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회사가 성공하기 전부터 실리콘밸리가 먼저 알아본 창업가
샘 올트먼은 어떻게 자기 회사보다 먼저 유명해졌을까?
#12009년, 폴 그레이엄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창업자 다섯 명에 관한 글을 썼다.
#2스티브 잡스. 구글을 만든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Gmail을 만든 폴 부크하이트.
#3여기까지는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한 명이 이상했다. 샘 올트먼.
#4당시 올트먼은 스물네 살이었다. 그가 만든 스타트업 "Loopt"는 4년째 고전하고 있었다. 세상을 바꾼 제품도 없었고, 엄청난 엑싯을 한 것도 아니었다.
#5그런데 그레이엄은 제품 디자인에 관해 생각할 때는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지만, 전략이나 야망에 관해 생각할 때는 "샘이라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한다고 썼다.
#6더 이상한 표현도 있었다. 그레이엄은 올트먼을 만나면서 세상에는 아주 드물게,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것 같은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7그때는 OpenAI가 생기기 6년 전이었다. ChatGPT가 나오기 13년 전이었다.
#8그레이엄은 대체 뭘 보고 있었던 걸까?
#92005년, 샘 올트먼은 스탠퍼드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여름에는 골드만삭스에서 인턴을 할 예정이었다.
#10그런데 친구들과 수업이 끝난 뒤 만들던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다. 휴대전화 위치를 이용해 근처에 있는 친구를 알려주는 서비스였다.
#11지금이라면 별로 이상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었다. 휴대전화 통신사와 직접 협력하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시키기도 어려웠다.
#12그해 폴 그레이엄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름은 Y Combinator.
#13올트먼은 골드만삭스에 가는 대신 여기에 지원했다. YC의 첫 번째 배치였다.
#14면접에서 올트먼을 본 그레이엄은 훗날 그를 "19살인데 40살 같은 사람"으로 기억했다.
#15처음에는 거절당했다. 그런데 올트먼은 순순히 돌아가지 않았다. 그레이엄의 회고에 따르면 열아홉 살짜리가 마치 마흔 살처럼 강하게 반박하며 자신은 이 프로그램에 들어갈 거라고 말했다.
#16결국 올트먼과 친구들은 YC에 들어갔다. 그들의 회사가 "Loopt"였다.
#17그리고 여기까지만 보면 폴 그레이엄이 천재 창업자를 일찍 알아본 이야기처럼 보인다.
#18문제는— Loopt가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19올트먼은 학교를 그만두고 Loopt에 매달렸다. 투자도 받았다. 통신사와 계약도 맺었다.
#20회사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정말 사랑하는 제품을 만들지는 못했다.
#217년이 흘렀다. 2012년 Loopt는 금융회사 Green Dot에 약 4,340만 달러에 팔렸다.
#22서비스는 종료됐다. 직원들은 Green Dot의 모바일 팀으로 옮겨갔다. 올트먼 자신도 훗날 첫 스타트업에 대해 꽤 냉정하게 말했다.
#23크게 실패했다고.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Loopt의 평판은 별로 올라가지 않았는데,
#24샘 올트먼의 평판은 계속 올라갔다. 심지어 Loopt가 매각되기도 전인 2011년, Hacker News에는 누군가 이런 질문을 올렸다.
#25폴 그레이엄이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준 창업자 다섯 명 가운데 샘 올트먼을 넣었는데,
#26Loopt는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왜 샘 올트먼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이었다.
#27지금 우리가 갖는 의문을 당시 사람들도 이미 갖고 있었던 것이다.
#28그레이엄이 올트먼을 설명할 때 반복해서 등장하는 표현들은 조금 특이하다.
#29제품 감각. 코딩 실력. 기술적 천재성. 이런 말들이 아니었다. 강인함. 적응력. 결단력. 전략.
#30야망. 그리고 force of will. 어려운 일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그레이엄은 중요하게 봤다.
#31그는 훗날 젊은 창업자들에 관해 쓰면서 다시 열아홉 살 올트먼을 떠올렸다.
#32왜 자신은 그를 처음부터 마흔 살처럼 느꼈을까? 그레이엄이 내놓은 설명 중 하나는 책임을 대하는 태도였다.
#33문제가 생겼을 때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34그레이엄은 후자에서 올트먼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밖에서 Loopt를 바라본 사람은 이렇게 물었다.
#35"회사가 얼마나 성공했지?" 그레이엄은 7년 동안 훨씬 가까운 곳에서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36"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 사람은 뭘 하지?" 그리고 Loopt가 아직 고전하던 시기에 이미 올트먼 주변에서는 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372010년 무렵 올트먼의 은행 계좌에는 약 1만7천 달러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중 약 1만5천 달러를 어느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38창업자는 패트릭과 존 콜리슨 형제였다. 회사의 초기 아이디어는 인터넷 결제를 훨씬 쉽게 만드는 것이었다.
#39당시 많은 투자자에게 금융 경험도 없는 어린 창업자들이 금융 인프라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다.
