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 Combinator를 공동창업하고 스타트업 업계의 언어를 만든 프로그래머·에세이스트
자기가 무엇이 될지 계속 틀렸던 사람이 창업자의 교과서를 만들기까지
#1폴 그레이엄은 자기 미래를 예측하는 데 별로 소질이 없었다. 인공지능 연구자가 될 생각이었다. 그런데 AI를 공부하다가 흥미를 잃었다. 화가가 되기로 했다. 그것도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부자가 된 뒤에는 다시 그림만 그릴 생각이었다. 역시 그렇게 되지 않았다.
#2투자자가 될 계획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결국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중 하나를 만들었고, 레딧·에어비앤비·드롭박스·스트라이프 같은 회사의 초기에 관여했다.
#3이상한 것은 그가 길을 잘못 들 때마다 그 길에서 다음 인생에 필요한 무언가를 주워왔다는 점이다.
#4AI에서 프로그래밍 언어를 얻었고, 미술에서 만드는 법을 배웠다. 창업에서 창업자의 고통을 배웠고, 회사원 생활에서 조직이 만드는 사람을 어떻게 방해할 수 있는지 배웠다.
#5그리고 그 조각들이 나중에 하나의 이름 아래 모였다. Y Combinator.
#6어린 폴이 컴퓨터에 끌린 이유 중 하나는 인공지능이었다. 소설과 TV에서 보던, 인간과 대화하고 생각하는 컴퓨터가 실제로 만들어질 것처럼 보였다.
#7그는 코넬을 거쳐 하버드에서 컴퓨터과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그런데 당시 AI 연구를 깊이 들여다볼수록 자신이 상상했던 지능과 학계에서 실제로 만들고 있는 것 사이의 거리가 크게 느껴졌다.
#8대신 그는 에 빠졌다. AI 연구에서 오래 사용된 프로그래밍 언어였지만 폴에게 Lisp는 단순한 도구 이상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방식과 전혀 다르게 프로그램을 생각하게 만드는 언어였다.
#9그런데 컴퓨터과학 박사과정생이었던 그의 마음은 이미 또 다른 곳에도 가 있었다.
#10그림이었다. 하버드에서 미술 수업을 듣기 시작했고, Lisp 책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정작 박사논문은 쓰지 않았다.
#111990년 4월 지도교수 톰 치텀이 물었다. 6월에 졸업할 수 있겠느냐고.
#12문제가 하나 있었다. 논문을 한 글자도 쓰지 않은 상태였다. 폴은 거의 망설이지 않고 가능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정말 약 5주 만에 논문을 써서 졸업했다.
#13훗날 수많은 창업자에게 집중하라고 조언하게 될 사람이지만, 대학원 시절의 폴은 그림을 그리고 Lisp 책을 쓰느라 논문을 마지막에 몰아서 쓴 학생이었다.
#14그리고 그의 대학원 친구 중에는 더 기묘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였다.
#151988년 로버트 모리스가 만든 프로그램이 인터넷을 타고 퍼졌다. Morris Worm.
#16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복제되면서 당시 인터넷에 연결된 수많은 컴퓨터에 장애를 일으켰고, 모리스는 결국 미국 컴퓨터범죄법에 따라 유죄 판결을 받은 최초의 인물로 알려지게 된다.
#17보통 친구가 이런 사고를 치면 걱정부터 할 것 같다. 그런데 대학원 생활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던 폴은 훗날 조금 다른 감정을 회고했다.
#18모리스가 대학원에서 그렇게 화려하게 빠져나간 것이 부러웠다는 것이다. 한 명은 인터넷 역사에 남을 사고를 쳤고, 다른 한 명은 그걸 보고 대학원 탈출 방법부터 부러워했다.
#19몇 년 뒤 둘은 회사를 같이 차린다. 공동창업자 실사 단계에서 꽤 긴 설명이 필요한 조합이었다.
#20하지만 그 전에 폴은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화가가 되기로 했다.
#21박사학위를 받은 폴은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공부했고, 이탈리아 피렌체의 미술학교에도 갔다.
#22컴퓨터과학 박사가 르네상스의 도시에서 그림을 배우는 삶. 말로만 들으면 꽤 낭만적이다.
