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데뷔 좌절 끝에 리센느가 된 일본인 멤버
두 번 데뷔하지 못한 아이에게 카카오톡이 왔다
#1몇 년 동안 미나미가 준비한 것은 노래와 춤이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어를 배웠다. 서바이벌 오디션을 치렀다. 연습생 생활을 했다. 데뷔가 두 번이나 좌절됐고, 부모에게는 만 18살까지 데뷔하지 못하면 일본으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2그런데 2026년, 사람들이 RESCENE의 미나미를 발견한 방식 중 하나는 예상 밖이었다.
#3"야-호." 갸루였다. 원이의 콘텐츠에서 시작한 캐릭터가 예상 밖으로 반응을 얻었고, "거제 야호" 같은 밈까지 생겼다. "BOOMPALA"의 인트로를 맡은 미나미 버전 쇼츠는 2026년 8월 팬 아카이브 집계 기준 550만 회를 넘겼다. 정작 미나미 본인도 갸루가 이렇게까지 잘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414살부터 몇 년 동안 K팝 아이돌이 되기 위해 온갖 능력치를 찍었는데, 어느 날 대중이 발견한 스탯 중 하나가 '갸루 +37'이었던 셈이다.
#5하지만 이 이상한 현재에서 시간을 5년쯤 되돌리면 전혀 다른 미나미가 나온다. 한국어도 거의 못하면서 일본을 떠난 중학생이다.
#6미나미는 2006년 11월 29일 일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춤과 노래를 좋아했다. 댄스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학교에서 사람들 앞에 나설 일이 생기면 먼저 하겠다고 나서는 아이였다고 한다.
#7초등학교 3~4학년 무렵 와 같은 K팝 아이돌을 접했다. 특히 TWICE의 무대를 보며 자신도 K팝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키웠다.
#8그러다 중학교 1학년 무렵 참가 기회를 알게 됐다. 경쟁률은 1048:1이었다. 미나미는 뚫었다.
#9일본인 참가자로 한국에 왔다. 당시 겨우 14살이었다. 한국어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서바이벌에서 살아남았고, 결국 파이널까지 갔다.
#101048:1을 뚫었으면 보통 여기쯤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야 한다. 미나미 인생에서는 다음 화 예고가 나왔다.
#11탈락했다. 최종 데뷔조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프로그램에서 데뷔한 참가자들은 가 됐다. 미나미는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다.
#12하지만 아직 끝은 아니었다. 방송 이후 다른 회사에서 미나미에게 기회가 왔다. 이번에는 오디션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데뷔가 결정됐다.
#13드디어 되는 것처럼 보였다.
#14두 번째 데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나미는 이미 학교 문제까지 감수하고 아이돌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데뷔 계획 자체가 사라졌다.
#15첫 번째 실패와는 종류가 달랐다. "방과후 설렘"에서는 경쟁에서 졌다. 이번에는 이미 된 줄 알았던 미래가 없어졌다.
#16미나미는 일본으로 돌아왔다. 다시 오디션을 봐야 하나. SNS라도 시작해야 하나. 본인의 표현으로는 모든 것을 다시 1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했다.
#17이쯤 되면 인생이 미나미를 상대로 데뷔 방지 시스템이라도 돌리는 것처럼 보인다.
#18그런데 미나미에게는 시간도 무한하지 않았다. 처음 한국행을 결정했을 때 부모는 걱정했다. 한국 연예계가 어떤 곳인지도 잘 몰랐고, 연습생이 무엇인지, 7년 계약은 무엇인지, 왜 어린 딸이 굳이 학교를 뒤로하고 외국에 가야 하는지도 낯설었다.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도전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미나미는 늦는다고 생각했다.
#19그래서 부모에게 조건을 하나 걸었다. 만 18살까지 데뷔하지 못하면 포기하고 일본으로 돌아와 공부하겠다.
#2014살짜리 아이가 사실상 부모에게 이렇게 말한 셈이다. 나한테 몇 년만 줘. 그때까지 안 되면 나도 인정할게.
#21그런데 그 몇 년 사이에 이미 두 번 실패했다. 시계는 계속 가고 있었다.
#22그때 카카오톡이 울렸다.
#23"누구세요?" 미나미는 그 이름을 몰랐다. 더뮤즈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도 몰랐다.
#24연락을 보낸 사람은 회사의 이주헌 대표였다. 그는 "방과후 설렘"에서 미나미가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무대를 하는 영상을 보고 미나미를 눈여겨봤다고 한다.
#25미나미의 설명에 따르면 대표가 본 장점은 상당히 명쾌했다. 한국어를 잘하고, 노래를 잘하고, 예쁘다. 회사 내부에서도 미나미의 데뷔조 합류에 대해 의견을 물었고 좋은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26하지만 미나미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작은 회사였다. 일단 얘기나 들어보고 마음에 안 들면 거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7그런데 통화를 시작했다. 2시간을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이주헌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내용이 이상했다.
