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민 메신저에서 AI 대화 플랫폼으로 확장 중인 카카오의 핵심 서비스
모두가 들어온 뒤부터 더 어려워진 서비스
#12000년대 후반, 정자동의 한 작은 사무실에 남자가 혼자 남아 울고 있었다.
#2은 20대 후반에 자신의 스타트업을 접고 김범수와 함께 을 시작했다. 김범수는 이미 한게임을 창업하고 네이버와의 합병을 거쳐 NHN을 이끈, 한국 인터넷 업계에서 한 번 크게 성공해본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과 함께라면 뭔가 굉장한 것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안 나왔다.
#3아이위랩은 인터넷 북마크를 모으는 를 글로벌 서비스로 준비해 미국 법인까지 만들었지만 기대만큼 반응을 얻지 못했다. 집단지성 서비스 위지아도 만들었고, 아지트도 만들었다. 좋은 사람들이 모여 열심히 일했지만 3년 넘게 이렇다 할 성공작이 없었다. 팀 내부에서는 5년까지 모든 것을 쏟아보고 안 되면 접자는 생각까지 나왔다. 이제범은 훗날 이 시절이 너무 힘들어서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이상할 만큼 선명하게 남은 기억은 하나였다.
#4새벽, 아무도 없는 정자동 사무실에서 너무 외롭고 힘들어 혼자 울었던 순간.
#5몇 년 뒤 이 남자가 공동대표가 되는 서비스에는 정반대의 문제가 생긴다. 아무도 오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회사가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그 서비스가 카카오톡이었다.
#6아이위랩이 몇 년 동안 정답을 찾지 못하는 사이 세상이 먼저 움직였다. 미국에서는 아이폰이 돌풍을 일으켰고, 2009년 말 한국에도 이 들어왔다. 김범수와 아이위랩 팀은 웹이 아니라 모바일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2010년 3월 18일, 아이폰 앱스토어에 카카오톡이 출시됐다.
#7지금 보면 너무 당연한 기능들이다. 무료로 메시지를 보낸다. 사진과 동영상을 보낸다. 여러 사람이 한 채팅방에 들어간다. 별도의 아이디를 묻고 친구 신청을 기다릴 필요 없이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사람이 친구 목록에 나타난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조합이 강력했다.
#8휴대전화 문자메시지는 건당 비용을 내던 시절이었다. 여러 사람이 약속을 잡으려면 각자 문자를 주고받아야 했다. 카카오톡에서는 그냥 한 방에 모이면 됐다. 모바일 메신저 자체가 처음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카카오톡은 그룹채팅과 전화번호부 기반 연결, 사용 편의성, 그리고 스마트폰이 막 퍼지기 시작한 절묘한 시기를 함께 잡았다. 그리고 2010년 8월 안드로이드 버전이 나오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9카카오톡팀의 목표는 사용자 10만 명이었다. 그동안 아이위랩이 내놓은 웹 서비스들은 대개 3만~4만 명 정도에 머물렀다. 10만 명은 한번 넘어보고 싶은 꽤 큰 숫자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하루 신규 가입자가 10만 명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10회사: 10만 명만 써주면 좋겠다. 대한민국: 알겠어. 하루에 보내줄게.
#11주문한 서버가 도착하기도 전에 다음 서버를 주문해야 했다. 작은 팀 하나가 갑자기 엄청난 규모의 통신을 떠안았다. 후발 경쟁 서비스도 쏟아졌다. 카카오팀은 밤낮없이 서버와 기능을 고쳤다. 2011년에는 속도 개선 작업에 당시 유행어를 패러디해 아예 "겁나 빠른 황소 프로젝트"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몇 년 동안 사람들이 안 와서 울던 회사에 이번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왔다.
#12문제가 해결됐다. 그래서 더 큰 문제가 생겼다.
#13무료는 카카오톡 최고의 무기였다. 그리고 카카오 최고의 골칫거리였다. 가입자가 늘어난다. 메시지가 늘어난다. 서버가 필요하다. 비용이 늘어난다. 그런데 메시지는 무료다.
