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노기와 마비노기 모바일을 만든 데브캣 대표
21년 전의 자신을 다시 상대해야 했던 게임 개발자
#12018년 부산 지스타. 사람들이 한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고 있었다. 그래픽이 있었다. 캐릭터가 움직였다. 전투도 했다. 기자들은 개발자에게 게임에 관해 물었고, 개발자는 앞으로 무엇을 보여줄지 이야기했다.
#2게임 이름은 마비노기 모바일. 무대에는 원작 "마비노기"를 만든 김동건이 있었다.
#3이 정도면 누구나 비슷하게 생각한다. 곧 나오겠네. 인간은 가끔 근거 없이 낙관적이다.
#42019년. 안 나왔다. 2020년. 안 나왔다. 2021년. 여전히 안 나왔다.
#52022년 지스타에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도 사람들이 직접 플레이했다. 그런데 출시까지는 또 기다려야 했다.
#6몇 년이 더 지나자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언제 나와요?"였다. 나중에는 "지금까지 얼마 들어갔어요?"가 됐다.
#7개발비가 1,000억 원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게임은 아직 정식 출시도 안 했는데 숫자부터 보스 몬스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김동건이 있었다.
#8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대체 이 사람은 왜 마비노기를 이렇게까지 오래 붙잡고 있었을까. 답을 찾으려면 2018년보다 훨씬 전으로 가야 한다.
#9김동건은 대구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웃집에서 처음 컴퓨터를 접했다. 요즘 어린이가 컴퓨터를 만난다면 게임이나 유튜브부터 켤지 모르지만, 당시 컴퓨터를 쓴다는 것은 상당 부분 직접 뭔가를 프로그래밍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10김동건은 빠졌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부모님은 청계천에서 애플 II 호환 컴퓨터를 36만 원에 사줬다. 정품은 아니었다. 훗날 김동건 자신도 이 컴퓨터를 '짝퉁 애플 II'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짝퉁 컴퓨터가 한 사람의 인생은 진짜로 바꿔놓았다.
#11중학교 때부터 컴퓨터 경진대회에도 나갔다. 여기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서울에서 대회가 열리면 어머니는 아들이 쓰던 컴퓨터를 파란 보자기에 싸서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12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참가한 대회에서는 떨어졌다. 김동건은 자기 실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결론은 달랐다.
#13컴퓨터가 나빴다. 8비트 컴퓨터가 문제라고 생각한 어머니는 16비트 컴퓨터를 사줬다. 아들은 신이 나서 더 열심히 프로그래밍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국 컴퓨터 올림피아드에서 대상을 받았다. KAIST에 들어갈 자격까지 얻었다.
#14그런데 컴퓨터에 그렇게 미쳐 있던 사람이 정작 에서 고른 전공은 전산학이 아니었다.
#15산업디자인이었다. 게임을 만들려면 프로그램만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어떻게 보고, 느끼고, 조작하는지가 중요했다. 대학원에서는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인간·기계 상호작용, HMI까지 연구했다. 게임을 좋아하던 아이의 관심은 이미 조금씩 ‘컴퓨터를 어떻게 움직이는가’에서 ‘사람이 가상세계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로 옮겨가고 있었다.
#16김동건은 대학에서 공부만 하지 않았다. 게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옆에는 훗날 "마비노기 영웅전"을 만들고 "야생의 땅: 듀랑고"를 이끌게 되는 같은 동료들이 있었다. 이원 등 훗날 마비노기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이 시절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171996년에는 "불기둥 크레센츠"라는 게임까지 만들었다. 삼성전자가 유통을 맡았다. 학생들이 만든 게임치고 꽤 멀리 갔다.
#18그런데 이 시절부터 김동건에게는 묘한 장난기가 있었다. 게임의 여성형 기체가 쓰러질 때 들어가는 소리를 직접 이상한 목소리로 녹음하는 식이었다. 훗날 마비노기에 들어갈 수많은 기묘한 아이디어를 생각하면 꽤 그럴듯한 예고편이다. 규모만 작았을 뿐이다.