#40올트먼은 달리 봤다. 창업자들이 대단해 보였고, 인터넷 상거래가 거대한 시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41그 회사가 훗날 Stripe가 됐다. 이런 관계가 하나씩 쌓이기 시작했다.
#42Reddit이 위기에 빠졌을 때 공동창업자 스티브 허프먼이 연락하는 사람 중 하나가 올트먼이었다.
#43베테랑 투자자 키스 라부아도 중요한 커리어 결정을 앞두고 올트먼에게 조언을 구했다.
#44올트먼은 라부아의 결혼식 주례까지 맡았다. 아직 샘 올트먼에게는 세상이 알아주는 대표작이 없었다.
#45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의 대표작에는 조금씩 샘 올트먼이 들어가고 있었다.
#462012년 무렵 폴 그레이엄은 YC를 누군가에게 넘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47YC는 커지고 있었다. 그레이엄은 자신이 조직을 크게 운영하는 데 적합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48누가 해야 할까? 그와 제시카 리빙스턴이 떠올린 사람이 있었다. 샘 올트먼.
#49그레이엄은 1년 넘게 그를 설득했다. 그런데 올트먼은 처음에 거절했다.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었다.
#50원자로 스타트업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도 그레이엄은 포기하지 않았다.
#51결국 2014년, 스물여덟 살의 샘 올트먼이 Y Combinator의 회장이 됐다.
#52그레이엄은 발표문에서 이유를 숨기지 않았다. 9년 동안 만난 사람 가운데 YC를 키우는 일을 가장 잘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53올트먼은 자신이 아는 가장 똑똑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고, 자신이 어려운 문제에 두 번째 의견이 필요할 때 찾아가는 사람이었다.
#54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울 정도로 일을 실제로 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552009년의 이상한 칭찬은 5년 뒤 실제 베팅이 됐다. 폴 그레이엄은 말로만 샘 올트먼을 높게 평가한 게 아니었다.
#56자기가 만든 조직을 그에게 넘겼다.
#57YC는 잘됐다. 배치 규모는 커졌고 조직도 확장됐다. 올트먼은 실리콘밸리에서 점점 더 중요한 사람이 됐다.
#58그런데 2015년, 그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있었다. 어느 날 Stripe의 전 CTO 그렉 브록먼이 올트먼에게 물었다.
#59새로 만들려는 연구소의 목적이 뭐냐고. 올트먼은 대답했다. 안전한 인간 수준 AI를 만든다.
#60당시는 지금과 달랐다. AGI를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연구자의 커리어에 위험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61브록먼은 그 말을 듣고 이 프로젝트를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뒤 올트먼의 차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면서 질문을 쏟아냈다.
#62그러다가 결심했다. 하겠다고. 남은 차 안에서 그는 벌써 조직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63곧 일리야 수츠케버 같은 세계적인 연구자들이 모였다. Elon Musk도 참여했다.
#64그렇게 OpenAI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당시에는 아무도 이게 성공할지 몰랐다.
#65올트먼 자신도 훗날 거의 시작하지 않을 뻔했다고 말했다. DeepMind는 너무 앞서 보였고,
#66AGI를 만들겠다는 말은 미친 소리처럼 들렸고, YC에는 훨씬 안전하고 확실한 기회가 많았다.
#67그런데 올트먼은 점점 OpenAI 쪽으로 기울었다.
#682019년이 되자 문제가 생겼다. 샘 올트먼은 YC와 OpenAI를 동시에 이끌고 있었다.
#69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웠다. 폴 그레이엄의 훗날 설명에 따르면 제시카 리빙스턴은 올트먼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70OpenAI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YC에 전념할 수도 있었다. 반대로 YC를 떠나 OpenAI에 전념할 수도 있었다.
#71올트먼은 골랐다. OpenAI. 그때는 아직 ChatGPT도 없었다.
#72GPT-3도 없었다. OpenAI는 오히려 엄청난 컴퓨팅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지 고민해야 하는 연구소였다.
#73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도 올트먼이 늘 하던 일이 다시 나타났다.
#74이번에 필요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돈과 컴퓨터였다. Microsoft가 들어왔다.
#752019년 10억 달러를 투자했다. OpenAI를 위한 거대한 컴퓨팅 인프라도 함께 만들기로 했다.
#76올트먼은 세계 최고의 AI 연구자가 아니었다. GPU를 만드는 사람도 아니었다.
#77데이터센터를 만드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쯤 그의 자리는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었다.
#78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사람과 돈과 조직을 같은 미래에 베팅하게 만드는 자리.
#79그리고 2022년, 그 모든 것이 폭발했다.
#80OpenAI 내부에서는 사람들이 GPT-3.5와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81그래서 일반인도 쉽게 써볼 수 있는 형태로 공개해보기로 했다. 거대한 신제품 전략이라기보다 일종의 데모에 가까웠다.
#82이름은 처음에는 "Chat With GPT-3.5" 같은 것이었다. 결국 조금 줄였다.
#83ChatGPT. 2022년 11월 30일 공개됐다. 그리고 세상이 뒤집혔다.
#84올트먼은 훗날 언젠가 AI의 티핑포인트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ChatGPT일 줄은 몰랐다고 회고했다.
