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를 창업하고 AI 대전환기에 이사회 의장으로 돌아온 이해진
인터넷의 입구가 바뀔 때마다 다시 시작한 사람
#11995년, 삼성에서는 인터넷 프로젝트 하나를 접으려 하고 있었다. 프로젝트를 맡고 있던 이해진은 삼성전자 본사 기획실까지 찾아갔다. 자신을 삼성SDS 이해진 과장이라고 소개하고 담당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2프로젝트가 없어지면 팀원들과 함께 회사를 나가겠다는 취지로 버텼다고 전해진다. 당시 거대한 삼성 조직에서 인터넷은 아직 회사의 운명을 걸 만큼 확실한 사업이 아니었다.
#3결과를 알고 보면 상당히 비싼 삭제 버튼이었다. 삼성이 접으려던 프로젝트에서 몇 년 뒤 네이버가 나왔기 때문이다.
#4이해진의 팀은 살아남았다. '웹글라이더'라는 이름으로 개발을 이어갔고, 1997년 삼성SDS가 사내벤처 제도를 도입하자 사내벤처 1호로 선정됐다.
#5그런데 이 이야기는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해진은 어린 시절 백과사전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무엇인가 궁금하면 책을 펼쳐 답을 찾았다. 이 경험 하나가 훗날 네이버를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가 오랫동안 붙잡게 될 문제와는 묘하게 닮아 있었다.
#6사람이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답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 질문은 이후 그의 인생에서 계속 모습을 바꿔 돌아온다.
#71967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해진은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들어갔고 KAIST에서 전산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1992년 에 입사했다.
#8그런데 이 시절 주변 인물들의 이름을 펼쳐놓으면 조금 이상해진다. 서울대 86학번과 그 주변에는 훗날 한국 인터넷과 게임 산업을 뒤흔들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9김범수는 이해진과 서울대 86학번 동기였고 삼성SDS 입사 동기이기도 했다. 는 KAIST 시절 이해진과 기숙사 방을 함께 쓴 사이로 알려져 있는데, 훗날 을 만들었다.
#10은 한국 온라인게임사의 핵심 개발자가 되어 "바람의나라"와 의 역사에 등장한다. 은 을 창업해 네이버보다 먼저 한국 인터넷의 강자로 올라선다.
#11모두가 한 반 친구였던 것도 아니고 관계의 정도도 서로 달랐다. 그래도 한국 IT 산업의 초기 등장인물들이 서울대와 KAIST, 삼성SDS라는 좁은 공간에서 계속 마주친 것은 꽤 놀라운 일이다.
#12한국 IT 산업의 캐릭터 생성기가 1986년쯤 잠깐 확률 설정을 잘못한 것 같다.
#13이해진이 그 가운데 붙잡은 문제는 검색이었다. 그는 삼성SDS에 다니면서 업무시간의 일부를 미래 기술을 공부하는 데 쓰는 자신만의 원칙을 두었고, 인터넷이 커질수록 정보검색 기술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14당시는 이 세계를 지배하기 전이었다. 인터넷 자체가 이제 막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15그때 이해진은 인터넷에 정보가 많아지면 결국 다른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봤다.
#16정보가 너무 많아졌을 때, 원하는 것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171999년 이해진은 삼성SDS에서 독립했다. 동료들이 마련한 자금과 삼성SDS의 투자를 합쳐 자본금 5억원 규모의 이 출범했다. 삼성 안에서 살아남았던 작은 프로젝트가 마침내 회사가 된 것이다.
#18네이버라는 이름은 인터넷을 항해한다는 Navigator의 이미지에서 만들어졌다.
#19좋은 이름도 있었다. 검색 기술도 있었다. 투자금도 있었다. 문제는 사람들이 네이버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20이미 가 있었고 다음이 있었다. 특히 다음은 한메일과 다음카페를 앞세워 수많은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었다.
#21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었다. 검색할 한국어 문서 자체가 충분하지 않았다.
#22검색엔진은 인터넷에 존재하는 정보를 잘 찾아주는 기계다. 그런데 당시 한국어 인터넷에는 그 기계가 찾아줄 재료가 아직 부족했다.