#14가입자 1,000만 명 돌파. 보통 회사라면 축하할 일이다. 카카오도 축하했을 것이다. 서버 비용도 함께 축하했다.
#15카카오톡은 2011년 4월 가입자 1,000만 명을 넘었고, 2012년 6월에는 5,000만 명에 도달했다. 사람을 모으는 문제는 거의 풀리고 있었다. 이제 질문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데 무엇을 할 것인가?
#16초기 답 가운데 하나가 였다. 2010년 12월 시작된 선물하기에는 처음 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 GS25 등을 포함한 15개 제휴사의 약 100개 상품이 들어왔다.
#17아이디어는 단순했다. 메시지로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선물도 함께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주소를 묻고, 무엇을 보내야 할지 고민하고, 택배를 보내고, 잘 받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상대를 고르고 결제하면 됐다.
#18인류는 오랫동안 선물을 직접 건넸다. 카카오는 그것을 채팅창 안으로 집어넣었다.
#19지금은 너무 익숙해서 처음부터 대박이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출시 약 1년 뒤 선물하기는 회사의 주력 사업 후보에서 밀렸다. 스타트업이 가진 한정된 자원을 다른 곳에 써야 한다는 의견이 강했다. 몇몇 구성원이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붙잡았다. 개발자도 부족하고 마케팅 예산도 변변치 않아 다른 사업을 하면서 사실상 부업처럼 선물하기를 살렸다. 반기나 연간 성과를 볼 때마다 "6개월만 더 해보자"고 설득해야 했다.
#20그 서비스가 훗날 한국인의 생일을 커피 쿠폰과 케이크와 치킨으로 뒤덮게 된다. 하지만 당시 카카오에 필요한 것은 그것보다 훨씬 강력한 엔진이었다. 그리고 2012년, 대한민국 사람들의 채팅창에 난데없이 하트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212012년의 카카오는 절박했다. 카카오톡 이용자는 2,000만 명을 향해 달리고 있었지만 그 규모를 감당할 사업모델은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였다.
#22지금 생각하면 카카오톡에 게임을 붙이면 당연히 잘될 것 같지만 당시 게임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PC게임이 강력하던 시절이었고, 카카오는 게임회사도 아니었다. 게임사들을 찾아다니며 사업모델을 설명했지만 반응은 미지근했다. 가 투자자이자 전략적 파트너로 나선 뒤 카카오는 직접 게임 플랫폼을 준비했고, 2012년 7월 30일 7개 회사의 게임 10개를 사실상 모셔오다시피 해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23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별일이 없었다. 회의에서 이런 말까지 나왔다. "우리 망한 것 같아요."
#24그리고 출시 9일째쯤부터 갑자기 분위기가 뒤집혔다. 이 터졌다. 대한민국 사람들의 카카오톡으로 하트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25"하트 좀." 사랑 고백이 아니다. 퍼즐 한 판 더 해야 한다. 평소 연락하지 않던 친구가 하트를 보냈다. 부모도 게임을 했다. 친구 목록에 있던 현실의 인간관계가 그대로 게임의 경쟁 상대이자 초대 목록이 됐다. 애니팡의 트래픽이 너무 커지자 카카오는 개발사 에 서버를 긴급 임대해줄 정도였다. 뒤이어 드래곤플라이트를 비롯한 게임들도 터졌다. 불과 몇 달 전에는 게임사를 모셔와야 했던 카카오 앞에 이제 게임사들이 줄을 섰다.
#26카카오톡의 친구 관계 자체가 유통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2013년 카카오는 매출 2,108억 원, 영업이익 658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매출은 약 3.5배, 영업이익은 약 8.5배 뛰었다. 전국민이 서로에게 보내던 하트가 카카오에도 목숨 하나를 보내준 셈이었다.
