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센느를 만든 더뮤즈엔터테인먼트 대표
알고리즘이 발견하기 전까지 직접 알고리즘이었던 대표
#1두 사람 모두 출신이었다. 한 사람은 실제 가수로 데뷔해 노래하고 곡까지 만들었다. 다른 한 사람 역시 음악을 공부한 프로듀서였다. 이제 자신들이 만든 첫 걸그룹을 음악방송 무대에 올릴 차례였다.
#2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인이어를 어떻게 착용시키는지 몰랐다. 결국 옆에 있던 다른 가수의 매니저에게 도움을 청했다.
#3화성학도 알고 작곡도 알고 보컬도 알았다. 하지만 버클리에서는 아이돌 귀에 인이어 채우는 법까지 가르쳐주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들이 몇 년 뒤 멜론 1위 걸그룹을 만들게 되는 더뮤즈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이주헌과 김혜수 이사였다.
#4처음부터 뭔가 이상한 회사였다.
#5사실 이주헌은 처음부터 엔터테인먼트 회사 대표가 되려고 살아온 사람이 아니었다. 원래 노래하는 사람이었다.
#6버클리 음악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했고, 한국에서는 보컬 그룹 의 멤버로 활동했다. 당시 알려진 이력에 따르면 버클리 재학 중 노래에 대한 갈증으로 자신이 노래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고, 이것이 당시 MBK엔터테인먼트를 이끌던 에게 발견되면서 가수 데뷔로 이어졌다. 다만 이 과정의 세부 내용은 현재 남아 있는 자료가 주로 2차 출처에 기대고 있어 조심해서 볼 필요가 있다.
#72015년 하이브로우로 데뷔한 뒤에는 단순히 노래만 하지 않았다. 와 함께한 "마음", 가 참여한 "요즘 내가" 등에 작사·작곡으로 참여하며 만드는 쪽에도 발을 걸쳤다.
#8그러니까 그의 경력은 조금씩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에서 노래하는 사람으로, 노래하는 사람에서 음악을 만드는 사람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을 모아 회사를 만드는 사람이 됐다.
#92020년 말 무렵 더뮤즈엔터테인먼트가 시작됐다. 거창한 출발은 아니었다. 초기 구성원은 이주헌을 포함해 세 명. 이들이 모은 법인 초기 자금은 1,000만 원이었다. 이것은 훗날 리센느 제작에 들어간 전체 비용이 1,000만 원이었다는 뜻이 아니라, 세 사람이 회사를 시작하며 마련했던 초기 자금이다.
#10그 돈을 들고 이들은 K팝 산업에 들어갔다. 상대편에는 대형 기획사들이 있었다. 장비 차이가 조금 났다.
#11초기 더뮤즈에서 중요한 사람이 김혜수였다. 유명 배우와 동명이인이지만 이 김혜수는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이주헌과 만난 음악인이다. 훗날 리센느의 음악과 비주얼을 포함한 제작 전반을 이끄는 핵심 인물이 된다.
#12하지만 회사가 세 명뿐이면 전공만 하고 있을 수 없다. 김혜수는 음악을 만들면서 회계와 재무까지 맡았다. 이주헌은 대표였지만 직접 운전해 멤버들의 스케줄을 뛰었다. 스타트업인데 제품이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아이돌이었다.
#13조직도에는 대표와 이사가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한 사람이 몇 칸씩 뛰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음악은 알았는데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운영해본 적이 없었다.
#14첫 음악방송에서 인이어를 채우지 못했던 사건은 그래서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이주헌은 이미 음악 전문가였다. 하지만 회사를 만드는 순간 다시 초보자가 됐다. 그리고 그 초보자들이 이제 첫 아이돌을 만들어야 했다.