#8513년 전 폴 그레이엄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높게 평가했던 청년에게, 이제 처음으로 전 세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결과가 생겼다.
#86Microsoft의 베팅은 더 커졌다. OpenAI의 가치도 폭등했다. 올트먼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CEO 중 하나가 됐다.
#87그레이엄이 옳았던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샘 올트먼은 해고됐다.
#882023년 11월 17일. OpenAI 이사회는 갑자기 샘 올트먼을 CEO에서 해임했다.
#89사업을 못해서가 아니었다. ChatGPT는 역사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90돈을 못 구해서도 아니었다. 이사회가 공식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신뢰였다.
#91올트먼이 이사회와 소통하면서 일관되게 솔직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그가 회사를 이끌 능력을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92여기서 불편한 과거 하나가 다시 나타난다. Loopt 시절에도 고위 직원들이 올트먼의 행동을 문제 삼으며 두 차례 이사회에 그를 해임해달라고 요구했다는 사후 보도가 있다.
#93물론 당시 내부 상황 전체가 독립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94샘 올트먼을 가까이서 본 모든 사람이 폴 그레이엄처럼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95어떤 사람은 그에게 자기 조직을 맡겼다. 어떤 사람은— 그를 조직에서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96그렇다면 그레이엄이 "force of will"이라고 불렀던 특성에는 다른 얼굴도 있었던 걸까?
#97그 답을 생각할 틈도 없이, OpenAI에서 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98올트먼이 쫓겨나자 그렉 브록먼도 회사를 떠났다. Microsoft는 곧바로 움직였다.
#99CEO 사티아 나델라는 올트먼과 브록먼이 이끄는 새로운 AI 연구조직을 만들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100그러자 OpenAI 직원들이 공개서한을 썼다. 이사회가 물러나고 올트먼과 브록먼을 복귀시키지 않으면,
#101자신들도 Microsoft로 옮길 수 있다고 했다. 서명자는 계속 늘었다.
#102700명을 넘었다. 당시 직원의 90%가 넘는 규모였다. 그리고 서명자 명단에는 이상한 이름 하나가 있었다.
#103일리야 수츠케버. 불과 며칠 전 올트먼을 해임하는 데 참여했던 바로 그 이사였다.
#104그는 공개적으로 자신이 이사회 행동에 참여한 것을 깊이 후회한다고 말했다.
#105이제 문제는 샘 올트먼 한 사람을 해고하는 것이 아니었다. OpenAI에서 샘 올트먼을 제거하려다가 OpenAI의 사람 대부분을 잃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106결국 11월 22일. 해임된 지 닷새 만에— 샘 올트먼은 OpenAI CEO로 돌아왔다.
#1072009년의 폴 그레이엄은 스물네 살의 올트먼을 보며 세상에는 극소수의 사람이 있다고 썼다.
#108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것 같은 사람. 14년 뒤, 올트먼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AI 회사에서 해고당했다가 닷새 만에 그 자리로 돌아왔다.
#109하지만 그 장면을 단순히 샘 올트먼의 의지가 이겼다고 설명하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
#110그는 혼자 돌아온 게 아니었다. 그렉 브록먼이 움직였다. Microsoft가 움직였다.
#111투자자들이 움직였다. 700명이 넘는 직원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 닷새 동안 처음 만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112올트먼의 영향력은 어느 날 ChatGPT가 성공하면서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었다.
#11319살 때 YC에서 시작된 관계. Loopt가 고전하던 시절의 관계. Stripe 같은 창업자들에게 일찍 베팅하면서 생긴 관계.
#114YC를 운영하면서 만들어진 관계. OpenAI라는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면서 생긴 관계.
#115그것들이 오랜 시간 겹쳐 있었다. 그래서 폴 그레이엄이 젊은 올트먼에게서 봤던 "force of will"은 어쩌면 혼자 이를 악물고 버티는 힘만을 뜻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116올트먼이 더 큰 일을 할수록,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사람도 더 많아졌다.
#117그레이엄이 YC를 맡아달라고 했을 때 올트먼이 처음 거절했던 이유가 있었다.
#118그는 원자로 스타트업을 만들고 싶었다. 실제로 이후에도 핵융합과 핵분열 기업에 오랫동안 투자했다.
#119올트먼은 자신이 미래에 중요하다고 보는 두 가지를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120풍부한 지능과 풍부한 에너지. 하나는 OpenAI가 만들고 있었다.
#121다른 하나는 에너지 회사들이 만들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둘은 서로 다른 꿈처럼 보였다.
#122그런데 20여 년이 지나 OpenAI의 AI 모델들은 너무 커졌다. 이제 필요한 것은 좋은 연구자와 투자금만이 아니었다.
#123거대한 데이터센터. 컴퓨팅 인프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돌릴— 엄청난 양의 전력.
#124열아홉 살 샘 올트먼은 휴대전화 위치 서비스를 작동시키기 위해 통신사를 찾아다녔다.
#125스물여덟 살에는 YC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원자로를 만들고 싶다며 망설였다.
#126그리고 이제 그가 선택했던 AI 회사는 너무 커져서, 다시 에너지를 찾아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