#23최첨단 도서관 검색대를 만들었더니 정작 도서관에 책이 몇 권 없는 것과 비슷했다.
#24검색 기술만 좋아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다. 그리고 이때 초반에 등장했던 삼성SDS 동기 한 명이 다시 나타난다.
#25김범수였다.
#26김범수도 삼성SDS를 떠나 창업했다. 그가 만든 것은 검색엔진이 아니었다.
#27이었다. 고스톱, 바둑 같은 게임을 인터넷에서 즐기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게임에는 네이버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던 두 가지가 있었다.
#28사람과 돈이었다. 2000년 네이버컴과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이 합병했다. 검색 기술회사 등도 결합했고, 이 회사는 이후 이라는 이름으로 성장한다.
#29훗날 한국의 거대한 지식 관문이 되는 회사가 초창기에는 게임 사업 덕분에 검색을 키울 시간과 기반을 얻은 셈이다.
#30지식iN에서 미적분을 묻는 서비스 뒤편에서 누군가는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31한국 인터넷 산업은 생각보다 품격 있게만 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게임과 합쳤다고 검색의 근본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32검색할 한국어 콘텐츠가 부족했다. 여기서 네이버는 꽤 이상한 해결책을 선택한다.
#33검색할 것이 없다면, 사람들이 직접 만들게 하면 되지 않을까?
#342002년 이 등장했다. 사람이 질문한다. 다른 사람이 답한다.
#35전문가만 답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컴퓨터 고장부터 입시, 여행, 연애, 생활상식까지 온갖 질문이 올라왔다.
#36그리고 네이버는 인간의 지식욕에 새로운 보상체계 하나를 추가했다. 내공.
#37사람들은 돈도 받지 않으면서 모르는 사람의 질문에 긴 답변을 달았다. 물론 엉터리 답변도 있었고 장난도 있었다. 하지만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이름도 모르는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쓰는 이상한 집단지성이 만들어졌다.
#38보상은 때로 내공 몇십 점뿐이었다. 그렇게 쌓인 질문과 답변은 다시 네이버에서 검색할 수 있는 정보가 됐다.
#39도서관에 책이 부족하자 이용자들에게 책을 쓰게 한 셈이었다. 여기에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 같은 사용자 콘텐츠가 쌓였다. 네이버 안에서 사람들이 글을 쓰면 검색할 것이 늘었고, 검색할 것이 늘어나면 사람들이 네이버로 왔으며, 사람들이 몰리면 다시 더 많은 콘텐츠가 만들어졌다.
#40검색 기술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서치솔루션을 이끌었던 는 네이버 검색 기술의 핵심 인물 가운데 하나가 됐다. 네이버는 웹문서만 늘어놓는 대신 뉴스, 이미지, 카페 등 여러 종류의 결과를 한 화면에서 나눠 보여주는 통합검색을 일찍 도입했다.
#41이해진 혼자 모든 것을 발명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게임의 김범수. 서치솔루션의 이준호. 삼성SDS에서 함께 나온 초기 동료들. 수없이 많은 개발자와 기획자. 그리고 질문하고 답하고 글을 쓴 이용자들.
#42이 사람들이 합쳐져 우리가 기억하는 네이버가 만들어졌다.
#432000년대 네이버는 빠르게 성장했다. 2002년 NHN은 코스닥에 상장했고, 2008년에는 코스피로 이전했다. 검색에서는 다음을 추월했고 네이버는 한국 인터넷의 압도적인 관문으로 올라섰다.
#44지금은 유튜브를 보고 싶으면 유튜브를 열고, 쇼핑하려면 쇼핑 앱을 열고, 뉴스를 보고 싶으면 원하는 서비스를 바로 연다.
#45당시의 인터넷은 달랐다. 일단 네이버에 들어갔다. 검색도 네이버. 뉴스도 네이버. 카페도 네이버. 블로그도 네이버. 궁금한 것도 네이버.
#46한동안 한국에서 '인터넷을 한다'는 행동과 '네이버를 연다'는 행동은 상당 부분 겹쳤다.