#15그 과정에서 이주헌은 일본으로 향했다. 찾아간 사람은 미나미였다. 미나미는 일본에서 K팝을 좋아하며 자랐고 어린 나이에 한국으로 건너와 MBC "방과후 설렘"에 출연했다. 하지만 최종 데뷔에는 이르지 못했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16그때 이주헌이 연락했다. 연락으로 끝나지 않았다. 직접 일본까지 찾아가 미나미와 부모를 만났다.
#17당시 더뮤즈에는 보여줄 만한 성공 사례가 없었다. 선배 아이돌도 없었다. 첫 걸그룹조차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작은 한국 기획사의 대표가 일본의 부모에게 딸을 다시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설득해야 했다.
#18쉽게 말하면 아직 식당을 열지도 않은 사람이 찾아가 말했다. "저희 식당에서 일해보시겠어요?" 그리고 그 식당이 잘될지는 대표 자신도 알 수 없었다.
#19이주헌이 그 자리에서 팔아야 했던 것은 음반도 공연도 아니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였다.
#20미나미는 결국 다시 한국으로 왔다. 그리고 , , 미나미, , 다섯 명이 모였다. 2024년 3월, 더뮤즈엔터테인먼트의 첫 걸그룹 리센느가 데뷔했다.
#21몇 년 동안 회사를 만들고 사람을 모으고 음악을 준비했다. 이제 세상이 이들을 발견해주기만 하면 됐다. 문제는 세상이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22대형 기획사의 신인은 회사 이름부터 사람들이 안다. 리센느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래서 회사 사람들이 직접 전화를 돌렸다.
#23프로필을 수백 장씩 인쇄해 방송사를 찾아갔다. 이주헌은 손편지를 썼고, 방송 관계자에게 전달할 맞춤 케이크와 꽃까지 준비했다. 그렇게 애를 썼지만 데뷔 초 음악방송 출연 기회는 매우 귀했다. 김혜수가 훗날 회고한 바로는 초기에 잡은 음악방송 출연이 "뮤직뱅크" 한 차례 정도였다고 한다.
#24알고리즘이 리센느를 추천해주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이주헌이 직접 추천 알고리즘이 됐다. 방송국을 찾아가고, 전화를 돌리고, 프로필을 건넸다.
#25영업 대상의 범위도 넓었다. 퇴근길에 우연히 전 축구선수 을 만났을 때도 리센느를 홍보했다고 한다. 방송 관계자만 영업 대상이 아니었다. 지나가던 국가대표 골키퍼도 영업 대상이었다. 이쯤 되면 당시 이주헌에게 '잠재 고객이 아닌 사람'이 누구였는지가 더 궁금해진다.
#26그러나 웃기게만 보기 어려운 순간도 있었다. 어느 음악방송 리허설 날이었다. 미나미는 작은 회사에서 나온 신인이었기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최선을 다해 무대를 했다. 그리고 무대 뒤에서 이주헌이 우는 모습을 봤다.
#27이주헌은 회사가 작아 멤버들에게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미나미의 기억은 반대였다. 멤버들은 오히려 대표에게 감사했다고 했다.
#28자신을 일본까지 찾아와 다시 한국으로 데려온 사람이었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꽃을 보내는 등 멤버들을 챙겼던 사람으로도 미나미는 이주헌을 기억했다. 대표는 해준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멤버들은 받은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아직 아무도 성공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였다.
#29비슷한 시기 회사의 작은 분위기를 보여주는 장면이 하나 더 있다. 2024년 8월 김혜수가 인디밴드 의 베이시스트 과 결혼했을 때, 데뷔한 지 약 다섯 달 된 리센느가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다. 당시 리센느 멤버들을 결혼식 뷔페에서 봤다는 목격담도 뒤늦게 화제가 됐다. 몇 년 전 세 명이 시작했던 회사에는 이제 창업 멤버의 결혼식에서 노래를 불러줄 다섯 명의 아이돌이 생겨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돌은 여전히 세상에 더 알려져야 했다.