#23현실은 조금 달랐다. 피렌체에서 집세를 내고 나면 하루에 쓸 수 있는 돈이 약 7달러였다. 작은 방에서 남은 캔버스 조각에 정물화를 그렸고, 미술학교 수업에도 기대만큼 만족하지 못했다.
#24모델은 난로 옆에 앉아 있었고 학생들은 생각만큼 열심히 그리지 않았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 모델의 다른 일이었다.
#25골동품상에게 팔 가짜 옛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폴은 르네상스의 비밀을 배우러 피렌체에 갔다가 위작 공급망을 발견한 셈이었다.
#26그는 미국으로 돌아와서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다시 공부했고 뉴욕에서도 계속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그림만으로 먹고살기는 쉽지 않았다. 프로그래밍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다시 그림을 그리는 생활이 이어졌다.
#27이때 폴의 인생에서 반복될 패턴 하나가 선명해졌다. 좋은 기관을 찾아 들어간다. 안에서 직접 본다. 실망한다. 그러면 다른 방법을 찾는다.
#28AI 연구에서도 그랬고, 미술학교에서도 그랬다. 나중에는 회사와 벤처캐피털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291994년 무렵 뉴욕에서 그림을 그리던 폴은 스승 아이델 웨버의 작업실에서 큰 그림을 준비하고 있었다.
#30그러다 라디오에서 유명 펀드매니저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보다 그렇게 나이가 많지도 않은데 엄청난 부자였다.
#31폴은 문득 생각했다.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요즘 스타트업 창업기에서 흔히 나오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는 거창한 문장은 없었다. 돈 많은 사람 이야기를 들은 화가가 자기도 부자가 되어보기로 했다.
#32때마침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있었다. 월드 와이드 웹. 폴과 로버트 모리스는 처음에는 미술관을 인터넷에 올리는 사업을 시도했다. 아이디어는 그럴듯했지만 미술관들은 별로 원하지 않았다. 공짜로 홈페이지를 만들어주겠다고 해도 반응이 시원찮았다.
#33폴은 훗날 수많은 YC 지원서를 본 경험을 떠올리며 자신의 이 아이디어가 역사상 최악의 스타트업 아이디어까지는 아니어도 꽤 높은 순위였다고 농담했다.
#34그런데 실패한 미술관 사이트에서 한 가지가 보였다. 온라인 상점도 주문 버튼만 빼면 웹사이트라는 점이었다. 그들이 이미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35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친구 아파트 바닥에서 더 중요한 일이 벌어졌다.
#361995년 폴과 모리스는 온라인 상점을 만드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었다.
#37당시 일반적인 소프트웨어라면 사용자의 컴퓨터에 설치해야 했다. 문제는 두 사람 모두 윈도우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38어느 날 폴은 모리스의 아파트에 있었다. 룸메이트가 자리를 비우면 폴이 그 방에서 잤는데, 침대 프레임도 시트도 없이 바닥에 매트리스 하나가 놓여 있었다.
#39아침에 거기 누워 있던 폴에게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프로그램을 사용자의 컴퓨터에서 돌릴 필요가 있을까? 서버에서 돌리고 사용자는 웹브라우저로 조작하게 하면 되잖아?
#40그는 자신이 대문자 L처럼 벌떡 일어났다고 회고했다. 며칠 뒤 실제로 작동하는 버전이 나왔다.
#41오늘날 웹 애플리케이션, 나아가 SaaS라고 부르는 방식이었다. 회사의 이름은 이 됐다. 소프트웨어가 웹을 통해, via the web, 작동한다는 뜻이었다.
#42YC는 Viaweb을 최초의 SaaS 회사로 소개한다. 그리고 폴은 당시 주류 기업용 소프트웨어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던 Lisp로 핵심 시스템을 만들었다.
#43훗날 "Beating the Averages"에서 그는 이것을 스타트업의 경쟁우위로 설명한다. 모두가 같은 도구를 쓴다고 해서 그것이 가장 좋은 도구라는 법은 없다.
#44남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기술이 정말 더 강력하다면, 작은 회사에는 오히려 무기가 될 수 있다.
#45폴 그레이엄 특유의 사고방식이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남들이 안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반드시 좋은 이유라는 보장은 없다.
#46결과만 보면 Viaweb은 아름다운 성공담이다. 1995년 창업. 1998년 에 인수. 약 4,900만 달러 상당의 야후 주식.