#47네이버의 영향력이 너무 커지자 '네이버 공화국'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48그리고 정작 이 거대한 인터넷 공간을 만든 이해진 본인은 대중 앞에 자주 나타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492004년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뒤 외부 노출이 많지 않아 언론에서는 그에게 '은둔의 경영자' 같은 표현을 붙였다.
#50한국인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는 사이트를 만든 사람인데, 정작 창업자의 얼굴은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51그의 아버지 은 삼성생명과 삼성카드 대표이사를 지낸 전문경영인이었다. 이해진의 창업 과정에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지만 네이버 경영에 직접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52아버지는 삼성에서 전문경영인의 정상까지 올라갔고, 아들은 삼성 안에서 자기 프로젝트를 지키다가 결국 회사를 나와 창업했다.
#53이제 네이버는 성공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인터넷의 정문 자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54과 스마트폰이 등장했다. PC 시대에는 브라우저를 열고 포털로 들어갔다.
#55스마트폰에서는 달랐다. 카메라는 카메라 앱. 동영상은 유튜브. 게임은 게임 앱. 메신저는 메신저 앱.
#56포털을 거칠 이유가 줄어들었다. 네이버가 왕이었던 경기장의 규칙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57그리고 이때 이해진에게 아주 익숙한 사람이 네이버 입장에서 상당히 곤란한 서비스를 들고 나타난다.
#58김범수였다.
#59김범수는 NHN을 떠난 뒤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 카카오톡이 등장했다.
#60이해진 입장에서 김범수의 커리어를 아주 못되게 압축하면 이렇다. 네이버와 합침. 같이 키움. 나감. 경쟁사 만듦. 국민 메신저 만듦.
#61전 직장 동료의 퇴사 후 행보치고는 스케일이 조금 크다. PC 인터넷의 중요한 입구를 네이버가 장악했다면 모바일 시대에는 카카오톡이 한국인의 하루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62하지만 둘의 이야기를 단순한 배신극으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같은 대학에 들어가고 같은 회사에 입사했던 두 사람이 한동안 같은 회사를 키우다가 서로 다른 길로 간 것이다.
#63그리고 놀랍게도 둘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시 메신저 시장에서 만난다. 한국에서는 김범수의 카카오톡.
#64일본에서는 이해진이 이끄는 네이버 계열의 서비스가 자리를 잡는다. 그 서비스가 이었다.
#65라인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그 전에 실패부터 봐야 한다. 한국에서 네이버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해외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66특히 일본 검색시장에 도전했지만 강력한 야후재팬과 구글이 있는 시장에서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한 번으로 끝난 것도 아니었다. 네이버는 일본 검색시장에 다시 도전했지만 결국 검색으로 일본을 장악하지 못했다.
#67한국에서는 네이버를 모르는 사람이 이상했다. 일본에서는 네이버를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68국경 하나를 건너자 한국의 인터넷 제왕은 다시 신입이 됐다. 그런데 이해진은 해외를 포기하지 않았다.
#692006년 네이버는 검색 스타트업 을 인수했다. 첫눈의 CTO였던 는 이후 일본 사업으로 건너가 라인의 성장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 된다.
#70이 장면에서도 이해진의 반복되는 경영 방식이 보인다. 한게임의 김범수. 서치솔루션의 이준호. 첫눈의 신중호.
#71모든 것을 직접 발명하기보다 좋은 사람과 기술을 발견하고 자기 판 안에서 결합했다.
#72그리고 2011년 일본에서 그 조합이 폭발한다.
#73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 전화망이 혼잡해지고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드러난 시기였다. 다만 "대지진이 일어나서 라인을 처음 만들었다"고 단순화하면 정확하지 않다.
#74모바일 커뮤니케이션 서비스에 대한 구상과 개발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고, 대지진은 그 필요성과 방향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 중요한 계기였다.
#75그해 6월 라인이 출시됐다. 그리고 성장했다. 일본을 중심으로 대만과 태국 등에서도 강력한 메신저로 자리 잡았고, 2016년 라인 주식회사는 뉴욕증권거래소와 도쿄증권거래소에 동시 상장했다.
#76일본 검색시장의 정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네이버는 검색이 아닌 메신저라는 창문으로 들어간 셈이었다.
