다. 검찰은 1심이 주요 증거에 대한 판단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하이브 의장 등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김범수 측은 공개매수 저지를 위한 시세조종이라는 검찰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따라서 2026년 8월 현재 이 사건의 결론은 아직 나지 않았다.
#671심 무죄. 항소심 진행 중. 여기까지가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정확한 위치다. 그런데 법정 밖에서는 이미 다음 이야기가 시작됐다.
#68김범수의 인생에는 또 하나의 묘한 대칭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여덟 식구가 한 방에서 생활할 정도로 돈이 부족했다. 수십 년 뒤 그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자산가가 됐다. 그리고 2021년 자신의 재산 절반 이상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부호들의 기부 서약인 에도 참여했고, 사회문제 해결을 지원하는 을 설립했다.
#69여기서 그의 어린 시절과 기부 사이에 단순한 인과관계를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 다만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이동한 거리는 놀랍다. 여덟 식구의 단칸방에서 재산 절반 이상을 사회에 내놓겠다고 약속할 수 있는 위치까지.
#70그런데 김범수가 얻은 것은 부만이 아니었다. 그 부를 만들어낸 회사의 무게도 함께 커졌다.
#71카카오가 작았을 때는 실패하면 회사가 사라질 수 있었다. 카카오가 너무 커진 뒤에는 실패하면 다른 사람들의 일상까지 흔들릴 수 있었다. 성공의 크기만큼 책임의 크기도 달라진 것이다.
#72화재. 플랫폼 논란. 경영 쇄신. SM 사건. 창업자의 구속과 재판. 여기까지만 보면 카카오의 이야기가 긴 쇠퇴기에 접어든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숫자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73카카오는 2025년 연간 매출 8조원을 처음 넘어섰고 영업이익도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26년 2분기에는 연결 매출 2조985억원, 영업이익 2,77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분기 기준 역대 최대였다. 모빌리티와 페이 등 플랫폼 사업도 성장했고 카카오톡 기반 광고·커머스 역시 여전히 거대한 사업이다.
#74즉 카카오는 망해가는 회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고민하는 단계가 아니다. 오히려 더 어려운 질문 앞에 있다. 이미 거대한 회사를 다음 시대에 맞게 어떻게 다시 뜯어고칠 것인가. 그리고 2026년 8월 21일 카카오는 정말 회사를 뜯어고치겠다고 발표했다.
#75카카오는 회사를 두 개로 인적분할하기로 결의했다.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AI·광고·커머스를 연결하는 . 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카카오엔터테인먼트·카카오모빌리티 등 주요 계열사와 미래 투자를 맡는 . 카카오가 스스로 표현한 방식으로는 '두 개의 엔진'이다.
#76아직 완료된 분할은 아니다. 2026년 12월 임시주주총회 등을 거쳐 계획대로라면 2027년 1월 분할을 완료하는 일정이다.
#77김범수는 현재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6년 1월에는 신입사원 교육 현장을 찾아 AI 시대에는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아이디어를 직접 구현해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인적분할 발표 때는 AI 시대가 이전과 다른 수준의 민첩성을 요구한다며 두 회사로 성장 구조를 다시 설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78이 장면을 보면 김범수의 인생에서 이상할 정도로 반복되는 패턴 하나가 다시 보인다. 그는 이미 만들어놓은 판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79삼성SDS라는 안정적인 판을 떠나 PC방으로 갔다. PC방이 잘되자 한게임으로 갔다. 한게임이 성공하자 네이버와 합쳤다. NHN이 성공하자 다시 나왔다. 새 사업들이 실패하자 모바일로 방향을 틀었다. 카카오톡이 성공하자 메신저를 플랫폼으로 바꿨다. 플랫폼이 너무 거대해지자 계열사를 줄이고 구조를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카카오 자체를 둘로 나누려 한다.
#80이 성향은 두 번의 엄청난 성공을 만들었다. 동시에 거대한 확장이 낳은 문제 역시 김범수가 만든 카카오의 역사에 남아 있다. 그래서 이번 선택의 결과도 아직은 알 수 없다.
#81김범수의 인생을 아주 멀리서 보면 기술의 세 시대가 보인다. PC 인터넷이 열렸을 때, 그는 한게임을 만들었다. 스마트폰이 등장했을 때, 카카오톡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AI가 인터넷의 다음 판을 흔들고 있다.
#82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삼성SDS를 박차고 나온 젊은 직장인도 아니다. 새 서비스를 만들 때마다 실패하던 작은 스타트업 대표도 아니다. 이미 수천만 명의 일상에 들어간 서비스를 가진 거대한 기업의 창업자다.
#83첫 번째 성공에서는 살아남는 것이 문제였다. 두 번째 성공에서는 성장하는 것이 문제였다. 세 번째 시대에는 어쩌면 너무 크게 성공한 것을 어떻게 다시 움직이게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됐다.
#84PC방에서 시작해 한게임을 만들고, 한게임에서 이해진을 만나 NHN을 만들고, 그곳을 떠나 몇 년을 실패한 끝에 카카오톡을 만들고, 카카오톡이 너무 성공해서 한국 사회의 인프라처럼 되어버리고, 그 성공 때문에 플랫폼의 책임과 경영 문제를 떠안고, 구속과 재판까지 겪은 뒤, 다시 회사를 둘로 나누며 AI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85두 번이나 다음 시대를 맞힌 사람에게 세 번째 시대가 왔다. 이번에도 맞힐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86그런데 김범수의 이야기를 여기까지 따라오고 나면 처음에 잠깐 등장했던 한 사람이 다시 이상하게 눈에 밟힌다. 1992년 삼성SDS에 함께 입사했다. 한때는 김범수와 같은 회사를 운영했다. 그러다 둘은 갈라졌다.
#87한 사람은 카카오를 만들었고, 다른 한 사람은 네이버를 이끌었다. 김범수가 PC 인터넷과 모바일 인터넷을 건너 이제 AI 앞에 서 있는 동안, 그 사람도 정확히 같은 세 번의 기술 변화를 건너왔다.
#88이해진. 그의 자리에서는 이 모든 시대가 어떻게 보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