#19그러던 어느 날 학교 선배들이 찾아왔다. 와 김상범이었다. 넥슨에 오라고 했다. 밥도 사고 술도 사며 김동건을 설득했다. 게임 회사에 갈 생각이었던 김동건은 받아들였다.
#20그리고 김상범이 농담 비슷하게 말했다. 게임 회사가 쉬는 날이 어디 있느냐고. 김동건은 그 말을 믿었다.
#212000년 1월 1일. 잔뜩 긴장한 신입사원 김동건은 첫 출근을 했다. 문이 잠겨 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22한국 게임사에 오래 남을 개발자의 넥슨 첫날은 게임으로 치면 서버 점검 중이었다.
#23당시 은 지금의 거대한 게임회사와는 분위기가 상당히 달랐다. 김동건의 회고에 따르면 직원들은 게임 만드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퇴근을 하지 않았다. 저녁이면 같이 술을 마시며 아이디어를 이야기했다.
#24"이거 되겠다." 그러면 만들어봤다. 주 6일을 밤낮없이 일하던 시절이었지만 김동건은 훗날 이때를 가장 즐거웠던 시기로 기억했다.
#25넥슨에 들어와 처음 만든 작품은 피처폰용 멀티플레이 게임 "코스모노바"였다. 하지만 김동건은 자기 온라인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26문제가 있었다. 당시 새로운 대형 프로젝트는 이미 성과를 보여준 개발자에게 돌아가기 쉬웠다. 김동건에게는 아직 그런 대표작이 없었다.
#27그래서 일단 기획서를 만들었다. 눈에 띄게 만들었다. 분량도 많았다. 제목부터 이상했다.
#28마비노기. 회사 사람들에게도 생소한 단어였다. 그런데 이 이름은 20여 년 뒤 김동건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돌아오게 된다. 그건 한참 뒤의 이야기다.
#29당장은 더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대체 무슨 게임을 만들겠다는 것인가.
#302000년대 초 한국 MMORPG의 욕망은 비교적 명확했다. 몬스터를 잡는다. 강해진다. 더 좋은 장비를 얻는다. 더 강한 몬스터를 잡는다. 사람보다 강해진다. 계속 강해진다.
#31그런데 김동건은 조금 다른 걸 하고 싶었다. 양털을 깎게 하면 어떨까. 낚시도 한다. 요리도 한다. 옷도 만든다. 악기를 연주한다. 작곡도 한다. NPC 가게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한다.
#32한국 MMORPG의 군비 경쟁 한복판에 갑자기 목축업자가 나타난 셈이다.
#33이 게임에서는 몬스터를 잡지 않고 하루를 보내도 됐다. NPC에게 아르바이트를 받아 돈을 벌 수도 있었다. 판타지 세계에 왔는데 취업부터 한다. 판타지 라이프라더니 판타지 세계 청년취업지원사업도 들어 있었다.
#34김동건이 만들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전투가 많은 가상세계가 아니었다. 그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훗날 그는 이것을 ‘생활감’이라고 표현했다. 언젠가 게임을 떠올렸을 때 "거기서 정말 살았던 것 같다"고 느끼는 게임. 마비노기의 핵심은 처음부터 여기에 있었다.
#35이 철학은 캐릭터에도 들어갔다. 마비노기를 시작하면 만나게 되는 대표적인 존재가 다. 김동건이 나오를 구상하면서 떠올린 이미지 가운데 하나는 "은하철도 999"의 이었다.
#36메텔은 철이를 미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나오는 플레이어를 마비노기의 세계로 안내한다. 다른 개발자라면 튜토리얼 창을 하나 더 만들었을 상황에서 김동건은 신비로운 안내자를 만들었다.
#37그리고 마비노기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카툰 렌더링을 사용했다. 팀에 제대로 된 3D 게임 제작 경험이 충분했던 것도 아니었다. 외부 엔진을 구해 개발하면서 하나씩 방법을 찾아갔다.