#47하지만 폴이 기억하는 창업 과정은 다르다. 그는 Viaweb을 운영한 3년을 극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던 시기로 회고했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재미있었다. 문제는 CEO가 프로그램만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다.
#48영업해야 했다. 사람을 뽑아야 했다. 투자자를 상대해야 했다. 회사를 관리해야 했다.
#49닷컴 버블의 분위기에 휩쓸려 직원도 많이 늘렸다. 훗날 YC에서 당시의 자기 회사를 상담했다면 "성장 잘하고 있으니 그렇게 스트레스받지 말고 사람 너무 많이 뽑지 마라"고 조언했을 것이라고 스스로 돌아봤다.
#50하지만 당시의 폴에게는 폴 그레이엄이 없었다. 그 경험은 나중에 중요해진다.
#51폴은 스타트업을 멀리서 관찰한 투자자가 아니었다. 직접 한번 제대로 얻어맞아본 사람이었다.
#52야후의 인수는 폴에게 엄청난 안도감을 줬다. 가난한 미술학도처럼 살던 사람이 갑자기 부자가 됐다. 캘리포니아로 가면서 노란색 폭스바겐 GTI를 샀는데, 그 차의 가죽 시트가 자신이 가진 물건 가운데 압도적으로 가장 고급스러운 것이었다고 기억할 정도였다.
#53그런데 회사 매각에는 뜻밖의 부록이 따라왔다. 회사원이 되어야 했다. Viaweb은 Yahoo Store가 됐고 폴은 야후 조직 안에서 일했다. 그는 이 생활을 좋아하지 않았다.
#54회의와 조직문화, 거대한 회사의 속도는 직접 무언가를 만들 때의 리듬과 달랐다. Viaweb에서 소진된 상태이기도 했다.
#55결국 1999년 야후를 떠났다. 당시 포기한 스톡옵션의 가치가 한 달에 약 200만 달러씩 늘어날 정도로 닷컴 버블이 한창이었다. 상사는 폴이 정말 그림을 그리러 그만둔다는 말을 믿지 못했다. 분명 다른 회사를 차리려는 것이라고 의심했다.
#56하지만 폴은 정말 그림을 그리러 갔다. 애초에 회사를 만든 이유가 부자가 되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으니 이제 계획대로 살면 됐다.
#57그런데 역시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58폴은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Lisp를 만들고 여러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그러다 2001년 Lisp 콘퍼런스에서 Viaweb이 Lisp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발표했다. 발표문을 자신의 웹사이트에 올렸다.
#59하루 만에 약 3만 페이지뷰가 나왔다. 누군가 Slashdot에 올린 것이었다.
#60폴은 놀랐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편집자의 허락 없이도 사람들이 읽을 수 있었다.
#61지금 보면 너무 당연한 사실이다. 당시 폴에게는 발견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웹에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62그의 대표 저서 "Hackers & Painters"라는 제목도 우연한 조합이 아니었다. 폴에게 프로그래밍과 그림은 모두 완벽한 설계도를 먼저 만든 뒤 그대로 실행하는 일이 아니었다.
#63만들고, 보고, 고치고, 다시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프로그래밍, 스타트업, 일하는 방식에 관한 그의 글에서 이상할 정도로 오래 살아남는 표현들이 계속 나왔다.
#64"Maker's Schedule, Manager's Schedule." "Startup = Growth." "Do Things That Don't Scale." "Default Alive or Default Dead."
#65폴이 잘한 일 중 하나는 복잡한 현상을 짧은 이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만드는 사람과 관리자의 시간은 다르다고 했다. 관리자는 하루를 한 시간 단위 회의로 쪼갤 수 있지만 프로그래머나 작가에게는 몇 시간씩 끊기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66Viaweb과 야후에서 자신이 몸으로 겪었던 차이에 이름이 붙은 셈이었다.
#67그런데 이 글들을 읽던 사람들 가운데 곧 폴의 다음 인생을 만들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68그리고 2003년 한 파티에서 을 만났다.
#69제시카는 당시 투자은행에서 마케팅 일을 하고 있었고, VC 업계로 옮기는 것도 생각하고 있었다.
#70폴과 제시카는 초기 스타트업 투자가 왜 이렇게 불편한지 계속 이야기했다.