#302024년 8월 리센느가 새로운 노래를 내놓았다. "LOVE ATTACK", 러브 어택이었다. 이제 좋은 노래를 만들었으니 성공하면 됐다.
#31성공은 약 2년 뒤에 왔다. "LOVE ATTACK"은 발표되자마자 거대한 대중적 히트곡이 된 노래가 아니었다.
#32더뮤즈와 리센느는 그 뒤에도 활동을 이어갔다.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무대에 올랐다. 시간이 흘렀다. 2025년도 지나갔다.
#33노래는 2024년에 출근했다. 대중은 2026년에 출근했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뜻밖에도 이야기는 서울의 음악방송국이나 버클리가 아니라 거제로 향한다.
#34원이의 고향은 거제다. 리센느 멤버들이 거제에서 보여준 모습과 이른바 "거제 야호"로 불린 콘텐츠를 비롯한 숏폼 영상들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면서 그룹에 대한 관심이 크게 번졌다.
#35다만 리센느의 역주행을 영상 하나의 결과라고 단순화할 수는 없다. 여러 콘텐츠와 숏폼을 통해 그룹이 노출되고 관심이 커지는 과정이 있었고, 그 관심이 기존 음악을 다시 발견하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상황 자체는 기막히게 재미있다.
#36버클리 출신 음악인들이 몇 년 동안 공들여 만든 그룹을 대중이 발견하게 된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는, 멤버들이 거제에서 "야호"를 외치는 콘텐츠였다.
#37하지만 웃긴 건 여기까지다. "야호"가 사람을 데려왔다면, 그 사람들이 리센느를 더 찾아보게 만든 것 가운데 하나는 이미 만들어져 있던 음악이었다.
#38사람들이 물었다. "얘네 누구야?" 리센느를 찾아봤다. 노래를 들어봤다. 그러다 2024년에 발표됐던 "LOVE ATTACK"까지 도착했다.
#39노래는 이미 거기에 있었다. 콘텐츠가 사람들에게 문을 보여줬을 때, 문 안에는 지난 몇 년 동안 더뮤즈와 리센느가 쌓아놓은 음악이 기다리고 있었다.
#40그래서 이 역주행의 재미있는 점은 성공의 계기를 완벽하게 계획했다는 데 있지 않다. 기회가 언제 올지는 몰랐지만, 기회가 왔을 때 발견될 것은 이미 만들어놓았다는 데 있다.
#41사람들은 "LOVE ATTACK" 하나만 발견한 것도 아니었다. 리센느가 알려지면서 "Pretty Girl", "Deja Vu", "Runaway", "Pinball" 같은 다른 곡들까지 함께 올라오기 시작했다.
#42사람들이 노래 하나를 발견한 게 아니라, 그동안 쌓아놓은 시간을 통째로 발견하기 시작했다.
#43그리고 회사의 전화기가 달라졌다.
#44몇 년 동안 더뮤즈의 전화는 한 방향으로 흘렀다. 더뮤즈 → 방송국 프로필을 돌렸다. 손편지를 썼다. 케이크까지 준비했다. 출연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다.
#45그런데 리센느가 역주행하기 시작하면서 화살표가 뒤집혔다. 방송국 → 더뮤즈
#46예전에는 수백 건씩 연락을 돌려야 했던 회사에 이제 방송 쪽에서 먼저 연락하기 시작했다. 광고 문의도 100건 이상 들어왔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몇 년 동안 이주헌은 전화를 거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부터 받는 사람이 됐다.
#47멤버들의 생활도 달라졌다. 초기 숙소에서는 멤버 다섯 명이 화장실 하나를 함께 사용했다. 새 숙소에는 넓어진 생활공간과 함께 화장실이 세 개 생겼고, 리더 원이에게는 개인방도 생겼다.
#48기업의 성장은 보통 매출이나 영업이익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아침에 씻어야 하는 다섯 명에게는 훨씬 중요한 KPI가 있었다. 화장실 수였다.