#38이 게임을 만들던 조직이 훗날 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는다. 넥슨 안에서도 개발팀이 보다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스튜디오 형태를 실험했다. 김동건은 결국 게임 하나만 만든 것이 아니었다. 게임을 만드는 조직의 방식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39그렇다면 그렇게 이상하게 만든 MMORPG는 성공했을까.
#402004년 "마비노기"가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개발자가 준비한 콘텐츠만 하지 않았다.
#41모닥불 주변에 모여 앉았다. 다른 사람이 연주하는 음악을 들었다. 직접 악보를 만들어 합주했다. 옷을 맞춰 입었다. 이야기했다. 자기들끼리 놀이를 만들었다.
#42개발자가 ‘게임’을 만들어놓았더니 이용자들이 그 안에 문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김동건이 바라던 일이었다.
#43데브캣은 훗날 자신들의 비전을 ‘플레이가 이야기가 되는 게임’이라고 표현했다. 개발자가 만들어놓은 이야기를 소비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가 무엇을 했느냐가 그 사람만의 이야기가 되는 게임. 마비노기는 그런 게임이 됐다.
#44누적 가입자는 수백만 명 규모로 늘어났고, 2004년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김동건 자신도 그 세계의 일부가 됐다.
#45마비노기 이용자들에게 김동건은 본명만큼이나 다른 이름으로 유명했다. 나크(Naak).
#46개발자가 회사 뒤에 숨어 있지 않고 이용자들이 인식하는 하나의 캐릭터가 됐다. 심지어 나크라는 존재는 게임 안 NPC로도 들어갔다. 게임을 만든 사람이 자기 게임의 주민이 되어버렸다. 보통 회사 대표가 게임에 들어가면 최종 보스쯤 될 것 같은데 마비노기에서는 그냥 세계의 일부가 됐다. 그만큼 초기 마비노기는 개발자와 이용자 사이의 거리가 독특했던 게임이었다.
#47하지만 마비노기 하나가 성공했다고 모든 일이 잘 풀린 것은 아니었다. 데브캣은 이후 여러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마비노기 영웅전" 같은 성공작도 나왔다. 반면 개발 과정에서 사라진 프로젝트도 있었고, 기대만큼 자리 잡지 못한 시도도 있었다.
#48시간이 지나면서 데브캣에는 묘한 이미지도 생겼다. 독특한 게임을 만드는 곳. 그리고, 오래 만드는 곳.
#49이 두 이미지가 한 작품에서 동시에 폭발한다. 마비노기 모바일이었다.
#502018년 김동건은 마비노기 모바일을 소개하면서 원작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생활감’이라고 말했다. 게임을 오래 기억했을 때, 내가 그곳에서 정말 살았던 것 같은 느낌. 그걸 다시 만들고 싶었다.
#51문제는 마비노기가 이미 너무 오래 살아 있었다는 것이다. 2004년 중학생이었던 이용자는 2025년이면 30대가 된다. 대학생이었다면 40대가 된다. 사람들은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만큼 긴 시간이다.
#52마비노기는 늙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비노기를 하던 사람들은 모두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만든 사람도 나이를 먹었다.
#53그래서 원작을 그대로 만들 수도 없었다. 그대로 만들면 이런 말이 나온다. "2020년대에 이걸 왜 해?" 많이 바꾸면 반대쪽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이게 무슨 마비노기야?"
#54김동건이 싸워야 할 상대는 경쟁사의 최신 MMORPG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완벽하게 보정된 옛 마비노기가 있었다. 결국 마비노기 모바일의 가장 까다로운 최종 보스는, 2004년의 김동건이었다.
#55김동건은 마비노기 모바일을 ‘고향 같은 게임’이라고 표현했다. 원작을 해본 사람에게는 다시 돌아오는 곳.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새롭게 살아볼 곳.
#56그러려면 복사해서는 안 됐다. 원작의 세계와 사건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다른 사람이 같은 옛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는 것처럼 변주하려 했다. 퍼거스 같은 오래된 캐릭터도 돌아왔다. 원작에서 악명 높았던 경험까지 그대로 복제할 필요는 없었다. 고향을 보존한다고 수도관까지 2004년 것으로 쓸 필요는 없으니까.