#71막 시작한 소프트웨어 회사는 예전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실험할 수 있었다. 그런데 투자 시스템은 여전히 큰돈을 넣는 방식에 맞춰져 있었다.
#72폴에게는 Viaweb 때의 기억도 있었다. 당시 그들에게 절실했던 것은 거대한 투자금이 아니라 초기 비용과 법률 작업, 그리고 경험 있는 사람의 조언이었다.
#73결국 두 사람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보면 되지 않을까? 2005년 3월, 폴과 제시카가 저녁을 먹고 집으로 걸어가던 길에 생각들이 하나로 합쳐졌다.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의 투자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74Viaweb 동료였던 로버트 모리스와 도 합류했다. 처음 이름은 Cambridge Seed였다. 하지만 지역 이름을 붙이면 누군가 실리콘밸리에서 같은 것을 복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이름을 바꿨다.
#75수학과 컴퓨터과학에서 등장하는 Y combinator에서 따왔다. Y Combinator.
#76그런데 네 사람에게는 한 가지 작은 문제가 있었다. 아무도 엔젤투자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77그래서 여러 회사에 한꺼번에 투자하며 빨리 배워보기로 했다. 세계적인 스타트업 기관의 출발점은 거대한 비전이라기보다 투자 초보 네 명의 여름 실험에 가까웠다.
#782005년 Summer Founders Program 모집을 시작했다. 약 200개 팀이 지원했고 8개 스타트업을 골랐다. 투자금은 창업자 한 명당 6,000달러였다.
#79MIT 대학원생이 여름 동안 받는 생활비를 참고했다. 사업가치 평가에서 나온 정교한 숫자라기보다,
#80여름 동안 안 굶고 회사를 만들 정도의 돈이었다. 운영도 지금의 거대한 YC와는 거리가 멀었다.
#81지원서는 이메일로 받았다. 출력했다. 종이를 돌려보며 심사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중 하나의 초기 지원 시스템은 사실상 프린트 버튼이었다.
#82매주 화요일이면 창업자들이 함께 저녁을 먹고 게스트의 이야기를 들었다. 제시카는 법인 설립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도왔다. 그해 여름 폭염이 찾아오자 창업자들이 더워서 일을 못 할까 봐 직접 에어컨을 사서 배달하기도 했다.
#83확장성이라고는 별로 없는 운영이었다. 그런데 훗날 폴이 스타트업에 남긴 가장 유명한 조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84"Do Things That Don't Scale."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자동화하고 확장 가능하게 만들려고 하지 마라. 필요하다면 고객을 직접 만나고 손으로라도 해결하라.
#85YC 자체가 그 말을 하기 전에 이미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발견도 있었다.
#86여러 회사를 한꺼번에 모아놓으니 창업자들이 서로 도왔다. 혼자 회사를 만들 때 느끼던 고립감이 사라졌다.
#87배치라는 구조가 투자자에게만 효율적인 것이 아니라 창업자에게도 좋았다. 여름 마지막에는 약 15명의 투자자를 불러 Demo Day를 열었다.
#88그런데 첫 번째 배치의 명단을 지금 보면 조금 이상하다. 레딧이 있었다. 훗날 Twitch를 만들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Loopt라는 위치 기반 서비스를 만들던 스무 살 남짓의 창업자가 있었다.
#89샘 올트먼이었다. 당시에는 아무도 이 여름학교가 어디까지 갈지 몰랐다.
#90YC를 만든 사람들조차 몰랐다.
#91레딧의 과 이 처음 YC에 가져온 것은 모바일로 음식을 주문하는 아이디어였다.
#92폴과 제시카는 그 사업에는 투자하지 않기로 했다. 탈락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 자체는 마음에 들었다.
#93결국 다시 연락해 다른 것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 과정에서 인터넷의 첫 페이지 같은 것을 만들자는 방향이 나왔고 레딧으로 발전했다.
#94이 장면에는 초기 YC의 특징이 압축돼 있다. 아이디어는 별로인데 너희는 마음에 든다. 그러니 다른 걸 만들어보자.
#95좋은 사업계획서를 골라 돈을 넣는 것과는 조금 다른 투자 방식이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이 철학을 훨씬 극적으로 보여주는 세 사람이 나타났다.
#96에어비앤비 창업자들이었다.
#972009년 YC 면접에 들어온 에어비앤비는 지금의 에어비앤비가 아니었다.