#77더 재미있는 장면도 생겼다. 삼성SDS에서 함께 출근하던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만든 회사는 한국인의 휴대전화에 카카오톡을 넣었고, 다른 한 명이 이끈 회사는 일본인의 휴대전화에 라인을 넣었다.
#78회사 동료끼리 헤어진 뒤 진로가 조금 거창했다.
#79라인의 성공은 이해진에게 네이버 이후 가장 중요한 글로벌 성과 가운데 하나였다.
#80하지만 해외에서 성공하는 것과 그 성공을 계속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81라인은 이후 을 운영하던 Z홀딩스와 경영통합했고, 현재는 체제로 이어졌다. 일본에서 개인정보와 보안 문제를 둘러싼 행정지도가 이어지면서 네이버와 라인의 관계 역시 복잡한 문제가 됐다.
#82작은 검색엔진 하나를 만들 때는 기술을 잘 만들면 됐다. 수천만, 수억 명이 사용하는 플랫폼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83주주가 생긴다. 파트너가 생긴다. 규제가 들어온다. 국가 간 이해관계까지 끼어든다.
#84회사가 커질수록 창업자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오히려 자기 손에서 멀어졌다.
#852013년에는 NHN도 다시 나뉘었다. 네이버 중심 사업은 네이버로, 게임 사업은 NHN엔터테인먼트 쪽으로 분리됐다.
#86검색과 게임의 결혼으로 성장했던 회사가 다시 갈라진 것이다. 이해진은 2017년 네이버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났고 글로벌투자책임자로 해외 사업과 투자에 집중했다.
#87한국 인터넷의 입구를 만들었던 창업자가 조금씩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보였다.
#88그런데 몇 년 뒤, 네이버의 출발점 자체를 흔드는 기술이 등장했다.
#89네이버를 키운 결정적인 행동 하나를 떠올려보자. 질문한다. 2000년대에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지식iN에 물었다.
#90사람이 질문하면 사람이 답했다. 그런데 OpenAI의 를 비롯한 생성형 AI가 대중화되면서 이 행동의 상대방이 바뀌기 시작했다.
#91사람이 질문한다. AI가 바로 답한다. 검색 결과를 열고 여러 문서를 비교하는 과정조차 생략할 수 있다.
#92이건 네이버 입장에서 새로운 경쟁 서비스 하나가 생긴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93네이버를 강하게 만들었던 사용 습관 자체가 바뀌는 일이다. 네이버는 사람들이 질문하게 만들어 성장했다.
#9420여 년 뒤 AI도 사람들에게 똑같이 말하기 시작했다. 궁금한 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95그리고 2025년 3월, 이해진이 다시 네이버 이사회 의장으로 돌아왔다.
#96네이버는 그의 복귀 배경을 설명하면서 'AI 대전환'을 직접 언급했다. 1995년 인터넷 프로젝트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을 때 그는 과장이었다.
#9730년 뒤에는 검색이라는 성공 공식 자체가 흔들리는 시기에 창업자로 돌아왔다.
#98상대가 야후도, 다음도, 카카오도 아니었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정보를 찾는 방법 자체가 바뀌고 있었다.
#99이해진이 돌아왔다고 해서 네이버가 갑자기 AI 시대의 승자가 된 것은 아니다.
#100하지만 2026년 현재, 무엇을 답으로 내놓으려 하는지는 보이기 시작했다.
#101네이버는 기존 검색에 생성형 AI를 결합한 AI 브리핑을 확대했고, 2026년에는 대화형 검색 서비스 을 본격적으로 내놓았다.
#102AI탭은 문서 목록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질문의 맥락을 이해해 답하고, 후속 질문을 받고, 네이버가 오랫동안 쌓아온 쇼핑·플레이스·블로그·카페 같은 서비스와 연결해 실제 행동까지 이어가려 한다.
#1032026년 4월 멤버십 이용자를 대상으로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고, 6월 전체 이용자로 확대됐다. 7월 네이버는 AI탭 이용자가 1천만 명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10420여 년 전의 지식iN과 나란히 놓으면 묘한 장면이 된다. 2002년. 질문하세요. 사람이 답합니다.