#57전투는 현대화하고, 모바일에서 불편한 생활 요소는 덜어내고, 커뮤니케이션은 강화했다. 하지만 김동건이 버리지 않으려 한 것은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 같이 모험하는 것. 같이 놀다가 기억을 만드는 것. 그는 마비노기가 가야 할 방향을 ‘만남과 모험’이라고 표현했다.
#582018년에는 원작이 앞으로도 10년, 15년 더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마비노기 모바일은 단순한 모바일 이식작이 아니었다. 자기가 만든 세계의 수명을 늘리는 프로젝트였다.
#59그래서 처음에는 비교적 작은 규모였던 프로젝트가 커졌다. 김동건은 초기 공개 반응이 좋자 규모를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원작에서 하지 못했던 것도 넣고 싶었다. 완성도도 높이고 싶었다.
#60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61이제 처음 장면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2018년 지스타. 사람들이 마비노기 모바일을 플레이한다. 그때는 정말 곧 나올 것처럼 보였다.
#62하지만 개발은 계속됐다. 2022년 지스타에서 다시 시연됐다. 그 사이 데브캣 자체도 변했다. 넥슨 내부 스튜디오였던 조직은 독립 법인이 됐다. 김동건은 개발팀을 이끄는 사람에서 회사 대표가 됐다.
#63예전에는 자기가 마음에 안 들면 선배가 직접 해버리는 문화가 있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대표가 된 뒤 생각이 바뀌었다. 후배에게 맡기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64자신이 처음 일할 때 게임업계에는 40대 개발자가 거의 없었다. 그러니 선배가 늙어서 후배에게 일을 넘기는 방법을 배울 기회 자체가 없었다. 한국 게임산업 1세대가 처음 겪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65게임만 오래된 게 아니었다. 개발자들도 처음으로 함께 늙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마비노기 모바일 개발은 계속됐다. 개발비가 1,000억 원을 넘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첫 공개로부터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이제 단순히 잘 만들면 되는 상황도 아니었다.
#667년 가까이 기다리게 하고, 엄청난 돈을 쓰고, 20년 된 대표 IP를 가져와서, 평범한 게임을 내놓으면? 그 자체가 실패처럼 보일 수 있었다.
#67출시를 앞둔 2025년, 김동건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마비노기 모바일이 자신에게 마지막 대규모 MMORPG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68생각해보면 이상한 장면이다. 어릴 때 작은 컴퓨터로 혼자 게임을 만들던 사람이, 수십 년 뒤 수백 명이 참여하는 거대한 MMORPG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692025년 3월 27일. 마비노기 모바일이 출시됐다. 2018년 지스타에서 처음 시연한 뒤 약 6년 4개월. 개발 발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더 긴 시간이었다.
#70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였다. 그래서 성공했나?
#71초기 반응은 강했다. 마비노기 모바일은 출시 직후 양대 앱마켓 인기 1위에 올랐고, 이후 매출 순위에서도 정상권에 올랐다. 그리고 흥행이 일회성으로 끝나지도 않았다.
#722025년 10월 넥슨 측이 밝힌 누적 매출은 3,000억 원 이상이었다. 개발비 1,000억 원 이상이라는 숫자로 놀라게 했던 게임이 이번에는 매출 3,000억 원이라는 숫자를 들고 돌아왔다.
#73하지만 김동건 이야기에서 더 상징적인 장면은 한 달 뒤에 찾아왔다. 2025년 11월 12일. 대한민국 게임대상. 마비노기 모바일이 대통령상인 대상을 받았다. 기획·시나리오와 사운드 부문의 기술창작상까지 포함해 3관왕이었다.
#7421년 전으로 돌아가면 묘한 대칭이 보인다. 2004년 "마비노기". 최우수상. 2025년 "마비노기 모바일". 대상.