#98성장도 거의 없었고 아이디어 자체도 폴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낯선 사람의 집에서 돈을 내고 잔다?
#99당시에는 꽤 이상하게 들렸다. 그런데 창업자들이 이상한 물건을 보여줬다. Obama O's. Cap'n McCain's.
#1002008년 미국 대선 후보들을 패러디한 시리얼 상자였다. 돈이 없던 창업자들은 직접 상자를 디자인하고 시리얼을 넣어 팔았다.
#101숙박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으러 왔는데 투자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숙박이 아니라 시리얼이었다.
#102폴과 제시카가 본 것은 시리얼 사업의 잠재력이 아니었다. 이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별짓을 다 하는구나.
#103YC에 들어온 뒤에도 세 사람은 멈추지 않았다. 특히 의 에너지가 워낙 강해 폴은 그에게 '태즈메이니안 데블'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104뉴욕에 있는 호스트들을 직접 찾아가고, 사용자를 만나고, 사진을 찍어주며 서비스를 개선했다.
#105확장 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확장할 것도 없는 회사에는 그것이 더 중요했다.
#106"Do Things That Don't Scale"은 명언부터 만들어놓고 창업자들에게 적용한 철학이 아니었다.
#107YC와 그 회사들이 실제로 살아남는 모습을 관찰한 뒤 이름을 붙인 것에 가까웠다.
#108그리고 이 사례들에는 폴 혼자만의 눈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폴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는 데 강했다. 제시카는 사람을 보는 데 강했다.
#109누가 진짜인지, 공동창업자들이 서로를 좋아하는지, 누가 허세를 부리는지, 누가 힘들어하고 있는지를 살폈다.
#110폴 자신도 훗날 YC를 자신의 원맨쇼처럼 기억하는 것은 틀렸다고 강조했다.
#111초기 YC가 가족처럼 느껴졌던 데에는 실제로 그 중심에 함께 회사를 만든 커플이 있었다는 사실도 영향을 줬다.
#112창업자들을 만나고, 함께 밥을 먹고, 회사뿐 아니라 사람을 알게 됐다. YC의 기술적 얼굴이 폴이었다면 사람과 문화의 상당 부분에는 제시카가 있었다.
#113YC는 계속 커졌다. 가 나왔다. 가 나왔다. 에어비앤비가 성장했다.
#114YC 출신이라는 사실 자체가 투자자와 창업자 사이에서 하나의 신호가 됐다.
#115처음에는 투자하는 법을 배우려고 8개 회사를 모았던 실험이 스타트업 세계의 기관이 됐다.
#116여기서 폴의 인생에는 묘한 농담 같은 구조가 완성된다. 그는 AI 학계에 들어갔다가 실망했다. 미술학교에 들어갔다가 실망했다. 대기업에 들어갔다가 실망했다. 기존 VC 방식을 보다가 실망했다.
#117그래서 해결책을 찾았다. 자기가 기관을 만들면 됐다. 문제는 그 기관이 너무 성공했다는 것이다.
#118YC가 커질수록 폴의 시간을 집어삼켰다. 원래 그는 프로그래밍도 하고, 에세이도 쓰고, YC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YC가 점점 나머지를 먹어치웠다.
#1192010년 로버트 모리스가 폴에게 아주 드물게 먼저 조언을 했다. YC가 네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멋진 일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취지였다.
#120폴은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121YC가 자신의 평생 일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떠나야 했다. 그리고 얼마 뒤, 떠나야 할 더 개인적인 이유가 생겼다.
#1222012년 폴의 어머니가 뇌졸중을 겪었다. 원인은 대장암 때문에 생긴 혈전으로 밝혀졌다.
#123어머니는 균형감각을 잃었고 요양시설에 들어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124폴과 여동생은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폴은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오리건을 자주 오갔다. 그 비행기 안에서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125그리고 어느 비행에서 자신이 YC를 다른 사람에게 넘길 준비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26처음에는 제시카에게 대표를 맡을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제시카는 원하지 않았다.
#127그래서 다른 사람을 떠올렸다. 2005년 첫 배치에서 만났던 젊은 창업자였다.
#128샘 올트먼. 폴과 제시카는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유난히 높게 평가했다.