#28"나 지금 일본인데, 어디 있어?" 말로 영입을 설득하던 사람이 정말 비행기를 타고 일본까지 와버렸다. K팝 업계의 링크드인 DM을 물리력으로 해결한 셈이다.
#29미나미는 훗날 이 행동에서 대표의 진심을 느꼈다고 했다. "이 회사는 뭔가 되겠다." "이 대표님이랑 하면 뭔가 되겠다."
#30그렇게 다시 마음이 움직였다.
#31몇 년 뒤 미나미가 예능에서 이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주헌 대표의 캐스팅 피치는 더욱 전설적인 모양새가 됐다.
#32미나미의 장난스러운 회고에 따르면 대표는 말했다. "BLACKPINK 만들어줄게."
#33미나미가 BTS를 좋아한다고 하자, "BTS 만들어줄게." TWICE 이야기도 나왔다.
#34아직 리센느라는 그룹조차 세상에 없던 시절이었다. 제품은 아직 개발 중인데 피치덱 마지막 장에는 이미 유니콘이 그려져 있었던 셈이다.
#35미나미는 훗날 방송에서 자기가 대표에게 "속아서" 왔다고 웃었다. 물론 실제로 속였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몇 년이 지나 회사와 멤버가 함께 웃으며 꺼낼 수 있게 된 당시의 기억이다.
#36오히려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한쪽에는 두 번 데뷔가 좌절된 일본인 연습생이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아직 성공을 증명하지 못한 작은 회사 대표가 있었다.
#37대표는 미나미에게 걸었다. 미나미도 그 대표에게 걸었다. 둘 다 상대방의 미래를 알지 못한 채 서로에게 베팅했다.
#38그리고 미나미는 다시 한국으로 갔다.
#39미나미의 선택을 보면 반복되는 패턴이 하나 있다. 준비가 완벽해진 다음 움직이지 않는다.
#40처음 한국에 올 때도 한국어를 잘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어를 써야 하고, 노래해야 하고, 춤춰야 하는 환경 속에 자신을 집어넣어야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한국어 역시 교재만 붙들고 배웠다기보다 주변 친구들과 계속 대화하면서 크게 늘었다고 했다.
#41쉽게 말하면, 수영을 다 배운 뒤 물에 들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일단 물에 들어가서 수영을 배우는 쪽이었다.
#42한국 생활도 그렇게 일상이 됐다. 동갑인 를 비롯한 멤버들과 숙소에서 살았다. 서로 다른 지역과 문화에서 온 다섯 명이 처음부터 친할 수는 없다고 미나미도 말했다. 하지만 함께 생활하며 가까워졌고, 멤버들은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온 미나미가 한국에 적응하는 중요한 사람들이 됐다. 성인이 된 뒤에는 와 리브와 함께 노래방에도 갔다.
#43음식 취향도 상당히 현지화됐다. 김치찜, 설렁탕, 국밥, 감자탕, 백반.
#4414살에는 한국어도 거의 못했다. 몇 년 뒤에는 국밥을 좋아한다. K팝 현지화의 최종 단계는 한국어 능력시험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45미나미가 다시 한국에 온 뒤에도 부모와의 약속은 사라지지 않았다. 18살. 그때까지 데뷔하지 못하면 돌아간다.
#46그러다 2024년 3월 26일, 다섯 명의 멤버가 무대에 올랐다. 원이, 리브, 미나미, 메이, 제나. 그룹 이름은 리센느.
#47미나미는 17살이었다. 18번째 생일까지 약 8개월이 남아 있었다. 미나미는 부모와 한 약속을 지켰다.
#48"방과후 설렘"에서는 파이널까지 갔다가 떨어졌다. 다른 회사에서는 데뷔가 결정됐다가 무산됐다. 일본으로 돌아갔다. 처음 보는 작은 회사 대표의 카카오톡을 받았다. 대표는 일본까지 찾아왔다. 미나미는 다시 한국으로 갔다. 그리고 세 번째 기회에서 마침내 데뷔했다.
#49이쯤이면 이야기가 끝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데뷔한다고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은 아니었다.
#50더뮤즈엔터테인먼트는 대형 기획사가 아니었다. 미나미와 원이가 훗날 이야기한 바에 따르면 회사는 3명에서 시작했고, 두 사람이 처음 들어갔을 때도 직원이 10명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작았다.
#51리센느는 그런 회사에서 나온 신인 걸그룹이었다. 데뷔했다고 자동으로 사람들이 노래를 듣는 것도 아니었다. 멤버들은 자신들의 음원을 직접 스트리밍하기도 했다.
#52미나미가 몇 년 동안 바라봤던 목표는 '데뷔'였다. 그런데 막상 데뷔해보니 그건 결승선이 아니었다.
#53화면에 메시지가 하나 뜬 셈이다. 튜토리얼이 종료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진짜 사람들이 자신들을 발견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빠르지 않았다.