#75첫 번째 마비노기를 만든 젊은 개발자가 두 번째 마비노기로 다시 그 무대에 올라왔다. 그 사이에 21년이 있었다.
#76김동건은 함께 만든 개발자들과 넥슨, 이용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갑자기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77할머니. 앞에서 미뤄두었던 ‘마비노기’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여기서 돌아온다. 마비노기는 웨일스의 오래된 이야기에서 온 이름이다. 김동건은 이 게임의 테마를 ‘할머니가 들려주신 옛 이야기’처럼 설명해왔다. 같은 이야기도 누가 들려주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그래서 마비노기 모바일도 원작을 그대로 복사할 필요가 없었다. 또 다른 사람이 다시 들려주는 옛이야기처럼 만들 수 있었다.
#78그런데 마비노기 모바일을 개발하는 동안 김동건의 실제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대상을 받은 날 그는 말했다. 지금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고.
#79게임을 처음 만들던 김동건에게 마비노기는 하나의 제목이었다. 20여 년이 지나자 그 이름 안에는 게임만 들어 있지 않았다. 함께 게임을 만든 사람들. 떠났다가 돌아온 이용자들. 젊었던 자기 자신. 그리고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까지 들어 있었다.
#80게임이 오래 살아남으면 이런 일이 생긴다. 게임의 역사가 사람의 인생보다 짧다고 말하기 어려워진다.
#81그런데 김동건의 이야기를 너무 근엄하게 끝내면 이 사람에게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 어릴 때 부모님이 컴퓨터를 사줬던 김동건은 이제 자녀를 둔 부모가 됐다.
#82보통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잔소리는 익숙하다. 게임 좀 그만해라. 공부해라.
#83김동건의 집에서는 방향이 조금 다르다. 그는 자녀에게 오히려 이런 취지의 말을 한다고 이야기했다.
#84하라는 게임은 안 하고 왜 공부하냐. 파란 보자기에 컴퓨터를 싸 들고 아들의 대회에 따라다녔던 어머니. 그 아들은 게임 개발자가 됐다. 그리고 이제 자기 아이에게 게임을 하라고 한다. 한 가족에서 게임을 둘러싼 잔소리가 한 세대 만에 완전히 뒤집혔다.
#852026년에도 마비노기 모바일은 끝난 프로젝트가 아니다. 출시를 기다리던 게임은 이제 업데이트를 기다리는 게임이 됐다. 데브캣 역시 KAIST 학생 몇 명이 게임을 만들던 시절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규모의 개발사가 됐다.
#86하지만 김동건에게 더 재미있는 것은 따로 있다. 그의 사무실에는 오래된 애플 컴퓨터들이 있다. 그리고 그는 퇴근한 뒤에도 그런 구형 컴퓨터로 작은 게임을 만든다고 했다.
#87대규모 MMORPG는 마비노기 모바일이 마지막일지 모른다. 하지만 게임 만드는 일을 끝내겠다는 뜻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이다.
#88초등학교 3학년. 처음 컴퓨터를 만났다. 초등학교 4학년. 부모님이 애플 II 호환 컴퓨터를 사줬다. 소년은 거기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89그 뒤 게임회사의 직원이 됐다. 마비노기를 만들었다. 데브캣을 만들었다. 수백만 명이 들어오는 세계를 만들었다. 회사가 커졌다. 대표가 됐다. 수백 명이 만드는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1,000억 원 이상이 투입됐다고 알려진 게임을 출시했다. 3,000억 원이 넘는 누적 매출을 기록했다. 대한민국 게임대상 대상도 받았다.
#90그리고 집에 가면, 다시 오래된 컴퓨터 앞에 앉아 작은 게임을 만든다. 김동건은 오래전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은 실제로 그곳에서 이야기를 만들었다. 누구를 만났는지. 어디서 밤새 떠들었는지. 누구와 모닥불 앞에 앉았는지.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91그렇게 20년 넘게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마비노기 안에 쌓였다. 그리고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뒤 돌아보니, 그 안에서 가장 오래 이어진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그 게임을 계속 만들고 있던 김동건 자신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