#129처음에는 폴이 샘에게 조언했다. 시간이 흐르자 폴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샘에게 의견을 묻는 관계가 됐다.
#130하지만 샘의 대답은 처음에는 거절이었다. 그는 원자로를 만드는 스타트업을 하고 싶어 했다.
#131폴은 계속 설득했다. 결국 샘이 받아들였고 2014년부터 YC를 이끌게 됐다.
#132첫 번째 여름학교의 학생에게 학교를 넘겨준 셈이었다. 그리고 폴은 자신이 만든 조직이 창업자들에게 영원히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YC의 지배구조도 새로운 세대가 운영할 수 있도록 바꿨다.
#133기관을 만들었던 사람이 그 기관이 자기 없이 살 수 있도록 떠난 것이다.
#134폴에게 떠나는 일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명성이나 권력을 내려놓는 일이 아니었다.
#135제시카와 더 이상 함께 일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두 사람은 만난 뒤 거의 줄곧 YC를 함께 만들었고 일과 사생활을 굳이 분리하지 않았다.
#136폴에게 YC를 떠나는 것은 깊게 뿌리내린 나무를 뽑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이후 어머니를 돌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어머니는 2016년 세상을 떠났다.
#137수천 개 회사의 미래를 고민하던 사람은 어느 순간 자신의 시간을 한 사람에게 돌렸다.
#138YC에서 물러난 뒤 폴은 거대한 투자 제국을 따로 만들지 않았다. 다시 글을 썼다.
#139그런데 이제 그의 글은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었다. 스타트업 업계가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가져다 쓰는 단어가 됐다.
#140"Startup = Growth." 작은 회사라고 모두 스타트업은 아니다. 스타트업의 핵심은 빠르게 성장하도록 설계됐다는 데 있다는 주장이다.
#141"Default Alive or Default Dead." 추가 투자를 받지 못한다고 가정했을 때 현재 성장률과 비용으로 결국 살아남는 회사인가, 돈이 먼저 떨어지는 회사인가.
#142복잡한 경영 문제를 잔인할 정도로 단순한 질문으로 바꾼다. 그리고 2024년에는 또 하나의 표현이 크게 퍼졌다.
#143"Founder Mode." 계기는 오래전 시리얼 상자를 들고 YC에 찾아왔던 브라이언 체스키였다.
#144회사가 커지면 창업자는 세부사항에서 물러나 전문경영자에게 위임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조언이 정말 맞는가?
#145폴은 의심했다. 창업자는 일반적인 관리자가 회사를 운영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깊숙이 관여할 수 있다는 생각에 Founder Mode라는 이름을 붙였다.
#146모든 것을 사사건건 통제하라는 뜻은 아니었다. 회사가 커졌다는 이유만으로 창업자가 자신이 만든 제품과 조직에서 멀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자는 쪽에 가까웠다.
#147재미있는 것은 관계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2009년에는 폴이 브라이언 체스키를 가르쳤다.
#14815년쯤 지나서는 브라이언이 거대한 회사를 운영하며 얻은 경험이 폴에게 새로운 개념을 줬다.
#149좋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언제나 한 방향일 필요는 없었다.
#150폴의 인생을 시작하게 만든 호기심은 AI였다. 그런데 수십 년 뒤 AI는 그가 젊은 시절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의 일상에 들어왔다.
#1512026년 폴은 창업자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이메일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특유의 매끈한 문체가 늘어났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152AI로 작성한 이메일이었다. 폴은 AI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쓴 것처럼 AI가 만든 문장을 보내는 방식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153젊은 시절에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컴퓨터를 만들고 싶어 AI 연구자가 되려 했다.
#154수십 년 뒤 실제 AI 시대가 찾아오자 그의 현실적인 고민 중 하나는 창업자들이 나한테 보내는 이메일을 AI가 대신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15540년을 돌아 AI가 꽤 예상 밖의 모습으로 돌아온 셈이다.
#1562026년 6월 폴은 에서 강연했다. 제목은 "How to Earn a Billion Dollars."
#157억만장자가 되는 법. 30여 년 전 뉴욕의 화실에서 라디오로 부자 이야기를 듣고
#158나도 부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 가난한 화가가 이제 옥스퍼드에서 억만장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159그에게는 꽤 독특한 표본도 있었다. 폴의 2026년 회고에 따르면 YC는 2005년 이후 약 6,500개 회사에 투자했다. 그리고 자신이 YC에서 가르친 창업자 가운데 약 30명이 억만장자가 됐다고 그는 썼다.