#54그러다 2026년, 상황이 이상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나미에게 갸루 캐릭터가 붙었다. 원이와 함께하는 콘텐츠에서 보여준 모습이 반응을 얻었고, "갸루귀신" 같은 별명과 "거제 야호" 같은 밈도 따라왔다. 미나미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5514살부터 준비한 것: 노래. 춤. 한국어. 표정. 무대. 서바이벌. 그런데 대중이 어느 날 갑자기 발견한 것: 갸루.
#56급기야 갸루 이미지가 너무 강해지자 미나미는 자신의 원래 모습도 더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갸루를 은퇴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기회가 오면 또 할 수 있다고 했다.
#57그러니까 몇 년 동안 필사적으로 데뷔한 결과 생긴 새로운 고민이, "사람들이 나를 갸루로만 알면 어떡하지?" 가 된 것이다.
#58인생에는 계획표에 없는 직무가 생긴다. 그런데 이번에는 밈만 움직인 게 아니었다. 노래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59리센느가 2024년 발표했던 이 2026년 뒤늦게 주목받으며 차트를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데뷔 2년 만에 찾아온 역주행이었다.
#60미나미 개인의 캐릭터가 발견되는 동안 팀 자체도 함께 발견되고 있었다. 이 변화는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2026년 8월 걸그룹 개인 브랜드평판 집계에서는 리센느 멤버 다섯 명이 모두 10위권에 들었고 미나미는 6위였다. 이런 지표를 인기의 절대적인 척도로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온라인 화제성에서 '리센느 미나미'라는 이름 자체가 잡히기 시작했다는 변화는 보여준다.
#61미나미는 보컬 역량을 보여주는 "리무진서비스"에도 단독으로 출연했다. 그리고 2026년 8월에는 리센느 멤버들과 미국으로 향했다. LA 무대였다.
#6214살 때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 미나미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향했다. K팝 아이돌이 되기 위해서였다. 19살의 미나미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K팝 아이돌로 무대에 서기 위해서였다.
#63처음에는 연습생이 되러 비행기를 탔다. 이제는 공연하러 비행기를 탄다. 그 사이에 5년이 있었다.
#64그 5년을 가장 이상하게 보여주는 물건이 하나 있다. 햇반이다. 14살 미나미가 "방과후 설렘"에 참가했을 때 을 만났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면서 무엇을 선물할지 고민하다가 고시히카리 햇반을 가져와 장도연에게 줬다. 그때 미나미는 데뷔할 수 있을지조차 몰랐다.
#65그리고 5년이 흘렀다. 그 사이 "방과후 설렘"에서 탈락했다. 다른 회사에서 데뷔가 결정됐다. 그것도 무산됐다. 일본으로 돌아갔다. 다시 한국으로 왔다. 부모와 약속한 시한 안에 리센느로 데뷔했다. 데뷔하고도 한동안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갸루가 됐다. "야-호"를 했다. Love Attack이 역주행했다.
#66그리고 2026년 미나미는 "살롱드립"에 출연했다. 진행자는 장도연이었다. 장도연은 5년 전 그 햇반을 기억하고 있었다.
#67햇반 자체에는 아무런 거창한 의미가 없다. 그래서 오히려 좋다. 14살짜리가 별생각 없이 건넨 작은 선물 하나가 어느새 그 사이에 흘러간 5년을 통째로 들고 돌아온 물건이 됐다.
#68미나미도 말했다. "그때는 제가 데뷔해서 이렇게 다시 만날 줄 몰랐어요."
#6914살 미나미에게 18살은 아주 먼 미래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때까지 데뷔하지 못하면 돌아가겠다고 했다.
#70하지만 18살이 지나고 보니 미나미는 여전히 한국에 있다. 리센느의 멤버다. 한국어로 인터뷰한다. 멤버들과 농담한다. 국밥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했다. 5년 전 만났던 사람과 방송에서 다시 만났다. 미국에서 K팝 무대에도 섰다.
#71그리고 가끔, "야-호." 한다. 14살 미나미가 상상했던 K팝 아이돌의 모습이 정확히 이것이었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래서 이 이야기가 재미있다.
#72꿈은 계획한 모양 그대로 오지 않았다. 한 번 떨어졌다. 다시 데뷔하려다 무산됐다. 엉뚱한 카카오톡 하나가 왔다. 다시 국경을 건넜다. 겨우 데뷔했더니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 전 노래가 갑자기 올라오기 시작했고,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캐릭터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73미나미는 이제 겨우 19살이다. 예전에는 계속 같은 질문을 해야 했다. "데뷔할 수 있을까?"
#74이제 처음으로 질문이 달라졌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리고 미나미의 이야기에서 카메라를 조금만 뒤로 빼면 또 하나의 이상한 질문이 남는다.
#75미나미가 이주헌에게 처음 연락받았을 때는 리센느라는 그룹조차 세상에 없었다. 직원 몇 명뿐인 작은 회사의 대표가 일본까지 날아가 한 명을 데려왔다. 그리고 다른 네 명을 모았다. 그렇게 만든 팀의 노래가 몇 년 뒤 역주행했다.
#76대체 그 작은 회사는 어떻게 리센느를 만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