#27그리고 카카오의 질문은 다시 바뀌었다. 메시지를 어떻게 더 많이 보내게 할까가 아니었다. 이미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데, 여기서 무엇까지 할 수 있을까?
#28카카오톡은 빠르게 메신저 바깥으로 번졌다. 이모티콘이 들어왔다. 보이스톡이 생겼다. PC에서도 카카오톡을 쓸 수 있게 됐다. 카카오페이가 붙었다. 오픈채팅이 생겼고, 카카오택시 같은 서비스도 카카오 생태계에서 성장했다.
#29기능 출시 연도만 늘어놓으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한국인의 하루로 바꿔보면 느낌이 다르다.
#30아침에 회사 단톡방을 확인한다. 친구에게 "어디야?"라고 보낸다. 생일인 사람에게 커피를 선물한다. 돈을 보낸다. 저녁에는 카카오T로 택시를 부른다. 취미가 같은 모르는 사람들과 오픈채팅에서 이야기한다.
#31어느 순간 카카오는 메시지를 보내는 앱 하나를 만든 회사가 아니라, 한국인의 스마트폰 안에 작은 생활권 하나를 만들고 있었다. 2011년 1,000만 명이던 카카오톡 가입자는 2012년 5,000만 명을 넘었고, 2013년 7월에는 출시 약 3년 3개월 만에 전 세계 가입자 1억 명을 돌파했다.
#32서비스 이름은 아예 동사가 됐다. "문자해." 보다 "카톡해." 가 자연스러워졌다.
#33그리고 2014년에는 상징적인 일이 벌어진다. 모바일 시대의 신흥 강자 카카오가 PC 인터넷 시대를 대표했던 과 합병했다. 한메일과 다음 카페로 한국 인터넷 초창기를 이끌었던 회사와 스마트폰 시대의 새로운 입구가 된 회사가 한 몸이 됐다.
#34흥미롭게도 카카오의 김범수는 그보다 훨씬 전 을 만들고 이해진이 만든 와 합병해 NHN을 함께 이끌었던 사람이기도 했다. 훗날 한국에서는 카카오톡이 국민 메신저가 되고, 일본에서는 네이버 계열에서 출발한 이 국민 메신저가 된다. 한때 같은 회사에 있었던 사람들의 역사가 서로 다른 메신저 제국으로 갈라진 셈이다.
#35카카오톡이 바꾼 것은 사업만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숫자 하나에 새로운 감정도 붙였다.
#36메시지를 읽으면 사라지는 숫자다. 기능적으로 보면 읽지 않은 사람이 몇 명인지 알려주는 표시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371이 아직 있다. 아직 안 읽었다. 1이 사라졌다. 읽었다. 그런데 답장이 없다. 왜 없지? 연애에서도, 친구 사이에서도, 가족 사이에서도, 직장에서도 숫자 하나가 수많은 해석을 낳았다.
#38카카오톡은 숫자 1을 발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숫자 1에 새로운 감정을 붙이는 데는 성공했다.
#39단체채팅도 마찬가지였다. 친구 단톡. 가족 단톡. 회사 단톡. 학교 단톡. 아파트 단톡. 대한민국에서는 사람 세 명이 모이면 단톡방이 생기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가 됐다.
#40카카오톡은 사람들을 연결했다. 너무 잘 연결했다. 그래서 퇴근한 직장인도 연결되어 있었다.
#41하지만 같은 기능을 조금 다르게 보면 묘한 장면도 생긴다. 성인이 된 자식들은 부모와 떨어져 산다. 형제자매도 각자의 집으로 흩어진다. 예전처럼 매일 같은 거실에 모이지 않는다.
#42대신 가족 단톡방이 생겼다. 누군가는 여행 사진을 올리고, 부모는 꽃 사진을 보내고, 생일 축하가 올라오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데 아버지가 좋은 글을 계속 공유하기도 한다. 조금 귀찮고, 가끔 웃기고, 그래도 계속 남아 있는 방. 카카오톡은 떨어져 사는 가족에게 작은 디지털 거실 하나를 만들어준 셈이었다. 그러다 2022년, 그 거실의 불이 갑자기 꺼졌다.