#160그 정도면 적어도 이 주제에 대해 관찰한 것은 많았다. 그런데 21년 동안 수천 개 회사를 본 뒤 내놓은 답은 놀라울 만큼 단순했다.
#161성장하는 회사를 만들어라. 그리고 그렇게 성장하려면 결국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
#162다시 YC의 오래된 모토로 돌아온다. "Make Something People Want."
#163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라. 스타트업 업계가 온갖 새로운 용어와 방법론을 만들어내는 동안 폴의 핵심 문장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1642026년 8월 폴은 "How Universities Should Prepare Founders"라는 글을 발표했다.
#165질문은 이것이었다. 대학은 미래의 창업자를 어떻게 준비시켜야 할까? 창업 전공을 만들어야 할까? 경영과 재무를 더 가르쳐야 할까?
#16621년 동안 YC가 창업자를 골라온 경험에서 폴이 내린 답은 달랐다. YC가 찾는 사람은 의외로 단순하다고 했다.
#167무언가를 만드는 데 능하고, 평소에도 계속 만드는 사람. 그러니 창업자를 만들겠다며 별도의 'entrepreneurship' 교육을 얹는 것보다 컴퓨터과학, 기계공학, 분자생물학처럼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분야를 제대로 가르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168이 말을 한 사람이 폴 그레이엄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젊은 폴은 좋은 학교를 계속 찾아다녔다.
#169컴퓨터과학을 공부했다. AI에 실망했다. 피렌체까지 그림을 배우러 갔다. 미술학교에 실망했다.
#170회사에 들어갔다. 조직에 실망했다. VC 업계를 봤다. 투자 방식에 실망했다.
#171그리고 결국 자기가 학교 비슷한 것을 하나 만들었다. YC였다. 그곳에서 20년 넘게 수천 개 회사를 본 뒤 대학들에게 돌려준 답은 결국 자기 인생을 설명하는 말처럼 들린다.
#172창업자를 만들려고 애쓰지 마라. 만드는 사람을 길러라.
#173폴 그레이엄은 AI 연구자가 되지 않았다. 화가로 이름을 남기지도 못했다.
#174Viaweb CEO로 평생 살지도 않았고, YC 대표 자리에도 남지 않았다.
#175직업 이름만 따라가면 그의 인생은 계속 방향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다른 기준으로 보면 놀라울 만큼 일관적이다.
#176그림을 만들었다.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Viaweb을 만들었다. Y Combinator를 만들었다.
#177YC를 운영하면서 창업자들이 회사를 만들도록 도왔다. 그리고 조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사람들이 스타트업을 생각할 때 사용하는 개념과 문장을 만들었다.
#178그는 인생의 정답을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방향을 바꾸는 데 유난히 미련이 없었다.
#179AI에서 빠져나온 길이 Lisp로 이어졌고, 화가로 고생한 시간이 Viaweb으로 이어졌고, Viaweb에서 고생한 경험이 YC의 투자 방식으로 이어졌고, 대기업에 대한 환멸이 만드는 사람의 시간을 설명하는 글로 이어졌다.
#180그래서 폴 그레이엄의 커리어를 직선으로 그리면 이상하다. 옆길까지 모두 그려야 비로소 모양이 나온다.
#181그리고 그가 처음 YC에 모았던 여덟 팀 가운데 스무 살 남짓의 창업자 하나가 있었다.
#182그의 첫 회사 는 폴 그레이엄이나 YC만큼 오래 기억되는 회사가 되지 못했다.
#183그런데 폴은 이상할 정도로 그 사람을 높게 평가했다. 9년 뒤 자신이 만든 조직을 그에게 넘겼다.
#184그 사람이 샘 올트먼이었다. 그리고 훗날 그는 OpenAI의 중심에 서게 된다.
#185AI 연구자가 되려고 했다가 AI를 떠났던 폴 그레이엄. 그가 만든 YC를 거쳐간 젊은 창업자 하나가 수십 년 뒤 다시 세계적인 AI 경쟁의 한복판에 섰다.
#186폴 그레이엄은 대체 스무 살의 샘 올트먼에게서 뭘 봤을까?