#492024년, 다섯 명에 하나. 2026년, 세 개. 더뮤즈의 성장을 가장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는 그래프일지도 모른다.
#50그런데 앞서 리허설에서 울던 이주헌을 떠올리면 이 숫자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는 멤버들에게 더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했다. 이제는 예전보다 조금 더 해줄 수 있게 됐다. 그것이 거창한 성공담보다 화장실 세 개에서 더 선명하게 보였다.
#51그리고 2026년 7월 13일, 조금 믿기 어려운 화면이 나타났다. 멜론 TOP100에 리센느의 노래가 동시에 다섯 곡 올라왔다.
#52"LOVE ATTACK" 1위. "Pretty Girl" 4위. "Deja Vu" 15위. "Runaway" 21위. "Pinball" 99위.
#53잠깐 시간을 되돌려보면 이상한 광경이다. 세 사람이 있었다. 법인을 시작하며 모은 돈은 1,000만 원이었다.
#54대표는 직접 운전했다. 프로듀서는 회계를 했다. 첫 음악방송에서는 인이어 채우는 법도 몰랐다.
#55일본까지 가서 아직 존재하지 않는 아이돌의 미래를 설명했다. 프로필을 수백 장 인쇄했다. 손편지를 썼다.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도 자기 그룹을 홍보했다. 리허설을 보면서는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울었다.
#56그리고 2024년에 발표한 노래를 사람들이 2026년에 찾아왔다. 그 화면에는 이제 자기 회사 아이돌의 노래가 다섯 곡 떠 있었다.
#57이주헌은 화면을 캡처해 올렸다. "이게 꿈은 아니겠죠?"
#58성공하고 나자 조금 재미있는 일이 하나 더 벌어졌다. 사람들이 이주헌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592026년 방송을 통해 더뮤즈의 초창기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버클리 출신이라는 사실, 과거 하이브로우로 가수 활동을 했다는 사실, 세 사람이 작은 자금으로 회사를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다시 조명됐다.
#60팬 콘텐츠에서는 대표 자체를 소재로 삼는 모습도 나타났다. 일부에서는 이주헌에게 '꾸대표'라는 별명을 붙인 콘텐츠도 보이기 시작했다. 다만 이 표현이 팬덤 전체에서 널리 쓰이는 공식적인 별명이라고 단정할 정도의 근거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61어쨌든 상황은 완전히 뒤집혔다. 처음에는 아무도 리센느를 몰랐다. 그래서 이주헌이 사람들에게 리센느를 소개하고 다녔다.
#62방송국을 찾아갔다. 프로필을 건넸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까지 말했다.
#63알고리즘이 리센느를 발견하기 전까지, 이주헌이 알고리즘이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진짜 알고리즘이 움직였다. 사람들이 리센느를 발견했다.
#64"LOVE ATTACK"을 발견했다. 그동안 쌓여 있던 다른 노래까지 발견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뒤에 있던 사람들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65버클리에서 이주헌과 만나 음악을 만들다가 회계장부까지 붙잡았던 김혜수. 한 번 데뷔의 문턱에서 돌아선 뒤 일본까지 찾아온 작은 회사 대표를 믿고 다시 한국행을 선택했던 미나미. 그들이 함께 만든 리센느. 그리고 사람들이 이들을 발견하게 만드는 데 한몫한 숏폼과 콘텐츠의 세계.
#66이상한 성공이었다. 버클리에서 음악을 공부한 사람들이 몇 년 동안 노래를 만들었다. 대표는 프로필을 들고 방송국을 돌아다녔다. 일본까지 가서 멤버를 데려왔다. 그래도 세상은 쉽게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람들이 몰려왔다.
#67그리고 사람들이 발견한 것은 그날 갑자기 만들어진 성공이 아니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그 자리에 쌓여 있던 노래와 사람들이었다.
#68처음에는 이주헌이 리센느를 알렸다. 나중에는 리센느가 이주헌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