#432022년 10월 15일 오후 3시 19분. 가 발생했다. 카카오가 사용하던 서버의 전원 공급이 차단되면서 카카오톡을 비롯한 수많은 카카오 서비스에 대규모 장애가 발생했다.
#44화재가 완전히 진압되는 데 약 8시간이 걸렸고, 카카오톡 메시지 송수신은 화재 발생 약 10시간 뒤 재개됐다. 모든 서비스를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약 5일이 걸렸다. 카카오톡이 멈추자 사람들은 메시지만 못 보낸 것이 아니었다.
#45회사 업무가 끊겼다. 가게 예약과 고객 소통에 문제가 생겼다. 카카오 계정으로 연결된 서비스들이 영향을 받았다.
#46카카오가 이후 접수한 피해 사례는 10만 건을 넘었다. 그중에는 금전적인 손해뿐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단절을 호소하는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카카오톡의 크기가, 고장 나는 순간 역으로 드러났다.
#472010년에는 문자메시지를 공짜로 보내게 해주는 편리한 앱이었다. 12년 뒤에는 한 번 멈추자 사회 전체가 불편해지는 서비스가 되어 있었다. 카카오는 사고 이후 전체 시스템 다중화, 비상대응체계 강화, 인프라 투자 확대 등을 재발방지 대책으로 내놓았다.
#48하지만 기술적인 문제보다 더 어려운 질문 하나가 남았다. 민간기업이 만든 앱은 어느 순간부터 사회 인프라가 되는가?
#49그리고 사회 인프라처럼 되어버린 앱을 만든 회사는 또 다른 문제를 만나게 된다. 모두가 쓰는 서비스를 대체 어떻게 바꿀 것인가.
#502025년 9월 카카오는 카카오톡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쳤다. 채팅방을 폴더로 묶고, 안 읽은 대화를 미리 보고, AI로 대화를 요약하고, 보이스톡을 녹음·요약하는 기능들이 추가됐다.
#51하지만 가장 눈에 띈 변화는 친구탭이었다. 오랫동안 익숙했던 친구 목록 대신 친구의 프로필 변경과 게시물을 피드처럼 볼 수 있는 화면을 전면에 내세웠다. 숏폼과 오픈채팅을 탐색하는 지금탭도 강화했다.
#52카카오가 제시한 방향은 분명했다. 카카오톡을 필요한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나가는 목적형 메신저에서, 콘텐츠와 사람과 서비스를 발견하며 더 오래 머무는 탐색형 서비스로 확장하려 했다.
#53그런데 이용자들이 반발했다. 결국 약 석 달 뒤인 2025년 12월, 카카오는 친구탭의 기본 화면에 기존의 목록형 친구 목록을 다시 돌려놓았다. 피드형 화면은 별도의 소식 영역으로 분리됐다.
#54이 사건은 단순한 UI 논란보다 재미있는 의미를 가진다. 2000년대 아이위랩의 문제는 아무도 자기 서비스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5년 뒤 카카오톡의 문제는 사람들이 이 서비스를 너무 많이, 너무 오래 써왔다는 것이었다.
#55새로운 앱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국민 메신저는 버튼 하나 옮기는 것도 수천만 명이 본다.
#56성공이 카카오톡에 자유를 줬다. 그리고 성공이 카카오톡의 자유를 빼앗았다.
#57그런데 카카오는 바로 이 시기에 카카오톡을 또 한 번 크게 바꾸려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상대방 자체를 바꾸는 일이었다.
#582025년 카카오는 카카오톡과 AI를 결합하는 전략을 본격적으로 공개했다. 자체 AI 기술 를 이용해 대화 요약과 검색, 통화 기록과 요약 같은 기능을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5년 10월에는 OpenAI와 협력해 를 출시했다. 카카오톡 채팅탭에서 바로 ChatGPT를 사용할 수 있고, 카카오맵·선물하기·멜론 같은 서비스와 연결되는 카카오툴즈도 함께 등장했다.