#1052026년. 질문하세요. AI가 답하고 다음 행동까지 연결합니다. 기술은 완전히 달라졌는데 네이버가 붙잡고 있는 인간의 행동은 놀랄 만큼 비슷하다.
#106네이버는 쇼핑에도 AI 에이전트를 넣고 부동산·건강 등 여러 영역으로 에이전트형 서비스를 확장하려 하고 있다.
#107검색 결과를 잘 보여주는 회사에서, 사람이 원하는 일을 이해하고 실행까지 연결하는 회사로 다시 바뀌려는 것이다.
#108변화는 서비스 화면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네이버는 AI를 돌릴 컴퓨팅 인프라에도 거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1092026년 이해진은 , 와 AI 팩토리 구축 협력을 구체화했다. 세종의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각 세종'을 기반으로 대규모 GPU 인프라를 확장하고, 장기적으로 기가와트급 소버린 AI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1107월 발표된 협력에서는 브룩필드가 최대 90억 달러의 자본을 조달하고 엔비디아가 10억 달러를 투자하는 총 100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 구조가 제시됐다.
#111이 이끄는 엔비디아와 단순히 GPU를 사고파는 관계를 넘어 AI 인프라 자체를 함께 확장하려는 것이다.
#112이해진이 AI 시대에 내놓은 답은 그래서 단순히 "우리도 챗봇을 하나 만들자"가 아니다.
#113검색에 AI를 넣고, 쇼핑에 에이전트를 넣고, 자체 데이터와 콘텐츠를 연결하고, 그 AI를 돌릴 인프라까지 확보하려 한다.
#114그렇다고 이 이야기를 또 하나의 성공담으로 끝낼 수는 없다. AI 시대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115구글도 있다. OpenAI도 있다. 수많은 글로벌 빅테크가 훨씬 큰 자본과 기술을 쏟아붓고 있다.
#116네이버가 이번에도 한국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지킬지, 글로벌 AI 사업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지는 아직 알 수 없다.
#117다만 이해진이 또 같은 종류의 문제 앞에 서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118돌아보면 이해진의 이야기는 계속 같은 장면의 변주였다. 삼성에서 인터넷 프로젝트를 없애려 했다. 그는 붙잡았다.
#119네이버를 만들었는데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한게임과 합쳤다. 검색엔진을 만들었는데 검색할 한국어 정보가 부족했다. 지식iN과 블로그와 카페를 키웠다.
#120PC 포털의 시대가 흔들렸다. 모바일로 갔다. 일본에서 검색으로 실패했다. 라인으로 다시 들어갔다.
#121라인이 성공했다. 이번에는 거대한 플랫폼을 둘러싼 자본과 규제와 국가의 문제가 따라왔다.
#122그리고 이제 AI가 검색이라는 행동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이해진 혼자 네이버를 만든 것은 아니다.
#123삼성SDS의 동료들이 있었다. 김범수의 한게임이 있었다. 이준호의 검색 기술이 있었다. 신중호와 라인을 만든 사람들이 있었다.
#124그리고 무엇보다 네이버에 자기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지식iN에 답을 달았다. 누군가는 블로그에 여행기를 썼다. 누군가는 카페에 새벽 세 시 고민을 남겼다. 누군가는 아무 보상도 없이 모르는 사람에게 컴퓨터 고치는 법을 알려줬다.
#125그 수많은 흔적이 검색할 것이 되었고, 검색할 것이 쌓이면서 네이버라는 거대한 인터넷 공간이 만들어졌다.
#126어린 이해진은 궁금한 것이 생기면 백과사전을 펼쳤다고 한다. 젊은 이해진은 검색엔진을 만들었다.
#127네이버는 사람들에게 서로 질문하고 답하게 했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은 AI에게 질문한다.
#1281995년 삼성에서 없어질 뻔한 인터넷 프로젝트를 붙잡았던 개발자는 30년이 지나 다시 그 변화 한가운데 서 있다.
#129이번 선택이 1999년의 네이버나 2011년의 라인처럼 또 한 번 맞아떨어질지는 아직 모른다.
#130하지만 질문은 처음부터 놀랄 만큼 비슷했다. 사람이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어디로 갈 것인가.
#131이해진은 어쩌면 평생 그 질문 하나를 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