#592026년에는 범위가 더 넓어졌다. 올리브영, 무신사, 현대백화점, 삼쩜삼, 마이리얼트립, 사람인 같은 외부 서비스까지 카카오툴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3월에는 와 함께 카카오톡에서 전자증명서를 발급받고 공공시설을 예약할 수 있는 AI 국민비서 시범서비스가 나왔다. 5월에는 음성 기능과 대화창 안에서 예약을 끝내는 기능까지 추가됐다.
#606월에는 더 상징적인 변화가 생겼다. 1대1이나 그룹 채팅방에 ChatGPT 챗봇을 직접 불러 대화 중 질문할 수 있게 됐다.
#6116년 전 카카오톡이 해결한 문제는 이것이었다. 사람에게 어떻게 더 쉽게 말을 걸까? 2026년의 카카오톡은 다른 질문을 실험하고 있다. 대화창에서 사람 말고 무엇과 이야기할 수 있을까?
#62그리고 더 나아가, 말만 해서 어디까지 일을 끝낼 수 있을까? 친구와 약속 장소를 이야기하다 AI에게 식당을 찾아달라고 할 수 있다. 선물을 추천받고 실제 서비스로 넘어갈 수 있다. 정부 서비스를 대화로 처리할 수도 있다. 카카오가 그리고 있는 방향대로라면 카카오톡의 대화창은 메시지가 오가는 곳에서, AI가 서비스를 찾아 실제 행동까지 연결하는 인터페이스로 확장되는 셈이다.
#63물론 이것이 카카오톡의 새로운 전성기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2025년 친구탭 개편이 보여줬듯 카카오가 원하는 변화와 이용자가 원하는 변화는 같지 않을 수 있다.
#64혁신하지 않으면 낡는다. 그런데 혁신하면 수천만 명이 보고 있다. 카카오톡은 처음과 정확히 반대되는 문제에 도착했다.
#65다시 정자동의 작은 사무실로 돌아가보자. 자신이 하던 스타트업을 접고 김범수와 합류했던 이제범은 몇 년 동안 성공작을 만들지 못했다.
#66너무 힘들어서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던 시간. 새벽 사무실에 홀로 남아 울었던 사람. 그 사람들이 결국 만든 서비스 안에서는 이후 수천만 명이 웃고, 싸우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업무를 하고, 부모에게 사진을 보내고, 생일을 축하하고, 애니팡 하트를 구걸했다.
#67가족에게는 작은 거실이 생겼고, 연인에게는 숫자 1이 감정이 됐으며, 기업에는 고객과 만나는 창구가 생겼다. 그리고 이제 그 대화방에는 AI까지 들어오기 시작했다.
#68카카오톡의 역사를 보면 이상한 패턴이 반복된다. 아무도 안 쓴다. 카카오톡을 만든다. 너무 많이 쓴다. 서버가 버티기 어려워진다.
#69돈이 없다. 게임을 붙인다. 게임이 터진다. 플랫폼이 된다. 플랫폼이 너무 커진다. 사회 인프라처럼 된다. 사회 인프라처럼 된다. 함부로 멈춰서도, 함부로 바꿔서도 안 되는 서비스가 된다.
#70카카오톡은 문제 하나를 해결할 때마다 더 큰 문제를 만났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다 보니 아무도 쓰지 않던 작은 회사의 서비스가 모두가 쓰기 때문에 오히려 움직이기 어려운 서비스가 됐다.
#712010년 3월 18일 처음 카카오톡이 나왔을 때 대화창 반대편에는 사람이 있었다. 16년이 지난 지금도 카카오톡의 중심에는 여전히 대화창이 있다. 하지만 이제 한 가지는 예전만큼 당연하지 않다.
#72앞으로 우리가 "카톡해"라고 말할 때, 그 대화 상대는 꼭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